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1989, 수미다의 기억
- 감독
- 박정숙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정현숙, 박성희, 정순례, 김순미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본 기획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1950~70년대 한국영화에 나타난 당대 서울의 도시공간을 조명해왔다. 현대사의 질곡에 휘말린 가족이 겪는 비극의 무대로서(< 오발탄 >),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공간으로서(< 도시로 간 처녀 >), 소외된 이들의 저항의 장(場)으로서(< 바보선언 >), 서울은 소시민의 삶을 표상하는 장치이자 말 없는 배우로서 충실히 기능했다. 이에 더해, 이번 논고에서는 ‘대도시’를 난생처음 접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서울이 필름 속에 어떻게 담겼는지 살펴봄으로써, 표상으로서의 서울에 깊이를 더하고자 한다. 유현목 감독의 < 수학여행 >(1968)은 한 번도 서울 구경을 해 본 적이 없는 외딴섬 ‘선유도’의 국민학교 아이들의 눈에 당대의 서울이 어떻게 비추어졌는지를 총천연색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이미 < 오발탄 >(1961)에서 비극의 무대로서 서울을 탁월하게 묘사한 바 있는 유현목 감독은, 본작에서 한층 더 대담한 시선으로 1968년 가을 서울 도심 곳곳을 포착했다. 총천연색으로 담긴 서울의 풍경은 앞서 본 기획에서 다룬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한형모, 1966)에서도 감상할 수 있지만, 본작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68년의 시점이라는 점에서 급변하던 서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더욱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다. 전라북도 군산시의 외딴섬 선유도 국민학생들은 1968년 10월 1일, 서울 출신 섬마을 선생님( 구봉서 )의 인솔 아래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기차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 줄로만 아는 순박한 아이들을 태운 기차는 한강철교(37분 34초경)를 건너 서울역에 닿는다. 드넓은 광장과 인파 속에서 처음 겪는 번잡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 뒤편으로, 현재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자리에 있던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들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38분 24초경). 3년 만에 재회한 선생님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아이들이 다 함께 64번 버스(現 750A번 버스)에 오르려는 찰나, 한 학생의 벗겨진 신발을 주우려다 버스를 놓친 선생님은 서울역 앞 광활한 대로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카메라는 높은 부감(俯瞰) 시점에서, 종횡무진하는 자동차 사이를 달려 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을 담아낸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위험천만한 시퀀스이지만, 이 과감한 촬영 덕분에 우리는 전후 도시 복구의 상징과도 같은 관문빌딩(1960년 준공)과 형형색색의 택시, 버스가 어우러진 1968년 서울역 앞 풍경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역 전경 (37:56) 서울역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 (38:24) 서울역 앞 버스와 택시, 그리고 관문빌딩 (40:58)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건군 20주년 국군의 날 기념 현수막이 걸린 남대문과 그랜드호텔(1959년 준공, 現 흥국생명 빌딩) 앞을 지난다(41분 38초~41분 50초경). 이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버스 내부에서 차창 너머를 바라보는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관객이 아이들과 같은 시선으로 서울의 경관을 체험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촬영 시점으로부터 불과 두 달 뒤 폐지될 서울전차를 목격한 한 아이가 “저거 전차 아녀?”라고 외치는 장면은, 후술할 후반부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시시각각 변화하던 서울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건군 20주년 국군의 날 기념 현수막이 걸린 남대문 (41:38) 서울전차와 그랜드호텔 (41:50) 이튿날, 서울 도심을 활보하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카메라는 과감하게 뒤쫓는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보다 2년 먼저 공개된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에 삽입된 것과 유사한 ‘보행자의 시선에서 서울상업은행 본사를 올려다보는 씬’이 등장한다(51분경). 한국은행 본점 옆에서 당시로서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을 13층 빌딩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일종의 ‘대도회지’의 표상으로서 당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었던 것은 아닌지 짐작하게 한다. 다음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서소문 옛 대한항공 본사 사옥(51분 15초경) 옆 육교에서 명동 방향을 굽어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포착하는데, 이때 ‘삼환기업’과 ‘현대건설’ 여덟 글자가 새겨진 타워크레인이 줌인되며 프레임을 가득 메운다. 