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수학여행
김희진, 2010
교육 활동의 하나로서 교사의 인솔 아래 실시하는 수학여행은 학생들이 평상시에 대하지 못한 곳에서 자연 및 문화를 실제로 보고 들으며 지식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된다.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과제를 앞둔 중고등학교 시절은 집과 학교, 그리고 학원의 반복이다. 과거에 비해 여행의 기회가 많아졌다지만, 학생 시절의 수학여행은 그 자체로 설레는 순간이며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이 수학여행이 최근 참사로 뭇매를 맞고 있다. 거대 보수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는 ‘이래도 수학여행을 가야하냐’며 수학여행을 물고 늘어지고, 어떤 목사님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며 트집을 잡았다.
김희진 감독의 단편 <수학여행>은 바로 이 ‘수학여행’의 시간을 포착한다. 제주도로 떠날 예정인 수학여행, 주인공 병화는 수학여행을 갈 생각으로 마음이 설렌다. 장기자랑을 위해 동아리 친구들과 아카펠라도 연습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팔아 새 운동화도 준비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부모님께 수학여행비를 받지 못해, 스스로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배도 아니고 비행기로 떠나는 제주행 수학여행을 위해 병화는 매일 아침 녹즙을 배달하고 피자집 전단을 배포한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녹즙배달집 주인의 횡포로 임금을 받지 못해 수학여행도, 열심히 준비한 아카펠라 중창도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수학여행>은 떠난 수학여행이 아니라, 떠나지 못한 수학여행에 대한 영화다. 모두들 제주도로 떠나고 학교엔 병화를 포함 세 명의 학생만 남았다. 이 아이들은 설레고 떠들썩한 제주도행 수학여행 대신 쓸쓸하고 허전한 을왕리행 체험학습을 떠난다. 왜 왔는지 모를 을왕리, 하지만 세 아이들은 이곳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마냥 우울하진 않다. 서로 이름도 몰랐던 아이들은 학교를 벗어나 어느새 웃고 놀며 대화한다. 성장은 교실에서 교과서나 참고서 등을 앞에 두고서가 아니라, 또래 아이들과 대화와 놀이 속에서 그렇게 이뤄진다.
김희진 감독은 수학여행이라는 맥거핀을 가지고, 아이들의 성장담을 담담하게 그리고 재치 있게 담아낸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가정 형편 탓에, 중학생이라고 보증금을 내지 않았다고 약속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어른 탓에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을 못 간 것이지만, 영화는 이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과장하지도 성급하게 위로하지도 않는다. 떠나면 그 나름대로 추억과 우정이 쌓으며 성장하겠지만, 떠나지 않아도 성장하는 것이다. <수학여행>은 떠나지 않은 수학여행을 소재로, 역설적으로 수학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한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도 그렇게 성장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