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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

Son Jun · 孫傳

분야
배우, 감독
데뷔작품
무지개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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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2

영화제명 개최연도 수상부문 작품명
제31회 대종상 영화제 1993 특별연기상(남) -
제15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1994 특별공로상 -

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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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손전이 연기자로 데뷔한 것은 1936년 영남영화제작소의 제1회 작품으로 이규환이 감독한 <무지개>를 통해서였다. 이어서 두 번째 작품으로 신경균 감독의 <순정해협>(1937)과 <젊은 모습>, <조선 해협>(1943) 등 일제의 전쟁동원용 계몽영화에 출연하였다(동아일보a; 조선일보). 이 시기 손전은 손일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으며, 이 두 작품을 제외하면 식민지 시기 더 이상의 출연작은 확인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이규환 감독의 <똘똘이의 모험>(1946), <민족의 새벽>(1947)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활동을 재개하였다(동아일보b; 경향신문a). 그리고 손전은 한국전쟁 중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그의 데뷔작은 <내가 넘은 38선>(1951)으로 공산당에게 재산을 몰수당하고 남하한 지주의 아들과 그 지주를 반동으로 몰았지만 공산당에 환멸을 느낀 청년이 재회한 후, 함께 국군에 귀순하여 북진대열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전사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영화감독사전). 두 번째 작품인 <공포의 밤>(1952)은 시대극으로 “사건처리에 있어서 능숙한 수법”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경향신문b). 이외에도 김내성의 소년소녀 소설을 영화화한 <쌍무지개 뜨는 언덕>(1957)을 비롯하여, <여자의 열쇠>(1963), <쌍무지개 뜨는 언덕>(1965)을 감독하였다(경향신문c; 경향신문d; 경향신문e; 경향신문f). 감독으로는 15년 남짓 활동을 했지만, 나머지 기간은 <한>, <일월>, <서울무지개> 등 여전히 배우로서 수많은 영화에 참여했다. 자신이 감독한 영화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에서 조연 및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36년 4월 21일 3면. 동아일보b 1946년 9월 10일 2면. 조선일보 1937년 4월 14일 석간 4면. 경향신문a 1947년 4월 16일 2면. 경향신문b 1952년 8월 13일 2면. 경향신문c 1956년 9월 21일 4면. 경향신문d 1957년 9월 13일 4면. 경향신문e 1963년 12월 24일 8면. 경향신문f 1965년 1월 15일 2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 2011년도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0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손병철, 예명으로 손일포, 한일호 등이 있다(한국영화감독사전, 한국영상자료원). 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 일본 니혼대학 경제과에 유학했으나 중퇴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귀국한 후 이규환 감독의 1936년작 <무지개>에 출연했으며, 신경균의 <순정해협>(1937)에서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동아일보, 한국영화감독사전). 해방 후 이규환의 <똘똘이의 모험>(1946), <민족의 새벽>(1947), 윤대룡의 <조국의 어머니>(1949) 등에 출연했으며, 전쟁 기간 중에는 <내가 넘은 삼팔선>(1951)을 기획하여 각본과 감독, 제작, 출연을 도맡았다. 감독 데뷔작품인 이 영화 이후로 <공포의 밤>(1952), <쌍무지개 뜨는 언덕>(1957), <여자의 열쇠>(1963)를 감독했으며, <쌍무지개 뜨는 언덕>은 김래성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965년에 손전 본인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마지막 감독작이었으며, 배우로서 활동은 1990년대 말까지 꾸준히 이어갔다. 1999년 9월 별세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36년 4월 21일자 3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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