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 12
주요 경력
- 1911년
- 임성구의 혁신단 조직에 참가
- 1919년 10월 27일
- 최초의 활동사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 상연
영화인 정보조사
김도산은 서울 출생으로 상동예배당 안에 있는 상동학교를 다녔다. 신극의 선구자인 이인직의 문하에서 배웠다. 원각사에서 활동하다가 원각사가 해체 한 1911년 임성구, 김소랑, 박창한 등과 더불어 혁신단을 조직하였다. 이후 김소랑과 개량단을 조직하지만, 1917년 김소랑이 따로 취성좌를 조직하자 김도산도 신극좌를 조직하고 단성사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였다. 내한한 일본극단의 연쇄극에 자극을 받은 김도산은 1919년 단성사주 박승필의 후원을 얻어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촬영하였다. 기술적 문제 때문에 일본 덴카쓰(天活) 소속 기사 미야카와 소우노스케(宮川早之助)를 데려와야 했지만, 1919년 10월 27일 일반에 공개된 <의리적 구토>는 한국영화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김종원). 김도산의 연쇄극이 큰 성공을 거두자, 임성구 일행과 김소랑 일행도 연쇄극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김도산은 계속해서 <시우정(是友情)>, <형사고심>(1919), <의적> 등의 연쇄극을 촬영, 공개하였다. 불행히도, 연쇄극을 촬영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김도산은 1921년 7월 26일 사망하였다(동아일보; 이청기; 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25년 11월 18일 5면. 이청기, <한국영화의 전사시대 및 발생기의 특성에 관한 연구>, <<예술논문집>> 제6집, 대한민국예술원, 1967. <<한국영화감독사전>>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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