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연재
[테마연재]<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감독의 세상을 향한 외침
영화 글쓰기 키트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켄 로치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겨다 준 작품이다. 켄 로치 감독은 오랫동안 많은 작품에서 노동자, 소외계층, 억압받는 많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아왔다. 이러한 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40년간 목수 일을 해온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심장병을 얻어 일할 수 없게 된다. 질병 수당을 타기 위해 신청을 해보지만, 심사관은 다니엘의 심장병과는 관련이 없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질문을 한다. 그의 건강 상태는 ‘점수’로 나타내어질 뿐이다. 질병 수당 취소 결정에 항고하려 하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다.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화면에 마우스를 갖다 댈 정도로 디지털 세대에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구직 지원금과 질병 수당 신청은 또 하나의 장애물로 다가온다. 다니엘은 누구보다 복지 혜택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복지 혜택을 누리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다니엘은 관공서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케이티를 만난다. 케이티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 런던의 아파트에서 부당하게 쫓겨나 이사를 왔다. 그는 새로 온 지역의 지리를 몰라 조금 늦은 것 때문에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추운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야 하는 그녀에게 다니엘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니엘 본인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그 어려움 때문에 이웃의 처지에 더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과 케이티를 하나의 사람으로서 바라볼 때, 이들이 그러한 혜택을 받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이 마땅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과 어려움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겪어야 하는 것은 체계가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것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을 존중해줘야 하는 존재들보다는 시스템 속의 한 개체로 보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시스템을 거스르다 생길 혹시 모를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시민들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복지 시스템의 폐해를 고발한다.
영화 제목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두 장면에 등장하는 말이다. 다니엘이 관공서 건물 밖 벽에 자신의 메시지를 까만 스프레이로 쓰는 장면과, 항고 때 말하려고 했던 글을 다니엘의 장례식장에서 케이티가 읽어주는 장면이다. 두 장면은 모두 다니엘이 자신이 겪은 비인간적이고 불평등한 대우에 대해 항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니엘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강조한 것은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복지 시스템과 그 속의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켄 로치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겨다 준 작품이다. 켄 로치 감독은 오랫동안 많은 작품에서 노동자, 소외계층, 억압받는 많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아왔다. 이러한 그의 시선으로 바라 본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40년간 목수 일을 해온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심장병을 얻어 일할 수 없게 된다. 질병 수당을 타기 위해 신청을 해보지만, 심사관은 다니엘의 심장병과는 관련이 없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질문을 한다. 그의 건강 상태는 ‘점수’로 나타내어질 뿐이다. 질병 수당 취소 결정에 항고하려 하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다.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화면에 마우스를 갖다 댈 정도로 디지털 세대에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구직 지원금과 질병 수당 신청은 또 하나의 장애물로 다가온다. 다니엘은 누구보다 복지 혜택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복지 혜택을 누리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다니엘은 관공서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케이티를 만난다. 케이티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 런던의 아파트에서 부당하게 쫓겨나 이사를 왔다. 그는 새로 온 지역의 지리를 몰라 조금 늦은 것 때문에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추운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야 하는 그녀에게 다니엘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니엘 본인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그 어려움 때문에 이웃의 처지에 더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니엘과 케이티를 하나의 사람으로서 바라볼 때, 이들이 그러한 혜택을 받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이 마땅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과 어려움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겪어야 하는 것은 체계가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것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을 존중해줘야 하는 존재들보다는 시스템 속의 한 개체로 보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시스템을 거스르다 생길 혹시 모를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시민들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복지 시스템의 폐해를 고발한다.
영화 제목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두 장면에 등장하는 말이다. 다니엘이 관공서 건물 밖 벽에 자신의 메시지를 까만 스프레이로 쓰는 장면과, 항고 때 말하려고 했던 글을 다니엘의 장례식장에서 케이티가 읽어주는 장면이다. 두 장면은 모두 다니엘이 자신이 겪은 비인간적이고 불평등한 대우에 대해 항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니엘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강조한 것은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복지 시스템과 그 속의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잘못된 복지 시스템의 폐해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식으로 돕는지도 담고 있다. 다니엘은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케이티의 집 수리를 도와준다. 다니엘 역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 역시 이웃집 청년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관공서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구직 수당과 질병 수당 항고 신청을 이웃집 청년들이 도와준다. 정작 다니엘에게 도움을 줘야 했던 공무원들이 아닌, 그저 가난한 이웃이 그를 도와준 것이다. 그 외에도, 케이티의 도둑질을 눈감아준 마트 직원이나 어느 상황에서든 동등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식료품 보급소의 직원들, 혹은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도 다니엘에게 인간으로서 융통성 있게 대해주는 소수의 공무원 같은 인물도 나온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사람들 간의 공감과 연대, 도움으로 이들이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주제들을 보여주는데 극적인 이야기나 화려한 화면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삶을 그대로 담아 놓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을 카메라가 따라가듯 연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담백하게 담아냈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더 이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또한, 다니엘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어서 영화가 끝난 뒤 여운이 길게 남았다.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수상소감으로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합니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말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켄 로치가 오랫동안 영화를 연출하면서 비춰왔던 수많은 노동자, 소외계층, 억압받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수상소감에서의 ‘다른 세상’이 아닐까? 그는 그의 영화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들을 남겼다. 이제 정말로 그런 세상을 위해 사회가 변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