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설이의 하루
- 감독
- 한수민, 배재영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정민재, 이유건, 이민승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기억에 남는 불안이 있다. < 1917 >(샘 맨데스, 2019)에서 데번셔 연대의 무모한 돌진을 막아낸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야전병원 막사에 당도했을 때, 나는 영화가 쌓아온 서스펜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안에 사로잡혔다. 막사 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 내내 스코필드에게 밀착해 있던 카메라가 거의 유일하게 인물을 놓아두고 홀로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끝내 그 나무 아래서 이야기의 문을 닫는다. 눈을 뜬 남자가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다시 나무 아래서 눈을 감는 이야기. 헛웃음이 나올 만큼 도식적인 수미쌍관 구성은 경탄스러운 카메라 무빙을 한 편의 허탈한 동화로 바꿔놓았다. 극장을 나서며 이렇게 적었다. “대체로 무용(無用)한 것들을 사랑하는 편이다. <1917>은 카메라의 쓸모, 자신의 효용을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것 같아 왠지 안쓰러웠다. 문득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 당시 편협한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1917>은 촬영 방식이 제일 앞자리에 놓인 영화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스스로 밝혔듯 이 영화에서 물리적인 아날로그 롱테이크는 최장 7분 남짓, 나머지는 교묘한 트릭으로 이어 붙인 착시다.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를 위해 서사가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 구성은 기이하리만치 게임에 가까워졌다. 참호에서 트럭으로, 불타는 마을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여정마다 이름난 배우들이 마치 게임 속 NPC처럼 배치되어 병사를 다음 구간으로 안내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서사를 위한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를 위한 서사가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1917>의 연결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 유려한 롱 컨티뉴이티 숏은 전장을 재현하는 대신 관객을 안전한 가상현실로 소환해 버린다. 영화적인 것,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가 역설적으로 영화로부터 멀어지는 기이한 종착지에 다다른 셈이다. 2020년 무렵의 나는 그 어긋남을 두고 ‘영화를 향한 향수병’이란 딱지를 붙였다.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지만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며 앓는 병. 향수병은 애초에 돌아갈 수 없음을 전제로 성립하는 상태이므로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고백한다. 그땐 일말의 허세와 더불어 형식주의자를 향한 결벽 비슷한 감정이 작동했던 것 같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에 유난히 위화감을 느끼는 편이다. 스타일에는 목적과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진 형태가 곧 형식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방향과 결과, 의지와 형태가 어긋난 순간들을 만나면 한참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원래 하고 싶었던 게 뭘까. 시간이 흘러, 정확히는 새로운 세대의 물결을 겪으며 질문의 방향이 슬며시 바뀌는 중이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입에 올리던 ‘영화적인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런 고정불변의 대상이 있긴 한 걸까.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본질적이고 동시에 바보 같은 질문도 없다. 그건 목적지라기보단 그저 지향에 불과하다. 본래 큰 질문에서는 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법이다. 현 시점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영화적인 것’이란 지표에 절대성 따윈 없다는 믿음이다. 아주 협소한 경험에 근거하여, 영화적인 것의 실체는 ‘경험에 근거한 익숙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한 시절의 관습이다. 심지어 이 관습의 수명은 길어야 20~30년, 대체로 한 세대보다 짧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체험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에 완성된 몇몇 형식들을 ‘시네마틱’이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칠게 말해 오늘날 영화적인 것이라며 유통되는 상당수의 기법은 1950년대 이후, 좁게 잡으면 1970~80년대에 유행하거나 영향을 미친 스타일에 가깝다. 이를테면 슬로우 시네마가 롱테이크를 거쳐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1917>의 롱 컨티뉴이티 숏이 증명하고자 한 ‘영화적인 접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도 그저 본인이 만들어온(그리고 지나온) 영화라는 영토에 대한 향수에 잠긴 게 아닐까 싶은 의심. <1917> 중 (사진: IMDb / © Amblin Entertainment, ㈜스마일이엔티, ㈜씨제이이엔엠) 의심을 심화시킨 건 <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2019)이었다.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윤단비 감독의 심경을 상상했다. 이 젊은 창작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윤단비 감독의 영화에는 지난 세기의 끝자락, 그 언저리의 여름이 고여 있다. 2층 양옥집과 낡은 선풍기, 대야에 담긴 수박, 한없이 늘어지는 오후. 