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
- 감독
- 박지윤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김희원, 김다솜, 최재승, 김세연, 김예지, 박서진, 박소랑, 박지원, 신지수, 이수현, 연가향, 윤소정, 정유진, 정혜령, 최예나, 함윤진, 정지영, 문연숙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박: 애니메이션영화제 했었을 때,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 <에반게리온>이나 < 공각기동대 >, 뭐뭐 < 에스카플로네 > 이런 거 했었거든요. 근데 잘 됐었어요. [1] 해당 구술채록문을 읽다 보면,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이라는 말에서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나오기 이전까지 구술에서 단 한 번도 <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안노 히데야키, 1995)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아까 한 이야기’는 인터뷰 사이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구술담당자로서 인터뷰에 참관하면서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이렇게 쉬는 시간에 살짝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당시 구술자에게 <에반게리온>에 대해 물어본 것은, 내가 에바팬이라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갈 것이다. 닫힌 영화, 열린 영화제 사실 광주 ‘ 영화로 세상보기 ’ 운영자였던 박상백 구술(2024년 10월 17일 진행) 이전에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황: 일본영화 같은 경우는, 사실은 광주 기획을 좀 본따고 그랬는데. 광주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그때 돈을 막 많이 벌었더라고요. 한: 재패니메이션으로? 황: 그래서 액정도 바꾸고. 이게 그때 ‘소년 탐정’인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저는 뭐 내용도 아직도 모르는데, ‘야, 저런 매니아층이 또 있구나.’ 그래서. 저희도 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꽤 오더라고요. [2] 대전 ‘ 씨네마떼끄 컬트 ’의 운영자였던 황규석 (2024년 6월 29일 인터뷰 진행)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에반게리온> 상영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사실보다도 ‘저런 매니아층이 있다’라는 깨달음에 있었다. 이러한 관객층을 지금의 관점에서 그냥 ‘오타쿠(オタク)’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이 등장했던 시기만 해도, 국내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뚜렷한 사회적 인식도 없었고, 특정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지지층의 활동이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존재는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구술자가 이들을 ‘저런 매니아층’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어느 정도 오늘날 재패니메이션 ‘오타쿠’에 대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느낌도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후적인 인식을 제외하더라도 평소 이상의 어떤 관객층들이 <에반게리온> 상영 당시 몰려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여기 왔을까? 정: 제 세대뿐만 아니라 바로 윗세대들도, 제 바로 다음 세대들도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 일본영화. … 유학을 가지 않으면 그건 접할 수가 없는 거니까. 사실은 프랑스영화・독일영화에 대한 갈증보다 일본영화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컸어요. [3] 한: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선호하는 영화 통계 같은 거. 조: 있었죠. 한: 아, 있었어요? 조: 네. 일본영화, 뭐 (사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아마 < 러브레터 >. 수입되기 전에. 그리고 피터 잭슨 < 데드 얼라이브 >, < 천상의 피조물 > 이런 게 공식적으로 소개 안 됐었거든요? … 되게 압도적으로 피터 잭슨 영화하고 일본영화하고 미국의 인디영화들, 이런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4] 영화평론가 정성일 과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 의 운영자로 일했던 조영각 은 당시 시네마테크를 찾아오는 관객들은 근본적으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한국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프랑스영화, 독일영화, 미국의 인디영화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이 영화들이 수입자유화와 함께 쏟아지는 미국영화들 속에서 틈새를 찾아 소규모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을 채울 때조차도 들어오지 못했던, 원천적으로 수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영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구는, 그것이 문화적・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시네마테크의 운영자들의 근원적인 고민 역시 있었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 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료 확보와 상영 활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러브레터>는 처음에 어느 쪽에서 구하셨어요? 곽: (목소리를 낮춰서) 어디서 구했을까요? 어디서 구했을까. [5]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조: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회원가입을 해야 돼요. 그게 저희 문턱이었고. 저희는 그렇게 운영해야지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사실 불법이잖아요. 