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가 왜 울어
- 감독
- 김효천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김희라, 김지미, 박암, 유미, 최불암, 주증녀, 김정훈, 조춘, 박동룡, 최성규, 김영인, 이용, 김웅, 이영호
서울 소재 극장인 단성사에서 1920~30년대 조선인을 대상으로 발행한 극장 소식지 《단성주보》 (제297호 / 1929. 1. 26.) 다시 만난 세계: 식민지 조선의 극장문화 이야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간하는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를 바탕으로 역사의 지층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와 행간 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재조명합니다. 환한 조명이 빛나고, 한껏 치장한 배우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모두에게 주목받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눈부신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우리는 종종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무대와 은막의 ‘스타’들이 내ᄈᆕᆷ던 빛은 정작 객석의 조명이 모두 꺼진 순간, 즉, 광막한 어둠이 그들을 온전히 감싼 후에야 발현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예술가가 늘 ‘꽃길’만 걸을 수 없다는 점이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식민지 조선에서 배우로 사는 일은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일과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인이 되려면 먼저 “밥 굶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는 이규환 감독의 자조섞인 고백처럼, 배우들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경제적 곤궁함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처지는 최소한의 예술적 자율성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본과 필름 검열은 물론이고, 현장검열에 나선 임석경관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배우와 변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는데,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불온한 언사로 낙인찍히면 꼼짝없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던 일도 다반사였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배우의 삶을 동경하여 신문사 질의응답란에 ‘배우 되는 법’을 문의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되돌아온 답변은 대개 헛된 꿈을 깨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식의 충고였다. 그만큼 배우를 둘러싼 전망들은 열악하고 어두컴컴했다. 먹고 사는 일과 직결된 현실적 문제 못지않게 식민지 조선의 배우들을 괴롭혔던 것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었다. 급격하게 밀려들어온 문명의 산물들을 받아들이며 세상은 빠르게 개화되었지만, 광대를 천시해왔던 해묵은 인습만큼은 쉽게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기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결심한 이들은 집안의 필사적인 반대에 부딪혀 아예 가출하는 일이 빈번했고, 여배우들은 화류계의 기생과 동일시되기 일쑤였다. 인간이 타자의 시각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존재라고 할 때, 식민지 조선의 배우들은 자기비하에 가까운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우리 영화 사상 최초의 풍자적 희극영화 < 멍텅구리 >(이필우, 1926) 중 배우 이원규 , 김소진 등 반면, 배우들이 관객들과 만나던 장소인 극장은 새로운 공론장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극장의 공리성에 주목하는 시각은 ‘희대’가 설치되고 그 운영을 관장하던 ‘협률사’가 설립된 1900년대 초반부터 드러난다. *주1 최초의 실내극장이자 상설극장의 출현 이래 재래의 ‘구경꾼’들은 ‘관객’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때 극장을 출입하기 위해 요청되었던 입장료는 구경꾼의 무제한적 접근을 차단하는 요인이었지만 동시에 이것은 일정한 입장료만 지불하면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극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했다. *주2 극장은 관객의 문식력에 따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 