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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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수집자료
강인구 작품집-영화음악 "욕"(慾)
- 매체유형
- LP
- 연주시간
- 30:14
욕(원제 : 난지도의 딸)
- 매체유형
- 일반본
- 보관위치
- 문헌보존실
욕(원제 : 난지도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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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1995년 6월 29일, 서초경찰서 강력 4반 고병천 반장은 삼풍백화점 인근 지하 다방에서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 만남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어디선가 ‘쉭’ 하는 소리가 났고, 소리가 난 곳에서는 백화점 건물이 무너져 그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백화점 건물이 무너졌을 때 회칼이 날아들어 행인의 목에 꽂히는 장면을 묘사하는 고병천은 당시를 전쟁이나 공상과학 영화의 비현실적인 장면에 빗대어 증언하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 고병천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범죄조직 지존파를 검거하였다. 헬레어로 ‘야망’이라는 뜻의 ‘마스칸’이라는 조직 이름을 쓴 청년 갱단에게 마스칸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존파’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고병천이었다.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과 지존파 사건을 모두 목격하여 그 두 사건을 평행하게 엮어낸 인물인 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 논픽션 다이어리 >(2013)에 인터뷰이로 출연한 고병천은 두 사건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피의자들의 목적은 지존파나 삼풍백화점 운영권자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지존파는 각자 10억을 벌겠다, 백화점 경영자는 1조를 벌겠다고 한 것이다. 한쪽은 형법상의 살인을 통해 생명을 박탈했지만, 한쪽은 업무상과실치상이라는 죄명으로 생명을 박탈했다. 목표도 같고 박탈한 내용도 같지만, 직접적 방법으로 살해를 한 것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방법으로 살해를 한 것으로, 내용상 차이가 없다.” 지존파 청년들이 신속한 재판을 거쳐 이듬해 교수형을 당한 것과 달리 백화점 붕괴를 방조한 사람들은 가벼운 처벌만 받고 책임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부조리함을 느꼈다. 고병천이 느꼈던 부조리와 <논픽션 다이어리>의 관점은 부분적으로 상통한다. 고병천의 증언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제기한 질문을 상기시킨다. “은행을 터는 사람과 은행을 만든 사람, 누가 더 큰 범죄자입니까?” <논픽션 다이어리>는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김영삼 정부의 통치정책,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뒤안,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던 시기의 중대한 사회, 정치적 변화를 의제화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는 ‘악마의 대리인’으로 불린 6명의 청년들이 저지른 범죄를 동정하지 않지만 더 넓은 사회적, 정치적 맥락 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으려고 한다. 충신의 후손들은 어떻게 잔학한 학살자가 되었나? 지존파의 범죄는 사회적 불평등을 겨냥한 한국 최초의 연쇄 살인사건으로 간주되었고 경제 번영의 시도에 수반되는 자본주의의 영향과 모순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새로운 소비주의(갱단의 일원은 범행 대상으로 압구정, 오렌지족, 야타족을 언급하였다)와 부자에 대한 증오를 보인 지존파의 범죄는 계급적 동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잘못 조준된 과녁(그들이 살해한 희생자들 중 진짜 부자는 없었다)을 향하였으며,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파생한 어두운 영향을 암시한다. 급성장한 민주주의 거버넌스의 계략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 위해 <논픽션 다이어리>는 사변적인 심문의 접근법을 취한다. 연출자 정윤석은 사회 변화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포괄적인 리서치, 아카이빙 자료의 수집, 자료와 인터뷰의 몽타주 등 내용과 스타일 모두에서 대담한 시도를 보여준다. 미디어가 지존파를 어떻게 악마화했는지에 대한 논평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지존파 사건에 대한 재평가에 기여하기보다는 농촌 살인 집단의 트라우마를 광범위한 국가적 내러티브와 연결하기 위한 장치로 동원된다. 법과 제도에 의한 살인, 개인, 범죄 집단에 의한 살인을 병치하여 심층적인 조사를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정윤석은 내레이션이 없는 개방형 서사를 설계한다. 