흥미로운 건 영화가 재현한 그리움에 정확한 원본이 없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시네필들이 직접 살아보거나 겪어본 적 없는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의 골목을 그리워한다. 요컨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추억하기, 원본 없는 노스텔지어라고 해도 좋겠다. 엉뚱한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보다가 헤어진 적 없는 연인을 그리는 노래들을 떠올렸다. 최신 K팝, J팝을 들으며 애틋한 이별을 앓는 요즘 세대와 마찬가지로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며 아직 겪은 적 없는 사랑을 먼저 배웠다. 그 감정은 가짜인가. 당연히 아니다. 경험의 원본이 없을 뿐, 패턴과 표현 방식을 공유하는 순간 감정은 실제로 발생한다. <남매의 여름밤>의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식 하에서 존재한다는 것처럼. 지정학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리움의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그 여름밤은 감독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지나온 무언가를 자극한다. 직접 겪지 않아도 향수병을 앓을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내게는 작지 않은 균열을 남겼다. <남매의 여름밤> 중 / © 오누필름 최근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유튜버들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 백룸 >(케인 파슨스, 2026)과 < 옵세션 >(커리 바커, 2026)은 흥미롭게도 모두 고전적 문법의 영화다. 10대의 침실에서 태어난 유튜브 영상 <백룸>은 캐릭터도 서사도 없이 노란 방과 형광등 소음의 이미지를 가운데 두고 해석과 재창작을 댓글창과 위키트리에 맡긴 열린 텍스트다. 반면 영화 <백룸>은 오리지널 각본 위에 배우의 얼굴을 세우고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닫힌 이야기다. 배우 중심의 단단한 서사, 처음과 끝이 닫힌 세계. 하지만 정작 케인 파슨스는 <백룸>을 영화화하면서 자신을 스타로 만든 유튜브의 작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니 그럼에도 젊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고 함께 집단체험을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본 인생 공포영화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경험의 확산은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가 극장영화로 융합되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는 경우는 없다.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건 바뀌지 않으며 디졸브 된다. 기성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러하듯 프리 프로덕션 중심의 예술이다. 현장에서 찍는다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실린다. 반면 디지털 미디어는 포스트 프로덕션 중심이다. 렌즈가 포착한 진짜보다 소프트웨어로 빚어낸 진짜를 신뢰한다. <백룸>의 VHS 질감이 아날로그 카메라가 아니라 무료 3D 소프트웨어의 후반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파슨스가 극장에 가져온 것은 유튜브의 문법이 아니라 유튜브의 프로세스였다. 문법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융합.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문법에 집착하지 않았다. 새로움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길을 가릴 수도 있는 법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소프트웨어로 아날로그의 유령을 위조해낸 이 제작 방식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는 우리 시대의 뒤틀린 향수에 대한 완벽한 은유 아닌가. <백룸>의 배경은 1990년, 화면의 질감은 VHS다. 주 관객층인 20~30대는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백룸>의 모방된 질감이 의도와 달리 그들에게 기이한 안락함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백룸>의 리미널 스페이스는 연결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쓸모를 강요받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디지털에는 그리워할 게 참 많다.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는 필터가 유행하고, 멀쩡한 고화질 영상을 VHS 질감으로 되돌리는 레트로 변환이 놀이가 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질감 그 자체가 그리움의 대상이, 마음을 눕힐 안정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남매의 여름밤>으로 대표되는 시네필 세대 창작자들과 본질적인 패턴은 다르지 않다. 사실 이건 봉준호 , 박찬욱 같은 앞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가게와 시네마테크에서 자란 이들에게 영화는 태어나기 전의 시간까지 소급되는 고향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영화라는 고향에서 시간을 초월해 만난다. 심지어 디지털은 이 영토를 무한정 확장해 우리 앞에 소환 중이다. <백룸> 중 / 사진: IMDb( 1 , 2 ) / © A24 <백룸>을 극장에서 본다는 건 시간의 때가 묻은 노란 벽지와 형광등 불빛, 낡은 카펫에서 안식을 찾는 세대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 온 어두운 방에 모여 함께 악몽을 꾸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극장이야말로 현실에서 두 시간 동안 잠시 미끄러져 나가는 이행의 공간,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리미널 스페이스다. 그리하여 출구 없는 방은 무섭고, 동시에 그립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공간이 과잉 연결의 시대를 사는 세대에게는 지옥이면서 동시에 도피처가 되는 셈이다. 