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니콜라스 바클레이의 진실
바트 레이턴, 2011
가끔 밤늦게 허전해서 TV를 틀 때가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누르다가 눈여겨보게 되는 채널이 하나 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선댄스 채널. 해외 독립 영화를 안방에서 시청할 수 있는데, 특히나 영화제에서 인상 깊게 봤던 영화들이 TV로 방영될 때는 옛 친구를 만났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날도 그랬다. 선댄스 채널에서 방영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확 꽂혀 버린 것이다. 잠깐만이 어느새 한 시간이 되고 90여 분의 영화 한 편을 극장이 아닌 TV로 올곧게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니콜라스 바클레이의 진실 The Imposter>(2011). 이 영화는 3년 전 사라진 소년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숨겨졌던 진실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국 샌 안토니오 출신 소년이 갑자기 사라지고, 3년 후 스페인 길거리에서 여행객들에 의해 발견된다. 실종된 기간 동안 소년은 유괴된 채 온갖 성적 학대와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그가 있는 스페인으로 소년의 누나를 먼저 보낸다. 그곳에서 처음 소년을 만난 누나는 소년의 달라진 외모가 유괴기간 겪은 시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익숙한 가족의 해후를 다룬 따뜻한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비친다.
그러나 그가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귀향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과 반전. 영화는 여러 이면들의 진실을 한꺼번에 풀어내기보다는 하나씩 하나씩 관객의 감정이 점점 증폭되는 구조로 휴먼 다큐가 아닌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 냈다. 금발을 가진 푸른 눈의 소년이 사라지고 난 후 어떻게 흑발에 갈색 눈동자로 변할 수 있을까? 옛 사진 속에 보이는 소년의 귀 모양(일종의 지문과 같다고 한다)과 돌아온 소년의 귀 모양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알면서도 왜 모르는 척하는 걸까?
사건을 기억하는 모두(탐정, 관련 공무원 및 수사관, 언론 등)가 사라진 소년이 그(니콜라스)가 아님을 주장하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그들의 주장을 외면하거나 때로는 분노하며 돌아온 소년을 변함없이 가족으로 인정한다.
왜일까?
진실과 거짓. 영화제목 그대로 한 사기꾼의 협잡극으로 영화는 시작하지만 누가 사기를 당하고 누가 사기를 쳤는지는 점점 모호해지는 영화다. 나 또한 불리한 조건에서 뜻하는 답을 찾지 못할 때 그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어’, ‘내가 아닌 누구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거야’ 등등. 자기최면, 자기만족은 개인의 심적 고통과 부담을 해결해주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다.
영화는 인간 모두가 외부의 충격과 닥쳐진 사실이 던지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반복해서 최면화 하는지, 그 안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때로는 스스로도 판가름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인 한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확장될 때 가질 수 있는 충격적 공포도 함께 말하고 있다.
또 하나, 영화에서 눈여겨 볼 것 중 하나는 실종 소년과 가족들의 증언을 배우를 통해 ‘재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의 다큐멘터리가 재연의 범위를 현실에서 찍기 어려운 과거의 사건들을 극화하는 것에서 머물렀다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고유의 장치로 여겨지는 ‘인터뷰’까지 그 범위를 확장해 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치는 영화를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보게 만드는 아주 매력적인 ‘장치’로 활용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많은 증언들 안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끊임없이 추리해야 하는 영화, 마치 감독은 “자 여기까지 봤을 때, 누가 사기를 치는 거 같아?” 라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관객은 영화의 ‘퍼즐 맞추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칠 수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 하나’가 보여주는 충격의 여파는 시간이 지나도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 영화가 주는 ‘질문’이 영화 안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이곳,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충격적 사건과 집단의 ‘사기극’에서도 변함없이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당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실’을 목도해야 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니콜라스가 반복 재생되지 않도록 이처럼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로 여기 한국에서도 수많은 다큐멘터리스트들에 의해 생산되어 관객과 함께 소통되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