비디오를, 영화를 트는 게 심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저작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원제라는 규정을 만든 거고. … 그런 규칙들이 있어서 내부 결속력은 되게 탄탄했던 반면에 다른 데서 보기에는 “좀 폐쇄적이다” 이런 얘기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6]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적 시네마테크를 통해 극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본다’라는 것이 어쩌면 ‘특권’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음지화된 공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 즉 ‘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라는 비밀(?)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의 소속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통신전용망을 이용해 취미와 관심이 같은 사람 또는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개인용 컴퓨터 통신동호회들이 많이 결성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동호회 회원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특정 주제에 대하여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외에도 전자게시판 기능을 이용, 알리고 싶은 소식을 회원 모두에게 공개하거나 공동 자료실을 만들어 쓰고 있다. - “PC통신 동호인 모임 활발”, 《한겨레》 1990. 8. 14. 8면 기사 “이 영화가 < 미져리 >보다 무섭다는 ‘ PC통신 ’을 보셨습니까?” (《조선일보》 1994. 6. 10. 18면 광고) 1990년대 초 PC통신 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사실 이 새로운 공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정보를 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 ‘이제 그런 영화들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어떤 각인? 취향을 드러내게 되는 거죠. … 팬과 마니아라는 거에 대한 나의 소속감 ? 그게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7] 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영퀴’를 풀면서 소속감을 다져갔다. 이러한 소속감이 커질수록, 각자의 취향은 숨기거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그렇게 자신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며 시네마테크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쉬는 시간을 빌어 구술자 박상백에게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에반게리온>을 상영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본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시기가 “닫힌 시대이기는 했지만 좀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고, 소문만 무성한 그 ‘화제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왜 <에반게리온>에 당시 관객들이 그토록 열광했다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이어 했고, 이에 대해 “<에반게리온>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 당시 시네필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지금까지도 말도 많고 해석도 다양한, 참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세기말 관객들의 관심이 상당 부분 이 ‘해석놀이’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반게리온>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구술자 송정환은 평택의 ‘ 시네마드리밍 ’에서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ポンポコ) >(다카하타 이사오, 1994)을 상영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왔고, 특히나 평택시민아카데미로 공부를 하러 오던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재미있어했으며, 이에 같은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끼리 상영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함께 감상을 했던 일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8] 누가 뭐래도 지브리 최고 남주는 ‘ 아시타카 ’다. (필자 개인 의견임) 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쪽으로 이끌고 갔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화제가 아니면 일반 관객에게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시네마테크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배급망(전국씨네마떼끄연합은 1997년 결성되었다)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의 작품을 모아 순회상영을 하거나 장편 사이에 단편 작품들을 끼워 넣어 함께 상영하는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박: 그때 해외에서 들어온 독립영화하고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을 붙여 가지고 긴 독립영화, 해외 독립영화 장편에 앞서서 마치 인트로를 열듯이,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그다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딱 이렇게 된다든가, 데이비드 린치의 < 이레이저 헤드 >를 상영하는 데 앞서서 나기용 감독의 단편이 상영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시도들도 있었고. 그리고 독립영화협회하고도 좀 같이하는 활동들이 있었고.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거기하고 저희랑 같이 해서 상영회를 조그맣게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이 더러 있었죠. [9] 손: 저기 문화학교 서울인가, 정말 하꼬방 같은 그런 극장에서. 기억나네. 완전히 다락방 같은 극장이었는데, 거기서 < 생존 > 틀고 이랬을 때 무렵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교류를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저는 모션&픽쳐에 있으면서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이런 쪽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가 되기 시작한 거죠. … 자체 영화제가 이런 때 서울에 있는 작품들 가져올 때도 지역 뭐 같이 해서 틀기도 하고. 그러면서 교류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하던 분들이 독립영화협회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 거죠, 대구도 . 