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친구들
- 감독
- 유영길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허진호 | 각본: 류장하 이숙연 신준호 허진호 | 제작: 차승재 진가신 히데시 미야지마 | 촬영: 김형구 | 미술: 박일현 | 음악: 조성우 CAST 상우: 유지태 | 은수: 이영애 | 할머니: 백성희 | 아버지: 박인환 | 고모: 신신애 허진호 감독의 < 봄날은 간다 >(2001)는 그의 데뷔작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과 함께 한국의 멜로, 로맨스 장르를 이야기할 때 영원히 언급될 작품입니다. “사랑이 변하니…” “라면 먹고 갈래요?” 같은 대사들의 일상적 울림과 함께, 이 영화는 ‘연애’라는 관계에 깃들어 있는 씁쓸한 감정들을 리얼하게 드러냅니다. 현장 공개는 2001년 여름에 있었습니다. 상우(유지태)가 은수(이영애)에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죠. 묵호시 삼본아파트 앞, 해안도로와 바다가 함께 하는 그곳. 버스에서 내린 은수는 상우에게 다가가 이별의 말을 전합니다. 현장은 너무나 조용했는데요, 가끔 새 소리나 동네 아낙들 목소리가 들릴 뿐이었습니다. “우리 헤어지자.” “내가 잘할게.” “헤어져.” “너 나 사랑하니? (침묵) 사랑이 변하니… (침묵) 헤어지자…” 연인이 이별하는 일반적인 장면이지만, 그 감정을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허진호 감독은 ‘숏-리버스 숏’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테이크를 사용합니다. “두 사람의 시간이 실시간으로 한 번에 진행될 때와, 시간을 잘라서 붙여 놓았을 때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에요. 난 전자의 느낌이 더 좋았어요.” 이 영화의 카메라는 김형구 촬영감독(맨 오른쪽)이 잡았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인데요, 김형구 촬영감독은 유 감독님의 촬영부 출신이었죠. 허진호 감독은 현장에서 스스로를 “헤매는 스타일”이라고 말하는데요, “설명도 안 하고, OK 사인도 잘 안 주고 그러는데, 스태프들이 많이 이해해주었다”고 고마움을 전합니다. 은수는 사랑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어쩌면 사랑을 믿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영애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독님은 물론 배우와 스태프를 통틀어서 아무도 은수에 대해 똑 부러지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가 참 어려운 인물이에요. 하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버스 안 현장 모습입니다. 모자를 쓴 허진호 감독 뒤로 류장하 조감독이 보입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 조감독이기도 했죠. 2004년엔 < 꽃피는 봄이 오면 >으로 감독 데뷔했고 < 순정만화 >(2008) < 더 펜션 >(2018)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9년 2월 3일에 5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한번 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허진호 감독이 미소 지으며 보고 있네요. 이영애는 자신과 유지태와 허진호 감독의 성격이 비슷했고, 그래서 현장에서 잘 맞았다고 하네요. 한편 허진호 감독은 “과연 사랑은 변할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변하는 것 같아요. 그게 나쁜 것도 아닌 것 같고.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모습을 지키려는 것도 좋지만, 변해가는 것에 대해 집착하고 붙잡으려 한다면 행복해지는 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허진호 감독은 은수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은수도 혼자 있을 때는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는 활발하고 자기중심적이 되는 여자예요. 그래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우는 사랑을 처음 해보는 거니까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은수는 사랑이 없어지면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부정해버릴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에요.”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가 자신에게 “일종의 실험”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채워나가는 느낌의 연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자연스러움’을 경계해야 했고요.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의 감정 연기가 조금은 달랐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짜 감정을 다루니까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정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고 슬퍼하진 않잖아요. 실제로는 직장에 나가 일도 하고 그러죠. 영화 속에서 상우가 은수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는 신이 있는데, 속으로는 슬프고 힘들지만 둘 다 겉으로는 슬퍼하지 않아요. 그런 내재된 슬픔이 보는 사람에게 전이될 수 있는 영화가 <봄날은 간다>라고 생각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영애는 “슬펐다”며, 그래도 좋았던 건 ‘소리’였다고 합니다. “평소 자연의 소리에 민감한 편이었고 관심도 많았기에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한편 유지태는 “멜로 영화 같지 않다”는 게 첫인상이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슬픔을 다룬 영화거든요. 누구나 슬픔이 있잖아요. 사랑하고, 헤어지고, 잊혀지는 슬픔.” “이 신에선 상우가 화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은수가 나가니까 좀 이상한데.”