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컬러풀
하라 케이이치, 2010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얽히고 얽힌 일상의 매듭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먹고 사는 것에 만족하다가도 다른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낳고, 그렇게 방사형으로 뻗은 온갖 다짐들, 계획들, 고민들을 적다보면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너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답이 나올 리 없다. 그냥 이것저것, 그것까지 원하고 원하는 게 사람이다. 나오키상 수상 작가 모리 에토의 아동소설을 원작으로 한 <컬러풀>은 바로 그 순간, `리셋`을 누른다. 일상의 온갖 상처들이 겹치고 겹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메모리 용량을 넘어섰을 때, 그래서 모든 기능이 마비된 순간의 재부팅이다.
<컬러풀>의 주인공인 `나`는 죽었다. 형체도 목소리도 없는 그는 사후세계의 문턱에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 자신이 지은 죄를 반성하는 조건으로 잠시 누군가의 몸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후세계의 전문용어로는 `홈스테이`. 약 반년간, 다른 사람의 몸으로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 전생을 기억하고 인생을 재조정시키면 자신의 인생도 다시 얻을 수 있다. 그의 영혼이 찾은 사람은 자살시도 곧 죽게 되는 소년 마코토다. `나`는 마코토가 자살을 한 이유를 쫓으며 마코토의 가족, 친구, 무엇보다 마코토 자신에게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된다.
사후세계와 윤회라는 판타지적인 소재를 갖고 있지만 <컬러풀>의 작화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집과 거리, 학교, 지하철 역 등등의 풍경은 실제 사진을 바탕에 깔고 밑그림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생생하게 묘사된 풍경은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더욱 구체적인 힘을 얻는다. <컬러풀>의 `나`가 마코토를 통해 경험하는 현실은 가족의 붕괴와 학교 내의 왕따문제, 원조교제로 가득차 있다. 이곳에서 서로를 할퀴는 말과 행동은 마땅히 그래야만 살 수 있는 태도에 가깝다. `나`는 마코토의 엄마가 저지른 죄와 그가 사랑했던 소녀의 사생활을 알게 되고 분노하며 자신도 모르게 무너져버린다. 왜 세상은 이래야만 하는 걸까, 왜 이곳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차 있나. 현실을 알게 된 `나`는 점점 자살시도 이전의 마코토와 닮아간다.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마코토는 어디까지나 마코토가 아닌 `나`이기 때문에 그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기고 그와 함께 빵을 먹는 순간 행복을 느끼고, 우정을 다짐하는 감동을 경험한다. `나`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세상은 달라져 있다. 그러니까 온갖 모순과 적대적인 태도와 각자의 욕망이 부대끼는 이 곳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 것이다.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컬러풀`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컬러풀>은 모든 사람은 감추고 싶은 상처가 있고, 그게 당연하다는 걸 깨닫는 `나`의 성장담이다. 그에게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점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성장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 지금의 내 삶을 제3자의 입장에서 경험한다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해졌다. 할 수 있다면 잠시 내 몸을 빌려주고, 내 인생의 재조정을 부탁하고 싶다. 아마도 그는 모든 걸 바꿔놓지 못할 것이다. 다만, 지금의 삶을 긍정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 혹은 아예 마음을 비우게 만들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저 단순 명쾌해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