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임즈
- 감독
- 찰리 채플린
- 제작년도
- 1936
- 출연
- 찰리 채플린, 파울레트 고다드, 헨리 버그만, 티니 샌드포드, 체스터 콘클린, 행크 만, 스탠리 브리스톤, 알 에른스트 가르시아, 리처드 앨러그잰더, 세실 레이놀즈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채플린은 언제 ‘위대한’ 채플린이 되었을까. 물론 채플린은 처음부터 훌륭했다. 심지어 맥 세네트가 연출하고 채플린이 주연을 연기한 초기 영화들부터 훌륭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을 위대하다,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마 누군가는, 여기에 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채플린의 전문적인 연구자들인데, 1915년에 < 방랑자(The Tramp) >에서 채플린 자신이 만들어내고 있는 인물을 이미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세상 속의 버림받은 방랑자에서 그 관계를 반대로 뒤집어서 그 자신이 방랑자라는 선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만의 문제 설정을 발명했다고 설명할 것이다. 대상으로서의 방랑자로부터 주인으로서의 방랑자로의 전도. 하지만 나는 좀 더 뒤로 더 물러나고 싶다. 어디까지? <방랑자>가 훌륭하긴 하지만 잠시만 그 주변을 돌아보자. 여전히 여기에는 채플린이 자신의 희극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고정하고 일정 거리만큼 물러난 다음 영화 프레임을 무대처럼 사용해서 곡예사의 재주를 한껏 보여주는 데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남는다. 문장을 바꿔보겠다. 채플린의 영화를 모두 본 우리는 <방랑자>를 통해서 < 황금광 시대 >(1925)를 보지 않으며, ‘또 다른’ < 방랑자(The Vagabond) >(1916)를 통해서 < 시티 라이트 >(1931)를 보지 않는다. 반대로 < 서커스 >(1928)를 통해서 < 이민자 >(1917)를 볼 것이며, < 모던 타임즈 >(1936)를 통해서 < 개의 삶 >(1918)을 볼 것이다. 그 둘 사이에 어떤 도약이 놓여있는가. 장편 영화 < 키드 >(1921)가 놓여있다. 채플린이 카메라 앞에 선 1914년 첫해에 키스톤 영화사에서 35편의 단편 영화를 찍었다. 빠르게 영화를 배웠고,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이미 채플린은 직접 연출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그리고 1919년 7월 20일 새로운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가제(working title)는 <방랑자(The Waif)>. 마치 단편 영화와 같은 간단한 줄거리. 미혼모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간절한 편지와 함께 고급 자동차에 놓고 자리를 떠난다. 그 자동차를 악당 두 명이 훔쳐 가고 아이는 길거리에 버린다. 그리고 그 아이를 방랑자가 떠안게 된다. 여차저차해서 방랑자는 아이를 키우게 된다. 그리고 둘은 마치 파트너처럼 이런저런 사고도 치면서 서로 아끼는 부자지간이 된다. 그리고 다시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어머니 품에 돌아가고 방랑자와 아이는 행복하게 재회한다. 시작하자마자 이 영화는 채플린 없이 5분 동안 진행된다. 연출자 채플린.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채플린이 빈민가 골목에서 등장한다. 게다가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채플린이 아니라 ‘영화사상 가장 귀여운’ 아역이라고 해야 할 네 살 소년 재키 쿠간이 자기보다 큰 소년을 상대로 빈민가 작은 광장에서 일대일 맨주먹 권투를 하면서 혼내주는 씬이다. 이 장면은 아무리 반복해서 보아도 매번 웃게 된다. 그런 다음 채플린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 장면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키드> 중 (사진: “The Kid( 1 , 2 , 3 )”, IMDb / “ Charlie Chaplin – The Kid – Fight Scene ”, Youtube Charlie Chaplin) <키드>는 채플린의 68번째 영화이다. 필름 길이 5,250피트. 상영시간 1시간 8분. 이 상영시간에서 채플린은 1970년에 재개봉을 위해 15분을 단축했다. 새로운 관객들에게 일부 장면이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53분 판본은 1972년 4월 4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프리미어 상영되었다. 이 자리에는 채플린이 참석했다. 이 상영본이 공식적인 <키드>의 판본이 되었다. 채플린의 나이 32살. 아마 이 영화에 담겨있는 모든 파토스와 유머,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에피소드들, 아니, 보는 쪽에서도 계속해서 보고 싶다는 기쁨을 안겨주는 이 영화의 힘은 말할 것도 없이 재키 쿠간에게서 온 것이다. 그해 봄에 만든 < 양지바른 곳 >(1919)에서 오디션을 통해 재키 쿠간을 발견한 채플린은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재키와의 촬영이 끝나고 댄스홀에서 서로 마주 앉아 1시간 4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살 소년과 할리우드의 거물 사이의 다정한 대화. 재키를 돌려보낸 다음 채플린은 자신의 스탭들에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만나 본 중에 가장 놀라운 사람을 지금 만났군.” <키드>의 촬영은 1919년 7월 21일에 시작되었다. 현장에서 채플린은 재키와 영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재키는 개미에 관심이 많았고, 채플린은 함께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자연의 신비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다음 촬영을 할 때 채플린은 재키가 해야 할 장면의 연기를 그 앞에서 실현해 보였으며, 재키는 그걸 그대로 흉내 내면 되었다. 말은 이렇게 쉽게 했지만, 재키 쿠간은 천재적으로 채플린을 ‘카피’하였다. 재키 쿠간(좌)과 찰리 채플린(우) (사진: “ The Kid ”, IMDb) 여기까지 읽으면서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키드>의 줄거리는 장편 영화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요. 