(허진호)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이영애) “그럼 이번엔 제가 나가는 걸로 한 번 해볼게요.”(유지태) 세 사람은 하나의 테이크가 끝나면 마치 오누이들처럼 소곤소곤 모니터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다음 테이크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별 장면은 쉴 새 없이 변했는데요, 은수가 상우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상우가 그 손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대사를 빼기도 하고, 은수와 상우가 번갈아 가며 화면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10번이 넘는 테이크가 이어졌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에서 되도록이면 설정하지 않고, 콘티도 만들지 않고, 상황만 던져준 채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각자 포커스를 달리한 두 배우의 투 숏입니다. 허진호 감독은 유지태의 첫인상을 ‘맑다’라는 형용사로 표현하는데요, 촬영 전에 상우는 어떤 사람일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영애는 첫 만남부터 조금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하네요. < 선물 >( 오기환 , 2001) 현장에서 바로 올라왔는데, 공항인가 역 화장실에서 막 세수를 한 맨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허진호 감독은 유지태에서 “물이 안 채워진 유리잔처럼 배우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빈 잔에 물이 조금씩 채워져서 찰랑찰랑 넘칠 때쯤 영화가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백지상태에서 함께 조금씩 그림을 그려나가길 바라셨던 거죠.” <봄날은 간다>는 한국의 싸이더스의 홍콩의 어플라우즈 픽쳐스와 일본의 쇼치쿠가 공동 제작한 영화입니다. 제작 발표회에서 각국 제작진과 배우, 감독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맨 오른쪽에 홍콩의 제작자인 진가신 감독이 보이네요. <봄날은 간다>는 “소리를 채집하는 사운드 엔지니어의 이야기”라는 설정에서 발전한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작가들과 영화사 기획실 사람들의 연애담들이 하나둘씩 보태졌고, 그렇게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8월의 크리스마스>에 비하면 <봄날은 간다>는 훨씬 더 거칠고 현실적이며 기복이 큰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와 영화계 한국 사회가 언제 평탄한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1990년대 중후반 역시 엄청난 시련과 문화적 역동이 함께한 시기였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개혁 행보로 국민의 지지를 얻었지만, 정권의 부패에 1997년 국가 부도 사태까지 직면하며 국민을 궁지로 내몰았다.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 불린 외환위기는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서야 간신히 넘길 수 있었고, 바로 그때 1971년부터 대통령에 도전했던 김대중이 당선되며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서막을 올렸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기에는 국민의 삶이 너무 고단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과 ‘IMF 생계형 범죄’가 속출하는 가운데, 보험금을 받으려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끔찍한 사건이 그 비극의 정점을 찍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눈물의 카타르시스로 영화적?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신파·멜로드라마 장르가 약화되고, 잔혹한 폭력이 전시되는 ‘조폭영화’ 그리고 범죄스릴러 장르가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9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1990년대 중후반은 ‘문화의 시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때였다.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찾아온 ‘문화의 세기’, 그 전조였을 수도 있다.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이 문화라는 프리즘으로 매개되었고,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예속되지 않는 문화 영역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5년 1월 TV 드라마 <모래시계>가 한국 정치사와 멜로, 액션 장르를 결합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온 국민의 뇌리에 ‘조폭’ 이미지를 각인하기도 했다. 그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대유감’의 노래 가사 심의로 공연윤리위원회와 맞서는 사건이 있었고, 1996년 1월 그들의 은퇴 기자회견은 10대뿐만 아니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96년 6월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음반 사전심의가 폐지되었다. 이는 가수 정태춘·박은옥이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 음반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방식으로 1990년부터 투쟁해온 결과이기도 했다. 한국 대중예술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한류(韓流)’라는 용어가 중국의 한 매체를 통해 처음 등장한 것도 1997년이다. 할리우드 외화 직배로 위기를 맞은 한국영화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문화계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1997년부터 25% 선을 회복한 한국영화 점유율은 1999년 39.7%까지 올랐다. 