감독의 의도를 전부 알 길은 없으나, 이 공사 현장은 바로 조선호텔(1970년 준공) 부지이며, 프레임에 담긴 타워크레인은 우리나라 공사 현장에 최초로 도입되어 당대 일간지에 기사화될 정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당대 최대 규모의 특급호텔의 공사 현장이자, 신식 문물의 상징과도 같은 타워크레인을 포착하여 ‘대도회지’의 역동성을 드러내려 한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올려다본 서울상업은행 (51:00) 서소문 육교와 옛 대한항공 본사 사옥 (51:15) 조선호텔 부지에 놓인 채 줌인된 타워크레인 (51:29) 이후 수학여행단은 당시 구로공단에서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무역박람회(1시간 7분 33초 이후)를 방문한다. 덕분에 럭키(現 LG), 포드-현대자동차, 신진자동차(現 GM코리아) 등 국내 대기업들의 파빌리온이 총천연색의 영상으로 기록되어, 우리나라 산업 및 무역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흥미를 선사한다. 곳곳에서 국내 대기업 명칭이 포착되는 국제무역박람회 현장 (1:07:00~) 영화 후반부, 마침내 서울전차를 타게 된 섬마을 아이들은 운전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운전수는 “전차는 새로운 문명인 자동차에 밀려 나가게 되었다(1시간 25분 38초경)”라며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대사를 전한다. 나아가 그는 “이 늙은이는 이 낡은 전차를 떠나지만, 너희는 앞으로 부지런히 새것을 쫓아가야 한다”라고 당부하는데, 이는 초반부 “저거 전차 아녀?”라며 놀라워하던 아이들의 모습과 아름다운 수미상관을 이룬다. 이 시퀀스의 촬영 장소는 당시 동대문에 있던 서울전차 차고로 추정된다. 영화가 1968년 9월 이후 촬영되었고 서울전차가 같은 해 11월 30일에 폐지되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서울전차 차고의 마지막 모습을 컬러로 담아낸 귀중한 영상 기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서울전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과 운전수 <수학여행>의 플롯은 ‘섬마을 아이들의 인생 첫 서울 여행’과 ‘섬마을 선생님의 화목한 가정 회복기’로 요약될 정도로 실은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단순한 서사 구조 덕분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1968년 서울의 풍경이 극의 전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그 결과 57년이 흐른 지금, 이 영화는 ‘그때 그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지니게 되었다. 한국고전영화 속 도시공간을 들여다보는 이러한 시도가 꾸준히 축적된다면, 표상으로서의 1950~80년대 서울에 대한 통시적 고찰 또한 가능해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 해당 칼럼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바트로스라는 바닷새가 있다.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날개를 가진 알바트로스는 날 수 있는 조류 중 제일 큰 새로 꼽힌다. 알바트로스는 날개짓을 하기 보단 상승과 하강기류를 활용해 바람을 타며 이동하기 때문에 하루에 천 킬로미터도 거뜬히 난다고 한다. 그러나 유려한 비상과 활강을 가능하게 하는 큰 날개는 땅에서는 균형감을 잃고 걷기 힘들게 한다. 이 때문에 땅 위에서 날개를 꾸깃꾸깃 우겨넣고 뒤뚱뒤뚱 걷거나 엎어지며 슬랩스틱을 보여주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은 < 딱따구리(The Woody Woodpecker Show) >(1957) 같은 고전 애니메이션에서 희화화되기도 했다. < 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2001)의 주인공들은 알바트로스와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죽음을 불사한 사랑은 가능하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함께 살아가는 일상은 심각하게 거추장스럽거나 불가능한 것이 된다. 심지어 그들의 살아있음은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모욕과 혐오로 점철되고 죽음은 필연이 된다. 사랑은 죽음을 통해 증명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이고 오프닝과 엔딩을 통해 수미상관을 이루는, 카메라가 활강하는 씬은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과 불가능한 세속적인 삶을 은유한다. 오프닝 장면은 구불구불한 협곡을 따라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카메라의 시점을 보여준다. 특정 인물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등장하진 않지만 꽤 긴 시간 동안 지속되고 협곡을 따르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그것이 단순히 멋진 자연풍경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관찰자적 시점이 아닌 실제로 공중에서 활강하고 있는 누군가의 신체적 움직임이자 주관적 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가(그들이) 누구인지의 궁금증은 엔딩에 가서야 해소된다. 