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화관(화신영화관, 경일문화영화관, 인천문화영화관)
일제강점기극장 21
문화영화는 특정한 사상의 전파와 일반 대중의 계몽 혹은 지식의 전파를 증진할 목적으로 제작되는 각종 형태의 영화를 일컫는 용어이다. 보통은 관에서 주도하여 제작한 홍보영화와 계몽영화 등이 이러한 범주 안에 들어가는데 이러한 영화의 상영은 관에서 조직한 활동사진반의 순회영사 등을 통해 무료로 상영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문화영화를 통한 시국선전활동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1939년 제정된 일본영화법 15조에서는 문화영화에 관한 규정을 두어 그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도 문화영화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조선문화영화사, 조선문화영화협회와 같은 영화제작회사가 설립되었고 조선영화사와 고려영화협회 같은 기존 극영화제작사에도 문화영화부가 설치되는 등 기존의 영화회사도 문화영화 제작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문화영화를 위주로 상영하는 영화관의 설립 역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문화영화 전용관의 설립은 기존에 영화관 출입이 어려웠던 학생 관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일본정부가 든 문화영화관 설립의 주된 이유는 정부에서 지정하는 문화영화 혹은 각 지방 장관이 문화영화로서 추천하는 영화를 학생들에게 공개하여 널리 구경시켜 지적인 면을 함양케 하는 동시에 정서 교육으로 많은 도움이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문화영화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조선에서도 문화영화 관람 기회를 늘리기 위해 문화영화관 설립이 가시화 된다. 조선에서 문화영화관은 백화점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설립이 추진되었다. 일반 영화관처럼 대극장이 아니어도 괜찮을 뿐더러 많은 관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지리적 장점도 고려되었다.
당시 백화점 업계에서는 중일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지속적인 불황을 타개하려 백화점 내에 극장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국의 문화영화관 설립 움직임과 맞아 떨어지면서 백화점 안에 영화관 설립이 추진된다.
1939년 서울의 백화점들은 상품선전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영업방식을 강구했다. 전통적으로 일본인 백화점으로 알려진 미쓰코시(三越), 미나카이(三中井), 조지아(丁字屋) 등 남촌의 세 백화점은 연합하여 미나카이 백화점 뒤편 소화통에 영화관을 지어 일정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무료입장권을 제공해주는 계획을 세운다.
문화영화관 설립을 추진 중이던 조선총독부는 백화점 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백화점에 영화관을 설치하는 것을 허가해 준다. 총독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백화점에 영화관을 설립, 많은 이들이 시국선전용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1939년 12월 23일, 미나카이 백화점 뒤편 소화통에 경일문화영화극장이 준공되어 개장식을 거행하였다. 경성일보사에서 운영하는 이 영화관은 200석의 좌석을 가졌으며 어른 20전, 군인과 소학생은 10전씩 요금을 받았으며 매일 오전 10시 개관하여 <경일세계 뉴-스>와 <요미우리신문 뉴-스>와 같은 뉴스영화, 문화영화, 만화영화를 상영했다.
이 영화관에서 문화영화를 감상한 임화(林和)는 극장의 규모가 좁아서 기분이 아담하고 저렴한 가격, 상대적으로 짧은 상영시간(1시간 반), 아이들과 어른들 누구나 볼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의 프로그램과 같은 장점들을 나열한 후 북촌에도 조선어신문사가 운영하는 이런 문화영화관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문화영화가 극영화 중심의 재래영화의 신생면의 하나라면 문화영화극장은 영화흥행 및 감상에 새로운 경지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임화, ““뉴-스”와 만화 경일문화영화극장“, 《매일신보》, 1940.2.9.)라며 문화영화관의 장점을 강조하였다.
남촌의 백화점이 적극적인 영업정책을 세우자 북촌에 자리한 화신백화점도 백화점 6층의 다목적 홀을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화관으로 개조하여 영업활동에 이용하기로 한다. 1940년 5월 28일 화신백화점 6층에 개관한 화신영화관은 경일문화영화관과 마찬가지로 뉴스영화, 문화영화, 만화영화를 비롯해 각종 선전영화들을 상영하게 된다.
1940년 11월 1일부터는 문화영화가 모든 극장에서 강제상영 된다. 아울러 조선 내에서 문화영화 제작도 활발해진다. 이에 따라 지방에서도 문화영화관의 설립이 추진되는데 1941년 인천 거주 일본인들이 상인천역 앞의 400여 평에 현대식 건축물로 문화영화와 뉴스영화를 상영할 극장을 세웠다.
경일영화문화관과 화신영화관 같은 문화영화 전용관이 들어서면서 백화점 업자들은 극장을 운영하는 것에 더해 독점적 영화제작이나 영화배급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특히 일제가 중일전쟁 장기화를 이유로 영화산업의 신체제를 천명하고 독점화로 산업재편을 꾀하자 백화점업자들은 이 독점기업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 경성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다나카 시계점을 운영하던 다나카 사부로(田中三郞)를 중심으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발족했다. 이 당시 조지야백화점의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와 화신백화점의 박흥식(朴興植) 등이 발기인 겸 주주로 참여하였다. 또한 문화영화관을 운영하던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는 각각 독점적 영화배급사인 조선영화배급사가 설립될 당시에 자본금 총 15만원 중 각각 2만5천 원씩을 투자하였다.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전쟁선전활동의 주요한 장소로 큰 역할을 담당했던 문화영화관들은 해방 이후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이중 화신영화관은 일반상영관으로 전용되었으며 경일문화영화극장은 폐관 되었다.
* [사진](상단) 미나카이백화점 뒷편 경일문화영화관
[자료] 《매일신보》, 1939.12.24.

