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357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63 | 특별상(집단연기상) | 돌아오지 않는 해병 |
| 제2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87 | 영화부문 특별상 | - |
주요 경력
- 마산 회현초등학교 교사
- 제 11,12,13대 국회의원(3선)
- 국회의원연맹(APPU) 한국대표
- 국회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위원
- 제13대 국회 교통,체신위원장(4년)
- 경남대학교 총동문회장
- 세계 민간항공협회 명예 총장
- 한나라당 중앙당 국책자문위원
- 중국 발해대학 객원교수
- 1981~1990년 11, 12, 13대 국회의원
- 2002년 6월~2010년 6월
- 경기도 성남시 시장
영화인 정보조사
1935년에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해인대학교(현 경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마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 당시 마산에 촬영차 내려왔던 한형모 감독의 눈에 띠어 연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데뷔한 영화가 한형모 감독의 세미 뮤지컬 <나 혼자만이>인데, 이 영화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농구 선수를 연기한다. 한국 영화에서 사투리 쓰는 연기자는 당시까지 매우 드물었던 것으로 이후 형성되는 배우 이미지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나 혼자만이>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로 <생명>, <산너머 바다건너>, <사랑하는 까닭에> 등의 작품에 연속으로 캐스팅되어 "침착한 액션"을 보여준다고 평가받으며, 1958년 영화계의 샛별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동아일보). 이후 <사랑이 가기 전에>(1959), <사랑의 역사>(1960), <죄없는 청춘>(1960) 등과 같은 멜로드라마와 <젊은 표정>(1960), <특등신부와 삼등신랑>(1962) 등과 같은 청춘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하지만, 액션 영화 배우로서 대표적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YMS 504의 수병>(1963) 등 전쟁 액션 영화에 출연하면서 부터이다. 1960년대 초중반 이처럼 멜로드라마와 액션 영화, 이 두 장르를 오가며 "剛直(강직)하고 구수한 慶尙道(경상도)사나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경향신문). 이후 이만희 감독의 <검은 머리>(1964), <추격자>(1964), <7인의 여포로>(1965) 등의 영화에 출연하고, 1970년대에 <명동졸업생>(1971), <명동에 흐르는 세월>(1971), <암살지령>(1974), <잔류첩자>(1975) 등 다수의 액션영화에 출연한다. 1980년대부터는 정계로 진출하여, 11대, 12대,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성남시장직을 수행하기도 한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8년 12월 24일 4면 경향신문 1964년 5월 12일 5면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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