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읽어주는 TV
- 감독
- 전재혁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박영화, 이상범, 이명선, 박선영
벽장 속의 괴물. 익숙한 소재다. 동화처럼 따뜻한 이야기도 가능하고, 아이를 잡아가는 섬뜩한 괴물도 가능하다. 단순하게 귀신의 통로로만 이용할 수도 있다. 김지운 감독의 < 장화, 홍련 >(2003)에 등장하는 옷장 장면은 정말 섬뜩했다. 리메이크작 < 폴터가이스트 >(2015)에서는 아이가 벽장을 통해 원령들이 사는 세계로 끌려간다. 밤에 잠을 자다가 혹은 일이나 공부를 하다가 뒤에 있는 옷장이나 벽장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순간의 공포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이 한순간에 이면을 드러내거나 기괴한 것으로 변할 때의 공포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원과 딸 이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상원은 공황장애가 있고, 이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이나의 치료를 위해 교외의 저택으로 이사를 갔지만 벽장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전형적인 설정이다. 과거의 상처가 있는 가족이 새로운 집, 공간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나 살인마를 만난다. 공포영화가 익숙한 설정을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전형적인 설정과 캐릭터, 장면을 가지고도 섬뜩한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호러영화의 매력이니까. 그러나 클리셰를 명확한 이유 없이, 흐름에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 것은 최악이다. 무서운 장면이었으니까, 관객이 좋아한 설정이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호러영화를 뒤죽박죽 베끼면 재미가 없다. 한국 공포영화의 태반이 그렇다. 공포영화에 관심 없는 제작자와 감독이 만나 공포영화 히트작의 익숙한 장면들을 다 끌어오면서 엉터리를 만들어낸다. 재미도 없고, 공포도 없다. 한두 번 놀라는 장면이 있어도 그뿐이다. < 클로젯 >( 김광빈 , 2020)을 보고 있으면, 다 어디선가 본 장면들이고 설정이다. 그것들이 합이 맞지 않고 삐걱거린다. 클라이맥스도 맥이 빠진다. < 컨저링 > < 인시디어스 > < 애나벨 > 등 제임스 완 연출, 제작 영화들이 계속 떠오른다. 벽장 속 이계는 <폴터가이스트>, 학대 받은 아이들의 복수는 시미즈 다카시의 < 코도모츠카이 >가 연상된다. <클로젯>의 도입부는 벽장 안에 있는 무엇인가 때문에 이나의 성격이 변하고 어딘가로 사라지는 이야기다. 까마귀가 창으로 날아들고, 벽장문이 끼익 거리며 분위기를 잡는다. 그리고 이나를 찾는 상원 앞에 퇴마사 경훈이 나타난다. 프롤로그에 나와 굿을 하다 죽은 무당의 아들이다. 경훈은 동양의 퇴마의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첨단 과학 장비를 활용하여 초자연적 존재를 추적한다. 농담과 너스레가 끊이지 않는 경훈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 지금 상황에서 웃어도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 영화의 톤이 오락가락한다. <클로젯>은 이나가 변하고 사라진 후, 경훈이 나타나 이나를 데려간 존재를 찾아가는 초자연적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다. 상원과 경훈은 명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왜 원한을 갖게 되었는지도 알게 된다. 1998년, 아마도 IMF 금융위기로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의 학대로 명진은 옷장에 갇혀 목숨을 잃는다. 그 원한 때문에 죽은 후에도 ‘클로젯’을 통해 학대받는 아이들을 이계로 데려간다. 그렇다면 상원과 경훈은 명진의 한을 어떻게 달래줄 것인가. 상원은 이나를 구하기 위해 이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하는 일이 없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나를 학대했음을 알게 되는 정도다. 그것은 좋다. 상원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주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모든 것은 갑자기 명진의 엄마가 나타나면서 해결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엄청난 원한을 가지고 아이들을 이계로 데리고 간 명진은 엄마를 만나 원한을 내려 놓고, 모든 것이 해결된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개인적인 문제 특히 모성애로 진부한 답을 내리고 끝난다. <클로젯>은 한국 공포영화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무서운 장면 몇 개를 만드는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스릴과 코미디와 신파를 다 섞어 놓은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어리석다. 대부분은 실패한다. 장르물은 우선 장르의 본질을 확실하게 파고드는 것이 기본이다. 공포영화를 만들어 놓고도 미스터리와 드라마라고 우기지 말고. < 기담 >(2007)과 < 곤지암 >(2017)의 정범식 , < 검은 사제들 >(2015)과 < 사바하 >(2019)의 장재현 감독은 공포물에 대한 지식과 애정으로 전형적이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공포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런 공포영화들을 더 보고 싶다.
