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열쇠
- 감독
- 손전
- 제작년도
- 1963
- 출연
- 김석훈, 김승호, 김희갑, 이경희, 방성자, 방수일, 이용, 장훈, 김웅, 김수천, 최찬식, 최준, 은화영, 김경란, 최송화, 조남연, 김영재, 이운심, 석귀녀, 윤인자, 남미리, 석금성, 박옥초, 김신재, 황정순, 조미령
지난해 12월 12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은 “스크린 케미스트리: 스타로 보는 한국영화사”라는 제목으로 1950~1990년대 한국영화계 스타 커플의 관계성을 분석하는 시네포럼을 개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수행하는 아카이브로서, 영화연구자는 물론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참여자들이 한국영화사와 관련해 새롭게 논의될 만한 지점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영자원은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술적인 분석 중심의 발제나 토론이 아니라 발표자들이 청중의 질문을 받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네포럼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주요 스타 커플이 등장한 시기를 네 구간으로 구분하고, 각 구간별로 등장한 스타 커플과 당시 한국영화나 대중문화의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시기별로 논의될 만한 스타들을 미리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이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는 발표자가 스스로 고민한 후 관객에게 제안하도록 열어뒀다. 1950~1990년대 급변한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영화산업의 지형을 참고하면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대중에게 남긴 여운을 발표자와 참여자가 함께 추적할 수 있었던 포럼 현장을 요약한다. 1950~1960년대 스크린 속 스타 커플 영화평론가·영화사가 김종원 김종원 평론가는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커플로 등장한 스타들 간 케미스트리를 발견했다. 1950년대 스타 커플의 역사는 < 출격명령 >(홍성기, 1954)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고 실제 부부가 되어 < 춘향전 >(이규환, 1955)에서 향단과 방자를 연기한 전택이 와 노경희 부터 시작한다. 배우 노경희는 < 내가 넘은 삼팔선 >(손전, 1951)을 비롯해 < 피아골 >(이강천, 1955) 등에서 해방 이후 스크린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여성 배우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 아리랑 3편 >(나운규, 1936)으로 데뷔한 전택이와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하며 20세기 중반 한국영화사에서 함께 활약했다. 이후 김승호 와 황정순 이 강대진 감독의 < 박서방 >(1960), < 마부 >(1961), 김수용 감독의 < 굴비 >(1963)에서 돋보이며 또 다른 스타 커플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로 데뷔한 배우 최은희 는, 커플을 구성하는 인물들 간 관계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당시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 케미스트리를 주도하는 여성 인물로 떠올랐다. 김진규 와 신영균 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신상옥 감독의 < 동심초 >(1959), < 상록수 >(1961), < 산 >(1967)과 같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한편, 스타 커플의 일원으로 거론된 적은 드물었지만 멜로드라마 위주의 문예영화 영역 밖의 상업영화 작품들에도 다수 출연하며 입지를 다진 김지미 배우의 행보도 독특했고, 그의 활약은 < 골목안 풍경 >(박종호, 1962), < 불나비 >(조해원, 1965)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에 등장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 김종원 영화사가는 배우 엄앵란 , 윤정희 , 문희 를 꼽았고, 그들과 배우 신성일 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했다. 엄앵란은 < 청춘교실 >(김수용, 1963), < 맨발의 청춘 >(김기덕, 1964) 등에서 그와 함께 연기하며 ‘청춘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왔으며, 두 배우의 호흡은 한국영화계에서 ‘스타’의 존재를 부각함과 동시에, 이전까지 외화에 치중됐던 국내 관객의 관심이 한국영화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윤정희는 데뷔작 < 청춘극장 >(강대진, 1966)부터 < 안개 >(김수용, 1967),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196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주축을 구성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문희 역시 이만희 감독의 < 흑맥 >(1965)과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연기하면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서 영화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일 중심의 트로이카 구도로 대표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스타 커플 구조는, < 결혼교실 >(정인엽, 1970) 속 신성일과 윤정희, 문희, 남정임 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윤정희 X 신성일: 1960~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밀고 당기기’ 영화평론가·영화연구자 금동현 금동현 평론가는 1960~1970년대 대표 배우이자 청춘스타였던 신성일과 윤정희가 동반 출연작에서 연기한 인물들의 관계를 ‘밀고 당기기’라는 용어로 재해석했다. 극중 그들의 배역이 점하는 위치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함께 출연한 87편에 달하는 작품들에서 거듭 역전되고,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두드러진 <안개>와 < 야행 >(김수용, 1977)에서 이 점이 선명히 관찰된다. 배우 신성일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 아낌없이 주련다 >(유현목, 1962)로 데뷔한 이후 유수의 작품에서 줄곧 주연을 맡았고, 특유의 소년미로 ‘청춘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현대사회에 완전히 정박하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도회적이고 지적인 여성 인물을 대표했던 배우 윤정희는 1972년 석사 논문 「영화사적 측면에서 본 한국여배우 연구: 1903~1946년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배우이자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면모를 보이며 ‘멜랑콜리’한 정서를 중심으로 스타 이미지를 갱신했다. <안개>와 <야행> 중 신성일, 윤정희 / © ㈜태흥영화 일례로, <안개>에서만 해도, 윤정희는 주변 소품이나 인물들 사이에 갇혀있고 신성일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행>의 몇몇 장면에서 윤정희는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기를 수행함으로써, 197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활성화하는 성취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신성일과의 케미스트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구축된 윤정희의 스타 이미지를 참고하면, 금동현 평론가는 그가 ‘보여지는(보이는) 여성’에서 ‘보여주고 보는’ 여성으로 변화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60~1970년대 한국고전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두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당대 형성된 두 배우의 스타 이미지를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는 관점도 공유했다. 더불어, 두 사람이 우울하지 않은 명랑한 얼굴로 콤비를 이룬 작품 <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정인엽, 1970), < 모범운전사 갑순이 >(이형표, 1972) 역시 언급하면서, 둘의 케미스트리를 다른 방식으로도 재조명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장미희 X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 커플 영화연구자 이윤종 이윤종 영화연구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장미희 와 안성기 를 다루면서, 당대 한국영화 주요작에 출연하며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한 이들을 ‘황금 커플’로 지칭했다. 안성기는 김기영 감독의 1957년작 < 황혼열차 >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해 연기 활동을 지속하다가 < 애수의 언덕 >(김대희, 1969) 이후 10여 년간 휴식기를 보내고 < 병사와 아가씨들 >(김기, 1977)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 바람불어 좋은날 >(이장호, 1980),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고래사냥 >(배창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등 1980년대 화제작의 주연으로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며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시기 장미희와의 동반 출연이 특히 빛났다. 