그래 가지고 대구에서도 원승환 이라는 친구하고 이렇게 해서 협회를 만들어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 그렇게 이제 모션&픽처하고 독립영화 하는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 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서 ( 대구독립영화협회를 ) 만들게 되었죠. [10] <생존>(손영득, 1997)의 한 장면 물론 < 아키라 >(오토모 가츠히로, 1988)나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1995)를 보러 왔던 관객들, <에반게리온>의 팬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던 관객들이 모두 같은 성격의 관객층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상영회를 보러 왔던 관객들조차도 하나의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 개중에는 정말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오타쿠도, 그저 심도 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시네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워낙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니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네마테크를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보고 싶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작품이 상영되는 곳 , 그런 작품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모일 수 있는 곳, 배급 경로를 찾지 못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으로서 시네마테크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관객층들이 2000년대 초반, 흔히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라고 이야기되는 시기를 불러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킹덤>의 팬덤 1990년대 가장 ‘힙한’ 공간이었던 이 민간 시네마테크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결론을 대신하여 2024년 주제사에서 가장 핫했던 작품 < 킹덤(Riget)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4)과 < 킹덤 2(Riget II)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7)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두 작품의 상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시네마테크의 관객층이 갖는 응집력의 폭발 인 동시에 이들이 주류의 문화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 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로, 부천의 판타스틱영화제・서울여성영화제・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SICAFF) 그리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제 들은 영화팬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영화제는 ‘합법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제공했고 관객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놀았다. 그리고 영화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신문 기사나 PC통신 동호회 등등을 통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후기는 전해졌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열기. <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무려 4시간 반짜리 영화 <킹덤>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달 30일 자정에 열린 첫 상영에는 4백여 석 극장에 2천여 명이 몰려 급히 다른 극장을 잡아 시차를 두고 두 곳에서 상영했으며 그러고도 수백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시네마 부천, 9만 관객 갈채”, 《동아일보》 1997. 9. 6. 26면 기사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킹덤>과 심야영화 의 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킹덤>과 심야상영을 찾던 관객 안에는 좋은 작품을 찾아 헤매는 시네필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심야상영 문화를 즐기고 그 열기에 섞이고 싶은 젊은이들도 모여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심야시사회로 일반화되는 추세.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예술영화의 재상영 기회 로도 그 몫을 한다. 심야상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일반영화 한 편 값으로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IMF형 문화상품. 단순한 영화관람에만 그치지 않고 젊음과 영화를 매개로 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것도 한 이유. 여대생 박진아 양(22)은 “영화관에 있으면 한배에 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전율과 긴장, 공포와 웃음으로 밤을 지샌 뒤 인적없는 새벽거리로 나설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 “값싸고 젊음・마니아 상징에 만원사례, 심야상영 신세대문화로 뿌리”, 《경향신문》 1998. 5. 29. 22면 기사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전파가 더딜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도 뒤늦게 <킹덤>과 심야상영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서의 재상영을 찾았다. 박상백은 “전라도의 모든,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다 왔던 것 같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이런 엄청난 관객 동원은 기존 시네마테크를 찾던 시네필들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박: 그때 부천영화에서 이미 상영을 했었고, 필름으로. 저도 그때 가서 봤고. 열기를 봤었고. 자연스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비디오테이프로 그거를 작업해서 돌았었어요 . 