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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1939년
- 극단 고협(高協) 단원
- 1940년
- 극단 조선무대(朝鮮舞臺) 단원
- 1950년
- 극단 보낭 단원
영화인 정보조사
1923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일제시기 고려영화협회 산하 극단 고협(高協)에서 배우로 활동했다(동아일보a). 1940년에는 한은진, 신명순 등과 함께 조선영화주식회사(朝映) 산하 조선무대(朝鮮舞臺)의 배우가 된다. 유계선의 영화데뷔작은 전창근 감독의 <복지만리>(1941)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전창근 감독과 결혼하였고 영화 활동을 중단했다가 해방 이후에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 이규환의 <민족의 새벽>(1947), 윤봉춘의 <애국자의 아들>(1949) 등으로 연기활동을 재개하였다(여성영화인사전). 1950년 극단 보낭에서 한은진 등과 창립멤버로 연극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경향신문a). 곱고 자애로운 중년여인의 이미지를 가졌던 그녀는 노련한 연기경험과 개성적인 마스크에 비해 박력이 약하나, <춘향전>(1961)에서 ‘월매’ 역의 열연을 통해 연기영역이 넓어졌다는 평을 받았다(여성영화인사전). 유계선은 남편 전창근이 연출한 작품에 다수 출연하였는데, <운명의 골짜기>(1962)에는 유계선과 딸 전향이까지 일가가 협연하기도 하였다(동아일보b). 작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경향신문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0년 3월 24일자 2면 경향신문b 1983년 10월 29일자 5면 동아일보a 1939년 3월 1일자 5면 동아일보b 1962년 5월 24일자 5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 사전』, 소도, 2001.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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