장미희는 < 성춘향전 >(박태원, 1976)으로 데뷔하고 흥행작 < 겨울여자 >(김호선, 1977)에 출연한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어 당대 여성 배우 트로이카에도 합류한다. 이후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등에서는 안성기와 상대역으로 만나 열연함과 동시에 흥행까지 거두면서 두 배우 모두 영화계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적도의 꽃>와 <깊고 푸른 밤> 중 장미희, 안성기 / © ㈜동아수출공사 그런데 이들이 동반 출연한 1980년대 작품들에서 각자가 욕망의 주체(안성기)와 대상(장미희)으로 설정되면서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파국’의 결말을 통해 발휘된 점이 인상적이다. 안성기는 순수함부터 비열함에 이르기까지 중·하층민 남성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장미희는 세련된 외관을 지닌 채 심리적 결핍을 겪는 부유한 여성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적도의 꽃>에서는 중년 사업가에게 착취당하는 오선영(장미희)에게 반한 미스터 M(안성기)이 그를 구출하려 하지만 결국 화합에 실패한다. < 황진이 >(배창호, 1986)에서 황진이(장미희)에 대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갓바치(안성기)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고, <깊고 푸른 밤>에서는 미국 영주권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백호빈(안성기)이 계약 결혼을 통해 제인(장미희)을 이용하며, 두 인물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드러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배우는 이렇게 산업화와 군부 독재의 한가운데 드리운 감정 소외나 우울감의 그림자를, 불행의 케미스트리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김혜수 X 한석규: 1990년대 소비문화와 트렌드 신화, 도시의 얼굴 영화평론가·성결대학교 교수 정민아 이전까지 언급된 배우들의 활동이 과거 한국사회의 시대별 흐름에 맞춰 전개됐다면, 정민아 평론가는 1990년대에 두각을 드러내 현재까지도 활발히 필모그래피를 갱신하고 있는 배우로서 배우 김혜수 와 한석규 를 조명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그들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사실 많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 닥터봉 >(이광훈, 1995)에서 처음 협업한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 이층의 악당 >(손재곤, 2010)으로 다시 만났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작품에서 발생시킨 케미스트리보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역량을 개발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두 배우의 존재감을 분석했다. (상) 영화 <쉬리>,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 중 한석규 / (하) 영화 <첫사랑>, <내가 죽던 날> 중 김혜수 © ㈜필름쿡플러스, tvN 1990년대 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되며 대중문화 산업의 규모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콘텐츠나 인물이 주목받았던 때로, 이때 등장한 스타들은 대체로 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팬덤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김혜수와 한석규는 외모와 목소리, 연기,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이 선망한 ‘세련됨’을 구현했고, 데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속에서 쉼 없이 대중과 호흡해왔다. 한석규는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도시 남성의 이미지를 표방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처럼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불운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처연한 청년의 모습으로도 기억된다. 이는 최근까지 그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소시민적’ 영웅의 리얼리티와도 맞닿아있다. 또한 감독에 의해 ‘선택받는’ 배우를 넘어 자발적인 비전에 따라 작품과 장르를 선택하고 신인 감독의 성장까지 견인하는 흥행보증수표 영화인의 시초 격이기도 하다. 한편, 김혜수는 활동 초기에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나 영화 < 첫사랑 >(이명세, 1993)을 통해 젊고 발랄한 청춘스타의 면모와 특유의 건강미로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보다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으며, 특히 2020년대 즈음에는 < 굿바이 싱글 >(김태곤, 2016)과 < 내가 죽던 날 >(박지완, 2019), < 밀수 >(류승완, 2023) 등을 통해 독립된 여성 자아가 돋보이는 씨네페미니즘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비디오 에세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연구원 윤서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과 영자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은, ‘비디오 에세이’라는 작업의 의미를 소개하며 포럼 주제에 맞는 작업 결과물 한 편을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이무언은 관객이나 연구자로 하여금, 각자가 작품에서 발견한 특별한 지점을 중심으로 연출과 편집을 주도하면서 영화와 한층 더 친밀해지는 기회로 비디오 에세이를 인식했다. 윤서연 연구원 역시 비디오 에세이가 주제가 되는 대상(물)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통찰”한 결과이자 “매혹적인 또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논의 [1] 를 인용하며, ‘오디오 비주얼 크리틱’으로서 비디오 에세이의 영역이 지닌 비평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측면을 소개했다. 이날 소개한 작업은 영자원이 올해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을 수행하던 도중 두 사람이 기획하게 됐다.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는 영화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한국영화 몇 편의 공통 소재를 제목으로 하여, 작품별 본편 영상과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 그리고 코멘터리 영상 등을 수록한다. 영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매년 해외 공관이나 문화원 등에 비영리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와 남성: 영화로 보는 스타 페르소나”라는 제목의 DVD에, 한국사회의 일면과 시대의 감성을 머금고 있는 남성 인물들이 인상적인 한국영화 6편을 수록했다. 그리고 감상자들이 한국에 대해 간략히 소개받을 수 있는 짧은 콘텐츠를 기획해 부가 자료로 함께 수록하고자, DVD에서 다루고 있는 남성 배우 6인 중 한 명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를 기획했다. 내부 논의 끝에 최종 선정하게 된 에세이의 주인공은, 순정과 헌신, 소시민의 나약함, 일그러진 욕망 등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 국민 배우이자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기억되는 한국영화의 얼굴, 안성기였다. 실제 연령대로 비춰볼 때, 안성기는 에세이를 제작한 이무언의 아버지 세대이면서 작품 촬영 당시에는 그(이무언)와 같은 또래였다. 또한 안성기가 극중 인물을 형상화하며 선보인 특유의 ‘얼굴’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국사회의 각기 다른 국면을 관통함에 따라, 1980년대의 시절이 하나로 통합되는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고 이무언은 전했다. “이미지들의 느슨하고 싱거운 연결”을 통해 이러한 인상이 에세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반면 윤서연 연구원은 안성기가 각기 다른 영화에서 선보인 대사들 중 인상 깊은 부분들을 모아 1980년대 시대정신과 같은 특정 의미를 강조하여, 작품과 쇼트들의 의미를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2017년 시네마테크KOFA에서 그에 관한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제작된 영상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을 참고하고, 구술채록 사업 진행 중 그의 구술 내용이 녹음된 파일들을 다시 들어봤으며,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10편을 골라 실제로 삽입할 쇼트를 신중히 선택했다. 