572돌 한글날이 며칠 지나긴 했지만 이번 호에서는 한글 관련 영상을 소개하려 한다. 한국인 감독 김인태 (1931~)가 1967년 캐나다 국립영화제작소(National Film Board of Canada, NFB)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Korean Alphabet(한글) >이다. 파스텔 보드를 이용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아름다운 동화처럼 표현한 이 작품은 NFB를 대표하는 작가 노먼 맥라렌(Norman McLaren, 1914~1987)이 음향을 맡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인공 사운드(synthetic sound)를 삽입해 완성도를 높였다. 노먼 맥라렌은 1952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을 수상한 < Neighbours >를 비롯해 다수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통해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실험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인물로, NFB가 애니메이션과 실험영화의 뛰어난 작품과 작가들을 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작가 노먼 맥라렌의 참여로 더욱 주목을 받은 <한글>은 1968년 제3회 테헤란 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금상을 받았다. <한글>의 오프닝 크레디트 <한글>은 오랜 시간 알려지지 않다가 2002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주관한 ‘캐나다 애니메이션 특별전’에서 상영되며 발굴된 작품이다. 김인태 감독은 NFB 최초의 한국인 소속작가로 활약한 것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고, 이듬해인 2004년 제8회 서울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인태 감독은 어떤 배경으로 NFB에서 <한글>을 만들게 된 것일까? 이 글에서는 <한글>이 탄생하기까지 여정을 대한(對韓) 원조 사업과 연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한글>의 장면들 <한글> 제작 당시 김인태는 한국 국립영화제작소(National Film Production Center) 소속 감독으로 캐나다 외무성의 지원을 받아 NFB 연수 중에 있었다. 김인태 감독이 소속되어 있던 국립영화제작소는 1961년 법령에 의해 독립되기 전까지 통칭 ‘영화제작소’라 불렸는데, 이는 1958년 UN과 미국에 대한 원조로 설치된 공보실 영화과의 뉴스와 문화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제작 스튜디오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1950~60년대 한국의 공보 선전은 미국에 대한 원조 정책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진행되었는데 이 영화제작소 역시 카메라, 인화기, 애니메이션 촬영기인 옥스베리(Oxberry) 등의 기계 설비를 구축하는 것부터 인력의 양성까지 다방면에 걸쳐 원조를 받았다. 그리고 NFB를 역할모델로 하여 한국의 교육영화 제작 시스템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 원조 사업에 따라 미국의 전문 인력들이 ‘시러큐스 계약(Syracuse Contract)’이라는 ‘팀’을 이뤄 영화제작소에서 연출, 촬영, 녹음, 미술 등 분야별로 3~5년에 걸쳐 영화 인력을 양성했다. 김인태 감독은 바로 이 교육 인력 양성 사업을 위해 1958년 선발된 영화제작소의 제1기 공채 인력이었다. <Welcome to Motion Picture>(1959)에 등장하는 영화제작소의 전경과 스튜디오 촬영 모습 (좌) 시러큐스 계약 인력과 영화제작소 행정관들의 회의 모습 (우) 국립영화제작소의 인력들 (이성철 소장자료) 영화제작소는 1958년, 최신식 기재 설치와 시러큐스 계약 인력이 파견되는 것에 맞춰 연출, 촬영, 편집, 미술 등 각 분야의 공채 직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중 미술부의 인력들은 실사영화에 필요한 제목, 자막 등의 기본적인 미술 작업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법을 교육받았고, 이에 따라 1958년부터 문화영화에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큰 줄기 중 하나는 이러한 대한 원조로 진행된 교육영화 제작 인력 양성 사업에 맞춰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이루어졌다. 1950년대 애니메이션 광고를 제외한 소위 ‘최초의 순수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되고 있는 작품이 바로 국립영화제작소가 1962년에 제작한 흑백 단편 애니메이션 < 개미와 베짱이 >( 박영일 연출, 정도빈 작화) 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후에도 국립영화제작소는 미술부의 박영일과 정도빈 그리고 한성학 등을 중심으로 여러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개미와 베짱이> 홍익대학교 미대 출신의 김인태 감독은 아쉽게도 국립영화제작소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교육영화 전문 인력 수련 후 <전화가설>(1959), <전화도수제>(1961), <자동전화는 이렇게>(1962), <전화를 쓸 때는>(1962) 등의 체신 교육영화와 <치아와 건강>(1961), <기생충을 없애자>(1963) 등의 보건위생 교육영화를 비롯해 다수의 문화영화를 감독했다. 그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NFB에서 <한글>의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이미 작품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은 노먼 맥라렌과의 만남은 이 작품의 완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인태 감독의 국립영화제작소 시절 영화들 그렇다면 김인태 감독의 노먼 맥라렌 작품 관람과 NFB 연수는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그 배경에는 1961년 12월 NFB와 국립영화제작소 간에 맺어진 문화영화 교환협정이 있었다. 양측은 이 협정에 따라 서로의 영화를 교류했는데 일례로 국립영화제작소는 NFB에 <새로운 고향>(양종해, 1961)을 배급하고, NFB의 <협동조합>과 <의자공과 소년들>을 들여와 우리말로 내레이션을 녹음해 상영하는 식이었다. 