초이스
[초이스]나를 잊지 말아요
이윤정, 2010
휘적휘적 걷던 사내가 경찰서로 들어간다. 그는 지금 실종신고를 하는 참이다. 신고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경찰서 바깥을 흘긋거린다. 심드렁하게 신고를 접수받는 경찰의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에, 커다란 키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향해 앞으로 숙인 그의 어깨에 망설임과 두려움이 드리워 있다. 실종신고라면서 그가 전하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정확하지가 않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의 실종신고를 하는 참이다.
그는 기억을 잃어버렸다. 며칠 전 발바닥에 깊숙이 박힌 전구의 유리 조각을 빼내던 순간 ‘깨어났’다. ‘기억상실증’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손쉬운 갈등 국면을 위해 남용되는 소재지만, 이 짧은 단편에서는 이것 자체가 전제로 주어진다. 게다가 그가 깨어난 곳은 자기 외엔 아무도 없는 집 안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어렵고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를 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목욕 가운 차림으로 깨어났으니 이 집이 그의 집인 것은 분명한데, 그가 누구인지 찾을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다. 문밖, 겹겹이 포개어져 있는 아파트는 견고한 벽과 문으로 구획돼 있어 앞집에서 사람 소리는 나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물을 수는 없다. 묻는대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가 집 안에서 접한 단서조차도 오히려 혼란과 잘못된 정보만 준다. 집으로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 그가 뛸 듯이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화는 곧 보이스피싱임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 드물게 코미디의 웃음을 주는 부분이지만, 이 남자가 집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택배 배달원이 건네준 상자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겨우 알게 되지만, 영화의 에필로그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바, 그 이름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집은 그의 확장된 자아이다. 꽤 넓고 깔끔한 이 아파트엔 그가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이 거의 갖추어져 있다. 심지어 서랍에 현금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린 이에게 오히려 고립을 강화하는 공간이다. 자신을 오인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그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 단 한 사람, 그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가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 넓고 안락하지만 황량하기도 한 이 아파트 안에서, 그는 누구인지조차 모를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그가 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다소 극단적이다. 그는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해주었던 편의점 직원에게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나를 알지 않느냐”고 연신 물었고, 편지에는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썼다. 그에게 유일한 친근함을 보여주었던 편의점 그녀가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어느새 ‘그녀여야 한다’는 믿음이 된 듯하다. 잃어버린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만이라도 타인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그 절실한 마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며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독이, 그녀의 부정 앞에서 결국 무너져 내린다.
편의점의 그녀는 정말로 그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 그와 정말로 알거나 가까운 사이이긴 했던 것일까. 따스한 햇볕 아래 꽃을 들고 걷다 그와 원치 않은 방식으로 마주친 여인은 또 누구일까. 에필로그에 등장한 그의 아내에겐 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근래 언론에 난 기사대로 된다면, 수수께끼만 남긴 채 끝이 난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자세한 사연과 뒷얘기를 어쩌면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곧 장편으로 옮겨질 예정이며 제작과 주연배우가 결정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