경일(京日)문화영화극장 준공되어 성대히 개관
본정(本町) 삼중정(三中井)백화점 뒤에 짓기 시작하든 경일문화영화극장(京日文化映畵劇場)은 저간에 준공되어서 23일 개장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이 영화극장은 반도의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는 전당으로서 각 방면에서 오래전부터 긔대하던터이라 개장하는 날 각 방면 인사가 만히 와 관람하얏는데 좌석은 200명을 수용할 수 잇고 입장료금은 어른 이십전, 군인과 소학생은 십전씩이며 매일 오전 열시부터 개관하는데 경일세계『뉴-스』와 독매(讀賣)신문『뉴-스』 문화영화와 밋 만화 등을 상연한다고 한다. (사진은 경일문화영화극장)
[자료] 《매일신보》, 1943.07.23.

예술가들도 총동원, 호화롭게 전개될 징병축하행사
오는 팔월 일일부터 일주일간에 걸쳐 전개될 징병제 실시 감사의 기ᄲᅳᆷ은 전 동아에 펼쳐질 것으로 이 경축행사의 감격은 바야흐로 반도에 물 ᄭᅳᆯ듯 이러나고 잇는데 경성에서는 조선연맹, 경기도연맹, 경성부 등 삼연맹의 주최로 문화행사를 거행하기로 되엇다.
▼ 팔월 삼일 오후 일곱시부터는 경성운동장 육상경기장에서 조선영화배급회사, 조선음악협회, 조선축음기제조협회 찬조로 음악과 영화의 밤을 개최할 터인데 제일부 음악데는 경성후생실내악단의 연주와 이인범(李仁範)씨의 국민가요 독창, 현제명씨의 군가독창 등이 잇고 영화부에는 조선시보, 일본『뉴-스』, 무적전차(無敵戰車) 공의 신병(神兵)의 상영이 잇슬 터이다.
▼ 그 이튿날 사일 오후 일곱시부터는 부민관 대강당에서 조선연극협회,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영화제작회사, 조선축음기제작협회 협찬으로 연극과 낭독의 밤을 열 터이다. 영화극으로 조선해협(朝鮮海峽)의 상연이 잇슬 터인데 이 극에는 조영배우 일동이 출연하고 연극으로는 제일악극대(第一樂劇隊)의 『격멸하고야 만다』 일장의 상연이 잇게 되엿는데 참관 희망자는 이십육일ᄭᅡ지 왕복엽서로 조선연맹문화과에 신청하여 주기 바란다.
▼ 그리고 미술과 문학전람회는 팔월 일일부터 칠일간 삼월(三越)백화점 조선 미술협회 조선문인협회 협찬으로 문인보국회 동인의 작품을 미술가들이 붓을 든 작품전시와 육해군에 관한 회화와 만화의 전람회를 개최할 터이다.
[자료] 《매일신보》, 1941.11.02.

고려영화 신작 풍년가 스틸전(展) 정자옥(丁字屋)서 개최중
고려영화 신작 방한준 『씨나리오』, 연출 金井成一 카메라, 『풍년가』는 저간 경성서 제작종료 하야 십월 중순경 방한준씨가 원판을 동경으로 가저가 전부 완료하야 래(來) 오일 『프린트』와 함께 귀성하기로 되엿는데, 이에 압서 고영(高映)선전부에서는 지난 삼십일일부터 삼일간 확대 『캐비네』 백여점을 정자옥 사층 홀에 진열하고 『풍년가』 스틸전람회를 개최중이다.
동 『스틸』전람회는 연일 성황을 이루고 잇는데 오전 중에는 출연배우 김신재, 최운봉, 전택이 제씨가 『푸로마이트』에 싸인을 해주기로 되어 잇는데 방금 신곡감사제(新穀感謝祭)로 풍년제를 각 기관에서 거행 중인 이ᄯᅢ 영화 『풍년가』는 큰 의의를 가진 작품으로서 그 봉절이 자못 기대되어 잇다. (사진은 스틸 전람회장)
[자료] 《동아일보》, 1940.05.28.

화신(和信)영화관 입팔일(廿八日)부터 개관,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에서는 뉴-스 영화관을 계획 중이엇는데 요즈음 준비가 되어 이십팔일부터 개관하기로 되엇는데 상영영화는 내외 뉴-스 급 문화영화 등으로 장안 종로 일대에 영화오락기관의 한 거름을 앞서 뉴-스영화를 일반 부민에게 제공하기로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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