이와 같은 문화교류 배경에는 원조 사업 초기 영화제작소가 모델로 상정한 NFB의 제작 시스템이 큰 영향을 끼쳤다. NFB는 분야별 소재에 따른 분업화와 1인 제작 시스템을 적용하는 데 역할모델이 되었다. 이에 따라 국립영화제작소의 문화영화 감독들은 NFB의 영화들을 시사하고 제작에 참조했으며, 최봉암, 김인태 등의 감독들이 1960년대 중후반 캐나다 외무성의 지원을 받아 NFB에서 연수를 받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자공과 소년들>의 오프닝 크레디트: 문화영화 교환협정을 사전 공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식 영화제작 시설로서 시청각에 의한 매스컴의 총아로써 영화가 지닌 사명을 다하는”(<Welcome to Motion Picture>) 목적하에 설립된 영화제작소는 교육영화 분야에서 애니메이션 인력을 비롯한 다재다능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박정희 정권하에서 국립영화제작소로 확대 개편되며 원조사업 진행 당시 집중되었던 교육영화 제작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를 넘어 정부 선전을 위한 영화제작에 치중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 이 글은 공영민,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선전 애니메이션과 1950~60년대 한국 국립영화제작소 애니메이션의 관계」,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지워진 한국영화사 – 문화영화의 안과 밖』, 한국영상자료원, 2014와 공영민, 「<의자공과 소년들> 해제」, 허은 엮음, 『영상, 역사를 비추다: 한국현대사 영상자료해제집 7-국립영화제작소 문화영화해제집 1』, 선인, 2017에서 일부 발췌하여 엮었음을 밝힌다. 출처 <Korean Alphabet> - NFB 누리집 https://www.nfb.ca/film/korean_alphabet / ; 한국영상자료원 소장자료 < 개미와 베짱이 > < 전화를 쓸 때는 > < 치아와 건강 > < 의자공과 소년들 > -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Welcome to Motion Picture >(1959) - 한국영상자료원 테드 코넌트(Theodore Richards Conant) 콜렉션 소장자료 이순진, 「김인태 편」, 한국영상자료원 편, 『2012년 한국영화사 구출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문화영화 1: 김인태‧이지완‧이정섭』, 한국영상자료원, 2012.
어린 시절 32색 크레파스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가진 12색 크레파스에는 하나밖에 없는 살색 크레파스가 그 친구에겐 무려 3종류나 있었고, 그 때는 그 친구가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이유가 오직 32색 크레파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굵어지고 더 이상 크레파스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지 않을 만큼 사리분별을 하게 된 이후에도 가끔씩 궁금해진다. 누가 먼저 그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일까. 융 헤닌 감독의 < 피부색:꿀 >을 보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 피부색:꿀 >은 융 헤닌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한 입양 소년의 성장담이다. 고아원에서 지내다 벨기에로 입양된 소년 전정식은 보통의 양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다. 동양인 입양아의 피부색을 ‘꿀’색이라고 부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입양아들의 사연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식적인 드라마라면 입양아가 겪는 고난과 양부모의 괄시, 혹독한 환경에서의 성장기를 다루겠지만 소년 융의 삶은 평범했다. 그는 평범하게 괴롭고, 평범하게 외롭고, 평범하게 반항한다. 양부모는 융을 특별히 차별하지도 않고 융도 특별히 엇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안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입양아로서 느끼는 상실감이 곳곳에 묻어 있다. 흔히 ‘보통’, ‘평범’이라는 말은 평화롭고 별일 없이 잘 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하는데, 이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 실상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은 웃고, 울고, 싸우고, 상처 입고, 헤어지고, 화해하는 먹먹함으로 가득 차 있다. < 피부색:꿀 >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이란 단어로 덮고 살아가는 진짜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연이 아니라 수십만 입양아들이 실제로 겪었을 법한 심적인 갈등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융 헤넨 감독은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고 멋대로 상상한 모습이 아닌 입양아의 민낯, 진짜 사연을 보여준다. 때문에 장면마다 공감했을 때의 울림 또한 각별하다. 일견 다큐에 어울릴 법한 소재처럼 보이지만 < 피부색:꿀 >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진짜 삶, 진짜 고민, 진짜 이야기가 지닌 무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둠은 투명한 수채화풍의 배경과 둥글고 포근한 인물묘사를 만나 동화처럼 호소력 있게 가슴 속에 파고든다. 덕분에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와 보는 이에게 훈훈한 웃음마저 안긴다. 우리가 반드시 보고 제대로 알아야 할 진지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의 힘을 십분 활용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살색을 꿀색으로 부를 수 있는 동심.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진심. 그 위에 유럽인이면서 아시아인, 한국인이면서 유럽인인 작가 융 헤넨, 소년 전정식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