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영화리스트
어 리틀 러브 패키지
가스통 솔니츠키, 2022
나만이 특별히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 누구나 이런 리스트들을 가지고 있다. 수제화를 만드는 공방, 군내 나는 저장고에서 숙성된 치즈, 조간신문 읽기, 받침대 위에 놓인 달걀을 깨는 의식, 사선으로 낙하하는 낙엽, 오래된 모피 가게, 기이한 빛을 발하는 박물관의 광석, 물 위에 뜬 장난감 배. 아르헨티나 감독 가스통 솔니츠키(<파피로젠>(2011), <푸른 수염의 성>(2016))는 팬데믹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빌미로 하여 그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대부분 과거의 유산으로 지칭되는 사물과 장소)이 유효성을 잃어가는 현재의 오브제들에 대해 숙고한다.
가스통 솔니츠키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어 리틀 러브 패키지>(2022)는 일상적 공간에 대한 시적인 탐구이다. 장소에 대한 그의 영화적 건축은 두서없이 선택된 시청각 오브제들의 배열로 구성된다. 도시 공간은, 때로는 유기적으로, 때로는 의도적으로 그들을 구성하는 잡동사니들의 모음 또는 평범한 사물과 의식의 추상화로 묘사된다. 영화의 무대는 옛 유럽의 대표 도시 비엔나이다. 영화의 시작은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금지되기 직전 비엔나의 커피 하우스에서 합법적으로 담배를 필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을 묘사한다. 중년의 카페 주인이 금연을 고지하는 스티커를 출입문 위에 붙이고 있다. 한 시대의 종언과 동일시되는 이 규제 조치가 야기한 문화적 영향은 무엇인가? 현대적 삶의 속도에 마지막까지 저항해 온 도시는 구식의 쓸모없는 물건들만 넘치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 남을 것인가? 내쳐 이런 가치판단은 정당한가? 금연령의 여파를 훑어가는 프롤로그 이후 서사는 인생의 교차로에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로 건너뛴다. 주인공 안젤리키(안젤리키 파푸리아)는 절친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카르멘(카르멘 채플린)의 도움을 받아 비엔나에 아파트를 구하려 한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공동생활이 거부됨에 따라 개인들의 은둔생활로 물러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안젤리키에겐 모든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타일의 색상, 가동되지 않는 난방, 너무 멀리 떨어진 레스토랑까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이곳에 안식처는 존재하는가? 두 여성 주인공은 텅 빈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고, 건물들을 둘러보고, 호의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어떤 아파트를 사야하는지에 대해 논쟁한다. 한 장면에서 카르멘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 하는 안젤리키에 불평한다. “네 침대 밑에 돈다발을 가지고 죽을 작정이니?”

<어 리틀 러브 패키지>는 새로운 유형의 하이브리드 에세이 필름이다. 다큐멘터리, 에세이, 픽션과 같은 수식어를 거침없이 벗어난 이 영화는 현대 도시 생활의 문제를 다루면서 즉흥 연출을 토대로 하여 예술적 자유를 발견한다. 내러티브 영화 제작의 전통 안에서 실재하는 장소, 건축, 사물, 소리 등의 재료를 참신한 눈으로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형식적 새로움을 전달한다. 솔니츠키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맥락과 풍경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픽션’이라고 부르는 인공적 공예품을 다른 방향을 이끈다. 느슨한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액션은 아파트를 찾는 일(안젤리키)이거나 시골집에서 보내는 소소한 일상(카르멘) 뿐이다. 안젤리키가 방황하는 비엔나에서 카르멘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말라가로, 다시 비엔나로 회귀하는 여로를 통해 이 영화는 창의적인 시간 낭비, 환담을 나누며 피는 담배의 맛을 여전히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카르멘의 가족들이 머무는 시골마을과 자연, 미래만큼이나 강력하게 과거에 속해 있는 세계의 이미지들을 한땀한땀 모은다. 카르멘 가족의 자연주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은 비(非) 생산적인 활동의 필요성, 일상의 쾌락에 전념하는 삶의 가치를 역설한다.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포기하기로 한 선택은 자유와 제한을 모두 가져오기 때문에 특정 효과가 다른 효과를 희생시키면서 나타날 수 있다. 스토리 안에서 두 주인공은 비엔나의 일상이 펼치기 위한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솔니츠키 특유의 화법은 내러티브, 다큐멘터리, 스틸 이미지, 몰입형 사운드 사이를 장난스럽게 오간다. 카메라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지만 프레이밍은 평범한 일상적 사물들의 예술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한다. 촬영감독 루이 포사스(<우리들의 사랑스런 8월>(2008), <타부>(2012), <자마>(2017))의 기술적 완벽함은 크나큰 영감을 주는데, 달리와 픽스 쇼트 등 고전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한 장면들은 이상적인 구도와 조명 설계의 표본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거나 다양한 시간의 층이 병존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그 자신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배우들, 픽션과 리얼리티의 교환, 외부 내레이터로 설정된 멕시코 작가 마리오 벨라틴의 건조한 목소리, 어린이의 손으로 칠판에 그린 단순한 그림들의 병렬 배열은 뚜렷한 맥락을 형성하기보다 역사적 금지, 시대적 전환기에 날로 새로워지는 세계에 대한 다면적 풍경을 스케치한다. 신선한 카메라의 눈은 도시의 인테리어 장식, 디자인의 감각, 우아한 고전음악, 강인하게 버티고 선 오브제들을 인간의 삶으로 되돌려주기 위해 애쓴다.

