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연재
[테마연재]<스왈로우> 공포를 삼켜서 없앤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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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왈로우> ≠ 스릴러 영화?
의외로, 사람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것은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이미지가 아니라, 내 몸속에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이 있어 어딘가에서 피가 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일지도 모른다. 매년 여름, 호러 영화만 모아 상영하는 CGV의 ‘CAV(Cinema Adult Vacation) 기획전’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의 <스왈로우>였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영화의 비주얼적인 공포가 부족하다며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내렸다. 심지어는,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진다며, 긴장감을 스릴러의 핵심 요소라고 판단한 관객들은 <스왈로우>를 스릴러 영화로 인정하지 않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왈로우>는 ‘싸이코 스릴러(psycho thriller)’인 셈이다.
나를 박제한 송곳을 삼켜 버리다
모든 공포의 요소는 헌터의 히스테릭한 정신 상태에서 시작된다. 헌터는 부잣집 남편과 결혼한 이후로는 호화로운 집에만 박혀 있는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예쁘게 화장도 하고, 인형 같은 옷을 입고, 새로운 집에 커튼은 어떤 것을 놓아야 할지 고민을 하지만 남편은 헌터의 모습에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옷을 잘못 관리해 망가트린 것에 욱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보인다. 무엇을 해도 자신은 이 집의 부속품에 불과한 느낌이 들고, 자신은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을 하소연할 가족도 없다. 헌터가 결혼을 할 때도,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 큰 경사를 자신의 가족과 나누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헌터의 가정 환경에 대한 단서는 시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대충 알 수가 있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다가도, 마치 자신의 아들을 만난 뒤로 팔자가 싹 폈다는 듯 흘리는 말은 헌터를 불안하게 한다. 모든 게 자연스럽고 완벽한 배경에 헌터만 송곳에 콕 박혀 박제가 된 것처럼, 혼자 맞지 않는 역할을 혼자 감내하는 헌터의 모습을 보며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아이가 생겼다. 남편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부모님께 전화를 돌린다. 자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남편의 품에 안긴 헌터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헌터는 이제 진정한 가족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온 가족이 새 아기를 돌보는 건지, 아니면 그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돌보는 건지 모를 정도로 과분한 보호에, 헌터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태교 비디오에서 본 내용대로, 헌터는 결심한다. 그동안 하지 않던 것을 시도해보기로. 그렇게 헌터는 위험한 사물들을 삼키기를 시작했다.
의외로, 사람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것은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이미지가 아니라, 내 몸속에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이 있어 어딘가에서 피가 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일지도 모른다. 매년 여름, 호러 영화만 모아 상영하는 CGV의 ‘CAV(Cinema Adult Vacation) 기획전’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감독의 <스왈로우>였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영화의 비주얼적인 공포가 부족하다며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내렸다. 심지어는,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떨어진다며, 긴장감을 스릴러의 핵심 요소라고 판단한 관객들은 <스왈로우>를 스릴러 영화로 인정하지 않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왈로우>는 ‘싸이코 스릴러(psycho thriller)’인 셈이다.
나를 박제한 송곳을 삼켜 버리다
모든 공포의 요소는 헌터의 히스테릭한 정신 상태에서 시작된다. 헌터는 부잣집 남편과 결혼한 이후로는 호화로운 집에만 박혀 있는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예쁘게 화장도 하고, 인형 같은 옷을 입고, 새로운 집에 커튼은 어떤 것을 놓아야 할지 고민을 하지만 남편은 헌터의 모습에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옷을 잘못 관리해 망가트린 것에 욱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보인다. 무엇을 해도 자신은 이 집의 부속품에 불과한 느낌이 들고, 자신은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을 하소연할 가족도 없다. 헌터가 결혼을 할 때도, 아이를 가졌을 때도 그 큰 경사를 자신의 가족과 나누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헌터의 가정 환경에 대한 단서는 시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대충 알 수가 있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하다가도, 마치 자신의 아들을 만난 뒤로 팔자가 싹 폈다는 듯 흘리는 말은 헌터를 불안하게 한다. 모든 게 자연스럽고 완벽한 배경에 헌터만 송곳에 콕 박혀 박제가 된 것처럼, 혼자 맞지 않는 역할을 혼자 감내하는 헌터의 모습을 보며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아이가 생겼다. 남편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부모님께 전화를 돌린다. 자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남편의 품에 안긴 헌터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헌터는 이제 진정한 가족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온 가족이 새 아기를 돌보는 건지, 아니면 그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돌보는 건지 모를 정도로 과분한 보호에, 헌터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태교 비디오에서 본 내용대로, 헌터는 결심한다. 그동안 하지 않던 것을 시도해보기로. 그렇게 헌터는 위험한 사물들을 삼키기를 시작했다.

