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23
수상내역 2
| 영화제명 | 개최연도 | 수상부문 | 작품명 |
|---|---|---|---|
| 제2회 대종상 영화제 | 1963 | 편집상 | 열녀문 |
| 제2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여성영화인축제) | 2001 | 공로상 | - |
주요 경력
- 1943년
- 형부 양세웅의 소개로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 광희동 촬영소 입사하여 현상· 인화를 거쳐 편집조수를 하게 된다. <조선해협(朝鮮海峽)>(박기채, 1943)으로 네가 편집을 시작
- 1946년
- 군정청 공보부 영화과에 편집기사로 들어가 문화영화, 기록영화, 뉴스 등에 자막을 입히는 작업과 편집을 담당
- 1947년-49년 미공보원(USIS) 편집기사로 일함
- 1950년-55년 진해로 피난, 진해(2-3년), 상남(2년)에서 미공보원에서 편집기사
- 1955년
- 서울 상경
- 1957년-59년 정릉촬영소에서 편집
- 1959년-61년 신필름에서 잠시 일하다 개인 편집실을 차림
- 1962년
- 결혼
- 1963년
- 제2회 대종상에서 <열녀문>(신상옥, 1962)으로 대종상 편집상을 수상
- 1970년-74년 편집을 그만둔 이후 신필름 작업을 종종함
영화인 정보조사
1924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해 광주고녀를 중퇴했다. 일본에서 촬영기사로 활동했던 형부 양세웅의 소개로 조선영화주식회사(朝鮮映畵株式會社)에서 그의 편집조수로 일하며 편집 및 현상 기술을 익혔다. 해방 후 미군정청 공보부 영화과 및 미공보원에서 교육영화와 문화영화의 편집을 담당했다. 이규환의 <춘향전>(1955)에서 편집 일을 본 것을 계기로 극영화 편집에 뛰어들었다. 1958년 이후에는 신필름이 제작한 여러 작품들의 편집을 담당했다(한국영상자료원). 신상옥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 <지옥화>(1958), <로맨스빠빠>, <백사부인>, <이 생명 다하도록>(1960)을 비롯하여, 조긍하의 <살아야 한다>, <육체의 길>(1959), 김수용의 <돌아온 사나이>(1960), 이형표의 <서울의 지붕밑>(1961) 등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 <열녀문>으로 제2회 대종상 편집상을 수상했다. 김영희의 편집은 “감독들이 안심하고 맡기고, 한번 맡기면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경향신문).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2년 3월 20일자 4면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3』, 실천문학, 2007. [작성: 김한상] ■ 2011년도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4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여학교 3년 다니던 무렵, 가세가 기울어 학교를 그만두는데, 조선영화주식회사에서 촬영기사로 활동하던 형부 양세웅의 소개로 조선영화주식회사의 현상실에 근무하게 되고, 이어 편집실로 자리를 옮겨 편집을 익히게 된다. 해방 이후, 미군정청의 공보부 영화과, 미공보원, 해군 교재창 등 직장을 차례로 옮기며 뉴스영화, 문화영화, 해군 교육용 영화 등을 비롯해 극영화까지 수백편의 영화를 편집한다. 1955년 진해에 위치한 해군 교재창에서 근무할 때,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 편집을 도우며 상업 극영화 편집에 입문하고, 그 이듬해 서울로 올라와 이만흥 감독의 영화를 편집하며 편집기사로 데뷔한다. 1958년부터는 신필름의 전속 편집기사로 신필름의 많은 영화들을 편집하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이후로는 개인편집실을 내고 프리랜서 활동도 병행하며 1960년대 후반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조카인 박양자와 양성란을 편집인력으로 키워내기도 한다(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2007년도 구술채록 자료집-김영희』, 한국영상자료원, 2007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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