감각을 총체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힘입어 메시지의 전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곳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관객의 학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든 관객들은 극장의 파급력을 방증하고 있었고, 극장의 공리적 가치에 주목한 이들은 바람직한 극장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오늘날 ‘ 연극개량론 ’으로 불리는 대한제국기의 극장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즉, 친일적인 관점에서 문명개화를 내세웠던 이들은 일본의 신파극을 조선에 이입하려는 방식으로 ‘연극개량’을 강조했고, 반대로 ‘애국계몽’적 관점을 견지하던 이들은 연극이 저항적 민족성을 형상화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연극개량론’은 극장문화의 가치를 철저하게 사회적 공리성의 틀로 해석하면서 당대의 배우들에게 ‘계몽’과 ‘교화’라는 과도한 책무를 부과해 왔다. 결과적으로 식민지기의 배우들은 자신들을 천시하는 사회적 시선을 감내하면서도 사회를 교육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인식론적 간극은 연극인들에게 괴리감을 안겨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하나의 변곡점을 형성할 만한 사건이었다. 비록 미완의 혁명에 그쳤지만, 3.1운동은 조선인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킨 대규모 사회운동이었으며, 그 여파는 사회 개조와 변혁의 열망으로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이후 제국은 문화통치를 내세우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지만, 사실 이는 감시의 고도화를 목표한 기만전술에 불과했다. 광장의 정치가 제약당한 상황에서, 극장은 집단화된 조선인을 합법적으로 모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였기에 극장에 대한 공리적 기대는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배우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인정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신파극단 예성좌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윤혁 의 글 “ 신극배우 제군아 ”는 시대적 변화를 체감했던 이의 소회와 감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기에 눈길을 끈다. 1902년 정동에 세워진 협률사 (사진: “ 04. 현장 돋보기 2-일제강점기 이후 ”, 우리역사넷) 우리는 일찍이 인자한 부모와 사랑하는 형제를 이별하고 그리운 고향을 떠나 반도극계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였으며 얼마나 고생을 하였느냐. 아니 사회의 동정을 다소간 얻었느냐? 무엇 동정? 동정이 다 무엇이냐? 어림도 없다. 동정은 그만 두고 그네들이 과거 십년 동안 우리를 대한 태도는 어떠하였느냐? 예술이 무엇인지 극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물론 통틀어 놓고 연극하는 배우라고 하면 덮어놓고 '신광대'라고 하고 저급 인물로 인정하여 가까이 대해 주지 않고 경원(敬遠)하는 주의를 가졌었다. -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 233쪽. 《조선일보》, 1921. 9. 23. , 4면 참으로 무정 세상이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석금 영웅이나 성현이라는 사람들의 역사를 보자. 고통과 고독이 없이 영웅이 된 자가 있는가.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지금으로부터는 낙원의 꿈을 꿀 기회가 돌아왔다. 보아라. 저 굉장한 건축물을-다시 보아라. 소위 유식계급에서 새로 나오는 저 신극단 을 -이렇게 극장이 생기고 고상한 극단이 봉기하는 것은 실로 치하할 만한 일이다.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234쪽. 《조선일보》, 1921. 9. 23., 4면 우리는 오직 이때에 쿡 찌르는 것 같은 감상으로 고치고 깨달아 분투하고 노력함이 없을진대 과거 십년간 노력과 재래에 우리의 관객은 모두 새로 나오는 신극단 에게 빼앗길 것이요 종래야 극장다운 극장에는 들어가 볼 수도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찌 맹연히 몸을 멈추고 있을소냐. 모쪼록 이를 갈고 어떻게 해서든지 분투 하고 노력 하여 참혹한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제군과 더불어 같이 힘쓰고 더욱 더욱 매진하고자 이렇듯 임리한 붓을 들었으니 *임리한: 흠뻑 젖어 뚝뚝 떨어지는 모양 -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1921~1922』, 235쪽. 《조선일보》, 1921. 9. 25. , 4면 윤혁은 자못 격정적인 어조로 ‘신극배우 제군’을 호명한다. 