내 아’만’ 잘 낳아도
자신들의 아기가 잘 있는지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하려던 시댁에서는 새 아기의 뱃속에 얌전히 있어야 할 작은 생명체뿐만 아니라 어딘지 익숙하고 위험하게 생긴 하얀 이미지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고 기겁을 한다. 시부모님들이 생각해낸 결론은 딱 한 가지였다. “아이는 무사해야 해”. 그들은 정신과 상담을 다닐 것,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도우미 ‘루아이’와 함께 집에 있을 것을 설득하기 위해 헌터를 어르고 달랜다. 집에서 혼자였던 헌터가 어느덧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감시를 받고 빠져나갈 곳은 잃는 것은 <악마의 씨>에서 악마를 잉태한 뒤 살이 무너지게 마를 정도로 이웃들의 감시를 받게 되는 로즈마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역시 결혼을 했거나, 미래에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들이 보았을 때 공포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지만 숨 막힐 정도로 감시가 지속되면, 어떤 사람이든 결국 일을 내고 만다. 몰래 쇠붙이 따위를 삼키려다 응급실까지 가게 된 헌터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겠다고 판단한 가족은 결국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고자 결정한다. 보통 여기까지 왔을 때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미 보았던 수많은 여성과 정신병원이 관련된 영화들을 떠올리며 헌터가 무력하게 희생되고, 결국 아이를 낳고 버려지는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을 예상한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캐릭터 ‘루아이’를 개입시켜 헌터의 조력자로 만들며, <스왈로우>는 그동안 여성의 고통을 포착하는데 집중한 소위 ‘불행 포르노’를 재생산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맞이하게 된다.
과거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란다
영화는 헌터가 생부를 찾아가는 에피소드를 통해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헌터의 출생은 평생에 걸쳐 그를 괴롭혀온 문제였다. 헌터의 문제는 정신과 상담을 통해 드러나게 되지만, 그는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언급을 망설인다. 그러나 직접 마주하지 않고는 트라우마를 해결할 수 없다. 정신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저택을 도망친 헌터가 마주한 현실은 자신의 출생 배경이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계에 내몰린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인생을 망가트려 놓은 생부를 찾아가는 것이다. 드디어 자신의 트라우마와 대면하게 된 헌터는 날이 서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떤다. 마치 금방이라도 생부가 분노를 터트려 헌터를 해칠 것만 같은 이 순간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영화는 새로운 길을 택해 주인공에게 구원을 주고자 한다. 생부가 자신의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있으며, 자신은 죗값을 치렀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헌터의 탄생은 저주가 아니었음을 말한 것이다. 성폭행으로 인해 태어난 딸인 헌터에게 어떻게 태어났든 자신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이다. 이 순간 헌터는 비로소 새로운 인생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삼키세요. 그러면 모두 끝나요.’
영화가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임신 중절이라는 소재를 택한 것은 아주 전략적인 선택이다. 헌터가 임신 중절을 선택하고 그것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주 간략하고 담담하게 그려진다. 게다가 그저 알약 몇 알을 ‘삼키기만’ 하면 되는 방식까지도 영화의 주제가 헌터를 비롯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간 많은 영화들이 여성의 삶과 임신 중절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지만 타협적이거나 지나치게 강한 어조로만 이야기해 다수를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스왈로우>는 여성의 생명에 있어 그 주인은 여성 자신이라는 주제를 스릴러라는 장르 영화의 문법을 빌려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영화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긴 시간 동안 헌터가 머물고 사라진 공중 화장실을 비춘다. 아니, 그곳을 들어왔다 나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나이와 생김새가 다양한 여성들이 헌터가 낙태를 했던 화장실 칸에 들어가고, 손을 씻고, 립스틱을 고치고 나간다. 그들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같은 장소를 수없이 오가는 여성들을 보며 비로소 헌터가 겪었던 그 긴 모험은 비단 헌터만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화장실 칸막이에서 쓴 눈물을 삼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헌터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친 얼굴로 화장실을 나가 군중 틈으로 사라졌던 것처럼,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다시 일상을 영위한다. 헌터는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스왈로우> = 스릴러 영화!
이렇게 <스왈로우>가 스릴러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영화는 여성이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그렇지만 표면적으로는 꺼내지 못했던 공포들을 민감하게 긁어내면서 불안감을 일으킨다. 여성의 일상 속 공포를 소재 삼아 스릴러라는 영화 장르에 맞게 스토리를 직조했다는 점에서 이권 감독의 <도어락>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여성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다루고, 그것을 주인공이 극복한다는 것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럴드의 게임>과 비슷한 결을 보이기도 한다. <제럴드의 게임>이 공개되었을 당시에도 성별에 따른 관객 평점 차이가 상당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관객이 새로이 제작되고 있는 서사에 공감하는지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왈로우>가 스릴러 영화가 아님을 단정 짓던 관객들에게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스릴러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규칙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