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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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68년
- <잊으려 해도>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 출품
- 1989년
- 재미 동부영화인협회 회장
- 1990년
- 제1회 뉴욕 남북영화제 집행부 부위원장
- 1990년
- CINEMA EMPIRE 뉴욕소재 부사장
- 1992년
- GALAXY FILM & VIDEO PRODUCTION 대표
- 1994년
- OMNI MEDIUM 영화제작소 CHIEF CONSULTANT
- 1994년
- 미주 영화인협회 회장
- 경북고등학교 미동부 총동창회장
영화인 정보조사
전우열은 1959년 한형모 감독 집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한형모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한국영상자료원). 그 후 한형모 감독의 문하생으로 영화계에 입문하여, 이봉래, 박상호, 이강천 감독과 함께 일한 후 감독 데뷔 전까지 정창화 감독과 일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정창화 감독으로부터 연출력을 인정받아, <황혼의 검객>(1967)을 촬영하던 중 홍콩 쇼브라더스와의 전속계약으로 홍콩으로 떠나야할 상황이 되자 <황혼의 검객>(1967)의 나머지 촬영을 전우열에게 맡겼다(한국일보a). 전우열은 <내 청춘 황혼에 지다>(1967)로 데뷔하였고(한국일보b), <잊으려 해도>(1968)로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이 작품은 로카르노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경향신문). 전우열은 청춘 액션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본인 또한 액션물에 애착을 가졌다. 특히 폭력배의 세계를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전우열은 1981년 미국 뉴욕 퀸스로 이민을 떠나(동아일보), 재미 동부 영화인 협회 회장, 미주 영화인 협회 회장, 경북고등학교 미동부 총동창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재미동포 영화인 친목과 단합을 위해 활발히 일하였다(한국영화감독사전). 그의 부인은 <대합실의 여인>(1971)로 데뷔한 배우 윤세희이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3784&keyword=전우열)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3784&keyword=전우열) 동아일보 1990년 10월 19일자 31면. 경향신문 1968년 6월 22일자 5면. “[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16> 황혼의 검객(1967)과 트램펄린 효과”, 한국일보a, 2011/06/14.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106/h2011061402382091560.htm) “[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10> 콘티뉴어티 가 있는 연출을 지향하다”, 한국일보b, 2011/05/02.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105/h2011050221101791560.htm) [작성: 김성희]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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