쇼트마다 배어있는 정서를 자막과 음악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작품에 속한 장면을 소품이나 장소 등을 매개로 연결하며 안성기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기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출 중 하나는,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 중 덕수궁의 벤치에서 각각 아내( 황신혜 )와 딸에게 자상함을 베풀지만 냉대를 받고 마는 두 장면을 한 화면에 나란히 배치해 동시에 재생한 대목이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향한 그의 행동이 중첩되는 순간들이 보이는데,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에 두 개의 영상을 2채널로 나란히 배치하며 가능해진 실험이라고 윤서연 연구원은 덧붙였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이미지 클릭 후 재생) 관객과의 대화 (질문1)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스타’들에게는,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국내 관객의 욕망이 투사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부터는 이들만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구축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영화의 각 시기가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에 대해 발표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답변_이윤종 영화연구자) 고전 할리우드 시기 영화산업은 몇몇 주류 영화 스튜디오가 제작과 배급, 상영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배우들 역시 각 스튜디오에 소속된 채로 활동했다. (하지만 1948년 미국 대법원에서 이러한 영업 활동이 ‘독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여러 스튜디오가 해체됐고, 여기에 소속됐던 배우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스튜디오 중심의 스타 시스템 자체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고, 할리우드의 방식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당시 국내 영화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근접한 운영 양태를 보였는데, 1970년대부터는 이마저도 쇠퇴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감독과 배우, 영화 스태프들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1990년대 이후에 비해, 영화를 비롯해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얻지는 못했던 시점인데, 와중에 안성기와 같은 ‘국민 배우’가 탄생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질문2) 20대 관객의 입장에서는 < 라디오스타 >(이준익, 2006)나 < 실미도 >(강우석, 2003) 등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안성기 배우를 기억하게 되는데, 과거의 다양한 출연작들을 통해 그의 활동을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돌이켜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면서, 여러 출연작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장면들을 구분해내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예상된다. 작업 도중 겪게 되신 고충 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답변_이무언 비디오 에세이스트) 감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장면을 확인할 때마다 영상의 일부를 이미지로 캡처해두고, 작품 안에서의 타임코드와 함께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메모했다. 에세이에서 다룰 모든 작품에 대해 이 작업이 완료되면, 캡처된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관련 장면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각 이미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안성기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가지 인상들(‘아버지’, ‘남성’ 등)이 쇼트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지각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안성기 개인의 삶이 연상되거나 관객 스스로가 처한 ‘현실’ [2] 과 작품 속의 ‘허구’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장면들도, 어렵지만 제시하고 싶었다. 또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안성기의 ‘얼굴’ 외에 다른 요소들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이미지, 수면 위에 반사된 이미지, 극중 시계를 비춘 이미지 등이, 매 장면 돋보이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연결해줬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중 시계와 잔이 등장하는 쇼트 (질문3) 1960년대 한국영화의 멜랑콜리적 지식인 주체성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는데, 금동현 평론가의 발표에서 <장군의 수염>과 <안개>가 다뤄져서 반가웠다.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이 담지하고 있는 멜랑콜리적 주체성 이 무엇일지에 대해 여쭙고 싶다. (답변_금동현 영화평론가) 오늘 분석한 작품들에서는 멜랑콜리를 자아내지 않고 ‘체현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물론 1960년대에는 멜랑콜리를 재현하는 몇 가지 요소가 발견될 뿐 멜랑콜리라는 감수성 자체가 이 시기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멜랑콜리의 흔적이 관찰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한 대목을 꼽자면, ‘코미디’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웃음은 모종의 이유로 ‘경직되어버린’ 무언가를 조롱할 때 자주 발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웃어야 하는 데 웃지 못하는 순간( 이봉래 감독의 영화에서의 몇 가지 장면이 예가 될 수 있다)이 어떻게 보면 멜랑콜리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질문4) 오늘 언급된 배우 중, 배우 김혜수가 유독 눈에 띈다. 1990년대 당시 그는 확고한 ‘무비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태가 아니었고, 광고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아직 다른 스타들만큼의 파급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김혜수 가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이 시기 스타로서 김혜수의 부상을 분석하실 때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여 어떤 접근법을 적용하셨는지가 궁금하다. (질문5)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배우 김혜수와 한석규가 선보인 연기 스타일이, 그들이 1990년대에 수행하던 방식과는 달라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의 방향성이 재정립되는 데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욕망이 변화하는 현상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시대별로 이념이나 정치성, 관객의 욕망 등의 변화가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 변모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 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답변_정민아 영화평론가) 두 질문에 대해 한 번에 답변 드리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 김혜수 배우가 영화계 스타로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다. 하지만 1990년대 화보와 예능, TV를 포함해 대중매체 전반에서 그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한 여정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 시기 관련 콘텐츠를 향유했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김혜수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는 오늘날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영화’와 그밖의 영역(방송 등)이 명확히 구분됐던 과거와 다르게,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배우’의 활동 분야가 대폭 확장됐고 분야 간 경계도 거의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분야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모두 ‘배우’로 호명되며, 그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분야 역시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크린을 통해서만 스타로 거듭나기보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파급된 각기 다른 매체에서 강렬한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김혜수가,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복합적 차원의 배우상을 1990년대부터 선구자적으로 확립한 이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현장 BEHIND CUT * *** [1] 박진희, “ 복혜숙과 석금성을 헷갈려하다 ”, KMDb 영화글, 2023. 7. 27. [2] < 개그맨 >(이명세, 1988) 중 이발사가 이종세(안성기)에게 “어렸을 때부터 그 방면에 재능이 많으셨죠?”라고 물어 아역 배우 시절 안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거나, < 칠수와 만수 >(박광수, 1988) 중 “우리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라는 대사 이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등이 있다.
