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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oo-yong

이두용

Field
Director, Production/Planning
Debut
진흙속에 핀 청춘(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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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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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63)

Awards 8

FestivalYearAwardFilm
제17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81 영화부문 감독상 피막
제19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83 영화부문 특별상 들개
제22회 대종상 영화제 1983 감독상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제37회 칸 영화제 1984 주목할만한시선 물레야 물레야
제22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 1986 영화부문 감독상 뽕

Career

1969년
극영화 <잃어버린 면사포>로 영화감독 데뷔
1973년
제12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대통령상)수상작 <홍의장군> 연출
1978년
제17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대통령상)수상작 <경찰관> 연출
1981년
제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피막>으로 감독상 수상
1981년
제43회 베니스영화제 <피막>으로 ISDAP Prize(특별감독상)수상

Biography

학창시절 <원탁의 기사>(리차드 소프,1953), <쿼바디스>(머빈 르로이,1951), <십계>(시셀 B. 드밀,1956), <애수>(머빈 르로이,1940), <녹원의 천사>(클래런스 브라운,1944) 등 할리우드 영화에 빠져 지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조감독이었던 선배가 영화를 배우지 않겠냐는 제안에 영화판에 뛰어든다(씨네21). 그렇게 10년 약간 못 미치는 기간을 조감독으로 연출 수업을 쌓고서, 1970년 멜로드라마인 <잃어버린 면사포>로 감독 데뷔한다. 초기에는 데뷔작과 같은 멜로드라마를 몇 편 작업한 뒤,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해외에도 팔릴 수 있는 영화장르를 고민하다가, 액션 영화를 생각해내고 1974년 <용호대련>을 시작으로 일련의 태권도 영화들을 연출한다. 아직 스턴트 배우 기반이 취약하던 시절이라 전국의 태권도 유단자들을 불러모아 오디션을 거쳐 20~30명 정도의 인원을 뽑고, 그 가운데 주조연, 단역을 할 배우들을 골라내 영화에 출연시킨다(CBS라디오, 필름2.0). 그러한 액션 연기진에 미국에서 귀국한 찰리 셀(한용철)을 주역으로 삼아, 1974년 한해에만 <용호대련>, <죽엄의 다리>, <돌아온 외다리>, <분노의 왼발>, <속 돌아온 외다리>, <배신자> 등 6편의 태권도 영화를 만들어낸다. 당시 으악새 영화(조연 액션 배우들이 으악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는 영화라며 당시의 액션 영화를 낮춰 부르는 말) 전문 감독이라는 시선이 부담이 되어 액션 영화를 접고서 <초분>(1977), <물도리동>(1979) 등의 토속적인 소재를 삼은 영화를 찍는다. 1978년에 촬영을 시작하여, 1년 동안을 촬영에 매달린 김성종 원작의 <최후의 증인>은 분단을 소재로 다룬 것 때문에 검열 당국과 마찰이 생겨, 3시간 가까운 편집본을 제작사에서 절반 정도를 자진 삭제하여 개봉하게 된다. 이후 검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소재를 찾아낸 것이 <피막>(1980),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 <뽕>(1985), <업>(1988) 등 토속적 삶이나 동양적 생사관을 그려낸 사극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피막>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ISDAP상을 수상하고,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깐느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기도 한다. 1990년대에는 <청송으로 가는 길>(1990), <흑설>(1990), <위대한 헌터 GJ>(1994), <애>(1999) 등을 연출하고, 2002년 나운규의 <아리랑>을 자신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한다. * 참고문헌 ‘나운규의 <아리랑> 리메이크한 이두용 감독’, 『씨네21』, 368호(2002년 9월 6일) ‘<뽕>의 감독 이두용을 만나다,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CBS 라디오 (2008년 1월 14일) ‘언제나 무시무시한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최후의 증인> 이두용 감독 인터뷰’, 『필름2.0』 (2006년 1월 17일) [작성: 전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