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92
감독 (1개)
수상내역 2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11회 대종상 영화제 | 1972 | 촬영상 | 며느리 |
| 제18회 대종상 영화제 | 1979 | 촬영상 | 장마 |
| 제4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1980 | 은상 | 장마 |
| 제9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1985 | 촬영상 - 금상 | 추억의 빛 |
| 제22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86 | 영화부문 기술상 |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
| 제12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1988 | 금상 | 안녕하세요 하나님 |
| 제1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1990 | 촬영상 | 남부군 |
| 제1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0 | 촬영상 | 우묵배미의 사랑 |
| 제11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90 | 기술스탭상 | 그들도 우리처럼 |
| 제1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1 | 촬영상 | 그들도 우리처럼 |
| 제15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1991 | 금상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 제13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92 | 촬영상 | 하얀전쟁 |
| 제4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1993 | 촬영상 | 화엄경 |
| 제1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4 | 촬영상 | 화엄경 |
| 제30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94 | 영화부문 기술상 | 화엄경 |
| 제16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95 | 촬영상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 제6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제) | 1995 | 촬영상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 제1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6 | 촬영상 | 꽃잎 |
| 제20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 | 1997 | 은상 | 초록물고기 |
| 제33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 1997 | 영화부문 기술상 | 꽃잎 |
| 제1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 1998 | 촬영상 | 8월의 크리스마스 |
| 제19회 청룡영화상 (구 조선일보영화상) | 1998 | 촬영상 | 8월의 크리스마스 |
주요 경력
- 1975년~1991년
- 미국CBS방송 서울 지구 특파원
- 86년 서울 예술 전문대학 강사
- 87년 2월 제8대 학술위원
- 87년 12월제9대학술위원
- 84년~98년 영화아카데미 강사
- 95년 11월 제2호 서울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
- 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역임
- 98년 1월6일 뇌출혈로 사망,'아름다운 인간 유영길'책 발간 -이용관 교수-
영화인 정보조사
인하공과대학 1학년이던 1956년,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정교사를 구했는데, 우연히도 그 가정교사 자리가 양주남 감독의 집이었다고 한다. 호기심에 양주남 감독의 <배뱅이굿>(1957) 촬영 현장에 놀러갔다가 촬영부 일을 거든 것이 영화와 처음 맺은 인연이다. 그렇게 2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영화판에 뛰어들어 촬영부로 일하게 된다. 5.16 이후 군기피자로 재징집되어 영화계와 멀어지고, 제대 후 동생과 철공소를 차린다. 그러나 1년 만에 철공소는 망하게 되고, 다시 유현목 감독의 <한>(1967)을 찍고 있던 장석준 촬영 감독의 촬영부로 들어가 영화계로 돌아온다(씨네21). 이후 유현목 감독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8)에서 촬영감독으로 데뷔한다. 초기에는 최하원 감독의 <독짓는 늙은이>(1969), 유현목 감독의 <분례기>(1971) 등의 문예물을 작업하다가, 하길종 감독과 만나면서 하길종, 이장호, 김호선, 이원세, 홍파 등의 감독들과 평론가 변인식이 함께 모여 만든 동인집단인 영상시대의 감독들과 많은 작업을 한다. 1975년에는 미국 CBS 서울지구의 사진기자로 일하게 된다. 단 입사 조건은 1년에 한편의 작품을 촬영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외신기자의 신분으로 그가 기록한 현장은 노동운동이 격렬하던 평화시장, 부마항쟁, 1980년 5월의 광주 등이었다. CBS 사진기자와 촬영감독을 병행하며 장선우, 박광수, 이명세, 강우석 등 1980년대 중후반에 데뷔한 감독들의 데뷔작을 모두 맡아 촬영한다. 1991년 CBS 사진기자를 그만둔 이후, 영화에만 매진하여 박광수, 이명세, 배창호, 장선우 등 1980년대 데뷔하여 199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른바 코리아 뉴웨이브로 불리던 감독들의 거의 모든 작품에 참여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이현승, 이창동, 허진호 등의 감독들의 데뷔 작품을 맡아 촬영한다. 1990년대 이후로는 후배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영화아카데미와 영상원 등지에서 촬영에 대한 강의를 하는 한편 현장 촬영 역시 강행하나,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마지막 작품으로 세상을 뜬다. * 참고문헌 이연호, “유영길 촬영감독 1968-1998년, 이제부터 우리들은 혼자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키노』, 37권(1998년 2월), 22~29쪽 “마지막 엔딩크레딧/촬영 유영길”, 『씨네21』 137호 (1998년 2월 10일) [작성: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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