사진: " A Brighter Summer Day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본 글에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일부 장면과 결말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 장손 >(2023)의 개봉 이후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수많은 선배 감독의 영화를 참고하고 영향받았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몇몇 필자들은 <장손>을 두고 존경받는 한국 감독들의 계보를 잇는 영화라 평하기도 했다. 감사하지만 과찬이라 민망할 따름이다. 지난 3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대담 에서 금동현 평론가는 나에게 내밀한 질문을 던져왔다. 그는 영화감독들이 공개적으로 영향받았다고 언급하는 영화들은 대개 거짓말이라 믿지 않는다며 나에게 숨기고 있는 진짜 영향받은 영화가 무엇이냐 물었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깊이 숨기는 법이다.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에드워드 양, 1991)을 처음 본 감각을 또렷이 기억한다. 무언가 대단한 걸 본 건 분명한데 이 영화가 왜 대단한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문득 다른 매체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영화는 능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의 본질을 독자분들께 설명할 자신은 없다. 당시 대만 정치 상황과 에드워드 양의 영화 미학에 대한 뛰어난 평론은 많으니, 그것들을 참고해주기 바라며 나는 그저 ‘이 영화가 나를 스쳐 지나가며 남긴 흔적들’을 적어보려 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1961년 6월 대만에서 최초로 발생한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감독 에드워드 양은 살인을 저지른 소년과 동갑으로, 이 사건은 그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데뷔 이후 < 공포분자 >(1986)에 이르기까지 대만의 모더니티를 탐구하던 그는 돌연히 1960년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샤오쓰가 감독 에드워드 양처럼 상해 출신의 외성인이라는 설정은 우연일 리가 없다. 비록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자기 삶이 깊게 밴 친숙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사진: " A Brighter Summer Day ", IMDb 이 영화는 지루하거나 불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다 보고 나서 이 영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떠올려 보면 쉽사리 답할 수가 없다. 에드워드 양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모든 씬을 연결하지 않고 파편화한다. 영화는 샤오쓰를 따라가기도 하고 샤오밍을 따라가기도 하고 제3자를 따라가기도 한다. 타이베이의 한 마을이라는 제약 아래 카메라는 마을 곳곳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그 변화를 보여준다. 예컨대 영화 초반에 217파와 학교에서 다투던 슬라이가 몰래 만나던 여성이 샤오추이인줄 알았으나, 3시간 30분이 지나서 사실은 샤오추이가 아니라 샤오밍임을 알게 되는 식이다. 영화는 수많은 복선으로 가득해서 단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이후 등장하는 장면에서 의도하는 바를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 한들 샤오쓰가 왜 샤오밍을 찌르는지, 에드워드 양이 이 영화를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완성될 수 없는 조각 그림 맞추기인 셈이다. 어쩌면 에드워드 양의 목표는, 애초에 정답이 없는 조각 그림 맞추기를 관객들이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맞추려고 노력하도록 하는 데 있지 않을까. 관객들이 서사에 함몰되지 않고 씬과 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추하고 지연된 정보를 종합하는 사유의 과정에서 1960년의 장제스 치하의 타이베이 공기를 느껴보기를 에드워드 양은 바랄 것이다. 제목 그대로 영화 말미에 주인공 샤오쓰는 자신이 사랑하는 샤오밍을 칼로 찌른다. 사건을 저지른 직후 샤오쓰의 행동을 보면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헛소리를 해대고 발작을 일으킨다. 마치 우리가 이제껏 보아온 샤오쓰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샤오쓰가 왜 샤오밍을 칼로 찌르게 됐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샤오밍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샤오밍은 마성의 매력을 가진 여학생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녀를 좋아한다. 현재 그녀는 소공원파의 보스인 허니의 애인으로, 허니는 그녀 때문에 산동파의 보스를 죽이고 타이베이를 떠나 잠적한 상태다. 자연이 진공을 허락하지 않듯 허니가 사라지자 동네 수많은 남학생은 샤오밍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샤오밍 또한 남자들을 뿌리치지 않고 다음 짝을 고르듯 만난다. 하지만 이를 샤오밍의 남성 편력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슬프게도 샤오밍에게 남자란 생존 전략의 수단에 가깝다. 샤오밍과 그녀의 엄마는 외성인으로 타이베이에 마땅한 기반이 없다.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던 그녀는 엄마의 지병인 천식이 도지자 남의 집을 전전한다. 핑 아주머니에게 쫓겨난 그들은 야박한 친척 집을 들렀다가 소공원파의 경쟁조직인 217파에게까지 의지한다. 의아해 보이지만 사실 그녀가 217파 보스와 연인관계였던 것을 떠올려보면 자신의 친정집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러다 사라졌던 허니가 다시 돌아오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허니에게 의지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허니와 샤오밍이 연인이라고 하지만 그 어떤 장면에서도 두 사람의 스킨십 장면이 없다. 그 흔한 손잡는 장면이나 포옹 장면도 없다. 그저 허니의 첫 등장에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장면이 유일하게 함께 담긴 장면이다. 그리고 허니는 샤오쓰에게 “샤오밍이 널 많이 좋아한다고 그러더라”라고 말한다. 이게 어디 남자친구가 할 법한 말인가. 허니는 애인이 아니라 오히려 샤오밍에게 부재한 오빠나 아버지에 가깝다. 허니는 샤오밍의 유사 가족인 셈이다. 비극적인 사고로 허니가 죽자 다시 샤오밍은 떠돌아다닌다. 자신에게 환심을 보이는 의사 선생님에게 의지했다가 그에게 약혼녀가 생기자 다시 샤오마의 집에 식모살이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샤오쓰는 이 모든 과정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샤오밍과 허니 (사진: "A Brighter Summer Day"_ 1 , 2 , IMDb) 그러면 반대로 남자들은 왜 이렇게 샤오밍에게 열광하는가. 