비록 그가 자신과 동료 배우들을 ‘신극배우’로 칭하기는 했지만 여기서 ‘신극’이란 ‘구극(전통연희)’에 대응되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기에 이 글은 신파극이 성행하던 기성 연극계에 보내는 전언이라 보는 편이 온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윤혁은 동료 배우들에게 ‘분투’와 ‘노력’을 당부하는가? 주목할 것은 그가 “ ᄉᆡ로 나오ᄂᆞᆫ 신극단 (새로 나오는 신극단)”의 활약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글의 발표 시점인 1921년 9월은 동우회순회연극단의 공연이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직후였다. 동경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는 재일본 노동자와 학생들을 돕기 위해 조직된 동우회의 의뢰를 받아 순회연극단을 조직하게 되었고, 방학 기간을 이용해 전 조선을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나간 바 있다. 관객들은 기존 연극과 차별화되었던 주제와 형식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으며, 그 반응은 기성 연극인들에게 분명한 위협으로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그리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해 봄의 담론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신파극-신극’ 논쟁이 가로놓여 있었다. 논쟁을 주도한 현철은 신파극을 포함한 조선의 연극 전통을 모두 부정하며, ‘신극’의 요건들을 제시한 바 있는데, 그 실체가 동우회순회연극단의 공연을 통해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동아일보의 전폭적 후원을 받고 있었던 동우회순회연극단 공연의 여파는 저널리즘을 통해 빠르게 확대 재생산될 수 있었다. 토월회 공연 관련 기사 지면 (사진: “ 토월회의연극일막 ”, 《조선일보》, 1923. 7. 6., 3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윤혁에게 분명한 위기의식을 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동우회순회연극단의 사례를 자극제 삼아 동료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신파극-신극’ 논쟁 당시 신파극계를 대표하던 이기세가 보여 준 수세적 입장에서 한발 나아간 태도라 할 수 있다. 즉, 윤혁의 초점은 그가 느낀 ‘감격’을 이야기하고 ‘각성’의 의지를 표면화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신광대”라는 표현이 함축하듯 오랜 기간 동안 모멸적 시각을 견뎌야 했던 그에게 있어 새로이 부각된 신극 집단은 배우에 대한 사회 전반의 시각 전환을 예증하는 징표로 인식되었다. 이제 그는 광대에게 베푸는 값싼 동정이 아닌 예술의 담당자에게 응당 부여되어야 할 존중을 욕망하기에 이른다. 다만, 그가 “낙원의 ᄭᅮᆷ”이라 이야기했던 기회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윤혁이 경계했던 것과 같이, 재래의 배우들은 부단한 자기갱신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언제든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인정투쟁의 장에 진입하게 된 배우들은 관객에게,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피부에 고이던 임리(淋漓)한 어둠을 잉크로 삼아 새로운 연대기를 써나가기 시작한다. *** 주1. 조영규는 협률사가 일종의 연희회사였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협률사 자체를 극장으로 보고 ‘최초의 관립극장’이라거나 ‘국립극장’이라 표현했던 기존의 학술적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조영규, 『바로잡는 협률사와 원각사』, 민속원, 2008, 95쪽.) 주2. 박노현, 「극장의 탄생」, 『한국극예술연구』 19, 한국극예술학회, 2004. 이광욱(극장문화사 연구자) l 읽고 생각하며, 말하고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과거의 기록을 뒤적이고 오늘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미래를 고민한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조교수(동화 한국어문화학과), 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 『드라마, 일상성의 미학』(2024) 공저, 「카프 연극대중화론의 전개와 송영 풍자극의 매체미학」(2018), 「도달한 임계점과 보존된 미래 – 발성영화의 정착과 경성 소재 조선인 극장의 연쇄 반응」(2021), 「표류하는 조선영화 : <임자 업는 나루배>에서 <정춘삼>으로 – 최초의 영화 판권 소송과 식민지 조선영화 시장의 추이」(2022) 집필.
