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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만

Lee Sang-man · 李相萬

분야
음향효과, 배우
데뷔작품
독립전야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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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1945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섭외 및 음향효과 담당
1953년
서울중앙방송국 라디오 연출 담당
1973년
한국방송공사(KBS) 라디오 차장
1979년 7월 23일
KBS 정년퇴임
1980년
한국방송공사(KBS) 방송위원

영화인 정보조사

192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영창중학교를 졸업했다(경향신문b). 해방 직후 1945년 10월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하여 라디오 음향 효과를 담당했으며, 초창기 불모지에 가깝던 음향효과를 개척한 장본인으로 평가 받는다. 전쟁 기간 중 피난지 부산에서 방송활동을 이어갔으며, 서울로 복귀한 1953년부터는 라디오 드라마 <인생역마차>를 시작으로 연출에 전념했다(한국영상자료원, 경향신문b). 영화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도 해방 직후부터로, 이규환의 <똘똘이의 모험>(1946), <민족의 새벽>(1947), 한형모의 <성벽을 뚫고>(1949) 등에서 음향을 맡았다고 한다(경향신문a). 전쟁 후에도 이규환의 <춘향전>(1955), 이강천의 <피아골>(1955), 신상옥의 <젊은 그들>(1955) 등을 시작으로 영화음향 작업을 지속했으며, 196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1979년 한국방송공사(KBS)를 정년퇴직했으며, 1964년부터 연출을 시작한 반공 라디오극 <김삿갓 북한방랑기>를 5천5백 회까지 방송하는 기록을 세웠다(동아일보, 경향신문b). 성우 이혜경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며, 2002년 10월 78세를 일기로 지병으로 별세했다(연합뉴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5년 3월 21일자 2면 경향신문b 1979년 7월 28일자 5면 동아일보 1978년 3월 11일자 5면 연합뉴스 2002년 10월 16일자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의 한국영화』, 이채, 2004, 207-227쪽, 315-330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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