영화는 촬영기법을 통해 주인공들의 운명을 오프닝에 예정하면서도 엔딩에서야 명확한 답을 주며 관객을 몰입시키는 완성도 높은 장르영화를 구현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이하 <번지>)는 2001년 개봉한 영화로, 당시 한국영화는 < 접속 >(장윤현, 1997), < 미술관 옆 동물원 >(이정향, 1998), < 정사 >(이재용, 1998) 등 격정적 감정에 호소하는 ‘신파’를 덜어내고 세련된 영상미와 독특한 관계성을 가진 로맨스 영화들이 부상하던 때였다. <번지> 역시 그러한 영화 중 하나로 평가 받았다. <번지>는 앞에서 기술한 오프닝과 엔딩의 유려한 헬기 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적재적소의 음악사용, 해변의 저녁노을을 이용한 그림자 연출 뿐 아니라 운명적인 필멸의 사랑을 설득해 내기 위해 환생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두 파트로 서사를 나눠 미스터리적 구조를 취하며 관객들이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했다. 영화는 1983년의 1부와 2000년의 2부로 나눠진다. 82학번 국문과인 인우( 이병헌 )는 같은 학번 조소학과인 태희( 이은주 )를 ‘우연히’ 마주치고 첫 눈에 반한다. 비오는 날, 우산이 없는 태희가 인우의 우산 아래로 뛰어들어 버스 정류장까지 바라다 달라고 하고 인우는 태희를 사랑하게 된다. 이 장면은 이후 다른 정보들이 추가되며 재해석된다. 관객들은 태희와 같은 과 친구의 대화에서 비오는 날 태희가 먼저 인우에게 호감을 갖고 우산이 없는 척하며 다가갔다는 진실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한 사건을 두고도 여러 각본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한다. 1부가 인우의 입영일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해 태희가 죽으면서 급작스럽게 끝나고, 2부는 17년이 지난 2000년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국어교사가 된 인우는 고2 담임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학생 중 하나인 현빈( 여현수 )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18세 남자 아이임에도 현빈은 태희를 연상시킨다. 무언가를 들 때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 “젓가락은 시옷 받침인데 왜 숟가락은 디귿 받침이냐”는 질문,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을 좋아하는 것, 심지어 태희가 인우에게 선물로 줬던 라이터를 갖고 있는 것까지 태희와 같다. 영화는 1부의 태희와 2부의 현빈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작은 실마리들을 흩뿌려 놓으며 관객들이 인우와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도록 유도한다. 인우의 현빈을 향한 감정은 모두가 알아차릴 정도로 커져가고 결국 인우는 동성애자라 비난받으며 학교에서 쫓겨난다. 이후 전생이라 할 수 있는 태희의 기억을 떠올린 현빈이 인우를 찾고 둘은 1983년 약속했던 번지점프를 하러 뉴질랜드로 떠난다. 그리고 줄 없이 뛰어내린다. 인우와 태희, 현빈과 인우 로맨스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들 간의 사랑을 방해하는 대상이다. 사적 사랑을 억압하고 방해하는 것들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사랑은 더 강해지고 진정성을 얻으며 영원한 운명이 된다. 그렇기에 방해하는 대상은 대부분 개인의 힘으로 바꾸거나 해결할 수 없는, 매우 견고한 것이 된다. 1부가 그러한 방해물을 죽음으로 두었다면, 2부는 동성애와 학생-교사 간 로맨스를 배치한다. 죽음은 유한한 인간인 이상 극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로맨스 영화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해 대상이다. 매우 규범적인, 반대할 여지가 없는 대학생 간의 이성애 연애가 방해를 받을 정도가 되려면 죽음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편 2부의 동성애와 학생-교사 간 로맨스는 사회적 변화에 따른 선택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성소수자들이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에 가시화되었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은 시민권 운동의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배우 하리수 가 2001년 도도 화장품 CF 모델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트랜스젠더임을 밝혔고, 배우 홍석천 은 2000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했다. 성소수자의 가시화는 대중적 인지를 가져오고 그에 따른 혐오와 차별도 두드러졌다. 특히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 다큐멘터리 <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 >(이영, 2007) 같은 영화들은 학교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을 그려내며 당대의 변화를 포착했다. <번지>는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 2부에서 동성애를 사랑의 방해물로 그린다. 학생과 교사, 미성년과 성년이라는 강력한 방해대상이 있지만 이보다 더 크게 부각되는 금기는 단연 동성애다. 로맨스에선 개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대상 그 자체만큼이나 개인들이 그 억압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번지>의 주인공들은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아닌, 동성애 자체를 부정적 방해물이자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인우와 현빈 모두 자신이 실제로는 동성애자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려 애쓴다. 영화는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반복한다. 