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주희
허정, 2012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주인공 ‘주희’가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외우는 주문이다. 함께 주술놀이를 하는 살갑지 않은 친구들도 그녀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간절히 주문을 외우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들에게 주희는 그저 누군가를 따라 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주희는 돌연 사라지고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둘러싼 괴담이 떠돈다. 허정 감독의 <주희>는 아이들 사이에 떠돌 법한 도시 괴담을 소재로 하면서 단편영화로는 흔치 않게 공포영화 장르를 구현해 낸다.
영화는 경쾌하면서 경박하기까지 한 음악과 함께 쇼핑을 하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기 위해 ‘민지’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무엇이든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주술놀이를 한다. 연예인을 만나게 해달라는 소박한 친구들의 바람과 달리 주희는 처절한 소망을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그녀를 당혹스럽게 지켜보는 친구들. 소문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사라진 주희. 그녀가 떠나고 남은 폐허의 자리를 불안한 듯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 한 아이의 간절한 소망과 그 소망을 비웃는 듯한 표정들. 전혀 다른 그들의 표정은 폐허가 된 재개발 지역의 풍경과 도시에 우뚝 서 있는 고층 아파트의 풍경처럼 상반되게 표현된다. 이런 이질적인 표정의 대비는 영화가 잡아내려는 시대의 모습이며, 누군가의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또래들이 누리는 안락한 삶을 동경한 주희의 꿈은 자신을 지워내야 이룰 수 있다. 철저히 자신을 버리고 누군가가 되어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꿈. 주희는 행복해 보이는 민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은 너무 처절해서 주변에서 보기 무서울 정도이다. 그녀의 꿈이 확실히 이루어졌는지 불확실하지만, 그녀는 또래들에게 확실한 공포감을 남겼다. 민지는 “꿈에서 내가 나왔는데 내가 내가 아닌 거야.”라고 한다. 자신의 안락함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것은 주희의 저주일까?
갖지 못한 자의 간절한 욕망과 가진 자의 불안과 공포가 뫼비우스처럼 뒤엉킨 도시의 풍경을 영화는 서늘하게 그려낸다. 이처럼 한편에 드리운 욕망과 분노를 반대편의 불안과 공포로 정확하게 대비해서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주희>는 재개발의 광풍 속에 사라져가는 집들처럼 우리 주변에 사라지고 있는 누군가를 소환하며,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떠도는 소문을 지나간 일처럼 담담히 이야기하는 내레이션 역시 감독의 인장처럼 영화에 올곳이 새겨져 있고, 아역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허정 감독은 이미 전작인 <저주의 기간>에서 아이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어떻게 강박증과 함께 공포를 불러오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어 장편영화 데뷔작 <숨바꼭질>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는 중산층의 불안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도시빈민의 처절함을 그려낸 바 있다. 단편영화의 주제의식과 스타일이 상업영화에서도 굽혀지지 않고, 잘 구현된 경우였다. 공포영화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사회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소재로만 한정하지 않고,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진 이야기로 끌어올리는 감독의 시선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이후 계속될 허정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