그래서 그거를 가져다가 이제 상영을 한 건데. … 심야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또 사람들은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이렇게 융합이 돼 가지고 아마 그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오시게 된 단초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잘되니까 다른 시네마테크에서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 [11] 원: 그중에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킹덤>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가 97년도 부천영화제에서 매진이 되고, 그해 12월에 동숭씨네마텍에서 개봉을 했는데, 대구에는 이 영화가 내려올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죠. 그래서 2월쯤에 그 영화만 가지고 상영회를 했어요. 근데 어느날 배급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가 그 영화 권리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데 무단으로 틀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재산상 손해를 이렇게 봤으니까 만나자.” … “그러면 대구에서 <킹덤>이 개봉되는데 홍보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을 주셨는데, … <킹덤>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들하고 다르게 전국 로드쇼를 했던 영화고. 서울 상영이 대박이 터지면서 부산 상영을 했고, 부산에서도 대박이 터지면서 대구로 이제 상영이 옮아온 거고. 그게 12월이었는데 대구가 2월이니까 한 3개월 뒤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홍보가 이미 다 끝났고 지역에서 개봉할 때는 지역 언론사에 별도로 홍보를 해야 되는 필요가 생겼는데. … 또 <킹덤 2> 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지역에 있는 시네클럽들, 시네마테크들하고 홍보를 같이 하자’ 라는 계획을 세웠어요. … 대구에서는 그걸 제가 했던 거고, 광주에는 뭐 광주극장에서 워낙 잘하시니까 그걸 했던 거고. 부산은 뭐 부영극장에서 잘하시니까 그랬던 거고. 대전은 이제 ‘컬트’가 그거를 하게 된 거고. [12]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에서 개최된 ‘킹덤 상영회 포스터’ ※황규석 기증자료 박상백이나 원승환의 말처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킹덤>을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한 시네마테크들도 앞다퉈 <킹덤> 상영회를 추진했고, 그 열기에 동참하고, 함께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며 시네마테크에서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듬해 <킹덤 2>의 상영회도 추진하고자 했지만 <킹덤 2>의 정식 수입사인 KJ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시네마테크의 불법적 상영에 제동을 거는 한편으로, 오히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역에서의 홍보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전국 상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킹덤 2> 역시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제 시네마테크들의 입장에서는 합법적 상영 공간에 자신들의 역할을 내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일부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멀티플렉스에 자리를 빼앗긴 소극장이나 각 지역 대표 단관극장들과 손을 잡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거나,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독립예술영화 배급 쪽으로 자리를 옮겨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은밀한, 그래서 더 자유롭고 끈끈했던 관객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지트가 되어준 문화공간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각 지역의 민간 시네마테크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한국영화 산업 내에서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영화문화와 독립・예술영화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KOFA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2024년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트워크’ 에서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 [1]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7~218쪽. [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3권: 이진이・원승환・황규석・강민구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192쪽. [3]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2권: 정성일・이하영・손주연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37~38쪽. [4]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188~189쪽. [5] 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101쪽. [6] 한나리 채록연구, 위의 책, 147~148쪽. [7]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224~226쪽. [8]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95쪽. [9] 이문주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8권: 박보경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69쪽. [10] 유은정・박지윤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21권: 손영득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95~96쪽. [11] 공영민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6~217쪽. [1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142~147쪽.