무서움과 그리움이 한 몸이라는 이 양가성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추억하는 마음과 함께 한 세대를 극장으로 데려온 힘일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고전적인 영화는 그리워할 대상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럼 그 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향수병에 빠진다, 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향수에 빠진 사람들은 가만히 병을 앓는 대신 온갖 것을 시도한다. 로저 디킨스는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로, 윤단비는 원본 없는 여름밤으로, 파슨스는 위조된 VHS의 유령으로. 어쩌면 새로움은 바로 그 발버둥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도달할 수 없지만 계속 향할 수밖에 없는 욕망. 일치할 수 없음에도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창작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1917>을 향수병이라 명명했을 때 내 감정의 바탕은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얼마든지 추억할 수 있는 시대라면,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병의 조건이 아니라 창작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애잔함보다는 멈추지 않는 도전과 활력을 느낀다. 그 시절 나는 극장을 나선 뒤에도 질척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도 썼다. 어쩌면 그건 시대를 구분하며 벽을 치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건, 매체 간 문법이 섞이면서 공유되는 확장의 순간들이다.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는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 그 그리움은 앓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빚어내는 소리로 들린다. 향수병은 나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불치병은 도리어 불사의 동력이 되기도 하나 보다. 문득 윌 스미스 주연의 < 나는 전설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2007)가 떠오른다. 이것이 절멸의 길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길인지 아직 단언할 순 없다. 내가 서 있는 장소가 구 인류의 땅인지, 신 인류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미 무언가 변했고 부지런히 더듬어가며 뒤따르는 중이다.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송경원(씨네21 편집장) l 영화 논문, 비평, 기자 글쓰기까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리액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한지 15년. 이제야 영화 글쓰기가 나의 직업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2023년 《 씨네21 》 편집장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 영화를 보고, 읽고, 쓴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역임. 『프로듀서』(2019),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2021),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2021, 공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2024) 등 집필.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이외 사진: 필자 제공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에는,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문을 참 두려워했다. “걔 걸레야.” 돌아보면 나는 도덕과 규범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무척 신경 쓰는 학생이었음에도 주변에서 저 말이 들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걸레가 뭐 어때서.’ 창녀가 뭐 어때서. 문란하면 어때서. 난잡하면 어떻다고. 어린 마음에도 뾰족하게 갖고 있던 반감이, 수십 년이 지나 곧 사라질 미아리 텍사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여성들을 궁금하게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목적으로 걸레니 창녀니 하는 사람에게는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단어를 구성하는 속성들에는 그저 끌리고 끌어안고 싶다. 스무 살이 넘어 페미니즘을 접한 뒤 성매매가 얼마나 젠더 폭력이고 여성의 몸을 착취하는지를 배우는 와중에도, 나는 자꾸 성노동론을 찾아 읽게 되고 성노동자라는 존재들이 그냥 있는 그대로 좋았다. 물론 이런 생각들조차 내 머릿속의 관념일 뿐인지라 구체적인 현장에 들어가서는 내려놓아야 했다. 아니, 내려놓으려 했지만 결코 투명해질 수는 없는 나라는 사람의 위치성을 확인해야 했지만. “몰래 오가며 잿더미를 벗겨 낸 한 달, 그 전보다 많이 보았고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도 이해한다고도 말하지 않으련다.” - 김도희, 『하월곡 88』, 79쪽. 미술 작가 김도희는 2015년에 <걸레질>이라는 영상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미아리 텍사스에 들어가 골목에서 만나는 이모들에게 걸레를 빌려서는, 화재가 나고 10년 이상 방치된 건물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바닥에 어지러이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콘크리트 벽이 나올 때까지 벽지를 벗겨 낸다. “빈 거울방은 작은 동작 하나만으로도 내 행위가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간단히 증명해 낸다. 무너진 샹들리에와 녹아내린 의자, 썩어 뒹구는 합판들을 치운 후 겉은 그을고 속엔 붉은 녹이 올라온 거울들을 닦는다.”