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뱅상 파타,스테판 오비에,벤자민 레너, 2012
수많은 아이들이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흥얼거리던 올해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3D 애니메이션과는 거리가 먼,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이 조용히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을 꼭 봐야 한다고 가는 곳마다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챙겨본 이들도 더러 계시겠지만...) <겨울왕국>의 엘사 목소리를 맡았던 성우 박지윤 씨가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생쥐 목소리 연기를 한다고도 꼬드겼지만 새겨듣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꼭 언급해보리라 여겼던 이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봄을 맞는 기분이 들었던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다.
이야기는 두 세계에서 벌어진다. 곰들이 사는 지상 세계와 쥐들이 사는 지하 세계. 곰들이 사는 지상 세계에선 아기 곰의 빠진 이빨을 생쥐 요정이 물어간다고 생각한다. 지하 세계의 쥐들은 어린 곰의 이빨을 수집하는 게 중요한 삶의 목적이다. 그래서 쥐들 사이에선 치과의사가 가장 성공한 직업이다. 어린 고아 생쥐 셀레스틴은 화가가 되고 싶지만 치과의사가 되라는 어른들의 압박에 못 이겨 곰 이빨을 수집하러 지상에 올라간다. 하지만 요령 부족으로 어느 곰 가족들에게 들키고, 놀란 그들을 피해 거리 쓰레기통에 숨는다. 그 무렵 연주를 하며 돌아다녔지만 한푼도 벌지 못한 거리의 음악가 곰 어네스트는 배가 고파서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셀레스틴을 발견한다. 만나선 안될 곰과 생쥐의 조우는 두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는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원작은 벨기에의 삽화가 겸 동화작가인 가브리엘 뱅상의 <셀레스틴느 이야기>다. 원작의 삽화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만들어진 이 수채화 같은 작품은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12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최고프랑스영화상인 SACD상, 2013년 LA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애니메이션상, 세자르영화제 애니메이션 대상을 수상하였고, 86회 아카데미상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하지만 상을 타지 않았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봤을 것이다. 동화책이 눈앞에 펼쳐진 듯 담백한 그림체는 <겨울왕국>처럼 화려한 3D 애니와는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화면의 상당 부분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빈 공간은 앙증맞은 그림과 어울리는 따뜻한 색감,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한 감성이 채워져 있다. 보는 사람이 그 여백에 녹아들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이 함께 녹아있음을 알게 된다.
모두가 성공을 중요시하지만,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게 중요한 건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면서 각자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어네스트의 남산만 한 배 위에서 곤히 잠든 셀레스틴의 모습은 다른 곰과 쥐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두 친구에겐 자연스럽기만 하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은 힘든 일이고 때때로 부끄러움이나 두려움도 엄습할 텐데, 낙천적이고 우직한 곰 어네스트와 재치있고 슬기로운 셀레스틴은 고민을 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극복해간다. 성별, 나이, 종을 초월한 둘의 우정은 실제 인생에서도 이루기 힘든 것들이다. 그래서 더 맑고 투명하고 기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봄이 와서 눈이 녹는 바람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은신처가 발견되는 장면, 지하 세계의 쥐들이 이빨로 이룩한 거대 문명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선 보기 힘든 위트로 가득 차 있다. 자고로 애들은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