동네 불량배 남학생들은 허니가 사라지자 샤오밍에게 접근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슬라이, 타이거, 샤오쓰 외에도 더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동네의 강력한 1인자 허니가 등장하자 꼬리를 감췄다가, 허니가 죽자 다시 샤오밍에게 접근한다. 샤오밍을 욕망하는 남자들은 샤오밍에게 경쟁적으로 구애하지 않고 서로 싸우기에 바쁘다. 그들에게 진정 원하는 것은 ‘샤오밍의 마음’이 아니라 샤오밍을 욕망할 수 있는 위치인 ‘허니의 위치’에 오르는 것이다. 르네 지라르를 빌려 이야기하면 자신 내부의 자발적 욕망이 아니라 중개자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의 욕망인 셈이다. 남자들은 스스로 ‘샤오밍’을 욕망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거짓이며 욕망 중개자인 ‘허니’를 모방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인 ‘샤오밍의 마음’을 얻어 다른 남자들의 우위에 서는 ‘허니의 위치’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샤오밍을 욕망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샤오밍이 허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질투하기는커녕 중요하게 생각한다. 샤오밍의 마음을 얻지 못한 남자들, 다시 말해 허니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자들은 모두 무너진다. 슬라이는 권력을 잃고 타이거 또한 말을 잃는다. 주인공 샤오쓰도 샤오밍을 평생 지켜주겠다며 고백하지만 거절당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여학생과 만남을 가지고 키스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샤오쓰는 자신을 지켜준다는 약속을 지킬 거냐는 샤오밍에게 자신의 부정을 숨기고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샤오밍과 교제를 시작한 샤오쓰는 잠시 행복할 뿐 그녀가 떠나 버릴까 봐 불안하다. 샤오쓰는 샤오밍이 주위 남자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널 깔볼 거야”라고 말하는데, 이는 실상 다른 사람들이 아닌 샤오쓰의 본심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퇴학을 당한 샤오쓰는 점점 샤오밍과 멀어진다. 큰 나무 아래서 샤오쓰는 주간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샤오밍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샤오밍은 “허니가 타이난으로 떠났을 때랑 비슷하네”라고 대답한다. 이는 마치 앞으로 벌어질 일의 불길한 복선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의 가장 빛나던 순간인 나무 아래 장면 다음 샤오마의 집으로 연결된다. 샤오마의 아버지는 고위 장군으로 그의 집에는 커다란 일본 장도와 총이 가득하다. 캣과 비행기는 전쟁놀이를 하고 있고 총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샤오밍은 실수로 샤오쓰를 향해 총을 쏴버린다. 샤오쓰는 그대로 얼어버리고 놀란 샤오마는 샤오밍의 손에 들린 총을 빼앗고는 뺨을 때린다. 모두의 선망 대상이자 친구 샤오쓰의 애인이지만 샤오마에게는 샤오밍은 그저 입버릇처럼 말하는 ‘여자 따위’에 불가하다. 여기서 결코 좁힐 수 없는 권력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 속 남자들, 총을 겨눈 샤오밍 퇴학을 당한 샤오쓰는 주간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지만 계속 샤오밍을 그리워한다. 캣의 집에 놀러 간 샤오쓰는 캣에게 샤오밍의 안부를 묻는데 이때 샤오쓰가 은장도의 주인이자 정절를 중요시한 일본 여자의 사진을 보고 샤오밍을 언급한다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이후 샤오밍을 볼 수 없는 샤오쓰는 일본 여자의 사진을 통해 샤오밍을 생각한다. 불안한 샤오쓰는 샤오밍이 자신만을 생각하고 정절을 지키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슬라이를 통해 샤오밍이 샤오마의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샤오쓰는 샤오마와 갈등한다. 캣이 중재해 보려 하지만 샤오마가 칼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샤오쓰는 촬영장에서 종이에 글을 쓰더니 손전등을 두고 사라진다. 눈이 나쁜 샤오쓰가 항상 밤마다 들고 다니던 손전등을 버린다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을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며, 그가 쓰던 글은 나중에 밝혀지지만 둘째 누나에게 남기는 유서였다. 샤오쓰는 죽기를 각오한 것이다. 캣의 은장도를 들고 학교로 찾아간 샤오쓰는 샤오마 대신에 샤오밍을 우연히 마주치고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 " A Brighter Summer Day ", IMDb “이제 네게 남은 희망은 나밖에 없어. 과거에 허니가 그랬지. 네가 왜 허니를 못 잊는지 알아? 그건 네가 날 허니처럼 생각해서 그래.” 자신이 곧 허니라고 말하는 샤오쓰는 자신이 샤오밍의 유일한 구원자라고 주장한다. 이에 샤오밍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변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야? 너도 똑같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너도 다른 애들처럼 나한테 감정을 바라고 잘해 준 거였어. 그러면 안심이 될 테니까. 참 이기적이야. 네가 날 바꾸겠다고? 난 이 세상과 같아. 세상은 변할 수 없어.” 애석하게도 샤오밍은 샤오쓰를 ‘허니’가 아닌 허니가 되지 못한 ‘다른 애들’로 취급해 버린다. 순간 샤오쓰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셈이다. 허니가 되지 못한 공허한 존재, 샤오쓰는 반대로 자신이 지키려던 존재, 샤오밍을 부정해 버린다. 그건 샤오밍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는 정절을 지키지 못한 샤오밍을 비난하듯 은장도로 찌른다. “넌 희망이 없어. 뻔뻔한 계집 부끄러운 줄 알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샤오쓰는 그대로 미쳐버리고 다시는 영화에서 그의 정상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샤오쓰가 샤오밍을 왜 죽였는지 묻는 영화가 아니라 샤오쓰가 샤오밍을 죽이기까지 어떻게 미쳐가는지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내 능력의 부족과 마감 기한이 임박한 관계로 영화 속 학생들의 세계 중 일부만 다루는 반쪽짜리 글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영화 속 어른의 세계를 다뤄보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인상적인 장면 세 가지와 영화를 보며 해소되지 않는 질문 세 가지만 공유해보고 싶다. 1) 체육 시간에 캣은 허니를 무시하는 타이거에게 공을 날린다. 