(같은 책, 20쪽) 나는 그가 걸레질한 건물이 어딘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작가가 그곳에 머물던 때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2025년, 나 역시 그 건물에 있었다. 2025년 1월의 어느 날, 골목의 한쪽 끝인 1구역을 부순다고 했다. 촬영을 하고 싶었다. 새벽부터 골목에서 대기하다가 평소 지나다니며 보았던 방치된 건물의 깨진 유리문 사이로 들어갔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메고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딛자 발밑이 으스러졌다. 나무가 다 삭아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계단 난간을 붙잡고 용을 써서 올라가니 여태껏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깊은 물 아래에 잠긴 도시처럼, 천장 없이 건물 내부의 형태만 남아 있었다. 회색빛의 벽과 바닥. 불에 그을린 벽. 그리고 곳곳에 콘크리트를 뚫고 자란 나무들. 아마 10년 전 김도희 작가가 물에 젖은 걸레를 뿌리에 덮어 주었을 나무들. 죽지 않게 하려고. 나는 철거 현장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꽁꽁 언 옥상을 기다시피 이동했다. 지난 3년간 백 번 이상은 지나다녔을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눈앞에서는 포클레인에 건물이 허술하게 쓸려 나가고 있었다. 한때는 성매매 업소로, 폐업 이후 고양이 집으로, 또 홈리스의 은둔처로도 쓰인 건물들이었다. 그 뒤로 50층짜리 주상 복합 아파트가 보였다. 꼭 같은 건물이 이 골목에 생길 것이다. 카메라를 쥔 손이 금방 얼었다.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마침 골목에서 자주 만나던 고양이가 건너편 옥상의 얼음판을 능숙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마루야!” 내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가 달아나고, 결국 공사 관계자에게 들키고 말았다. “가세요! 찍지 마세요!” 밀어내는 손짓을 하는 그에게 나는 모른 척하며 인사에 화답하듯 손을 흔들었다. 능청스럽게 그럴 수 있었던 건 며칠 전 그 사람과 대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이 골목에서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저도 여기 없어지는 거 마음 안 좋아요.” ○○건설이라 적힌 작업복을 입은 그는 아무래도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은 얼굴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근처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이제는 펜스를 세워야 한다”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사방에서 “우리는 갈 데가 없다”, “쫓아내려면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골목에서 항의하는 미아리 주민들과 경찰, 용역과 연대자 들이 뒤엉켰다. 내가 미아리 텍사스를 드나든 이래 가장 시끄러운 날이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까지 건물 안에서 몰려나와 펜스를 설치하지 못하게 막았다. 구청의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떨어지고 본격적으로 이주를 강요받았지만 몇 년째 떠나지 못하는, 혹은 안 떠나길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이 골목에 마지막까지 남을 여성들. 내가 막연히 궁금해하고 기다렸던 얼굴들. 미아리 텍사스의 업소는 유리방이 아니라 벽면으로 가려진 형태라 바깥에서 내부를 볼 수가 없다. 그 집이 그 집 같다. 진상 손님이 경찰에 신고한다며 자기가 낸 돈을 다시 내놓으라고 협박했다가 현관 이모(호객 행위자)에게 맞고 쫓겨났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대문이 다 닫혀 있어서 자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단다.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고 돈만 뺏겼다고. 듣고 다들 어찌나 웃었던지. 내가 처음 미아리 텍사스에 들어갔던 2021년 말, 라포(rapport)라는 걸 형성해 보겠다고 막 쪄낸 백설기 한 박스를 들고 골목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쪽지도 만들었다. 이러이러한 작업을 하고 싶고, 인터뷰를 원한다고 적었다. 사실 내가 만나고 싶은 건 성노동자인 아가씨들이었는데 문에 노크하기도 전에 가게 입구의 현관 이모들이 떡을 다 집어가 버렸다. 나중에는 이 현관 이모들이랑 정이 많이 들어 버리지만. 몇 년간 골목을 다녀도 아가씨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잠옷 입은 여자가 지나갈라치면 머뭇거리다 말을 못 걸기 일쑤였다. 나를 보는 표정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막연히 그들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몇 년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히려 내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척시켜 주었다. 그들은 미아리 텍사스라는 하나의 생태계를 확인하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88정화위원회라고 하는, 소위 미아리 텍사스를 대표한다는 이들에게 미아리의 역사에 대해 많이 들었다. 내심 이들이 아가씨들에 대한 이주 보상도 신경 써줄지가 궁금했지만 부러 따져 묻진 않았다. 골목을 쏘다니다 마주친 식당 이모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했다. 술자리에서 들은 이상하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많다. 나처럼 고양이를 돌보는 업주의 환대를 받아 밥도 얻어먹고(업소에서 해주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그 집 개랑 놀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비 오는 어느 날엔 포장마차에서 손님한테 맥주도 얻어 마셨다. 한때 영화판에 있었다는 그 남자는 “지금은 노가다를 하며 한 달에 한 번 여기 온다”라고 했다. 종종 들렀던 그 포장마차의 사장님은 가게를 접고 나갈 때까지 내가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서 온 거라고는 했지만 다음에 찾아가면 자신의 포장마차를 이어받아서 해보라고 한다든가 또 다른 날에 가면 어느 가게에서 일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40년을 그 골목에서 일했던 그는 미성년자를 많이 고용했을 1990년대에는 가출한 청소년들의 손에 돈을 쥐여 주고 보내기도 했단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로 기억하는데 여전히 술을 팔며 야간에 일을 했다. 