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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Hwa-se

정화세

Field
Production/Planning
Debut
코리아(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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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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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1954년
대한영화배급협회 감사
1956년
대한영화협회 최고위원
1958년
한국영화제작협회 회장
1959년
제5회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

Biography

1954년 신상옥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코리아>을 제작하며 제작자의 길에 들어선다. <코리아>는 무료 20개월간의 촬영 기간이 소요된 작품으로 신라시대부터 조선에 이르는 문화적 유물과 춘향전, 처용가 등을 소개하는 일종의 문화영화적 성격을 띠는 한편, 현대로 넘어오면 다큐멘터리 클립들이 끼어들면서 극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닌 파격적 실험작에 가까운 작품이었다고 한다(경향신문a). 1956년에는 김관수, 전창근, 복혜숙, 유두연 등과 함께 대한영화협회 최고위원에 위촉되기도 했으며(동아일보), 1958년에는 한국영화제작협회 회장을 맡아 아시아 영화제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경향신문b). 그러나 1959년 임화수가 주축이 된 반공예술단에 대해 그 창단과 활동 취지를 반대하여 맞서게 되고, 당시 제작 중이던 <복도 많지 뭐유>(1959)의 출연진이었던 김희갑이 임화수에게 폭행당하는 등 제작에 많은 난항을 겪게 되었으나, 국회 출입기자였다가 당시 제작자로 영화계에 갓 입문했던 한갑진(후일 한진흥업 회장)의 도움으로 제작을 마치고 배급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경제풍월). 1961년 5.16 이후 임화수의 영향력은 일소되지만, 같은 해 영화법 개정안 가운데 포함되어 있던 영화사 통폐합의 시행 과정에서 대표로 있던 대영영화제작사 역시 통폐합 대상에 속하게 된다(경향신문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4년 5월 2일 4면 경향신문b 1958년 3월 31일 3면동아일보 1956년 10월 20일 4면 ‘원로에게 듣는다 2-[한진흥업 한갑진 회장]’, 『경제풍월』 2002년 3월 [작성: 황미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