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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연재]<하나 그리고 둘>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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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눈에는 보이는 게 서로의 눈에는 안 보이나 봐요. 두 사람 다 보려면 어떡해야 하죠?”, “우리는 반쪽자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죠?”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는 8살의 어린 소년부터 쓰러진 외할머니까지.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질문을 가지고 살아간다. 영화를 보는 동안 누군가는 난줸이 되고, 또 누군가는 팅팅이 된다. 영화 속에는 롱 쇼트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처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도 어김없이 롱 쇼트를 활용한다. 그렇게 관객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족은 돌아가며 할머니 옆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그러던 중 밍밍은 매일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 더 이상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하루하루 목적 없이 살아가다 말년에 엄마처럼 쓰러지지는 않을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길을 잃은 밍밍은 불 꺼진 사무실에서 아직 퇴근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 동료에게 ‘나 갈 곳이 없어’라고 답한다. 쓸쓸한 실루엣과 창 밖 차가운 도시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내가 절에 들어간 동안 난줸은 도쿄로 출장을 가게 된다. 이 소식을 알게 된 30년 전 첫사랑 셰리는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쿄까지 날아온다. 주어진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난줸과 그녀는 청춘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셰리는 한 번씩 자신을 떠나간 난줸에 대한 원망을 드러낸다.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던 난줸은 처음으로 울분을 토하며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부모님과 셰리는 그가 전자기계공학과 박사학위를 따기를 바랐다. 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는 원하지도 않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게 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고, 그렇게 난줸은 그녀를 떠났다. 셰리는 자신이 이혼하면 충분히 누리고 살 수 있을 거라며 그에게 다시 시작하기를 제안한다. 난줸은 대답하기를 회피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꿈을 쫓기 보단 현실적인 선택을 했던 자신의 지난날처럼. 그렇게 셰리는 인사도 없이 시카고로 다시 떠나가고 출장에서 돌아온 난줸은 말한다. “이제부터 모든 게 달라지겠구나. 그런데 결국 똑같더군. 다를 게 없었어. 불현 듯 깨달았지.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똑같을 거 같다고.” 지나간 일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알면서도 그 모든 것들이 나아가면 사라질 것만 같아 혹은 붙잡으면 달라질 것만 같아 머무르기를 택한다. 그런 우리에게 난줸은 바뀌는 것은 없으니 살아가라고 말한다. 

팅팅은 영화 전반에 걸쳐 소극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옆집 리리와 비교되어 수동적인 성격이 더욱 부각된다. 어울려 다니지만 항상 리리의 기분을 살피고 하고 싶은 말도 한 번 제대로 못한다. 패티와 사랑을 나누는 리리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팅팅에게도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온다. 이별 후, 패티는 팅팅에게 리리가 편지를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계속되는 편지에도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패티는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하루는 팅팅에게 편지를 써서 전해준다. 팅팅은 부탁을 한다고 생각해 짜증을 내지만, 패티는 이번 편지는 너를 위해 쓴 거라고 말한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던 사람을 두고,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에 의문이 들지만 팅팅은 만나보기로 한다. 팅팅의 첫데이트 장면은 도쿄의 난줸과 셰리의 상황과 교차 편집으로 연출되었다. 이는 난줸과 셰리의 과거의 만남을 현실에 재현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난줸이 그러했듯이 팅팅 또한 이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에는 타이페이 3부작(타이페이 스토리, 공포 분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비롯해 자신이 남긴 영화들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바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양양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담는다.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나’이기에 볼 수 없는 나의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비추어준다. 그 순간 정신없이 걸어가던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리리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패티는 “영화가 탄생한 뒤로 인간의 수명은 3배 늘어났다.“라는 말을 건낸다. 삶의 길이를 늘릴 수는 없지만 영화를 통해 그 폭을 넓히며 살아가라며 에드워드 양 감독이 세상에 남기고 간 메시지가 아닐까? 영화는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이러한 구성은 영화가 끝난 후 또 하나의 삶을 경험하고 나온 듯한 느낌을 준다. 

<하나 그리고 둘>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에게는 되는 일이 하나 없다. 할머니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난줸은 첫사랑과 다시 이루어지지 못하며, 팅팅은 패티와의 사랑에 실패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다. 이 일만 해결되면 행복해질 것만 같지만 그것이 해결되고 나면 작아만 보였던 다른 문제가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절에서 머물다 온 밍밍은 말한다. ‘내가 깨달은 건 사는 게 별로 복잡하지 않다는 거야 전에는 왜 복잡해 보였는지’ <하나 그리고 둘>은 뒤떨어져 혼자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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