많은 돈을 벌었고 자식을 혼자 다 키웠고 또 많은 재산을 딸에게 주었다고. 그런데도 생활의 반경은 여전히 포장마차 주변인 것 같았다. 낮에 골목을 지나갈 때면 포장마차 한쪽에 놓인 긴 의자에서 늘 주무시고 계셨다. 성노동자로 일한 지 20년을 훨씬 넘긴 미아리 텍사스 이주대책위원회(이하 이주대책위) 위원장은 미아리가 이제 고향 같다고 했다. 그와 나누었던 몇 번의 긴 대화는 작업뿐 아니라 내 삶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와 처음 연락이 닿은 날을 잊을 수 없다. 구청에서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한 이후 골목에 “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맞는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내심 설렜다. 현수막에 적힌 연락처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여러 번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걸려 온 전화에 급히 밖으로 나가 긴장하며 받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는 나에게 “기자님”이라고 했다. 장황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위원장님을 비롯한 이주대책위 사람들은 한동안 내가 언론 쪽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그럴 능력은 없었다. 대신 매주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에 나가서 카메라를 들었다 놨다 하며 버텼다. 그들은 어느새 나를 자신들의 편이라 여겼다. 나 역시 기꺼이 그런 위치로 이동하길 자처했다. 나는 프레임 밖에서 뭐라도 돕고자 ‘진짜’ 기자들에게 집회 소식과 투쟁의 목적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언론사에 연락을 돌리고 해당 기사나 방송이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답답함이 있다. 이주대책위의 ‘투쟁하는 이미지’와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는 구호는 탈성매매라는 틀 안에 흡수되고,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자료 화면으로만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의 투쟁은 철거민의 투쟁이었다. 나는 이 지점이 언론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비록 이들에게 이주 보상을 받을 법적 권리가 없더라도, 불법에 ‘지역의 오명’으로 치부되는 장소더라도, 이들이 한때 돈을 많이 벌었더라도, 그리고 그 돈을 가족을 부양하는 데 썼든 흥청망청 써버렸든 간에, 재개발 앞에서 건물주만 돈을 벌고 그 땅에 발붙이고 살던 사람들은 더 취약한 곳으로 밀려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성 인권 단체들 역시 아무리 성매매가 사회악으로 여겨져도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 재개발 앞에서만은 함께 싸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현장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수시로 떠올려야 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증명을 하기 위해 더 애써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포주에게 조종당한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사연을 팔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사정이 힘들다 애원해도 비난을 받는다. <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 >의 2부에는 이런 고민들이 녹아 있다. 마지막 남은 업소에 대한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한 성노동자와 나란히 서서 스크럼을 짠 적이 있다. 담배 피는 그의 손을 무심히 쳐다보았는데 그는 깔깔 웃으며 매니큐어를 지웠다고 했다. “아씨, 유튜브 댓글에 누가 매니큐어 한 거 사치스럽다고 욕하잖아요.” 아씨, 속상했다. 미아리 텍사스는 그 어떤 곳보다 프레임 안팎에서 많은 일을 겪은 현장이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왔다. 정확히는 가도 볼 수가 없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립다. 나는 미아리 텍사스가 그립다. 깨지고 낡은 골목의 바닥이. 은은한 세제 냄새. 빗물이 흘러 들어가던 바닥의 구멍들. 평소와 달리 화려하게 꾸민 아가씨들의 얼굴들, 친한 현관 이모와 세 시간 넘게 인터뷰를 했던 새벽 5시의 가을 공기. 여름이면 천막 위로 드리워진 오동나무 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던 것도. 그리고 찢어진 천막 사이로 들어오던 강렬한 빛. 그 장소에서 발생했던 죽음과 폭력, 고통까지 잊지 않으면서, 그립다고 말하고 싶다. 내 마음 가는 대로 골목을 마구 찍은 휴대폰 사진 8,000장이 남았다.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 상영을 시작하고 비슷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그리움의 정서를 전해 주었다. 이제 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나는 “집창촌이 그립다”라는 말을 해도 되는 여지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그럼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도 좀 더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거냐 저거냐를 따져 묻는 거친 이야기들이 지배하지 않는 다양하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동안 겪은 내 경험도 그 장소에 포개어 본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내가 말하는 그리움은 낭만화된, 그곳을 대상화해서 가능한 감정인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늘 있다. 