열여덟 살 소년 한슬기는 남산순환로 통행 매표소 동전함을 털다 걸려 1년 6개월 형을 언도받는다. 카메라는 비좁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는 듯 한슬기가 수감된 소년원의 내부를 관음적인 앵글로 비추고 있다. 정해진 시나리오 없음, 정해진 배우 없음, 정해진 카메라 없음, 정해진 미술 없음, 정해진 음악 없음, 정해진 편집 없음, 정해진 거 다 없음, 이라는 자멸적 어조의 자막이 순서에 의거하여 나타나고 인디 밴드 ‘삐삐롱스타킹’이 부르는 노래 ‘나쁜 영화’가 울려 퍼진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보컬 이윤정의 울부짖는 듯한 보이스가 “책상 위에 수많은 아주 좋은 영화가/ 잠을 자고 있는데 식탁 밑엔 수많은/나쁜 영화... (좋은) 영화 (나쁜) 영화 (좋은) 100편 (나쁜) 1편/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로 이어지는 가사를 통해내는 동안 아이들은 어두컴컴한 기차 안에서 무리를 지어 본드와 가스를 불고 갈피를 잃은 저들의 내면적 정황이 ‘환각 재현’이라는 제목의 키치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재생된다. 다음 쇼트에서 이어지는 한 장의 영정사진, 가스와 본드를 과다 흡입한 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장에서 지루해진 아이들이 춤을 춘다. 순간 나쁜 조감독의 나레이션이 나쁜 감독을 꼬시기로 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나쁜 조감독이 찍은 단편영화의 러프컷인가? 시험에 든 나쁜 감독. 나쁜 조감독의 꾐에 넘어간 나쁜 감독은 생각나는 대로 사는 아이들에 관한 생각나는 대로 찍는 영화를 시작한다. 나쁜 배우들을 구하는 광고를 통해 모인 아이들은 그들이 쓴 짧은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 찍는다. 상술(上述)한 < 나쁜 영화 >(1997)의 도입부는 서울의 10대 청소년들과 그들의 무모하고 환멸에 찬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이야기의 개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서정적이고 영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뤘던 장선우의 이전 영화들과 달리 <나쁜 영화>는 길을 잃은 아이들처럼 거칠다. <제목이 없는 영원한 나쁜 영화>(Timeless, Bottomless Bad Movie)라고 하는 영문 제목이 암시하는 바처럼 <나쁜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구조화되지 않은 특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기성 영화의 기준과 규칙, 문법을 따를 생각이 없음을 선언한다. 항상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던 감독 장선우는 이제 나쁜 영화를 만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그 결과는 놀랍다. 자학과 폭력, 섹스, 환각, 범죄의 만화경을 묘사하는 이 영화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10대 아이들이 쓴 대본을 재연하면서, 때로는 술 취한 거리의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특정 장면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삽입하는 예술적 만용으로, 일부는 35mm, 다른 일부는 16mm 내지는 슈퍼 8미리로 촬영하였다. 그러나 영화는 경계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경계를 지우가 위해 다양한 출처의 이야기와 장르, 형식, 캐릭터를 비빈다. 영화의 1/4 지점에서 서사는 기성의 논리와 계율을 거부하는 10대들의 삶에서 자본주의적인 체제의 바깥에 있기를 선택한 홈리스의 삶으로 건너간다.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를 강타한 1997년 한국의 경제적 투쟁이 버려진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 장선우의 방식은 틀에 박힌 사회에 풍요에 저항하는 거리의 방랑자들에 대한 사실과 거짓의 앙상블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거친 젊은이들, 안전하게 부유한 삶을 좇는 체제를 회의하는 홈리스들의 정신적 풍경을 기린다. 장선우는 새와 레드변, 감자, 이쁜이, 아이떡 따위의 유치한 별명으로 불리는 10대 등장인물들이 지루함의 공백을 범죄, 학대, 장난, 폭력 및 섹스로 채우려고 하는 맹목적인 행동들을 스토리로 만들어 연기하도록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서울역 주변을 어슬렁대는 홈리스들의 일상과 10대들의 존재 양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체제로부터 버림을 당한 이들의 무모한 욕망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는 것만이 저들의 공통점일까? 10대 청소년들과 홈리스들 사이의 접점을 상상하게 하면서 카메라는 즉흥적인 퍼포먼스와 느슨한 플롯에 의해 사전에 설계하지 않았던 의미가 발발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원초적인 분노, 평온한 포기, 특정한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경고를 무시하고 사는 무정부주의적인 삶의 가치를 찬미하는 장선우의 예술적 자의식은 도전적이다. 형식적으로 <나쁜 영화>는 유사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로 거리의 유목민들을 묘사하는 픽션 영화이다. 