10년 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센트럴파크를 설립했을 당시, 홍성윤 대표는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다. 1년 정도 해보면 감을 잡을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1년이 지나자 2년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설렘과 걱정, 기대와 의심을 고루 품으며 해를 넘기다 보니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대 중반의 영화학도가 배급사 대표로 성장하는 동안, 센트럴파크 역시 수많은 작품을 만나며 개성과 깊이를 더해갔다. 이번 센트럴파크 10주년 기획전 “오늘이 어제와 마주하는 법”에서 선보이는 10편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찾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떠나간 이의 발자취를 좇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가 하면, 우연한 계기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낸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에 따른 결과는 제각각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최선을 다한다. 안부를 전하고, 응원을 건네고, 도망치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가서 대면하기를 선택한다. 어쩌면 이는 센트럴파크와 홍성윤 대표가 통과해온 10년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어제와 마주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영화에는 지나간 시간을 격려하는 마음과 더불어, 다가올 시간을 향한 환영 또한 담겨 있다. 홍성윤 대표는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법을 궁리한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고 싶어서, 앞으로도 더 많은 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축하한다. 기획전 준비하면서 감회가 새로웠겠다. 언제 이렇게 됐지 싶다. 탈출할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 하나. (웃음) 시작할 당시에는 단편영화 배급사도 적었을 뿐더러 새로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10년을 버티다 보니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센트럴파크 설립 이후 다른 배급사도 여럿 등장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고 나 역시 든든한 동료를 얻었다고 느낀다. 단편영화의 경우에는 권리를 침해당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도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 같이 의논하고 힘을 모을 사람이 늘어나서 다행이다. 센트럴파크 홈페이지 소개에 “가장 젊고 열정적인 한국의 독립영화배급사 중 하나”라고 썼더라. 10년을 보내는 동안 젊음과 열정에 관해 곱씹는 순간이 있었을 거 같은데. 6년 전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 처음 나가면서 썼던 문구다. 이제 마냥 젊다고만은 할 수 없을 거 같다. 다만 얼마나 경력을 쌓고 인지도가 올라가든 초심을 잃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대규모 자본력을 갖춰서 창작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닌데, 꼰대는 되지는 말아야지. 초심을 지키며 계속해서 친근한 배급사로 남고 싶다. 결국 센트럴파크가 말하는 젊음과 열정은 영화를 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1년에 단편영화 900편 정도를 본다. 늘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보려고 애쓰지만, 사람이다 보니 무뎌지는 순간도 있다. 200편쯤 보고 나면 지칠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딱 나타난다. 그럼 다시 200편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 피로감이나 아쉬움은 없나. 단편을 학생영화라든지 장편을 위한 발판쯤으로 축소하는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말한 것처럼 독립된 창작물로서 매력과 강점을 드러내는 단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창작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창구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개봉 기회조차 없는 단편으로서는 영화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관객 이전에 영화제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영화제는 그해 이슈로 떠오른 사회 문제와 현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높은 확률로 선정하다 보니, 창작자 역시 비슷한 주제를 쫓아가는 듯하다. 그럼에도 자기 세계를 드러내는 참신한 영화는 꾸준히 나온다. 이런 작품이 관객과 만나도록 돕고 싶다. 기획전 프로그래밍 과정은 어땠나. 1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억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과거를 떠올리는 순간도 많았으니까. 영화를 통해 지난 시간과 장면을 한 번쯤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12번째 보조사제>(장재현, 2014) <몸값>(이충현, 2015) <자유연기>(김도영, 2018) 등 소위 말하는 ‘간판’ 작품 대신, 비교적 생소하면서도 주제에 어울리는 작품들로 알차게 꾸렸다. 소개 겸 자랑을 해본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남는 영화들이다. <아지랑이>(박지윤, 2014)는 정서로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하고 촬영도 무척 훌륭하다. 풀샷을 그토록 잘 잡아낸 단편도 드물다. <글리제>(정누리, 2018)는 오래된 전설을 다루는 SF영화다. 엔딩을 마주할 때 굉장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글리제>의 유이든, <복숭아>(심수경, 2018)의 문혜인, <미나>(박우건, 2018)의 심달기처럼 영화에 자신만의 색을 칠하는 배우들도 만나볼 수 있다. <보강촬영>(임현희, 2018)과 <졸업>(한태희, 2017)은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기억이라는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거 같다. 영화는 결국 시간예술이니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테마 중 하나가 시간여행이기도 하고,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간여행적 요소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 미래를 보여줄 수도 있는 게 영화의 매력인 거 같다. 