공에 맞은 타이거는 이를 샤오쓰의 행동으로 오해한다. 하교하던 샤오쓰 일행은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날아온 농구공을 마주한다. 개인적으로 태풍 속에서 217파를 살육하는 장면보다 훨씬 무섭다. 타이거로 유추는 가능하지만 상대방이 누군지 몇 명인지 어떤 무기를 들고 있는지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에드워드 양은 이 장면에서 공포를 보여주는 대신 상상하게 만든다. 보여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의 상상은 한계가 없다. 2) 샤오쓰의 아버지는 친한 친구 왕 선생과 연루되어 이적 혐의로 며칠 동안 비밀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신이 알고 모든 것을 진술하기를 강요받는다. 이 장면의 첫 컷에서 카메라는 아버지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발소리와 함께 진술을 그만해도 된다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경찰의 시점 샷으로 유추된다. 아버지는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때 먼 곳에서 다른 경찰의 목소리가 들린다. 놀란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는 환청을 들은 셈이다. 그런데 이때 샷 구성이 굉장히 흥미로운데, 두 번째 컷에서 아버지의 시점 샷 대신에 대신 경찰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위치에서 시점 샷으로 연결된다. 아버지가 경찰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독재국가의 폭력에 미쳐버린 아버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자기검열과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한 죄수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세 번째 컷에서 드디어 아버지의 시점 샷으로 문이 활짝 열린 모습이 나오는데 아버지는 왠지 열린 문으로 쉽사리 나가지는 못할 것 같다. 3) 샤오밍이 샤오마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샤오쓰는 당장 샤오마의 집으로 찾아간다. 샤오쓰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자, 샤오마는 샤오밍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 일자리를 달라고 부탁해서 받아준 것이라고 대답한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들어와서 샤오밍을 만나고 가라고 하지만 샤오쓰는 끝내 들어가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샤오마를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한 다음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샷이 나누어지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 우리는 집 안에 있는 샤오마를 볼 수 있지만, 바깥에 있는 샤오쓰는 볼 수 없다. 오직 목소리로만 샤오쓰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에드워드 양은 왜 컷을 나눠서 샤오쓰를 비추지 않았을까? 에드워드 양은 이 장면에서 샤오쓰가 차마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심정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샤오밍이 살고 있는 샤오마의 집에 한 발짝도 들이고 싶지 않은 샤오쓰의 내면을 샤오쓰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으로 형상화해낸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모든 장면이 뛰어나지만 특히 이 장면이 가장 훌륭하다. 나에게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유를 매번 하게 만드는 선생님 같은 장면이다. - - - 앞서 말했듯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완성될 수 없는 조각 그림 맞추기 같은 영화다. 몇 번을 봐도 해결할 수 없는 의문점이 생긴다. 첫 번째 질문. 의사 선생님은 왜 샤오밍에게 호의를 베풀었는가. 의사 선생님은 샤오밍과 그녀의 어머니까지 치료해 주고 지낼 곳을 마련해준다. 샤오밍의 말처럼 의사 선생님도 그녀를 좋아해서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의료인으로서의 호의를 베푼 것인지 알 수 없다. 샤오밍이 죽고 난 뒤 그녀와 어떤 관계였냐고 따져 묻는 기자의 말에 발끈하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주저하게 된다. 다음 질문. 샤오추이는 어떤 인물인가. 샤오밍이 샤오마의 집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샤오쓰는 샤오추이와 데이트를 한다. 이때 샤오추이는 슬라이가 학교에서 217파와 붙었을 때 옆에 있던 여자가 자신이 아닌 샤오밍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슬라이가 허니가 돌아오면 맞아 죽을까 봐 샤오밍이 아닌 자신이라고 소문을 냈다는 것이다. 사실 샤오쓰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샤오추이는 이런 비밀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런데 샤오추이가 고마워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남자들이 샤오밍을 욕망하며 허니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샤오추이도 슬라이를 욕망하며 샤오밍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마지막 질문. 엔딩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결국 15년형을 선고받은 샤오쓰가 떠나고 남은 가족들은 대청소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고장 났던 라디오가 다시 작동하더니 대학 합격 명단이 흘러나온다. 마당에서 옷을 정리하던 샤오쓰의 어머니는 샤오쓰의 교복을 발견하고는 생각에 잠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수많은 명단 중 샤오쓰의 본명인 ‘장첸’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오는데, 현실적으로 중학생이자 감옥에 있는 샤오쓰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 ‘장첸’이라는 이름이 우연으로 들어갈 리도 없는데 에드워드 양은 왜 이런 장면을 엔딩으로 선택했을까. 이 정답 없는 질문들을 공유하며 언젠가 독자분들과 함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를 고대한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의 북극성 같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께 존경의 인사를 보내며, 나 또한 이렇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남긴다. 오정민(영화감독) l 영화로 먹고사는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는 베짱이. < 장손 >(2023) 연출.