물론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대상화는 피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작업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살 수밖에 없고 타자에게 어느 정도 나를 투영해야만 연대할 수 있기도 하니까. 그게 또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재현이라는 것일 테고. 실재하는 존재 앞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할 뿐이다. 미아리 텍사스의 가까이에 있으면서 변하기도, 더 강화된 생각도 있다. 다만 곁에서 겪은 구체적인 이들의 생생한 모습과 말, 장소에 대한 감각만은 오래 간직하고 싶다. 골목의 모든 건물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에 캣맘과 함께 공사장에 들어간 적이 있다. 깨진 잔해들 사이에서 제 모양을 유지한 채 덩그러니 놓인 전등을 발견했다. 미아리 텍사스 골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사물은 한낮에도 어둑한 골목을 밝히던 크고 둥근 그 전등이었다. 그게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를 다 돌아다녀 봤다. 내가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반쯤 자랑스럽게 말하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서로가 긴장 없이 웃던 순간의 연결감도. 모두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전국에 성매매 집결지가 정말 몇 남지 않았다. 남은 곳들만은 도시 재생이나 재개발이라는 명목은 아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충분히 반영된 (사라짐만은 아닌)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자 한다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2026년 8월 현재. 미아리 텍사스 골목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큐-코멘터리: 프레임 밖의 문장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장윤미(영화감독) l < 어떤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 >(2021), < 깃발, 창공, 파티 >(2019), < 콘크리트의 불안 >(2017) 등 연출.
© 글항아리 도상해석학으로 유명한 독일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시각예술의 의미(Meaning in the Visual Arts)』(1955) 서문에는 인간성(humanitas)에 천착했던 인류의 역사를 단 몇 줄로 요약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고대의 인간은 인간 ‘이하’의 어떤 것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스스로 답하려 했다. 인간은 자신이 짐승, 야만, 속물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대비 행위를 통해 발견하려 했는데, 이때 사용됐던 인간성의 토대는 교양이었다는 것. 그러던 인간이 중세에 이르러서는 인간 ‘이상’의 어떤 것과의 대비를 통해 인간성을 규정하고자 했다고 파노프스키는 쓴다. 신적인 것, 가령 신성과 대비되는 인간성 말이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인간 ‘이하’ 혹은 인간 ‘이상’의 것을 무대 위에 올리고 무대 위에 선 존재를 바라보면서 자기 존재를 두드러지게 만들기 위해 ‘대비’의 행위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오래전 파노프스키의 이 책을 묵독하면서 나는 혼자 생각이 깊어졌다. 인간은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짐승이든 신이든 외적인 것을 질료로 삼으려 했다. 그렇다면 만약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외부의 것을 가져오지 않고도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바라보는 일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해질 수 있을까. 열차에 앉은 탑승객이 자신이 탄 열차의 모습을 외부에서 바라볼 수 없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가 속한 세계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더라도 그때 규정되는 인간성은 상상된 인간, 상상된 세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바라보기 위해선 열차 바깥에서 바라보는 ‘제3의 시각’이 필요해지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예술이라는 결론에 나는 이르렀다. 문자 텍스트로 집필된 문학이든, 스크린이라는 형식에 근거하는 영화든, 그것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므로 우리는 예술을 바라볼 때 우리 자신을 규정할 수 있게 되며, 또 그것이 예술의 존재 의의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며 우리 자신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자주 빠져들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골몰했던 특정한 분야는 원작 소설이나 원작 희곡을 가진 영화였다. 소설이나 희곡, 또는 그래픽노블 등 원작을 가진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가 두 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참으로 묘한 장르다. 하나의 이야기가 두 개의 다른 예술 형식을 확보함으로써 작품 속에서 구현된 인간성을 외부에서 ‘두 개의 눈’으로 응시하도록 이끄는 매력을 가진다. 변주 과정에서 무엇이 추가되거나 삽입되었는지, 또 무엇이 의도적으로 생략되거나 비의도적으로 누락되었는지를 확인하면, 등장하는 인물의 탄생과 죽음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또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흔히들 말하듯 문학에서는 소설가가 창조주의 위치를 점하고, 영화에서는 연출자가 창조주의 위치에 오른다고 할 텐데, 원작을 가진 영화의 경우 다른 눈을 가진 두 신(神)이 한 인물의 생성과 소멸을 입체적으로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발견되는 ‘차이’를 통해 우리는 한 세계와 그 속에 속한 인간을 더 웅숭깊은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파노프스키가 사용한 단어 ‘대비’의 원문 단어는 ‘contrast’이고, 내가 두 장르의 변주 과정에서 노출되는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 사용한 ‘비교’는 ‘comparison’이기에 이 둘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대비가 뚜렷한 차이에 집중하는 반면, 비교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조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개의 다른 대상을 ‘견주어 본다’는 측면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사용했고, 이러한 마음으로 『밤과 책: 영화탐문』을 썼다. 