서울 관객 기준으로 1995년 < 닥터 봉 >(이광훈)이 37만, 1996년 < 투캅스 2 >(강우석)가 63만, < 은행나무침대 >(강제규)가 45만, 1997년 < 접속 >(장윤현)이 67만, 1998년 < 편지 >(이정국)가 72만, < 약속 >(김유진)이 66만, 1999년 < 쉬리 >(강제규)가 244만, <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이 96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흥행을 견인했다. 특히 <쉬리>는 전국 스크린 수가 600개도 되지 않던 시절, 처음으로 전국 58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0년대 한국영화의 ‘1천만 관객 시대’를 예고했다. 1990년대 중후반의 산업적 활력이 작가주의 감독의 시대를 만들어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젊은 감각의 영화사들은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고려할 패기가 있었고, 작가라 불리는 신인 감독들 역시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며, 이를 고대하는 젊은 관객들이 한국의 영화문화 지형을 새롭게 짜고 있었다. 특히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로 데뷔한 홍상수가 < 강원도의 힘 >(1998)을 이어가며 모더니즘 영화의 본격적인 흐름을 만들었고, < 악어 >(1996)로 데뷔한 김기덕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남근 중심적인 폭력성이 찬반의 평가를 낳는 가운데 국내외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2004년 베를린(< 사마리아 >)과 베니스(< 빈집 >)의 감독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치열한 창작의 고통을 원고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간 이창동 감독은 < 초록물고기 >(1997)에 이은 < 박하사탕 >(2000)으로 세계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영화광으로서의 취향을 앞세운 데뷔작 < 달은 해가 꾸는 꿈 >(1992)과 < 3인조 >(1997)를 내놓으며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 데 더딘 행보를 보였지만, < 공동경비구역 JSA >(2000)로 흥행과 비평을 두루 만족시키며 2000년대 ‘웰메이드(well-made) 영화’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단편영화, 시네마테크, 국제영화제, 영화저널 등 한국의 영화문화가 새롭게 꽃피기 시작한 점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단편영화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점치는 통로가 된 것도 바로 이때다. 특히 1994년부터 4년간 대기업(삼성나이세스)이 주관한 서울단편영화제를 통해 임순례 , 김태용 , 민규동 , 곽경택 , 정지우 , 정윤철 , 윤종찬 등 주요 감독이 배출되었는데, 국립영화학교라 할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졸업생과 유학파 출신이 많았다. 1995년 한국 최초의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에 이어 마니아층을 겨냥한 「키노」가 창간되었고,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범을 위시로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이어진 것도 한국 영화문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소설가 출신 감독의 치열한 행보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창동 은 경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후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살았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전리」가 당선되어 소설가로서의 삶도 시작했는데, 1992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소설을 썼다. 영화계 입문은 박광수 감독이 권유했다고 한다. 마흔이던 1993년 < 그 섬에 가고 싶다 >(박광수)의 각본과 조감독으로 첫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충무로의 전통적인 도제식 연출부를 거친 게 아니라 문학적 자산과 치열한 창작 정신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진입한 경우다. 1995년에는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박광수)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영화 세계가 형성되는 데 1980년대 후반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과의 영향 관계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감독 데뷔는 명계남, 문성근, 여균동이 만든 이스트필름의 창립작 <초록물고기>에서다.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 만들기 프로젝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해 주요 영화제의 각본상, 신인감독상, 감독상을 휩쓸었다.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스무 살의 순수한 청년 영호가 1980년 광주의 경험으로 점차 영혼이 파멸되어가는 것을, 1999년에서 1979년으로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했는데 21세기라는 막연한 희망에 들뜬 한국 사람들에게 비극적 현대사를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다. 세 번째 영화 < 오아시스 >(2002)에서는 장애인 여성과 하류계층 청년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기저를 형성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민낯을 드러냈고, 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을 수상했다. 