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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49 극단 신협 입단
- 서라벌예대 재학중인 1950년 전국 신인남녀 가수 콩쿨대회 1등 입상, 가수 활동
- 6.25사변 당시 육군 군예대 악극단 활동
- 1955 영화<격퇴>로 영화 데뷔
- 영화인협회이사 25년간 역임
- 현재 한국참전예술인협회 상임부회장과 세계평화스마일운동 총본부 부회장 역임.
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전원윤(全元潤)이다(김기제).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했으며, 대학 재학 중에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계기로 고려레코드회사 전속가수로 활동했다(한국영상자료원). 한국전쟁 기간 중 육군 군예대(軍藝隊)와 창공(蒼空), 태평양(太平洋) 등의 악극단 생활을 거친 후 1956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한국영상자료원, 김기제). 이후 김을백 감독의 <72호의 죄수>(1959)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김기덕의 <5인의 해병>(1961),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에서의 군인 역할과 이만희의 <검은 머리>(1964), 이신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65), 이상언의 <현금은 내 것이다>(1965) 등에서의 암흑가 일원 역할로 개성 있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는 특히 장동휘, 박노식, 허장강, 황해 등과 함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의 액션영화 붐을 대표하는 액션 배우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참여 작품이 줄었지만 오석근의 <네 멋대로 해라>(1991), 박광우의 <투맨>(1996)에 출연하는 등 9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을 했다. 2004년 지병으로 별세했으며, 배우 독고영재가 큰 아들이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연합뉴스 2004년 4월 11일자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189쪽.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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