시네마베리테 양식으로 촬영되었지만 재연 에피소드와 현실, 구성된 이벤트 사이를 오가며 현실과 무대 사이의 경계를 흐리기 위해 애쓴다. 계획과 우연을 병합한 사이비 다큐멘터리 형식은 영화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한다. 카메라를 든 영화 스태프가 길바닥에 주저앉은 한 소년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자. 이제부터 카메라를 든 사람과 붐 마이크가 화면 안으로 들이닥친다. 여기서 카메라는 스스로 참여적이 되는 동시에 촬영 대상의 개입을 촉발하는 촉매가 된다. 영화적 진실을 생산하는 순간처럼 의도된 그 장면에서 실제적인 세계에 속한 자연인은 허구적 스토리가 요구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실재하는 존재와 대상에게 부여되는 역할이 중첩되어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하기 힘든 영화적 실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연출된 무수히 많은 장면들은 상당한 정도의 혼란을 유발한다. 카오스는 캐릭터들의 재현 방식과 그들의 행동 뿐 아니라 운동의 방향에서도 발생한다. 때때로 등장인물들은 의도적으로 화면서 속도를 덧붙이면서 골목길을 질주하거나 추적자들의 추궁을 피하기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섹스와 성적인 방종은 자유로운 행동 양식의 소여(所與)인 것처럼 변덕스러운 스타일로 전달되고 목표나 의도, 지향을 버린 말과 행위, 결과가 수반된다.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습격하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 태도와 유머, 냉소를 시전하는 특성은 어떤 한국영화도 도달하지 못했던 미학적 혁신의 지점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실제 영상과 가공된 재연의 흐릿한 경계가 명확해지는 장면 중 하나는 송강호와 안내상, 기주봉, 이문식 등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홈리스 분장을 하고 실제 홈리스들과 섞여 들어가는 장면일 것이다. 찬송가를 부르는 거리의 전도자들 사이로 슬금슬금 이동하여 능청스럽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송강호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지우는 전략을 육체적 제스쳐를 통해 몸소 실행한다. 기주봉은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는 서울역의 홈리스가 되어 현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진짜 행려들과 3개월 간 합숙을 한 안내상은 놀라운 친화력으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10대 아이들, 홈리스들과 달리 이 진짜를 연기하는 가짜들은 오랜 기간 훈련한 스킬을 발휘하여 능숙하게 현실에 자리를 잡는다. 감독과 스태프, 감독과 배우, 배우와 일반인, 진짜와 가짜, 선과 악, 미와 추, 현실과 허구 따위의 기준들을 깔아뭉개는 장선우의 방임적 태도는 야심적이다. 현재 시점에서 회고해 보건대 <나쁜 영화>의 위상은 시네마베리테와 에세이 필름의 언저리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대상들의 세계로 들어가 의도된 구성을 포기하고 그들에 의해 영화가 생성되는 과정을 조직한다. 젊음의 기쁨과 발견의 시기를 거리에서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하면서 장선우는 미학적 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체의 영화적 형식을 제거한 상태로 나아간다. 진실(과 진실한 사람)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를 말하고 그 과정에서 매체의 성질을 다시 설정하며, 가치판단의 기준을 재정의하도록 하는 불온한 의도는 시네마의 역량을 시험한다. 도전적이지만 의도적으로 한계를 두지 않는 이 이야기는 체제에 저항하는 존재들의 삶과 예술적 반항의 태도를 일치시킨 현대 한국영화의 시금석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2001년 | 씨네월드 감독: 박철관 | 원안: 이명석 | 각본: 박규태 | 제작: 이준익 | 기획: 조철현 | 촬영: 박희주 | 미술: 오상만 | 음악: 박진석 신호섭 CAST 재규: 박신양 | 청명: 정진영 | 불곰: 박상면 | 날치: 강성진 | 왕구라: 김수로 | 막내: 홍경인 | 노스님: 김인문 | 현각: 이원종 | 대봉: 이문식 | 명천: 류승수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장르는 이른바 ‘조폭 코미디’였습니다. < 조폭 마누라 >(조진규, 2001)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 두사부일체 >(윤제균, 2001) < 가문의 영광 >(정흥순, 2002)이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급속히 메인 스트림 안에 자리 잡았죠. 평단 일각에선 욕설과 폭력과 자극이 난무하는 이 장르의 관습이 한국영화를 저질화시킨다는 비난이 있었는데요, 일견 타당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달마야 놀자>가 그런 영화죠. 