네 번째 영화 < 밀양 >(2007)과 다섯 번째 영화 < 시 >(2010)는 아들을 잃은 여성과 성폭행을 저지른 외손자를 키우는 여성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치유에 대해 질문했고, 칸영화제에 진출해 각각 여주우연상(전도연)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8년 만의 연출작 < 버닝 >(2018) 역시 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영화 속 종두와 벤의 세계는 <초록물고기>에서 막동이와 배태곤이 그려낸 한국 사회가 20년의 시간이 흐른 모습처럼 보이고, 좀처럼 소설을 쓰지 못하는 종두는 이창동 자신으로 읽히기도 하는 작품이다. 한편 그는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현역 영화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어 1년 4개월간 관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스트필름 사람들. 왼쪽부터 명계남, 이창동, 문성근, 여균동 순수한 청년 막동이의 꿈과 비극 영화는 군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청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열차의 난간에 매달려 밖을 바라보던 청년은 앞 칸에서 똑같이 난간에 매달려 있는 한 여성을 발견하는데, 그녀에게서 날아온 장밋빛 스카프가 그의 얼굴을 감싼다. 남자는 전역 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막동이( 한석규 )이고 여자는 밤무대 가수인 미애( 심혜진 )다. 스카프를 돌려주려고 미애를 찾던 막동이는 그녀를 괴롭히던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폭력적인 공간을 막 벗어난 그가 또다시 폭력과 맞닥뜨린 것이다. 분을 삭일 수 없는 막동이는 복수하기 위해 불량배들을 따라 내리지만 결국 기차를 놓치고 짐까지 잃어버린다. 밤늦게 일산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 막동이는 어머니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첫째 형을 만나지만 다른 형제들은 이미 각자의 삶을 찾아 흩어진 후였다. 이어 영화는 막동이가 계란 장사를 하는 셋째 형과 다방 레지로 일하는 여동생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신도시로 급변한 일산의 풍경을 담아낸다. 막동이는 미애가 남긴 전화번호를 들고 서울로 가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사실 미애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조직 보스 배태곤( 문성근 )의 연인이었다. 그녀의 부탁으로 태곤은 막동이에게 주차장 관리 일을 소개해주고, 그는 자신의 손가락까지 부러뜨려가며 배태곤의 재건축 개발 건을 해결해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미애는 막동이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배태곤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배태곤의 옛 보스이던 김양길이 출소해 인근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구역을 침범해오자, 태곤은 막동이에게 양길을 살해할 것을 지시한다. 그는 간직해오던 미애의 스카프를 태운 후 김양길을 살해하고, 큰형에게 전화해 어린 시절 초록물고기를 잡던 이야기를 하며 두려움과 눈물을 삼킨다. 왜 한석규가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일 것이다. 배태곤은 재개발을 앞둔 건물로 막동이를 불러내 칼로 찌르고, 그는 태곤의 차 앞 유리에 쓰러져 미애를 쳐다보며 죽어간다. 시간이 흐른 후 막동이의 꿈대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당을 한다. 태곤과 임신한 미애가 우연히 식당에 들르고, 그녀는 생전의 막동이가 준 사진 속 고향집이 이 식당임을 알고 오열한다. 장르적 공감대와 리얼리즘의 양식 <초록물고기>가 보여주는 사실주의 영화 스타일은, 국내외 영화평론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허우 샤오시엔 등 대만 뉴웨이브 영화와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19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의 자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창동만의 화법과 작가적 인장이 이 영화에 새겨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곳에서 파멸해가는 순수한 주인공을 통해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구축해간다. 이창동의 영화 역시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 방법론으로 리얼리즘적 태도를 견지하는 동시에, 동시대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는 필름 누아르 혹은 갱스터 장르에 기대면서 그 장르적 언어를 예술영화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순간, 지극히 양식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리얼리즘적 접근과 관객의 영화적 몰입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완수해낼 때, 환상은 현실과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그의 세계관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서울 영등포의 유흥가와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들의 면면을 그린 누아르 장르이면서도, 영화적 세계(디제시스)와 현실 세계(리얼리즘)를 밀착시킨다. 당시 관객들로부터 진짜 깡패를 섭외한 것인지 기함하게 만든 배우 송강호의 연기도 오랫동안 회자된 바 있다. 막동이가 초록물고기의 사연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공중전화 박스 신도, < 열혈남아 >(왕가위, 1988) 같은 홍콩영화와 < 게임의 법칙 >(장현수, 1994)을 경유해 이창동만의 것으로 수용되었다. 고향집에 돌아온 막동이가 군복 상의를 던질 때의 슬로모션 처리 역시 홍콩 누아르의 장르적 관습이 작가영화의 예민한 언어로 승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사실주의 화법은 카메라의 움직임과도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중요한 순간마다,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과 주인공인 막동이의 시점을 합치면서 리얼리즘을 배가한다. 