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독립영화인의 영화 만들기 고군분투
*이것은 소설입니다.
많은 이들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영화를 만들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항상 갖춰지는 건 아니다. 그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행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단 시나리오를 쓴다. 그리고 최소한의 동의와 피드백을 이유로 지인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사실 피드백이라고 칭하지만, 가까운 지인에게 동의와 지지를 얻기 위함이 더 크다. 때문에 최대한 내가 쓴 작품을 잘 봐줄 사람에게 건네야 한다. 너무 까칠한 사람은 금물이다. 최초의 그 과정이 없으면 이 힘든 일에 첫발을 내딛기 힘들다. 아니 이미 내딛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동의와 지지는 절대적인 힘이 된다. 일단 미지근한 반응일지라도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드백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야 한다. 그래서 작품을 고쳐나갈 힘을 얻음과 동시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을 규합해 나갈 수 있다. 일단 심리적인 버팀목과 안정적인 비빌언덕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영화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제작비를 마련해주지는 않는다. 처음 작은 돈은 가능했지만,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 되었다.
알량한 경험을 밑천 삼아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한 공적 기관의 제작지원 프로그램에 제출해야한다. 영진위 뿐만 아니라 여러 지자체 영상위원회의 프로그램들이 있기 때문에 그곳들의 마감 일정과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기관들은 제작비 전액을 지원해주지 않는다. 정말 운이 좋을 경우 딱 필요한 만큼만, 조금 운이 좋을 경우 제작비의 50% 정도 지원받을 수 있다. 정말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땡전 한푼 지원받기 어렵다. 작품성과 무관하게 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 작품이 다른 누구보다 안좋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운이 따라서 지원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지원없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론 안믿겠지만 많은 경우 지원없이 영화를 찍고 완성한다. 거기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꿍쳐놓았던 돈도 있고, 언제 갚을지 모르는 친구의 적금이 있고, 부모님의 해약한 보험료가 포함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피드백을 받고 지원신청을 했지만, 지원금을 받지 못해 혼자 만들어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아무런 프로필도 없고 제출할 포트폴리오도 없으면 지원 프로그램에 제출할 수도 없고,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도 모를 때 무작정 혼자 만들었다. 사실 지원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것도 곤혹이다. 지원을 받을지 말지 알수도 없으면서 그곳에서 요구하는 모든 서류를 성심성의껏 작성해야 한다. 한두군데가 아니라, 여러 기관들을 제출하다보면 정작 지원도 받지 못하고, 1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요즘엔 지원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주변 감독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트리트먼트를 만들고 이력서 쓰듯이 필모그래피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 쓰듯이 연출의 변을 작성해야 한다. 나는 취직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닌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왜 이렇게 많은지. 더 중요한 문제는 될지 안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인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들이 심사위원도 아니고, 어떤 좋은 작품이 경쟁자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긴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 작품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충분한 인건비를 줄 수도 없으며, 사람이 많이 나오거나 규모가 있는 촬영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작은 이야기를 구현하는데는 그런 방법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지원을 받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가끔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이야기를 누군가 했지만, 지원은 어쩔 수 없이 간섭을 수반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과정 중에 하나이지 그것이 영화를 만들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경제적인 고통이 수반된다. 지원이 없으면 간섭도 없지만, 경제적 고통이 두뇌를 지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영화를 만들고, 또 만들 것이다.

그런데 또하나의 장벽이 내 길을 막아섰다. 코로나(covid19)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전지구적 재앙. 이 재앙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우리들의 일상을 파괴했고, 영화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우리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침범했다. 섭외된 촬영 장소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안된다고 취소를 종용했고, 자가격리로 현장에 오지 못하는 스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지만, 포기할수 없었다. 물론 내가 포기한 것들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척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촬영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영화를 만들었다. 지원도 없이 오직 나와 동료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만듦새는 수억원이 투입된 다른 영화에 비해 후지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런데 또다른 관문을 넘어야 한다. 이 영화를 어디서 틀 것인가? 나를 위한 프리미어는 이미 여러번 했고, 스텝 배우들과 함께 하는 시사는 영상자료원을 비롯한 곳을 빌려서 근사하게 마쳤다. 그런데 관객과 함께 하는 상영회는 영화제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웬걸 영화제는 제작지원보다 더 치열한 경쟁률을 넘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히 영화제는 전국의 지원 프로그램보다는 많다. 낼 수 있는 곳을 모두 내고 상영작이 발표되기만을 기다린다. 상영 소식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알릴지. 혹시 영화제 GV에서 나올지 모를 질문을 상상하고, 이번 GV만은 마스크를 벗고 하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리고 만약 상이라도 받게 된다면 수상 소감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꿈꾸면서. 누군가 차기작이 얼만큼 준비되어 있냐고 물을지 모르니, 차기작의 트리트먼트라도 미리 써놓아야 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만, 지금 내가 이 영화라는 것을 왜하고 있냐고 물으면 참 대답하기 곤란하다. 지금까지 영화는 내게 경제적인 안정감과 마음의 평화를 준적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듬어지 않은 불안한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을까? 딱히 미래에 대단한 성공을 꿈꾸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만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동료의식이 발동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포기하지 못하겠다. 촬영 현장에 있으면 경험해보지 못한 온갖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함께 기다리고 있고,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내고, 내가 만든 세계를 누군가 공감해준다면 이것을 포기할 수 없다. 설사 선택의 순간에 내가 항상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선택의 과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세계. 누군가의 유니버스. 그것을 공감하는 소수의 사람들. 언젠가는 넓어질 수 있는 세계가 되길 기대하면서 오늘도 실현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차기작을 상상한다. 영화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만큼 큰 기쁨과 작은 성공이 함께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암튼 영화는 보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훨씬 중독성이 강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