20세기의 유산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지금 <어 리틀 러브 패키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신화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인 사물 안에서 시간의 보물들을 인양한다. 초월적인 이미지는 강요됨이 없이 일상적 사물 안에서 발견된다. 강렬한 색상과 조명으로 가득 찬 이미지는 명확하고 추상적이며 그들 간의 관련성에 대한 서사적 맥락은 모호하다. 예를 들어, 비엔나의 자연사박물관 진열장을 돌아다닐 때 카메라는 광물 앞에서 멈추고 그들 안에서 환각적인 색상이 뿜어져 나온다. 생산적 기능과 가능성을 잃어버린 사물과 장소들은 도시 전역에 고독하게 서 있다. 장인의 손길이 깃든 수제 신발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비해 번들거리는 스포츠카는 얼마나 가벼운가? 20억 년 전 가봉에서 발생한 최초의 방사능 폭발 잔해물은 또 어떤가? 형이상학적인 순간은 조작이나 구성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는 자연 세계에 실존한다. 영화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비엔나는 유럽 문명의 대표자가 아니라 평범한 물건들과 의식이 보존된 장소로 탐사된다. 도시 정물화의 세공이나 무인 항공기를 들고 있는 10대 소년, 질 좋은 치즈를 생산하기 위한 구식 제조법 따위로 표현되는 카페하우스 시대의 종언은 유머러스한 논평으로 가득 차 있다. 청각적 관점에서는 감정을 강화하는 전통적인 사운드의 표준 관행을 따르지 않고 보다 개방적인 사운드트랙을 구성한다. 완전히 투명한 색상에서 신비로운 명암대비에 이르는 색채 전략과 사운드 스케이프를 사용하는 벽화 장면들은 노스탤지어와 호기심,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나만이 사랑하는 것들의 특별한 목록이 필요한가? <어 리틀 러브 패키지>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전염병, 전쟁, 고립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지난 몇 년은 씻을 수 없는 상실감을 주었다.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나간 시간의 뒤편에서 솔니츠키의 영화는 이 새로운 상황에 대한 해독제라기보다는 감수성의 상실에 대한 해독제가 되고자 한다. 주황색 네온이 켜진 모피 상점 이미지가 우리의 시선을 당길 때, 청신한 고전 음악의 피아노 선율이 귀청을 자극할 때, 수백 년을 이어온 바이딩거 카페의 아침 루틴이 지속될 때, 이 비엔나 쇼윈도에는 시간의 위협에 대항하는 것들이 쓸쓸하고 뻔뻔하게 전시되어 있다. 격렬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점점 더 재앙이 되어가는 현실의 습격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들에게는 피난처를 제공할 시간 캡슐이 필요하다. 영화의 말미, ‘블랙’의 ‘Wonderful Life'가 흐르는 비엔나의 카페에 운집한 사람들이 경쾌한 담배 구름 속에서 공생하는 시간의 회복을 경축하고 있다. 이 초월적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사운드트랙 위에서 불멸의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 분주하게 즐거움을 나누는 카페의 활성화된 공기를 담는다. 이 도시가 애써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흔적들을 보존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을 가지고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