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ography 8
Cinematography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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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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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민우양은 강호 등과 함께 경남 진주에 남향키네마를 설립하고, 제작한 것이 <암로>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제목을 <쫓겨 가는 무리들>이라고 지었지만, 후에 <암로>로 제명을 바꾸었다. 민우양은 이 작품의 촬영을 담당하였다(중외일보a; 중외일보b; 동아일보a). 1930년 4월 김유영과 서광제, 김기진을 중심으로 서울키노를 부활시켰을 때, 민우양도 서울키노와 함께 하였다. 서울키노에서 촬영부를 담당하였다. 서울키노는 원래 조명희 원작의 <낙동강>을 영화화하려고 했지만 중지하고, 조선시나리오작가협회 소속의 이효석, 안석영, 서광제, 김유영의 4인이 함께 쓴 <화륜>을 제작하였다. 김유영이 감독하고 김연실과 석금성이 출연한 이 영화에서 민우양은 김용태와 공동으로 촬영을 담당하였다(조선일보a; 조선일보b). 임화가 <화륜>의 몰계급성을 지적하며 서울키노의 핵심이었던 김유영과 서광제를 비판하는 칼럼을 조선일보에 실었는데, 아마 이 일을 계기로 서울키노의 재정비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1931년 중반 서울키노는 내부에 농촌영화부와 가두영화부를 두는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농촌영화부에서는 조명희의 <낙동강>을 다시 영화화하기로 하였다. 민우양은 농촌영화부에 소속되어 촬영의 역할을 맡았다(조선일보c; 동아일보b). 하지만 이 영화의 완성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에는 영화계에서 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33년 5월 어느 신문에는 실린 민우양의 동향을 보면, 민우양은 양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조선일보d). * 참고문헌 중외일보a 1928년 4월 29일 3면. 중외일보b 1928년 6월 1일 3면. 동아일보a 1929년 1월 26일 8면. 동아일보b 1931년 6월 12일 4면. 조선일보a 1930년 4월 28일 석간 3면. 조선일보b 1930년 10월 8일 석간 5면. 조선일보c 1931년 6월 9일 석간 5면. 조선일보d 1933년 5월 28일 석간 3면.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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