내가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2018년의 어느 날이었다. 햇수로 8년 전이다. ‘원작을 가진 영화’에 관한 글을 오랫동안 써야겠다고 다짐하던 그 시절에,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장편소설 『사탄탱고(Sátántangó)』를 만났다. 이 소설은 1985년 처음 출간된 후 1989년 공산 체제가 무너진 뒤인 1994년 벨라 타르에 의해 영화화됐는데, 라슬로의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 영화는 ‘7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악명이 더 높아지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2016년 한강 소설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현재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직후였다. 맨부커상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 『사탄탱고』였던 터라, 2018년 5월 한국의 알마출판사가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한 직후 이 책에 빠져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영화를 구해 7시간이 넘는 지옥과도 같은 길이의 영화를 아주 천천히, 원작의 세계와 비교하면서 확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 La Cinémathèque québécoise / © Mozgókép Innovációs Társulás és Alapítvány, VVF, Vega Film 소설 『사탄탱고』와 영화 < 사탄탱고 >가 구현한 두 세계의 차이가 처음부터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니었다.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영화이므로 그저 소설의 줄거리에만 주목하면서 영화를 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지진 않는다. 하지만 ‘괴취미’에 가까울 만큼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영화를 세 번쯤 보았을 때 차이가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가령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집착하는 ‘마을 의사’(이름 없이 마을 의사로만 거론된다)를 원작자 라슬로와 연출자 타르가 그려내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작품의 줄거리 복습이 필요하다. 완전히 망한 헝가리의 집단농장의 마을 주민들은 가난과 궁핍 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 마을은 완전히 생기를 잃었고 재건의 희망은 허락되지 않는다. 생산수단이 마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술집에 모여 만취한 상태로, 현실을 탈출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 그때, 이미 처형된 줄로 알았던 이리미야시란 인물이 마을에 돌아와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운 삶을 약속한다. 마치 재림 메시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리미야시는 그들의 절망을 돈벌이에 이용하려 했던 천박한 사기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리미야시의 혀에 굴복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예정된 몰락일지언정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리미야시의 뒤를 따르며 스스로 망해버리기를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마을의 하층부 약자인 에슈티케란 소녀가 스스로 쥐약을 먹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막연했던 희망마저 사라지는 폐허의 소동을 지켜보던 마을 의사는 자신이 본 지옥도를 자꾸만 글로 써내려 한다. 내가 특히 주목해서 살펴봤던 인물은 편집증에 가까울 만큼 기록에 집착하는 마을 의사였다. 그 이유는, 원작과 영화에서 의사의 기록 행위를 다루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영화만 보면 그의 병적인 기록 욕망은 소설가 혹은 예술가의 필연적인 운명을 상징 혹은 은유하는 것처럼 이해된다. 그는 인간이 가진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그래서 마을 의사에게 기록이란 필연적인 망각에 저항하는 행위다. 글을 쓰는 사람의 천형과도 같은 운명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러나 원작 소설은 마을 의사의 기록 행위에 신적인 위치를 부여하고 있다. 광기에 가까운 마을 의사의 기록 욕망을 두고 원작자 라슬로는 이렇게 쓴다. “그는 갈수록 사물들의 질서에 주의를 기울였다. 물건과 물건 사이의 거리, 이를테면 접시와 담배, 성냥갑과 일기장, 탁자와 창가, 안락의자와 벌레가 갉아먹어 부스러질 지경인 나무 바닥에 놓인 책들 사이의 거리에 신경을 집중했다. (중략) 그 중심에 안전하고 전능하게 서 있음을 발견할 때면, 그는 아늑함과 함께 어떤 뿌듯함을 느꼈다.” (86~87쪽) ‘전능함’은 신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원작에서 마을 의사는 목격한 사건을 단지 종이 위에 옮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말과 사람들의 행동과 사람들의 전락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려 한다. 이로써 그는 ‘세계의 중심’에 서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질서를 갖춘 문장 위에 무질서한 세상을 배열하면서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마을 의사의 신적인 위치는 명료하게 판명 난다. 