* 한국영상자료원 강좌 <2022 영화 글쓰기 키트: 영화 기자가 알려주는 리뷰 작성>의 과제 선정작입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다. 동시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 제목이고, 개인적으로 참 애정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의 해준과 서 래를 보면서 <화양연화>의 주모운(양조위)과 소려진(장만옥)이 오버랩될 때가 종종 있었다. <헤어질 결심>이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영화인 것처럼, <화양연화> 역시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우아하면서도 진중한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남녀 주인공의 미묘한 엇갈림과 모호한 상황들로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전해주며, 동시에 연기나 대사 외에도 색채와 영상미 등 진중한 스토리에 녹아든 화면의 미장센이 빛을 발한다. <헤어질 결심>의 주제가인 정훈희의 노래 <안개>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 김수용 감독의 영화 <안개>의 주제가이기도 한 것처럼, 왕가위의 <화양연화> 역시 1930-40년대 중국 가수 주선의 히트곡 '화양적연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안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개(Fog)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지표 가까이에 작은 물방울이 떠 있는 현상을 말한다. 구름과 안개는 떠 있는 위치가 다른 것으로, 하늘 높이 떠 있으면 구름이고, 지표 가까이 떠 있으면 안개이다. 구름일 때는 시야 속 경관을 아름답게 하지만, 안개일 때는 시야를 가리게 되는 것도 특이점일 것이다. 안개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흘러나오는 정훈희의 노래도 그렇거니와, 사건도 감정도 인물 간의 관계도 무엇 하나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애매하고 모호한 이 영화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쉬운 흥행 스코어 속에서도 N차 관람하는 관객이 많은 이유도 서사구조는 심플한 데 비해 그것을 전달하는 장치들은 다양한 층위와 모호함을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기에, 각자 인상 깊거나 여운이 남는 (흔히 말하는 ‘꽂힌’) 부분에 대해 나름의 해석들을 자유롭게 내어놓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예전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평범하고 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극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는 질문에, 감독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변태라서 그렇습니다.” 좌중의 웃음을 끌어냈던 이 한 문장은 살짝 유머 코드를 갖고 있지만 영화감독으로서의 박찬욱을 단적으로 표현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배운 변태’라는 말이 좀더 어울릴 것이다. 영화계에서 자타공인하는 영화광다운 해박한 지식과, 미장센에 대한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열정은 박찬욱이 대한민국의 잘 나가는 영화감독에서 칸이 사랑하는 영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박찬욱 감독이 그리는 영화는 리얼리티의 세계가 아니다. 영화는 사실성에 기반을 두고 현실을 재현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온전히 옮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 안에 작가로서의 해석과 재창조가 들어가야 한다. 박찬욱 감독 스스로 본인이 그리는 영화 속 세상이 아주 사실적인 세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리얼리티의 세계가 아니라, 비유의 세계이다. 감독으로서 박찬욱이 중시하는 것은 어디를 선택해야 좋을지 모르 겠는 딜레마 상황이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 어떤 도덕적인 성격이 개입되어 있다면 더욱 좋다고 이야기한다. 관객들이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으냐’라는, 윤리적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윤리적 질문이 난처할수록 영화는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은 영화감독 박찬욱을 표현하는 여러 수식어들 앞에 ‘배운 변태’라는 또다른 수식어를 자연스럽게 연결짓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 역시 ‘배운 변태’ 영화감독으로서의 박찬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요소들을 빠짐없이 담고 있다. 산과 바다로 대표되는 서래와 해준의 이야기이면서, 용의자인 서래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형사 해준의 딜레마가 그려지고 있다. 거기에 해준과 서래 둘다 기혼자라는 점에서 (서래의 남편은 극이 시작되자마자 변사체로 등장하긴 하지만) 불륜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리얼리티가 아닌 비유의 세계,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로서의 자아와, 아름답고 묘한 여자에게 이끌리는 남자로서의 욕망. 그 둘 사이에서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하고 모호한 상황에 처한 해준의 딜레마.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질곡동 살인사건의 결정적 단서가 되어준 서래의 말은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 ‘불륜’이라는 익숙하고 상투적인 윤리적 질문까지 얹어 놓는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이 밤새 서래의 집 앞에서 망원경으로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스마트 워치에 녹음하는 장면은 용의자 감시이면서 동시에 관심이 가는 이성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보다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하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해준은 저녁을 아이스크림으로 때우고,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서래를 지켜본다. 해준에게 서래 집 앞의 잠복근무는 감시이면서 관심이고, 의심이면서 매혹이다. 해준의 수사과정은 점점 더 서래에게 이끌리게 되는 마음의 동요이고, 연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용의자 선상에서 완전히 제외된 후, 서래와 해준은 비 오는 날 산사에 간다. 조심스러우면서도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는 시간들. 굳은 살이 박힌 서래의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해준을 보며 서래는 마음을 전한다. “처음부터 좋았습니다. 날 책임질 형사가 품위 있어서”라는 서래의 말에, 해준은 ‘경찰치고는? 한국인치고는? 남자치고는?’이라며 서래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장난인 듯 아닌 듯 집요하게 물어본다. 서래 역시 장난스레 ‘현대인치고는’이라고 말하며 해준의 우산을 뺏어 들고 먼저 걸어간다. 혼자 남은 해준은 남은 핸드크림을 자신의 손에 마저 바른 후 서래를 쫓아간다. 그토록 달달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기도수의 살해 당일, 서래의 행적을 알게 된 해준이 서래를 찾아와 추궁하면서 파탄이 난다.