인우는 정신병원에서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검사를 받고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의사의 (의문스러운) 진단을 받을 뿐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아내와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려 한다. 현빈은 인우를 만나기 전만 해도 또래 여학생을 좋아하고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평범한 이성애자 십대 남자 아이라는 것이 강조된다. 현빈은 호감을 갖고 있던 혜주( 홍수현 )에게 의도적으로 속옷이나 누드화를 선물하며 성희롱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 즉 인우와 현빈 모두 성적 정체성에 있어 ‘문제없는’ 이들이었음이 강조된다. 혜주와 현빈 이 에피소드들은 두 가지 면에서 문제적인데 하나는 이성애자임을 증명하기 위한 행동이 대부분 성적 폭력에 기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사랑보다 동성애 부인에 무게 중심이 간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계속 강조하는 건 인우가 현빈을 태희로 느끼고 운명적 사랑을 재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우와 태희는 어떤 성별로 태어나도 서로를 알아볼 것이며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대화를 나눈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서사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따라서 인우와 현빈이 어떤 성적 정체성을 갖든 어떤 성별로 전환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1부의 태도와 달리 2부는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즉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넘어선 사랑보다 이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분명 둘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즉 태희가 환생해서까지 재회하고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이것은 완벽한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죽음도 뛰어 넘은 둘은, 동성애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둘은 뉴질랜드로 가서 줄 없이 번지점프를 한다. 그리고 땅에 떨어지는 장면 없이 주변 사람들의 비명 소리 이후 오프닝의 활강 씬이 반복된다. 인우는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을 읊조린다.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내레이션에 따르면 그들은 사회가 용인하고 당사자들이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는 규범적인 이성애 커플로 당첨될 때까지 땅에 발을 딛지 못한 채 계속 죽고 환생해야 한다. 확률 게임처럼 말이다. 엔딩 카메라의 “끝이 없는 활강(반복된 죽음과 환생)”은 착륙지로 내정된 이성애 사랑을 위해 죽어야 하는 동성애자들의 운명이 된다. 이 카메라의 활강은 그 자체로 당대 퀴어 스크린의 일면이 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 본 글에는 <색깔있는 남자>의 반전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영화 산업은 여러 면에서 척박했던 시기로 회자된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한국영화 산업의 첫 르네상스라 평가됐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와 80년대는 독재 권력의 감시 하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검열이 극심해지면서 산업적 토대와 시스템이 허약해진 시기로 평가된다. 1970년대부터 대중추수적인 에로티시즘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처럼 청춘을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간간이 출현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영화의 전면적 시장개방이 일어나면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영화제작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검열제도가 심의제도로 전환되고 저항적인 학생영화운동을 포함해 새로운 영화세대가 부상하면서 독립영화와 코리안 뉴웨이브의 싹이 틀 수 있는 움직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가 개봉된 1980년대 초중반은 전두환 정권의 적극적인 3S(Sex, Screen, Sports) 정책, 선정성과 폭력성이 극대화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할리우드 장르 관습, 흥행작의 끝없는 시리즈화, 컬러 비디오라는 새로운 부가시장의 저예산 문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한국영화 산업 전반이 에로영화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색깔있는 남자> 역시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 대부분의 에로영화들처럼 다양한 정사 장면을 넣기 위한 지나치게 복잡한 인물 구도와 설득력 없는 급작스러운 반전, 컬러 비디오 시대에 걸맞은 화려한 색상과 조명, 줌 쇼트와 프리즈 프레임 등의 과도한 사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정성을 목표로 두면서 느슨해진 서사 그리고 부족한 예산과 시스템을 메우기 위한 표현적 과장은 오히려 이 영화를 급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 지점에서 김형석 은 <색깔있는 남자>를 < 디아볼릭 >(앙리 조르주 끄루조, 1955)이나 < 원초적 본능 >(폴 버호벤, 1992)과 같은 놀라운 반전 서사를 가진 1980년대 대중영화의 숨겨진 걸작에, 