스포일러로 보일까 저어되지만 굳이 밝혀두자면,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마을 의사가 집필하는 글은, 바로 이 소설을 읽은 독자가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 읽었던 바로 그 대목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이야기가 실은 마을 의사의 기록이었음을 누출하는 것이다. 영화는 시간과 망각에 저항하려 했던 한 인간의 초상으로 마을 의사를 그리지만 소설에서는 명백하게도 그를 무력한 신으로 배치하고 있다. 소설 속 마을 주민과 마을 의사의 관계는 절망의 폐허를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를 무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신의 관계와 등가를 이루게 된다.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 Mozgókép Innovációs Társulás és Alapítvány, VVF, Vega Film 비교 혹은 대비라고 해도 좋을 ‘견줌’의 과정을 이렇듯 통과하는 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은, 작품의 내부에 다가감으로써 이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놀라움과 즐거움에 가까웠다. 그러나 『밤과 책』에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 벨라 타르에 관한 글은 일부러 제외했다. 그 이유는, 비교와 대비를 통해 차이를 발견하는 ‘인간의 감각’을 공유하는 책으로 이 책이 기억되기를 바라서였다. 자신이 읽은 책과 자신이 확인한 영화여야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소구력이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책은 ‘감각을 공유하는 장’으로서의 제 기능을 해내지 못하리라고도 봤다. 고민 끝에 책에 실릴 원고를 선별하면서는 가급적 수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영화부터 우선적으로 골랐다. 이제 대중적인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 아마데우스 >, < 패왕별희 >, < 색, 계 >, < 아이즈 와이드 셧 >, < 양들의 침묵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쉰들러 리스트 >가 우선적으로 꼽혔고, 현재적인 영화까지도 이 책이 끌어안기를 바라는 마음에 < 햄넷 >,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 콘클라베 >, < 파워 오브 도그 >, < 컨택트 >, < 그을린 사랑 > 등 상대적으로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를 추가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을 기록을 남겨두자면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과 < 룸 넥스트 도어 >는 원고 초벌 작업을 끝마쳤음에도 예정된 출간 일정 때문에, 그리고 좀 더 솔직해진다면 진력을 다한 뒤의 체력 문제 때문에 책에 담지 못했다. 한국영화의 경우 목차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배제했다. 현재 박찬욱 감독의 원작을 가진 장편영화 5편(< 올드보이 >, < 공동경비구역 J.S.A >, < 박쥐 >, < 아가씨 >, < 어쩔수가없다 >),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 < 설국열차 >, 이창동 감독의 < 밀양 >, < 버닝 >) 등도 초벌 작업을 마쳤지만 싣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들 작품 가운데 몇 편의 영화를 고르는 일이 너무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다른 책으로 출간되도록 힘써볼 계획이다. 『밤과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일러두기’ 1번에 이런 문장을 적어 두었다. “이 책은 영화평론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이 평론이나 비평의 관점에서 읽히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고, 그 점에 대해선 출판사와 수차례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과분하게도 영화기자로 몇 년간 일했지만 나는 평론에 능하지 않으며 그건 나보다 우수하고 탁월한 감식안을 가진 평론가 선생님들께서 해주실 일임을 알고 있다. 또 그럴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다만 이 책이 비교의 차원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감각의 차원에서 독자들과 만나기를 바란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공통의 DNA를 가진 두 개의 장르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입구와 출구가 다른 두 개의 집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면서 발견되는 감각에 대한 책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각색에 대한 책도 아니며 ‘원작의 의도에 충실한 각색과 불충분한 각색’이란 오랜 화두를 다시 건드리려는 시도 역시 아님을 밝혀둔다.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유태(기자·시인) l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문화부에서 근무하며 문학, 출판, 영화를 담당했다.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독일 베를린영화제 등 글로벌 3대 영화제의 레드카펫 현장을 취재했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인터뷰로 한국기자협회 주최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기자상을 각각 수상했으며,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및 만찬에도 참석했다. 문예지 《현대시》에 「무국적 체류자」 외 9편이 당선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2021)와 독서 에세이 『나쁜 책: 금서기행』(2024)을 출간했다. 현재 미국 골든글로브 투표권자로(Golden Globes Voter)로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