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서래의 말에 해준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우리 일? 우리 일, 무슨 일이요? 내가 당신 집 앞에서 밤마다 서성인 일이요? 당신 숨소리를 들으면서 깊이 잠든 일이요? 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 해준이 인정한 것처럼 서래의 집 앞에서 해준이 했던 행동들은 비록 사랑한다고 직접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결국 사랑에 들뜬 보통 남자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나에게 선물이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길냥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하던 서래의 중국어가 번역기의 무미건조한 남성의 목소리로 번역될 때 해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살인 용의자인 여자가 자신의 심장을 갖겠다는 말은 생명의 위협에 다름 아니다. 후에 서래가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분명하게 수정하긴 했지만, ‘심장’이든 ‘마음’이든 서래가 해준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싶어 했음은 분명하다. 해준의 자아가 흔들릴 정도로 위험하고 소중한 무엇, ‘심장’ 또는 ‘마음’.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예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 붕괴됐어요.” 해준의 윤리적 질문은 기혼자로서 갖게 되는 불륜이라는 죄책감이 아니었다. 해준의 윤리적 딜레마는 형사로서의 자부심과 연인으로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 그 사이에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헤어질 결심>의 장르는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형사물이 아닌 로맨스 영화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서래의 범행을 알게 된 후, 해준은 월요일 할머니의 폰을 바꿔주고 중요한 증거인 핸드폰을 서래에게 돌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품위 있는, 자부심 있는 형사였던 해준이 서래를 위해 자신의 품위를, 자부심을 포기하고 범죄행위를 은닉하게 도와주었다는 것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종말이다. 해준의 사랑은 서래의 범행 은닉을 도와주는 순간 끝나버렸고, 해준이 자신을 위해 품위 있는 형사이기를 포기한 것을 안 순간 서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그 순간 나를 좋아할 확률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사람의 감정은 ‘단일한’ 속도로 흐르는 것이 아니고, 감정의 크기가 같을 수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긋나고 빗나가기 일쑤인 게 사랑이란 놈의 속성. 그렇기 때문에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서래는 해준의 자부심에 한 점 얼룩이 되었고, ‘붕괴되어버린’ 해준은 더 이상 서래에게 줄 ‘심장’이 없다. 서로에게 ‘꼿꼿하고’ ‘품위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 두 사람.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너무 좋아서 자꾸 들었어요.” 얘기하는 서래에게 해준은 말한다. “내가요? 내가 언제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어쩌면 해준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몰랐을까? 아니면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을까? 서래는 자신의 존재를 소멸함으로 해준의 ‘미결사건’이 되고자 한다. 보통 사람에게 짙은 안개는 이포를 떠나게 만드는 이유지만, 서래에게는 이포로 오게 만든, 단 하나의 이유였다. 죽은 까마귀를 묻기 위해 흙을 파내던 청록색 양동이로 바닷가 모래를 퍼내는 서래.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자신의 존재를 소멸시킨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나직하면서도 다정하게 속삭이는 서래의 목소리는 더 이상 사랑의 고백이 아니다. 서래의 실종 이후 해준이 겪을 상실감을 상상하면 오히려 저주에 가깝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이포의 바다는 무심하게도 해변의 모래알들로 서래가 누워있는 구덩이를 메운다. 강한 파도에 쌓여있던 모래 더미들이 쓸려나가고, 해준이 달려올 무렵에는 그곳에 서래가 있었다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해준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너무 좋아서 자꾸 들었다는 그 언젠가의 서래처럼.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타오르는 강렬한 석양.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거칠게 넘실거리는 만조의 파도. 그 안에서 ‘마침내’ 해준도 자신이 이미 서래에게 사랑을 고백했음을 깨닫는다. 더불어 서래가 예전 해준의 말대로 핸드폰을 바다에 버렸을 것임을 감지한다. 충격과 슬픔에 일그러지는 해준의 얼굴. 이제 해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시간도 없다.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풀렸던 신발끈을 다시 고쳐매고, 손전등을 켠 채 서래의 이름을 부르며 바다로 들어간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거칠게 밀려드는 파도에 몇 번씩이나 쓰러지면서도 해준은 바다로 들어간다. 서래가 있을 그 바다로. 빛을 잃어가는 하늘빛도, 보는 관객의 마음도 먹먹하다. 사랑이란,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이는 것, ‘붕괴’될 것을 알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거센 파도를 맞으며 바다로 나아가는 그런 것. 안개는 미혹(迷惑)과 비슷하다. 무엇에 홀린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정확하게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안개는 인간의 욕망, 사랑과도 비슷하다. 혼돈과 모호함 속에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상실의 아픔도 내포한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 아니듯,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사랑의 감정을 소멸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트였을 때 그 때 보이는 풍경이 늘 아름답지는 않는 것처럼, 흐릿하게 눈을 가리던 것이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진실의 모습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화양연화>에서 주모운이 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앙코르와트에 가만히 속삭이며 봉인해 버리는 것처럼, <헤어질 결심>에서는 서래가 해준의 ‘미결사건’으로 남고자 스스로를 바닷가 모래 구멍 안에 감추어 버린다. 안개 속을 헤매이듯 모호하고 흐릿한 감정의 편린 속에서도 누 군가는 사랑을 보고 이야기하고 냄새 맡는다. 비록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봉인될 수 밖에 없는 감정일지라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임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라고 반문할 정도로 기억조차 못한다고 해도. 흐릿해도, ‘마침내’ 선명하게. 그리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