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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대표 이미지

장석준

Jang Seok-jun · 張錫俊

분야
촬영
데뷔작품
무명선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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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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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1935년에 태어났다. 시인의 꿈을 꾸고 1953년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간다. 재학 시절 같은 대학 연극영화과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촬영감독 전조명과 친교를 나누며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많은 촬영을 하고, 또 현상 시설을 직접 마련하는 등 기술 쪽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대학 2년 시절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1955)에서 단역 배우 겸 촬영감독 김영순의 조수로 일하며 영화계에 입문한다. 대학을 마치고 국방부 영화제작소에서 군 복무를 하며, 당시 정훈부 영화과의 대위였던 김수용, 대학 동기인 전조명과 만나 함께 영화 촬영을 공부하고 제대 후, 김수용 감독의 <구혼결사대>(1959)로 데뷔한다. 이후 <연애전선>(1960), <안개>(1967), <만선>(1967), <봄봄>(1969), <토지>(1974) 등 10여 편의 영화에서 김수용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전쟁과 노인>(1962), <망부석>(1963), <십년세도>(1964), <몽녀>(1968) 등 10여 편의 영화에서 임권택 감독과 함께 작업한다. 그 가운데 <몽녀>는 하나의 카메라 바디 안에 두 개의 렌즈를 인간 양안의 시차만큼 떼어놓고 설치하여, 두 개의 필름 릴에 각각 보통 영화 사이즈의 반 사이즈로 촬영한 뒤, 나중에 현상하면서 다시 그 반 사이즈의 이미지를 다시 하나의 필름에 좌, 우를 나누어 인화하는 방식으로 만든 입체영화로, 하나의 촬영기, 영사기로 입체 영화가 가능했던 세계 최초의 방식으로 팬-스코프라고 불렸다(이는 1970년대 한국영화계에 유행했던 테크니스코프 촬영으로 활용된다). 1971년에 촬영한 <춘향전>은 한국 최초의 70mm 영화로 그 촬영을 위해 본인이 카메라 바디를 두드리고, 여러 부품들을 조립하여 만들었다. 이처럼 기술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촬영감독인 동시에, 1971~1972년에는 <지지하루의 흑태양>(1971), <없어도 의리만은>(1972) 등 두 편의 영화를 직접 감독하기도 한다, 1980년 간암으로 사망한다. * 참고문헌 다큐멘터리 <한국영화기술의 개척자, 촬영감독 장석준>(구본진, 2003)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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