한쪽에서 보면 조폭 영화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불교 영화인, 도저히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심오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1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달마야 놀자>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조폭들이 불당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죠. 이때 불상을 닦던 왕구라(김수로)와 막내(홍경인) 사이에서 갑자기 논쟁이 붙죠. 부처는 중국 사람일까, 아니면 인도 사람일까. 불상의 밑바닥을 들춰 본 왕구라는 ‘Made in China’를 확인하는데요, 실수로 불상을 불당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이 사건은 스님과 조폭 사이에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죠. 적에게 쫓겨 고요한 암자에 뛰어든 재규파의 리더 재규 역을 맡은 박신양입니다. 1990년대 말 멜로 주인공으로 이미지를 굳혔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죠. 재규파에 맞서 절을 지키는 청명 스님 역의 정진영입니다. 진짜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할이 잘 어울립니다. 넘버 2인 불곰(박상면)과 넘버 3인 날치(강성진)입니다. 불곰은 큰 덩치의 해병대 출신인데요, 알고 보니 대봉 스님(이문식)의 해병대 후임이었죠. 한편 날치는 이후 속세를 떠나 출가하게 됩니다. 현각 스님(이원종)은 큰 덩치와 엄청난 힘의 소유자입니다. “칼에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이 있습니다. 전 그걸 깨닫는 데 15년이나 걸렸습니다.” 출가 전엔 어떤 일을 했을지, 조금은 짐작 가는 대사입니다. 재규파의 넘버 4인 왕구라(김수로)는 엄청나게 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막내(홍경인)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는데요, 동자승(권오민)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죠. 암자의 여섯 스님들입니다. 왼쪽부터 노스님(김인문), 동자승, 청명 스님, 현각 스님, 대봉 스님 그리고 청명 스님(류승수)입니다. 청명 스님은 묵언 수행 중인데요, 이 설정이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촬영 장소는 김해 신어산 기슭에 있는 은하사였습니다. 가야국의 수로왕이 세웠다는 사찰이죠. 사실 절에서 촬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다행히 섭외가 되었죠. 개봉 때는 승단에서 단체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요, 상당히 만족하며 영화를 봤다는 후문입니다. 왕구라가 불상을 훼손하는 사고를 저지르는 장면을 대웅전에서 촬영한 후엔, 요사채에서 공양 신 리허설을 했습니다. 사찰에서의 공양, 즉 식사 시간은 엄격한 예절 속에서 조용히 이뤄지는데요, 재규파 다섯 명에겐 낯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노스님의 꾸중을 듣게 됩니다. 스님이 아닙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박철관 감독의 모습입니다.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 간첩 리철진 >(장진, 1999) < 아나키스트 >(유영식, 2000)의 연출부를 거쳤죠. 이후 두 번째 영화 < 미쓰GO >(2012, 박철관)를 연출했습니다. 현장에서 박신양은 쉬는 시간마다 캠코더로 촬영을 했습니다. 불당 안에서 레슬링을 하는 재규파 부하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동자승과 함께 보고 있네요. 정진영은 촬영 기간 동안 아예 은하사에 기거하면서 스님들과 생활했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서 진짜 스님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기죠. 그 모습이 얼마나 리얼했는지, 은하사에 들른 어느 스님에게 혼이 났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데 인사를 하지 않자 정진영 배우를 혼냈던 거죠. 이 영화의 ‘뜬금포’ 같은 존재인 ‘츄리닝맨’ 김영준의 모습입니다. 영화 내내 수맥 탐지용 안테나를 들고 다니죠. 촬영이 끝난 저녁, 불당 아래 공터에선 재규파와 스님들은 족구 게임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할 족구 장면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지만,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실제로 족구 시합을 했습니다. 축구화와 테이프로 동여맨 고무신 등을 신고 열심히 경기를 했는데요, 결국은 재규파가 이겼습니다. ‘불곰’ 박상면의 활약 덕분이었죠. <여인천하> 같은 TV 사극의 아역으로 낯익은 권오민은 <달마야 놀자>에서 동자승 역을 맡았습니다. 첫 영화였지만, 특유의 천진함과 귀여움으로 자칫하면 퍽퍽해질 수 있었던 영화의 정서에 숨통을 틔워 주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