좋은 질문이다. 채플린은 ‘가제’ <방랑자>를 처음부터 장편으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채플린이 준비한 영화는 재키 쿠간과 함께 출연한 세 편의 단편 영화였다. 그때 채플린과 계약한 퍼스트 내쇼널 영화사도 그것을 원했다. 그래서 <키드>는 세 편의 영화를 하나로 이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채플린은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다. 이 영화는 한 편이 되는 쪽이 훨씬 깊은 감정적인 호소를 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퍼스트 내쇼널 영화사에 편집 일부를 먼저 시사하였다. 경영진은 채플린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그때 채플린은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첫 번째 아내 밀드레드 해리스는 채플린의 재산을 가압류 신청하였다. 채플린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가 가압류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여기에는 반대의 설명도 있다. 밀드레드 해리스가 가압류 대상으로 삼은 건 단편 영화들이었고, 채플린이 장편 영화를 제작할 것으로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채플린의 첫 번째 장편 영화 <키드>가 예술적 결단인지. 아니면 산업적 판단인지, 혹은 재산 분쟁을 둘러싼 변호사의 조언에 따른 것인지는 내가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과 결정이 서로 실타래처럼 뒤엉킨 것일 수도 있다. 채플린은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 밀드레드 해리스 몰래 네거티브 필름을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유타 호텔로 가져가 편집실을 차려놓고 최종본을 완성했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비밀리 진행되어야 했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솔트레이크시티에는 현상실을 비롯한 후반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스튜디오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20년 7월 30일에 작업이 끝난 <키드>는 1921년 2월 6일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키드>에 채플린은 만족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퍼스트 내쇼널과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그리피스, 메리 픽포드,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와 함께 세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로 옮긴 채플린은 이제 단편 영화로 돌아오지 않았다. 후일담.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된 것은 아니다. 채플린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서의 첫 번째 영화는 < 파리의 여인 >(1923)이었다. 이 영화는 채플린이 연출만 하고 출연하지 않은 두 편의 영화 중의 한편이다. 이 영화는 박스 오피스에서 재난을 맞이하였다. 채플린은 <황금광 시대>로 다시 돌아왔다. 영화가 길건 짧건 그건 상관없었다. 대중들은 채플린의 영화가 아니라 ‘방랑자’의 영화를 원했다. 후일담의 첨언. 하지만 나는 박스 오피스에 동의하지 않는다. <파리의 여인>은 걸작이다. <키드> 중 (사진: “ The Kid ”,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베킷과 베케트, 서로 다르게 번역되었지만 두 이름의 철자는 Beckett로 동일하다. 베킷은 누군가의 이름, 베케트는 누군가의 성이다. 성의 자리에 놓이든 이름의 자리에 놓이든 사람들은 그를 베킷 혹은 베케트라 부른다. 영화 <베킷>의 주인공은 베킷이다. 문득 베킷(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풀 네임이 궁금해졌다. 베킷이라는 이름과 어울릴만한 성은 아무래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연인 에이프릴(알리시아 비칸데르)도, 낯선 미국 대사관 직원도 그를 베킷이라 부른다. 그의 이름은 퍼스트 네임과 라스트 네임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닉네임처럼 베킷이라는 두 음절로만 이뤄진 것 같다. Beckett은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뮈엘 베케트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줄여 부를 때는 베케트라고 지칭한다. 베케트가 영미권 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2021)를 보면 미루어 알 수 있다. <X 파일>의 배우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자신을 연기하며 특별 출연한 에피소드에서 베케트의 이름은 예기치 않게 등장한다. 유명 배우인 듀코브니는 교수직를 얻기 위해 오래전에 쓰다만 박사논문을 유물처럼 발굴하는데 그것이 바로 베케트에 관한 논문이다. 이는 예일대 영문학과 박사학위를 밟던 듀코브니의 실제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업데이트되지 않은 교수들에게 관대한 제스처를 보이던 학과장 김지윤(산드라 오)은 듀코브니와 그의 화석과도 같은 관심사에 대해서만은 유독 매몰차다. 초서를 향한 조앤(홀랜드 테일러)의 오랜 애정이 ‘힙한’ 것으로 재발견되었던 것과는 달리 베케트는 듀코브니와 함께 유행이 지난 이름이 되어 조용히 퇴장한다. <베킷>은 마치 고대 유적지 근처를 탐사하는 듯한 영화다. 두 연인이 누운 침대 곁에 놓인 메모에는 ‘신탁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도무지 그 맥락을 짐작할 수 없는 글이 적혀 있다. 도망자 베킷이 몸을 숨기거나 달아나는 장면에서 그를 든든히 지켜주던 바위산은 현지 로케이션이 비현실적인 무대 혹은 하나의 캐릭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봉하는 부부와 사냥꾼 등 베킷이 만난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고전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라고 상상하게 한다. 