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정현 대표 이미지

박정현

Park Jeong-hyeon · 朴晶鉉

분야
제작/기획
데뷔작품
장화홍련전 (1924)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4

전체보기

수상내역 0

등록된 수상내역이 없습니다.

주요 경력

1925년
동국문화협회 설립 후 조선배우학교를 편입시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나 이윤 배분 문제로 좌절
1925년
동국문화협회 해산 후 고려영화제작소를 세우고 <쌍옥루> 제작
1926년
단성사 직속 영화부 금강키네마 총책임자
1928년
이경손프로덕션 제작지휘
1927년
나운규프로덕션 설립, 총간사

영화인 정보조사

일본 닛카스(日活)영화사 직속 기사 경력을 가진 박정현은 본래 영사기사 출신으로 우미관 영사실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이 당시 이필우는 박정현의 조수로 영화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박정현은 단성사 사장인 박승필 밑에서 지배인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단성사 촬영부를 만들고 <장화홍련전>을 제작, 감독하였다. 이 영화는 단성사 변사인 김영환이 각색과 감독을 맡고, 이필우가 촬영과 편집 등을 담당하여 만들었다. 흥행 면에서 충분한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이영일5; 영화감독사전; 동아일보d). 이후 박정현은 이구영, 이필우, 정암, 이봉익과 함께 고려영화제작소를 창설하고 영화제작에 착수하였다. 첫 작품으로 <쌍옥루>(1925)를 각색하여 제작하였다(조선일보a). 1927년에는 금강키네마 작품인 <낙화유수>에서 제작자 박승필을 도와 지휘를 담당하였다. 이 영화의 감독은 단성사 선전부의 이구영이었고, 각색자 김영환은 단성사에 소속된 변사였다. 사실상 단성사가 제작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조선일보b). 이외에도 젊은 영화인들에 대한 지원 활동도 벌였다. 부산의 조선키네마를 나와서 나운규가 설립한 나운규프로덕션과 역시 독립하여 이경손이 세운 이경손프로덕션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동아일보a; 동아일보b). 1930년에는 나운규, 이필우, 이창용 등과 함께 원방각사를 조직하고 <아리랑 그 후 이야기>와 <철인도>의 제작을 맡았다(동아일보c; 이영일4). 1932년 단성사 사장인 박승필이 세상을 떠나자 지배인이었던 박정현이 단성사의 경영을 책임지게 되었다(조선일보c). 대표 박승필, 서무선전 이구영, 해설주임 김덕경, 변사 서상필, 최병조 체제였다(김종원). 1937년 봄에 이르러 단성사의 재정상태가 나빠지면서 결국 단성사 경영권을 넘겨주게 된다. 1939년 8월 22일 사망하였다(조선일보d; 동아일보e). * 참고문헌 조선일보a 1925년 8월 24일 조간3면. 조선일보b 1927년 10월 8일 석간 3면. 조선일보c 1932년 1월 14일 석간 2면. 조선일보d 1937년 10월 16일 석간 6면. 동아일보a 1927년 9월 21일 3면. 동아일보b 1928년 3월 8일 3면. 동아일보c 1930년 4월 14일 1면. 동아일보d 1931년 7월 25일 5면. 동아일보e 1939년 8월 22일 1면. <<이영일의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김성춘, 복혜숙, 이구영>>4, 소도, 2003. <<이영일의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성동호, 이규환, 최금동>>5, 소도, 2003.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김종원,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및 DB구축 감수, 2011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연계 정보

불러오는 중입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