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연재
[테마연재]고요한 응시로 기록된 기억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2021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선정작입니다.
흰 캔버스 위에 흑연을 든 손이 나타난다. 화가들에게 둘러싸인 여인이 그림을 지시하던 중 어떤 작품과 마주치고 누가 저것을 꺼냈냐며 묻자 카메라는 그 그림을 클로즈업한다. 그림의 제목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한 여인이 젖은 몸을 이끌고 섬 깊이 들어가 거대한 저택에 다다른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이 저택에 온 여성 화가다. 언니의 운명을 물려받아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엘로이즈와 그의 결혼을 위한 초상화를 그리는 마리안느. 그는 모델이 되길 거부하는 엘로이즈에 의해 ‘산책 친구’로 위장하곤 엘로이즈의 얼굴을 훔쳐보며 초상화를 그린다. 엿본 얼굴의 조각들을 짜 맞추듯 완성한 초상화를 본 엘로이즈는 그것이 자신과 비슷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혹평에 마리안느는 그림엔 ‘규칙과 관습’이 있다고 자신을 변호하지만, 그에 엘로이즈는 ‘생명력과 존재감’은 없냐며 되묻는다. 마리안느는 분에 차 그림을 뭉개버리고, 영화의 2막이 시작된다.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의 모델이 되겠다고 나서며 본격적인 초상화 작업에 들어간 그들은 서로를 관찰하고 응시하며 불꽃이 번져오르듯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진다.
당신이 날 볼 때, 난 누구를 보겠어요?
엘로이즈는 응시하는 존재다. 그는 소피의 임신중절수술 현장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마리안느에게 고개를 돌려 마주하라고 말하며, 관찰자의 시각으로 자신을 묘사하려는 마리안느에게 “우린 똑같은 위치에 있어요. 아주 동등한 위치죠. 당신이 날 볼 때, 난 누구를 보겠어요?”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엘로이즈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영화는 거듭 평등을 강조한다. 엘로이즈, 마리안느, 소피 세 여성이 나란히 담긴 부엌 신과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해 논쟁하는 신은 18세기 프랑스의 신분 제도를 배제해버린다. 한 폭의 명화 같기도 한 수평 앵글은 그 어떤 굴곡도 확대도 없이 고요하게 그들을 투과한다. 오직 타닥거리는 난롯불 소리, 세찬 파도 소리, 캔버스 위를 방황하는 붓 소리와 때때로의 정적만이 존재하는 화면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동등하고 평등하게 응시한다. 이러한 응시는 여태껏 남성적 시각에서 배척받아 온 여성의 이슈인 생리와 임신중절 또한 굴곡 없이 묘사한다. 소피의 임신중절수술을 재현해 그리자며 일어서는 엘로이즈를 따라 기억은 기록으로 진화하는데, 이는 여태껏 외면받아 온 여성의 역사에 대한 추상이기도 하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 이는 복식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영화의 오프닝 속 마리안느다. 그는 엘로이즈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짙은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학생들 앞의 모델이 된다. 두 번째로 연주회장에서 울 듯 우는 엘로이즈의 옷은 저택서 조율이 안 된 피아노를 연주하던 마리안느의 옷과 닮아 있으며, 심지어 정사를 나누던 중 엘로이즈의 눈동자가 마리안느의 것처럼 검게 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는 지속적으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를 일체화함으로써 화가와 모델,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를 뒤집는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한 평등의 메시지와도 맞닿아있다.

뒤돌아봐.
마리안느는 자신 이전의 화가가 완성하지 못한, 얼굴이 지워진 엘로이즈의 초상화에 불을 지른다. 마리안느가 붙인 가슴께의 작은 불씨가 캔버스에 번져 올라 엘로이즈를 삼키는 모습은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에우리디케를 빨아들이는 지하 세계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지하 세계에서 자신의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던 중 하데스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뒤를 돌아봐 또다시 아내를 잃는다.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한 엘로이즈의 재해석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실상은 이렇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게 한 것은 그의 얕은 인내심이나 충동이 아닌, 에우리디케의 “뒤돌아봐요”라는 한마디 작별 인사다.
시간은 흐르고, 마리안느는 작별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담긴 그림을 출품한다. 이때 그는 자신의 그림 속 오르페우스의 것과 같은 푸른 망토를 두르고 있으며 에우리디케는 흰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이는 마리안느가 마주한 엘로이즈의 마지막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헤어짐의 순간에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뒤돌아봐.” 엘로이즈는 지하세계에 남겨진 것일까? 그 옛 신화 속 에우리디케처럼.
뭐예요? 좋아하는 곡이요.
영화는 이들의 사랑을 다분히 정적으로 묘사한다. 눈빛이나 표정을 통해 절제된 채 묘사된 감정선은 영화 내에서 음악과 함께 두 번 고양되는데, 첫 번째는 하모니 신이다. 어두운 밤 모닥불 앞에 모인 여성들은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라는 노랫말을 반복해 부르며 하모니를 이룬다.(이 의문스러운 하모니는 상당히 성스럽고 웅대하게 들린다.) 이 음성과 함께 마리안느를 응시하던 엘로이즈의 치맛자락에 불이 붙고, 마리안느는 그 모습을 홀린 듯 지켜본다. 이 장면은 곧 마리안느에 의해 기억, 기록되며 추후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회상하며 그려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두 번째는 엔딩 신이다. 이별 후 마리안느는 연주회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엘로이즈를 마주한다. 영화가 시작된 이래 줄곧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던 음악은 일방적인 재회의 현장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외딴 작은 섬에서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 소리로 연주되던 비발디: 사계 여름이 거대한 연주회장에서 오케스트라와 재연주되고, 동시에 관객은 줌 인하는 카메라를 통해 빨려 들어가듯 엘로이즈의 내면세계와 동화된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배제되던 음악이 절정의 순간에 느닷없이 튀어 오르는 연출은 셀린 시아마의 전작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걸후드>에선 ‘Diamonds’가, <톰보이>에선 ‘Always’가, 그리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선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이 화면 밖으로 솟구치며 굴절을 만들어낸다.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요.
외딴 섬이라는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18세기 프랑스라는 시간적 배경과 맞물려 영화의 피륙을 낭만적으로 직조한다. 해안가와 저택을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유독 공간적 배경이 강조되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포스터 속 파도 신이다.
이별을 앞둔 것을 실감한 후 다툰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거센 파도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흐느낀다. 이때 그들 너머에서 휘몰아치는 파도와 파도 소리는 이들의 소망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허나 이 판타지적인 시공간적 배경과 대조적으로 이들 멜로의 결말은 꽤나 사실적이다. 이 파도 앞에서 마리안느는 용서해달라 말한다. 결혼하지 말라 청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손을 잡고 몰래 섬을 빠져나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어요-같은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이별을 선택한 것처럼 사랑의 도피가 아닌 일주일간의 추억을 택하며, 후회하지 말고 기억하기를 약속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은 결코 명확할 수 없다. 그들이 처음 얼굴을 마주한 바닷가에서였는지, 은밀히 훔쳐본 얼굴을 되짚어보며 캔버스에 옮기던 낮이었는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하던 밤이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 모든 순간을 후회하지 않고 기억할 뿐이다. 나아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함께 행하는 그리기는 휘발성을 지닌 기억을 영구적이며 쌍방향의 입체성을 띠는 기록으로 승화시켜낸다. 어떠한 굴곡도 확대도 없이 올곧은 시선으로 그려진 사랑. 고요한 응시와 약간의 흑연으로 ‘기록’된 28페이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