뉴스릴과 시사토론 프로그램 영상, 형사와 교도관, 법률가, 관료, 종교인 등과의 인터뷰가 내레이션의 흐름을 형성한다. 서사의 주요 국면들마다 주요 쟁점들이 차례로 전환되면서 정점과 최저점, 침묵의 구두점들을 시적인 방식으로 연결된다. 견고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금기의 영역에 서식하는 프로세스, 법과 제도, 종교, 윤리적 기준들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유력한 스타일 전략은 시청각 몽타주이다. 서로 다른 맥락의 사건과 현상, 스토리, 진술, 논평을 잇기 위해 이미지와 사운드는 여러 방향으로 엮인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포토몽타주와 특정되지 않는 인물의 보이스오버, 화면분할 이미지는 이후에 올 충돌 몽타주의 전조를 보여준다. 중반부 한 장면에서 정윤석은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지하 매몰 현장을 무인 카메라로 찍은 뉴스 영상과 백화점 건물의 잔해들이 쓰레기더미처럼 쌓인 난지도의 흑백 사진을 나란히 배열한다. 그 위로는 철골과 시멘트가 어지럽게 널려진 참사 현장을 중계하는 뉴스 진행자의 음성이 깔린다. 음성과 이미지는 시공간적으로 일치하지 않지만 전자는 후자의 논평처럼 조응한다. 참사의 시간을 전후로 나누는 두 이미지는 생생한 현실의 기록이라는 차원 뿐 아니라 학살과 희생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접근방식에 대한 은유로 삽입되었다. 매몰자들을 구조하기 위한 활동이 종료된 뒤 건물의 잔해는 쓰레기 매립지로 옮겨졌지만 유가족들 다수는 시신을 전달받지 못했고 일부 가족들이 뼈와 유해를 찾기 위해 직접 수색에 나서기도 했다. 학살과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 진상규명, 후속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과거는 반복되었고, 현재도 반복된다. 이것은 한국전쟁과 광주민주화운동, 쿠테타의 기억과 포개지는 후반부 서사에 대한 예비적 조치이다. 가장 강력한 시청각 몽타주 신은 위에 서술한 고병천의 진술 뒤에 이어진다. 카메라는 어두운 시골길을 걷고 있다. 간이 조명이 비추는 몇 미터 전방 너머는 완전한 암흑에 휩싸여 있다. 길은 구불구불하다. 그 위로 여러 갈래의 목소리들이 병치된다. 강력범을 조속히 처단할 것을 종용하는 김영삼 전(前) 대통령의 주문을 보도하는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 범죄 현상의 안팎을 진단하는 익명의 목소리, 부자에 대한 증오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이야기하는 지존파 갱단의 목소리, 끔찍한 범죄자들을 저주하는 시민의 목소리 따위가 사운드 몽타주로 제시된다. 기원이 표시되지 않는 목소리들은 혼란스럽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현재, 현재를 불투명하게 만든 과거를 함축한 시청각 몽타주이다. 순간 죽음과 살인을 모티프로 한 사회정치적 탐사는 학살의 아카이빙이라는 역사적 의제로 전환하게 된다. 언제나처럼 무고한 희생은 반복되며 학살자들은 그들의 책임에 대해 침묵한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초이스]수색역
1996년 3월, 2002년 17회 월드컵 개최지가 확정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을 유치하게 되었다. 10개의 월드컵 경기장 중에서, 서울에는 ‘상암동’이라는 생소한 장소에 경기장이 놓인다고 했다. 원래는 ‘난지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일대였다. ‘난초와 지초가 가득한 섬’이라는 원래 이름이 무색하게 자연히 쓰레기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지역이다. 과거 국내 땅콩 재배 30%와 싸리 빗자루의 70%를 만들어 먹고 살던 동네였지만 서울시의 강제 수용 정책으로 주민들은 땅을 모두 빼앗기고 쫓겨나 78년부터 쓰레기 매립지가 된 탓이다. 지금도 강변북로를 따라 올라가 자유로를 진입할 무렵에는 악취를 맡을 수 있다. 먼지, 악취, 파리가 많다고 ‘삼다도’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땅. 개인적으로 멀지 않은 동네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기 때문에, 이 < 수색역 >이라는 이름의 영화가 반가우면서도 의아했다. 근처 동네가 영화의 제목으로 나와 반갑긴 했지만, 저 동네를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일산 혹은 파주에서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은 다들 안다. 수색이 얼마나 오랜 시간 옛 향취(?)를 간직하고 있었는지. 만약 당신이 서울 안에서 멋과 키치적인 맛을 다 뺀 진짜 <응답하라 1988> 정도의 시간대를 거닐어 보고 싶다면 화전-수색-모래내 구간을 추천한다. 여기엔 리얼한 정체가 아직 살아있다. 이게 얼핏 생각하면 ‘삭제되어가는 공간에 대한 기록’ 같은 로맨틱한 영화적 구상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그곳을 보아왔다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이건 특이점이 없는 그냥 방치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DMC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진행된 상암동 일대를 조금만 벗어나면(굴다리를 하나만 넘어가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번에 알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20년 전부터 ‘형제 대장간’을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못 가봤다.