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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연재]<너는 여기에 없었다> 사라지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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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연재]<너는 여기에 없었다> 사라지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카운트다운 대표 이미지
영원히 잊고 싶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참혹한 순간들이 있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한 사진으로 박재되는 그 순간들은 불현 듯 지금의 일상을 덮쳐오기도 한다. 묻어두었던 과거가 밀려오는 그 감각. 현재의 삶을 꺾어버리고 무력하게 만드는 그것에게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방법이 있긴 할까.

조(호아킨 피닉스)가 생각해낸 방법은 자신의 죽음이다.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납치, 감금 등의 사건을 처리하는 해결사인 그는 생생히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을 해결하고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순간들은 조의 생각을 갉아먹는다. 소리치는 아빠와 식탁 밑에 숨은 엄마, 그런 엄마의 손짓, 아빠의 발, 그가 쥔 해머. 혹은 파병 시절 구하지 못했던 피해자 여성들, 그들이 갇혔던 컨테이너의 손잡이, 손잡이를 열자 보였던 시체 더미. 손전등 아래 보이는 시체의 얼굴. 눈. 입. 벌어진 입. 조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길을 걷다 행인의 얼굴을 마주하다가도, 편집되어 떠오르는 과거의 순간에 괴로워한다. 삶이 계속되는 한 영원할 것 같은 그 괴로움. 조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꿈꾼다. 마치 여기에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사라지는 죽음을.

이렇듯 사라지고 싶은 조의 심리와 그런 그를 트라우마에 가두는 조의 현실은 그가 길을 걷는 장면들을 통해 드러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길을 걷는 조를 스크린에 배치한다. 한 구석과 정중앙.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조는 원래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영화는 그가 떠나기 직전 혹은 직후의 공간을 바라본다. 이 때문에 조는 8차선 도로 너머에서 언뜻 보이거나, 벌판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조금 스친다. 죽음으로서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은 조의 심리는 스크린에서 정말로 사라지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조가 손쉽게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를 끈질기게 프레임의 정중앙에 배치하는데, 이로 인해 길을 걷는 조는 한참을 걸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갇혀있는 듯 보인다. 예컨대 영화 초반부, 현관문이 아닌 골목길로 난 쪽문을 통해 집을 나서는 조의 모습에서 이러한 구도가 여실히 나타난다. 카메라는 건너편 도로에서 그를 마주 봄으로써, 골목길을 한참 걸어 나오고 있는 조가 프레임 상에서는 여전히 한 자리에 머물도록 만든다. 결국 조는 가정폭력의 기억이 서린 집의 그늘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이러한 서사의 시각적 구현에서 전작 <케빈의 대하여>(2011)와 <가스맨>(1998)을 통해 은유적 이미지를 정적이면서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평가받은 린 램지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

한편, 괴로운 과거에 갇힌 조는 괴로운 현실에 놓인 니나(예카테리나 삼소노프)를 만난다. 시의원의 딸인 니나는 권력 세력이 연루된 성폭력 조직에 납치되어 끔찍한 성폭행 범죄에 노출되고, 조는 시의원으로부터 니나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범죄 현장에서 그녀를 구출한다. 그리고 잠시 뒤, 니나를 조수석에 태워 돌아가던 차 안. 조는 문득 니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숫자를 거꾸로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조와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조가 그러했듯이. 
 

이렇듯 카운트다운을 하는 니나의 행동은 니나가 조와 닮아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지점은 카운트다운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의 첫 번째 카운트다운이 등장하는 영화의 첫 장면은 어두운 화면에서 나지막히 카운트다운을 하는 조의 목소리 직후 비닐을 뒤집어 쓴 채 질식사하기 직전인 그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때문에 조의 카운트다운 끝에는 죽음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남긴다. 반면 니나는 자살시도는커녕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얼굴로 카운트다운을 하며 영화에 등장한다. 그 숫자의 끝에 니나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쉽게 유추할 수 없다. 무엇을 위해 카운트다운 하는 것인지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니나는 또 다시 권력자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니나를 잃은 이후 조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주변인들의 죽음이다. 조는 분주하게 움직여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알 만한 이들을 찾아가지만,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현장에 뒤늦게 도착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조가 자살시도를 할 때마다 그를 찾고 부르며 죽음을 중단시키던 어머니는 손 쓸 새도 없이 권력세력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제 그에게는 죽음을 저지할 어머니의 부름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조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래도록 꿈꾸던 죽음을 택한다. 그의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삶 또한 끝날 것이다.

40, 39, 38, 저 멀리 엄마의 시체가 수장되는 것이 보인다. 37, 36, 주머니에 한 가득 돌을 넣은 조 또한 곧 저 깊은 강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33, 32. 기다리던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조는 문득 카운트다운을 하던 니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때 조는 왜 니나의 카운트다운을 떠올렸을까. 29, 28, 환각처럼, 니나가 물속에 가라앉는 것이 보인다. 니나의 카운트다운은 죽음을 향했던 것일까, 혹은 삶을 향했던 것일까. 20, 19. 조는 결국 주머니의 돌을 빼내고 수면으로, 햇빛으로 올라간다. 환상처럼 보이던 니나 또한 그를 따라 세상으로 나간다. 그렇게 조는 오랫동안 꿈꾸던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죽음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길을 나서며, 니나를 구하는 것을 선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니나는 조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자신에게 향할 수 있었던 칼을 다른 누군가에게 겨누어 괴로움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낸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조를 향해 무던하게 “이제 괜찮아요.”라는 말도 건넨다. 이는 조가 니나를 구해내는 동명의 원작소설과 다른 결말이다. 이에 대해 린 램지 감독은 여자 아이 캐릭터를 수동적으로 그려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며, 서사 내에서의 역할이 많아진 만큼 캐릭터의 이름 또한 원작과 다른 니나로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게 만들었다는 그 설명처럼, 니나는 죽음을 향하지 않은 카운트다운을 한 듯하다. 그리고 그 카운트다운은 이제 조와 함께한다. 두 사람은 괴로움뿐인 현실의 끝에서 그렇게 만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혼자서 살아내야만 했던 두 사람은 이제 어떤 현실을 살아가게 될까. 앞으로 살아갈 현실은 과연 지금까지의 삶보다 더 나은 것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이 향하는 카운트다운의 끝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두 사람은 그 답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 죽음을 택하지 않고 길을 나설 것이라는 점이다. 니나와 마주앉은 레스토랑의 한 구석. 니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완벽한 죽음을 생각한다. 발랄한 음악이 흐르는 이곳에서 당장 죽음을 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죽음을 택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죽음은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돌아온 니나는 조를 조용히 깨우며 말한다. 나가요, 아름다운 날이에요. 

아름다운 날이구나. 니나의 말을 따라 읊조리던 조는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영화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와 니나가 사라진 이후에 남겨진 빈자리를 포착한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그들은 이곳에 있었던 흔적을 남겼다. 흔적 없이 그림자처럼 사라지던 두 사람은 이제 함께 길을 나설 것이다. 부디 그 삶에서는 흔적을 남기며 살아도 괜찮을 만큼 괴롭지 않기를, 그들이 있었던 빈 테이블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기원한다.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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