자신을 구타한 불량배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트로피를 들고 그들을 따라갈 때, 막동이의 시점처럼 보인 주관적 숏은 그가 프레임 인(frame in)하며 다시 제3자의 객관성을 확보한다. 막동이가 처음 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갈 때 또 배태곤 일파가 자리한 룸으로 들어갈 때도 그와 카메라의 시점 숏은 합쳐진다. 카메라는 막동이의 시선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그가 옛날 아카시아 천지였던 들판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고 얘기할 때, 막동이를 비추던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따라 팬(수평 이동)하고 점차 그의 얼굴을 가깝게 잡아낸다.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마련한 모처럼의 야유회가 아수라장이 될 때도 자동차로 빙빙 돌며 그 난장판을 지켜보는 시점은 카메라의 것이기도 하고 막동이의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카메라의 운용은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스타일이 이창동의 영화 세계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코리안 뉴웨이브의 자산을 물려받은 대목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동이의 시점이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으로 합일되는 연출은 이 영화가 줄곧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곧잘 거울 프레임 속 막동이를 잡으며 그를 하나의 이미지로 정박시키고 현실 너머의 존재인 것처럼 묘사한다. 기차의 화장실에서, 고향집의 방에 돌아왔을 때 또 자신의 손가락을 자해하는 화장실 신에서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카메라가 먼저 포착하는 것이 그렇다. 물론 이는 20대 청년 막동이가 꿈(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고뇌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가해한 부분은 막동이가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막동이와 어머니를 비추고 있지만 어머니는 오랜만에 돌아온 막동이의 말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어머니의 대사는 막동이의 옛날 사진을 보여주는 인서트 이미지에서 들릴 뿐이다. 즉 둘의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큰형이 동네 어귀에 나와 그를 기다리는 장면에서도, 막동이는 커트되지 않는 숏을 통해 마치 귀신처럼 나타난다. 어쩌면 영화는 막동이가 이미 죽은 존재와 다를 바 없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한국영화, ‘웰메이드’라는 브랜드 1990년대 후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신인 감독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역동성은 2000년대 한국영화가 산업적 활기와 장르적 완성도를 갖추는 기반이 되었다. 그들은 ‘충무로’라는 상업영화 시스템을 활용해 영화를 만들면서 본인만의 개성을 새기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특히 2003년 흥행성과 작가주의적 완성도를 겸비한 < 살인의 추억 >(봉준호), < 장화, 홍련 >(김지운),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이재용), < 올드보이 >(박찬욱) 등이 선보이며 ‘잘 만든’ 상업영화를 뜻하는 ‘웰메이드 영화’가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장르영화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미학적, 기술적 완성도의 최고점에 도달한 영화들은 2004년 < 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 효자동 이발사 >(임찬상), 2005년 < 혈의 누 >(김대승), < 달콤한 인생 >(김지운)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예민한 주제들을 장르적으로 해석하며 예술성까지 확보한 2000년대의 한국 상업영화는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이는 < 복수는 나의 것 >(2002), < 올드보이 >, < 친절한 금자씨 >(2005) 등 복수 연작에서 작가주의적 미장센의 향연을 보여준 박찬욱이 주도한 것이었다.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 <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에서 영민은 짝사랑하던 혜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림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연말,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 <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에서 (마찬가지로 배우 안성기가 연기한) 청년 병태는 경주의 첨성대를 보기 위한 여행길에 나선다. 전자가 오랜 시간의 흐름을 경유한다면, 후자의 서사는 장소와 공간의 이동을 통해 전개된다. 얼핏 보면 상반된 면을 보이는 이 두 영화는 사실 배창호 (裵昶浩: 1953~)라는 감독의 세계관 안에 하나로 수렴되는 동전의 양면들이다. 사뭇 달라 보이긴 하지만 이 두 영화는 시간을 통해서든, 아니면 공간을 통해서든 일종의 긴 탐색의 여정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가치에 눈뜨게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풍 하루 전날 뇌성마비에 걸려 몸져누운 병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 몰래 집을 나선다. 그에게 있어 경주행은 유년기에 멈춰버린 인생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꿈의 여정이다. 그러나 장애의 몸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건 쉽지 않다. 단순히 서울역을 찾는데도 버스를 잘못 타고 길을 헤매는 그에게 조력자 역할로 시인 한민우, 무임승차한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춘자가 동행으로 붙는다. 