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 이야기는 이런 수색에서 나고 자란 네 친구의 이야기다. 상암동의 옆 동네. 다시 말해,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의 바로 근처에서 유년을 보낸 이들은 별로 미래에 대한 환상도 꿈도 없다. 그냥 고등학교 대충 졸업해서 공장에 들어가 월급 받고 돈 모아 결혼하고 그런 삶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받아들인다? 이 말도 좀 이상하다.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의식조차 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취업 실습에 나갔을 무렵, 이 변두리 동네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2002년에 한일 월드컵이 개최될 것이며, 재개발이 진행될 거라고. 워낙 낙후된 곳이라 몇 번이나 재개발 이야기는 있었지만 모두 불발로 끝난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다. 1988년 목동이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변했는지 사람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바람을 타고 동네에 떴다방이 들어오고, 우연한 기회에 원선은 일원이 된다. 반반한 얼굴과 대범한 성격으로 인정도 받고, 취업 실습 나갔던 공장에서 만난 누나도 꼬셔 여자친구로 들여앉혔다.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치고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상우는 열 받아 있다. 공장 누나는 그가 어떻게 한 번 꼬셔 보려고 엄청 노력했으나 실패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어느 날 상우는 결국 화를 못 이기고 윤석과 싸운다. 그리고, 큰 실수를 해버리고 만다. 그 실수는 너무 커서, 피하려 애쓰고 덮으려 노력할수록 계속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 파수꾼 >에 비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아니, 영화가 보여주는 같은 시간을 지냈으나 어떤 사건을 통해 각자의 길이 갈라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황과 오해, 그리고 폭력과 파국은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내 경우는 < 수색역 >이 더 와 닿는 면이 있다. 이 영화가 제목을 <시계태엽 장치 참이슬>이나 <이방인> 같은 식으로 달지 않은 이유는 멋 부릴 여유가 별로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호영은 공장에 빨리 적응해 돈을 모으기 위해 답답하고 힘들지만 기숙사에 들어갈 것을 결정한다. 윤석은 어머니의 야채가게를 이어서 운영하기에 바쁘다. 상우와 원선 사이의 일에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었지만, 그들의 삶은 마치 이미 30살은 된 것처럼, 당연스럽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민, 꿈, 노력 그런 거 없다. 이 공간 속에서 삶은, 다른 걸 꿈꾸는 게 사치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꿈’이라는 걸 꾸는 인물이 있다면 상우다. 아버지의 고물상 일을 당연스럽게 돕던 그는 원선과의 사고 이후 꿈을 꾸기 시작한다. 큰돈, 멋진 여자 그리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희망. 그러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개발은 또 불발되었다. 재개발이 예상대로 진행되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걸, 관객은 안다. 이들의 이야기 안에는 찌질하고 한심하게 시작되었으나 기어코 세계가 무너지는 절망이 있다. 호영과 윤선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원선과 상우는 몰랐던 것. 본인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너무 위태롭게,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 그들이 봐야 했던 것은 목동에 세워진 아파트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고 나란 죽마고우들의 파국은 자신들이 자라난 땅의 역사와 비슷하게 돌아감을 암시한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근대가 겪었던, 없어도 되었을 많은 상처들도 함께 떠오른다. 시간은 흐르고 과학도 발전하고 역사는 대충 진보한 것 같은 느낌으로 사는 시점에서 우리의 시야 밖 어딘가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편한 자각.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이 처음 공장에 실습을 나갔을 때 꼰대라고 대들었던 인물의 행동을 똑같이 답습하는 호영의 모습. 상처는 봉합되지 않고 버려질 뿐이다.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 수색역 >은 이후에도 별로 달라질 건 별로 없을 거라고 말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솔직하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