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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

Yu Ho · 兪湖

분야
시나리오, 배우
데뷔작품
여인애사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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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43년
동양극장 미술부, 문예부
1945년 10월
서울중앙방송국 편성과 근무
1949년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 입사
1954년
경향신문 문화부 차장, 부장
1963년
TBC 창사드라마 <초설>로 방송작가 생활 시작

영화인 정보조사

1921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유해준(兪海濬)이다. 일본 제국미술학교 도안과에서 수학했다. 1942년 귀국 후, 동양극장 미술부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해방 후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뒤 TBC 방송국에서 <맞벌이부부>, <짚세기 신고 왔네> 등 다수의 라디오 드라마를 성공시켰다. 당시 TBC 일요극장의 프래그램 제목이 “유호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정도의 큰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 또한 박시춘과 호흡을 맞추어 다수의 대중가요 가사를 썼다. “럭키 서울,” “신라의 달밤,” “서울야곡,” “카츄샤의 노래” 등 1940~5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대중가요를 비롯하여, 1960년대 “맨발의 청춘,” “맨발로 뛰어라,” “떠날 때는 말없이,” “종점,” “사랑의 종말,” “님은 먼 곳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히트곡을 작사했다(이 주의 영화인). 1950년 신경균 감독이 연출한 <여인애사>의 시나리오를 맡으면서부터 영화에도 관여하기 시작했으며, 김화랑의 <속 자유부인>(1957), 심우섭의 <주책바가지>(1965), <미스 촌닭>(1970) 등 몇 편의 작품에서 각본을 썼다. 또한 김기영 감독의 1957년작 <황혼열차>에서는 각색과 기획을 맡았고, <여인애사>에서는 직접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가 쓴 방송극들이 다수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러한 작품들로는 백호빈의 <신식할머니>(1964), 김수용의 <학생부부>(1964), 이규웅의 <치마바람>(1967), 유현목의 <공처가 삼대>(1967), 김기덕의 <파란 눈의 며느리>(1969) 등 당대의 세태를 반영하여 사랑받은 통속극들이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직을 맡은바 있으며, 방송극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한국방송 60주년 문화포상, 2002년 방송인 명예의 전당 헌정, 그리고 2011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 참고문헌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이 주의 영화인(이영미) http://www.kmdb.or.kr 한국콘텐츠진흥원 웹사이트 http://koreancontent.kr/412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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