이문우(「1980년대를 퀴어링하기」)는 범죄화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레즈비언을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퀴어적 독해의 텍스트로 위치시킨다. <색깔있는 남자>는 제목만 보면 김성수 감독의 전작, 장미희 와 이영하 주연의 < 색깔있는 여자 >(1980)의 후속작처럼 보이지만, 두 영화는 장르적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색깔있는 여자>가 신파적 특징이 강한 여성수난사라면, <색깔있는 남자>는 냉철하고 잔인무도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팜 파탈과 여성 착취적이고 이기적인 옴 파탈이 대격돌하는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당대 몇몇 에로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정적 재현을 위해 비규범적 성적 욕망과 관계를 소재로 가져온다. 유사 근친상간, 사도매저키즘, 양성애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통적 젠더 역할을 뒤집는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패션 디자이너 샤르망 최( 임성민 )의 귀국 기자회견으로 시작한다. 세련된 매너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그는 돌아오자마자 여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샤르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여자들의 사랑과 욕망을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샤르망은 공사 모두에서 누나 같은 변수린( 오수미 )의 돌봄과 지원을 당연하게 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집착 어린 사랑은 모른 척한다. 또한 그는 김여사( 홍명진 )의 애인 노릇을 하며 후원을 받아 패션사업을 키워나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젊은 여자들과의 성적 관계를 거절하지 않는다. 저돌적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부티크 직원( 오경아 )과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 오혜림 )이 그들이다. 모든 여자의 욕망의 대상인 샤르망은 이 모든 관계의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 샤르망을 연기한 임성민은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한 스타로 신성일 이나 남궁원 같은 이목구비 뚜렷하고 키 큰 ‘미남배우’의 계보에 있긴 했지만 훨씬 세련되며 때로는 유약하기도 한, 그래서 이성애 여성들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는 미묘한 스타성을 갖고 있었다. 임성민이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장길수, 1994)에서 수많은 여성의 이상형으로 꼽히는 (그래서 여성운동 활동가 강민주에게 전략적으로 납치당하는) 스타 배우 백승하로 캐스팅된 것은 그의 실제 스타 이미지에 일부 근거한 것이기도 했다. 매너 좋고 유약한 남성성에서 오는 그의 스타성은 에로영화의 선정적 노골성을 약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런 면에서 임성민은 에로영화의 타겟 관객을 이성애 여성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실제로 여성 주인공들보다 임성민을 중심에 놓고 “에·놈·쌍쉬엘(Un homme sensuel)”이라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는 주인공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스펙터클화 하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좌) <색깔있는 남자> 포스터 (우) <색깔있는 남자> 중 배우 임성민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샤르망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옴 파탈이다. 샤르망은 사업 확장을 위해 공장을 구매할 자금이 필요하다며 김여사를 부추기고, 김여사는 기어이 병들고 늙은 (가학적 성욕을 가진) 남편( 변희봉 )을 복상사하게 만든다. 범죄와 그에 따르는 불안과 집착은 연쇄성을 갖게 되고 영화는 점점 에로보다는 스릴러에 집중한다. 자금을 확보한 샤르망이 김여사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변수린은 그렇잖아도 질투 때문에 마땅치 않던 그녀를 차로 여러 번 치어 살해한다. 변수린의 범죄를 알게 된 샤르망은 자신을 향한 집착이 부담스러워지고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과 새 삶을 계획한다. 주은몽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에게 집착하지 않는 ‘쿨’한 여자다. 결국 그는 변수린을 기찻길에서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주은몽과 형사들은 그를 살인자로 의심하고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 같은 이상한 징후들이 그를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을 내놓는다. 그 반전을 예상하지 못한 건 영화가 반전을 위한 서사를 거의 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디아볼릭>을 넘어선 파격적 혹은 허술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주변부 인물, 즉 조연이었던 직원과 영화 후반부에 등장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주은몽이 이 모든 계략을 지배하며 완전범죄를 저지른 레즈비언 커플이었음이 매우 급작스럽게 밝혀진다. 