인물의 설정은 다르지만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감독의 성공작 < 고래사냥 >(1984)의 또 다른 변주에 가깝다. 실연의 고통을 달래고자 무작정 길을 나서 방랑하던 병태는 구체적인 목적지를 얻으며, 거지 왕초 민우는 시인으로 바뀌었지만 병태를 돕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며, 사창굴에 빠져들어 삶의 험난함을 겪었던 춘자는 홀로 만삭의 몸을 끌고 다니는 미혼모로 바뀌어 있다. 여행은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v)이다. 배창호 영화에서의 인물들은 여행(또는 방랑)을 나서서 고난과 역경을 거친 뒤 성장 내지 각성을 얻고 돌아오는 신화-동화의 서사적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여행은 <고래사냥>처럼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거나, < 황진이 >(1986), (일견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연상케 하는) <꿈>(1990)처럼 종교적 깨달음의 추구이기도 하며, 때로는 < 적도의 꽃 >(1983)의 미스터 M(한민우와 더불어 이명세 의 < M >(2007)에서 재활용되는 이름)이 선영의 죽음을 겪고, 한국과 멕시코, 미국으로 계속 이동하는 < 깊고 푸른 밤 >(1984)에서 백호민이 끝내 자신이 추구하던 성공이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바와 같이 냉혹한 현실 인식 내지 자기 성찰에 직면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종국에 맞는 상황이 다를 뿐이지, 배창호가 만든 일련의 영화들은 가치관에 대한 탐색의 과정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배창호식 로드 무비 중 가장 낙관적이고 따스한 정감을 지닌 버전이며, 지금에 와서도 눈여겨볼 만 한 보편통시적인 지점을 관통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정상성 속에 편입되지 못한 채 주변부를 맴도는 방외인(房外人), 시대의 소수자(minor)들이다. 병태는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고, 춘자는 처음엔 시댁으로 간다고 했지만, 실은 남자에게 속아 이용당한 뒤 홀몸 아닌 몸으로 버려진 미혼모(그녀가 정표로 간직하던 보석은 전당포에서 보통의 유리 조각으로 판명된다.)였으며, 보헤미안 시인 민우는 원래는 교사 출신으로 합창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전복사고로 학생들의 죽음을 겪고는 자취를 감춘 불행한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상흔(傷痕)을 안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연대.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사연을 여정이 진행되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드러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각 인물의 자아 찾기, 인간성 회복과 깨달음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여행 중 일행으로서 가족적 연대의식을 형성한 병태 일행은 각자의 소중한 것을 조금씩 희생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자 한다. 춘자는 만삭의 몸임에도 자신이 굶는 대신 병태와 민우에게 자장면을 먹이고, 병태는 경주에 가서 그림을 그릴 물감을 전당포에 맡겨 일행을 위한 돈을 마련한다. 이러한 자기희생과 배려의 행위는 일행을 배불리 먹이고자 호텔 레스토랑에서 속임수를 쓰는 민우의 행동에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무임승차로 역에 붙잡혔던 병태 일행이 서로를 부축하고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의 롱테이크, 시골 학교 교실에서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춘자와 춤을 추는 걸 몽상하는 병태의 환상은 불완전한 소수자들이 서로를 돕고 보듬으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영화의 인간미 넘치는 감성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춤을 추는 병태와 춘자 이와 같은 인정(人情)의 베풂은 주인공 일행 사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병태 일행이 여행 중에 만나고 스쳐 지나는 주변 인물들은 때때로 역무원처럼 박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버스를 잘못한 병태를 챙겨주는 우이동 버스 종점의 기사들과 샌드위치 노점 아저씨, 숙직 중 병태 일행을 맞아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야식으로 감자를 대접해준 학교 선생님, 일행을 받아들이고 대접해준 환갑 잔칫집(<고래사냥>에처럼 스틸컷으로 전환되는 연출은 훗날 이명세의 <M> 에서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병태의 물감을 받고서 선선히 돈을 내준 전당포 주인, 비 내리는 날의 이삿짐 트럭, 병태와 춘자를 돕고자 일어선 시외버스 안의 승객들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을 환대할 줄 알며, 그들의 여정을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선량함을 품고 등장한다. 소수자에 가해지는 정상적 사회 일반의 차별과 폭력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 통속적 피해자 서사와는 사뭇 궤적을 달리하는, 당대의 관객에게 대안적 사회상을 영화적 유토피아로써 제시하고자 하는 배창호식 휴머니즘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여행 중 길과 사람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배창호식 로드무비의 휴머니즘은 경주를 지척에 두고 춘자가 출산하는 헛간 시퀀스에서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비약한다. 이 지점에서 경주로 향하던 병태 일행의 여행은 예수 탄생 직전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기독교 신화의 순례와 치환된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처럼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춘자의 주위에서 병태와 아이들은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의 < 카비리아의 밤 >(1957) 엔딩에서 줄리에타 마시나를 둘러싼 광대들처럼) 노래하고 행진한다. 