두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말하면서도 끝내 보편적인 감정으로 설득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단순히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기보다는 다각도로 고민을 거쳤다는 게 느껴진다. 어제와 마주하는 오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일과 닿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영화인으로서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숫기가 없는 편이라 먼저 다가가기를 어려워하는데, 영화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영화는 내게 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를 외부와 연결해주는 끈이다. 그러다 보니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날 때 참 힘들더라. 센트럴파크를 시작할 무렵에 만났던 단편영화 일을 하시던 분들도 하나둘씩 흩어졌고, 감독님들 역시 단편이 잘 되면 장편으로 옮겨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만남 자체는 즐겁지만, 때로는 동료가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사실이 힘에 부치기도 한다. 그래서 센트럴파크를 좀 더 튼튼히, 오래 지속하고 싶다. 10년 동안 단편을 배급해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어쨌든 10년째 회사가 굴러가고 있으니 아주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웃음) 머무르기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변함없이 존재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영화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센트럴파크 10주년 기념전: 오늘이 어제와 마주 하는 법] * 상영 링크: https://www.kmdb.or.kr/vod/plan/575 * 예고편 : https://youtu.be/RDrnGR2ihoo * 상영 기간: 2020.10.12.(월)~10.26(월) * 센트럴파크 홈페이지: http://centralparkfilms.co.kr/
수많은 아이들이 < 겨울왕국 >의 ‘Let it Go~’를 흥얼거리던 올해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3D 애니메이션과는 거리가 먼,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이 조용히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을 꼭 봐야 한다고 가는 곳마다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챙겨본 이들도 더러 계시겠지만...) <겨울왕국>의 엘사 목소리를 맡았던 성우 박지윤 씨가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정말 사랑스러운 생쥐 목소리 연기를 한다고도 꼬드겼지만 새겨듣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꼭 언급해보리라 여겼던 이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봄을 맞는 기분이 들었던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다. 이야기는 두 세계에서 벌어진다. 곰들이 사는 지상 세계와 쥐들이 사는 지하 세계. 곰들이 사는 지상 세계에선 아기 곰의 빠진 이빨을 생쥐 요정이 물어간다고 생각한다. 지하 세계의 쥐들은 어린 곰의 이빨을 수집하는 게 중요한 삶의 목적이다. 그래서 쥐들 사이에선 치과의사가 가장 성공한 직업이다. 어린 고아 생쥐 셀레스틴은 화가가 되고 싶지만 치과의사가 되라는 어른들의 압박에 못 이겨 곰 이빨을 수집하러 지상에 올라간다. 하지만 요령 부족으로 어느 곰 가족들에게 들키고, 놀란 그들을 피해 거리 쓰레기통에 숨는다. 그 무렵 연주를 하며 돌아다녔지만 한푼도 벌지 못한 거리의 음악가 곰 어네스트는 배가 고파서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셀레스틴을 발견한다. 만나선 안될 곰과 생쥐의 조우는 두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는다. <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의 원작은 벨기에의 삽화가 겸 동화작가인 가브리엘 뱅상의 <셀레스틴느 이야기>다. 원작의 삽화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만들어진 이 수채화 같은 작품은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12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최고프랑스영화상인 SACD상, 2013년 LA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애니메이션상, 세자르영화제 애니메이션 대상을 수상하였고, 86회 아카데미상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하지만 상을 타지 않았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봤을 것이다. 동화책이 눈앞에 펼쳐진 듯 담백한 그림체는 < 겨울왕국 >처럼 화려한 3D 애니와는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화면의 상당 부분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빈 공간은 앙증맞은 그림과 어울리는 따뜻한 색감,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한 감성이 채워져 있다. 보는 사람이 그 여백에 녹아들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이 함께 녹아있음을 알게 된다. 모두가 성공을 중요시하지만,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게 중요한 건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면서 각자의 꿈을 이루는 것이다. 어네스트의 남산만 한 배 위에서 곤히 잠든 셀레스틴의 모습은 다른 곰과 쥐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두 친구에겐 자연스럽기만 하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은 힘든 일이고 때때로 부끄러움이나 두려움도 엄습할 텐데, 낙천적이고 우직한 곰 어네스트와 재치있고 슬기로운 셀레스틴은 고민을 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극복해간다. 성별, 나이, 종을 초월한 둘의 우정은 실제 인생에서도 이루기 힘든 것들이다. 그래서 더 맑고 투명하고 기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봄이 와서 눈이 녹는 바람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의 은신처가 발견되는 장면, 지하 세계의 쥐들이 이빨로 이룩한 거대 문명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선 보기 힘든 위트로 가득 차 있다. 자고로 애들은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