영화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배경으로 장소를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장소를 먼저 캐스팅한 뒤에 그 공간을 잘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누군가가 끊임없이 걸어서 이동하는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베킷은 추격전 도중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하는데, 이때 주로 공격당하는 부위는 손과 팔이다. 끊임없이 도망가야 하는 그의 운명을 알려주듯 어떤 상황에서도 다리만은 별다른 상처 없이 멀쩡하게 남겨진다. 주로 손 부위에 상처가 집중된 상황은 그에게서 운전대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손의 한계로 인해 그는 탈 것으로 이동하는 대신 두 발로 걷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 트렁크에 숨은 채 이동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딱 한 번 오토바이를 빼앗으려 하지만, 매몰차게 밀린다. (영화에서 누군가의 탈 것을 빼앗는 것쯤은 절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카체이싱 혹은 공중전 같은 속도에 바탕을 둔 추격전이 대세인 상황에서 두 다리로, 그것도 때론 손이 포박된 채 어설프게 뛰는 도망자를 보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베킷>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그리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 데는 추격전이라는 장르적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탓이 크다. 여행 중 불미스러운 사고로 연인을 잃은 뒤 이유도 모른 채 쫓기는 신세가 된 상황은 추격전의 전형적인 세팅이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관객이 기대하는 바로부터 멀리 도망친다. 어쩌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는 것이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아니었을까 싶다. 안락한 오락 영화를 바랐을 관객에게 영화는 어딘가 애매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넷플릭스 영화라는 모종의 바운더리 안에서 그렇고 그런 영화가 되는 대신 이상한 실패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베킷>은 추격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장르 영화는 아닌 조금 이상한 영화다. 이상함은 첫 장면부터 감지된다. 영화 초반 드러나는 베킷과 그의 연인 에이프릴의 여행은 어딘가 스산하다. 이 드넓은 여행지에 마치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주변에는 다른 여행객이 있다. 그러나 타인과의 접촉은 일어나지 않는다. 연인은 여행객들을 몰래 관찰하면서 그들의 이름과 관계를 추측하는 둘만의 게임을 벌인다. 나는 필시 여행객과 접촉해 추측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뒤따를 것이라 예상했다. 아니었다. 두 사람은 사진을 찍은 뒤 그곳을 빠져나온다. (후에 혼자 남은 베킷이 사람들과 접촉하는 모습은 초반의 에이프릴과 함께 한 게임 장면을 연상시킨다. 베킷은 이제 어떤 사람이 믿을만한지를 혼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식당에서도 손님은 둘 뿐이다. 가게 주인이 스치듯 카메라에 포착되긴 하지만 그와 대화하거나 접촉하는 장면은 배제된다. 식당 TV에는 훗날 베킷이 연루될 유력 정치인의 조카 실종 사건과 관련한 뉴스가 보도된다. 이것은 관객을 위한 복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베킷이 사건에 연루되는 과정에 운명과도 같은 힘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킷은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자신을 좇던 그리스 경찰에게 발각된다. 이때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끈으로 묶인 상태가 된 베킷은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뒤에도 얼마간은 그 상태로 다닌다. 그의 손은 기도하는 손 모양을 연상시킨다. 그의 여정이 자신의 과오로 죽은 에이프릴을 향한 일종의 길고 긴 고행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작이다. 동시에 기도하는 손은 아테네에서 대규모 집회가 일어나는 장소를 가리킨다. 이처럼 개인의 슬픔과 애도는 정치적인 상황으로 곧장 연결된다. 베킷이 사람들에게 떠밀려 데모하는 군중과 합류하는 장면은 <모던 타임즈>(1936)에서 찰리 채플린이 얼떨결에 시위대의 선봉에 서는 장면과 겹친다. 찰리의 우연한 시위는 그가 파업과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기에 절묘하다. 베킷의 여정 역시 블랙 코미디로 만들어졌다면 지금보다 납득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베킷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살아남았고 결국에는 정해진 운명처럼 유력 정치인의 납치된 조카를 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운명은 우연의 다른 말이다. <베킷>은 지나치게 우연적이며, 다른 말로는 지나치게 운명적이다. 다시 베킷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본다. 퍼스트 네임도, 라스트 네임도, 그렇다고 애칭도 아닌 하나의 이름으로 온전한 것은 신의 이름이다. 제우스, 헤라, 아테네, 헤르메스... 이 목록에 베킷을 넣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베킷인가.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그 자체로 오지 않는 신을 지칭한다. 고도를 기다리던 두 주인공은 고고와 디디라는 다른 이름이 있는데, 두 이름을 합치면 곧 신(god)이 된다. 베킷 혹은 베케트가 신의 이름이 된다면 그 이름의 의미는 아마도 ‘어떻게든 버티는 자’일 것이다.