화사한 촛불 조명과 필터 처리로 연출된 병태의 환상과 더불어 이 장면은 유영길 촬영감독의 섬세한 조명 처리를 통해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으로 그려진다. 실내의 노란 빛은 차츰 문과 나무 벽 틈 사이를 관통해 안으로 비치는 신비로운 푸르스름한 빛으로 대체되며 일순간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이른다. 현실적인 상황으로는 차별받기 십상인 미혼모의 아기는 구세주의 탄생과 동일시되며 축복받는 것이다. 이 아기는 병태 일행과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 모두의 인정이 한땀 한땀 모여 빚어낸 사회적 사랑의 결실이다. 아이가 구원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바로 구원의 산물이자 징표이며, 그것으로 세상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다. 신화적 분위기의 춘자의 출산 장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여행은 서울과 경주라는 출발점과 종착점을 갖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행은 실상 실패한 여행이다. 목적지를 향한 여행은 진행되면서 여행자의 신체와 의식, 삶을 변화시키며, 종국에는 목적지가 아닌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토록 선망하던 첨성대에 도착했음에도 (배창호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벤치에 앉은 채) 침울해 보이는 병태의 표정은 이러한 여행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정작 중요했던 건 첨성대가 아니라 그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사건들,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춘자와 병태는 일행을 떠났던 민우와 다시금 경주에서 재회한다. 지저분한 머리와 수염을 깔끔히 정리하고 다시금 교사로서 풍금을 연주하는 민우의 모습은 “경주에는 왜? 거긴 폐허와 무덤뿐인데”하던 극 초반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그가 여행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본연의 자아와 인간미를 회복했음을 보여준다. 이때 유아기적 순수성을 은유하던 병태의 노란색 모자는 견학을 온 유치원생들 모자의 노란색과 포개지며 봄날의 개나리꽃과 같은 화사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춘자, 병태 그리고 유치원생들 동시대 한국영화계는 열린 영화’의 개념을 주창하며 < 성공시대 >(1988)로 풍자적 리얼리즘의 전위에 섰던 장선우 , < 칠수와 만수 >(1988)로 사회적 리얼리즘을 제시한 박광수 의 등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배창호 감독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에 입각해 특유의 낭만주의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정립했다. 때론 이러한 감독의 성향은 진보적 평자들의 시선에서는 몽상적이며 현실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안전한 지점에 안착한다고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오늘날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정서는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순수하며 인정이 넘친다. (또한 별개의 논의를 요구하는 바이지만, 여성 캐릭터를 남성에 의한 구원을 해야 하는 대상적 존재로서 그리는, 배창호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일관되는 감독의 여성관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다소 걸리는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돌이켜보면 영화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대상이 각박해졌다는 방증인 동시에, 한국영화의 사회적 상상력이 더 이상 유토피아적 사회상, 공동체와의 유기체적 관계성을 그려낼 수 없을 만큼 빈곤해지고 황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창호 영화의 낭만주의는 암울한 시대상을 포장하고 뒤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상처 입은 당대 사람들의 내면적 치유를 갈망하고, 더 나아가 인간적 삶이 가능한 대안의 사회, 대안적 공동체의 잠재적 형태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보아야 감독의 본의에 더욱 근접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장애인(병태), 피해자로 내몰린 여성(춘자),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은 지식인(민우)을 주인공으로 함과 아울러, 언제든지 소수자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유쾌한 동료들, ‘도래할 민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30년 넘는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관객에게 다시 발견되고 재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세월호 사건의 증후를 겪는 한편, 페미니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봉인 당한 채 피해자 서사와 디스토피아에 주박된 오늘날의 한국영화계에 있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낭만주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차츰 잊혀가고 죽어가던 어떤 가능성을 일깨울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2018년 9~10월 VOD 기획전 <길 위에서 답을 찾다: 로드무비> 상영작 -> 바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