주은몽은 변수린에게서 벗어나고픈 샤르망의 욕망을 자극해 공장을 판매한 대금을 자신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했으며, 아마도 사적, 공적 공간 모두에서 프레임 바깥에 상시적으로 존재했을 직원은 온갖 정보를 수집해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변수린과 샤르망의 대화를 녹음해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변수린, 샤르망, 주은몽을 훔쳐보는 제3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종종 암시하지만 서사적으로 그 눈이 직원의 것일 거라는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프레임 바깥 존재인 그들의 비가시성과 유령성은 완전범죄와 ‘완벽한(예측 불가능한)’ 반전 서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비가시적이고 유령적인 레즈비언 커플이 변수린의 유령을 위장하고 무대화할 때 과장되게 연출된 줌 쇼트, 화려한 번쩍이는 조명, 사각앵글 등은 그들 스스로 유령적 존재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변수린이 김여사를 살해할 때 부띠크 직원을 용의자로 몰기 위해 그의 모습으로 변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과장과 위장은 1980년대 에로틱 스릴러의 문법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의 유령적 현현의 비틀어진 알레고리가 된다. 전말이 드러나는 에필로그, 즉 마지막 장면 바로 직전 쇼트에서 샤르망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형사들에게서 도망쳐 기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간다. 기차와 부딪히기 직전 그의 신체는 프리즈 프레임 효과 속에서 동결된다. 기차의 헤드라이트 때문에 하얗게 날린 스크린은 종결보다는 다른 이미지와 서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하얀 스크린과 샤르망의 신체가 한중간에서 찢겨나가기라도 하듯 바로 이어지는 쇼트에서 창문 양쪽이 열리고 하얀 커튼이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누드로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여자, 부띠크 직원과 주은몽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샤르망의 신체와 스크린(그리고 이성애 서사)을 찢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치 < 에이리언 >(리들리 스콧, 1979)에서 에일리언과 접촉했던 남자 승무원의 배를 찢고 아기 에일리언이 나오는 장면이, 직유적으로 (불가능한) 남성출산을 가리켰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 어떤 서사적 암시도 없었기에 그 반전은 그야말로 영화 전체를 헤집고 뒤집는 얼룩이 된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여자 등친 돈, 여자가 돌려받았을 뿐이야”라고 그럴듯한 범죄 동기를 던져줌에도 이 반전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에필로그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분석하며 그의 회화가 구상이나 추상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상을 뒤흔들고 해체하는 힘의 운동(강도)에 가깝다고 분석한 것에 가깝다. 들뢰즈가 ‘돌발흔적’이라고 부른 것 말이다. 돌발흔적은 구상에 가까운 그림 위에 우발적이고 맹목적으로 던져진 국지적이고 질료적인 손의 흔적을 지칭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에서 퀴어적인 것은 영화 내내 이어진 팜 파탈과 옴 파탈 간의 연쇄 범죄도,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도, 레즈비언 커플이 가시화되는 에필로그도 아니다. 그보다는 국지적인, 흰 스크린 위의 얼룩과도 같은, 마지막 한 씬으로 영화 전체를 뒤흔들고 반향을 만드는 힘의 강도다. 무엇도 선명하게 의도되지 않고 혼탁하기 그지없다. 외삽도 내삽도 아닌 방식으로 존재하며 우발적으로 스크린을 찢어내며 등장한 돌발흔적. 레즈비언 커플은 그야말로 샤르망의 몸, (혹은) 스크린을 찢고 자진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기존의 (이성애) 서사를 완전히 망쳐 놓는다. 영화는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듯 “아... 색깔있는 남자여 안녕”이라는 대사를 던지며 웃는 주은몽의 얼굴로 다시 한 번 프리즈 프레임하며, 샤르망의 프리즈 프레임을 취소시키고, 그 자신의 얼굴로 끝을 낸다. 에필로그 ‘얼룩,’ ‘돌발흔적’에 그칠 수밖에 없던 레즈비언 커플은 기껏해야 하나의 씬, 비밀스러운 작은 침실에서만 가시화될 수 있었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편의 퀴어 장편영화 < 딸에 대하여 >(이미랑, 2023)와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는 사회와 공동체에 의해 지워버려야 하는 얼룩과 불쾌한 냄새로 취급되는 레즈비언 커플의 가족구성권 혹은 자기 자리와 공간의 확보를 다루고 있다. <색깔있는 남자>의 ‘에필로그’는 국지적인 것이 바탕을 바꾼다는 면에서 퀴어적으로 독해될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반향을 만들어내는 얼룩의 자리는 강제된 것이고 실제로 그 자리 이외의 것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에 대하여>와 <럭키, 아파트>는 레즈비언 커플들이 더 이상 얼룩과 냄새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며, 돌발흔적은 오히려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넘어 상상된 관계들과 공동체들의 이접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말한다. 돌발흔적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촉지될 수 있다. <딸에 대하여>, <럭키, 아파트> 중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