일상의 이미지들의 배열이 숨기고 있는 의미들의 연상 작용이란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욱 강력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개인 파산을 지시하는 이미지와 소리를 일상으로부터 추출하여 조합한 영화로, 몽타주 형식 자체가 사회학적 고찰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일종의 사유 방식을 촉구하는 이른바 ‘지적 영화’의 카테고리에 분류될만한 영화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충격의 이미지란 지하철 CCTV로 관찰된 한 남자의 ‘편집된’ 죽음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로부터 단절된 밝은 지상을 스케치하며 정신적 쇼크가 사라진 일상에서 운동하는 노동의 이미지와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청취자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엮는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이라는 구조물을 더욱 단단하게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 카메라는 집 앞 우편함에 꽂힌 지로 용지를 꺼내보는 한 여자의 이미지로부터 개인 파산이라는 사건으로 들어선다. 이러한 연상의 과정은 조금도 극적인 것이 아니다. 전기가 끊긴 집에 들어선 듯 어두운 어느 낡은 방 안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재현된다. 태양빛으로 볼 수 있었던 가구에 붙은 빨간 딱지, 한 남자의 뒷모습, 어둔 방 이미지에 입혀진 법원의 판결문 낭독 목소리와 이에 느슨하게 기대어 있는 가족의 홈 비디오 장면은 서로간의 이면성을 표출하며 밀어낸다. 한 공간에서 벌어진 개인의 사건을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상상적으로 기록함으로 사건의 부조리함을 통찰하는 빼어난 형식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태양 아래서 움직이는 도시인들의 이미지와 그 인상으로부터 현대인의 사망 원인을 진단하는 생태학적 접근이 일부 시도되지만, 이 모든 사망원인을 압도하는 것은 사회적 자살의 수치이다. 이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인터뷰 화면, 파산자들의 입과 눈의 몽타주, 그 사이에 멀찍이 떨어져서 찍은 재계 관계자들의 만찬 장면과 격한 클로즈업으로 담은 대부업체 담당자의 인터뷰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사측의 처우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낙관론에 기대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인터뷰 화면은 뷰 파인더 화면과 출력된 화면으로 나뉘어 조정되는 과정을 연출한다. 그것은 보여 지면서 관찰되고, 지속되면서 편집된다. 이것은 개인 파산자들이 사정을 고백하는 입과 눈의 몽타주로 이어지는데, 그 입과 눈은 앞의 화면 조정 과정과 함께 문제적으로 인식된다. 무엇을 듣고 볼 것인가에 대한 고찰인 셈이다. 내용인즉슨, 이들은 아무것도 고발하지 않으며 자신의 무력함을 상대적 만족과 위로라는 일상적 감정선 안에서 해결하려 할 뿐이다. 이제 인터뷰를 담은 화면 구성의 형식이 이들의 ‘고백’을 역으로 ‘고발’한다. 이어 영화는 시간상의 비약을 한다. 가족 찾기 방송과 개인 파산을 상담해주는 TV 프로그램엔 잔인한 운명에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 세월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무력감에 젖은 인물들이 그득하다. 이어 훌쩍 돌아간 시간상에서 대한뉴스의 자료화면( 김경만 감독의 것)이 인서트 되는데, 그 시간은 국가의 감시와 통제 아래 생산력 증강에 힘쓰는 노동자-기계들의 ‘모던 타임즈’다. 시청역 광장이라는 상징적 장소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세대들이 주축이 된 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환호성과 투쟁 중이던 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흐느낌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의 광경, 이어 투신자살이 벌어진 지하철 플랫폼의 CCTV 감시망 속에 보이는 밀려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초조한 표정들 사이에서 읽히는 맥락이란 역사의 주체의식이 사라진 객체들의 체화된 제스처 같은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한정된 공간 하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이미지들을 잘라내어 엄밀한 시간과 의미상의 충돌 몽타주로 시각화하고 시간 여행이라는 상상력으로 비약함으로 현재 우리들에게 체화된 내성물질의 위험성을 대범하게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