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걸즈
- 감독
- 야구치 시노부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우에노 주리, 칸지야 시호리, 토요시마 유카리, 모토카리야 유이카, 히라오카 유타, 다케나카 나오토
나쁜 놈들에게 개과천선은 가능한 걸까? 성악설을 따로 들먹이지 않아도 늑대, 뱀, 피라냐, 상어, 거미 등 오래 전부터 무섭고 위험한 존재로 취급 받아온 이들이 새롭게 거듭나겠다며 착한 일에 도전한다. 하지만 기니피그로부터 제안된 이 실험은 시작부터 그리 녹녹치가 않은데, 지독한 편견과 고정관념 탓에 뭔 일을 시도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질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숨마저 내어줄 만큼 가장 친한 친구 사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 배드 가이즈 >는 변해버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서투른 고백이자 위로이고, 환대받지 못한 아싸들의 진솔한 우정을 그린 헌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15권까지 출간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호주의 배우 출신의 아동 작가 애런 블레이비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데, 영화는 크게 1권과 3권의 기둥 줄거리를 바탕으로 < 펄프 픽션 >과 <오션스 시리즈> 등의 전통적인 범죄 장르 영화들과 < 루팡 3세 >나 < 명탐정 번개 (홈즈)> 그리고 <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 같은 다양한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아 재해석되었다. 특히나 실사적인 움직임을 강조해오던 그간의 미국 전통적인 CG 애니메이션 경향에서 벗어나 만화 특유의 과장된 움직임과 가변 프레임적인 연출을 강조하는 스타일은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물론 공유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바로 음악을 맡은 이도 다니엘 펨버튼으로 동일하다는 것! 다니엘 펨버튼 1977년생의 다니엘 펨버튼은 현재 가장 핫한 영화음악가인 동시에,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뮤지션이다. 1994년 그의 나이 약관에도 미치지 않은 16살 때 만든 데뷔 앨범을 들은 TV연출자 폴 윌름스우스트(다큐 연출을 하다 방향을 틀어 <스트라이크 백>과 <다빈치스 데몬스> 등의 시리즈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베테랑) 눈에 띄어 픽업돼 그때부터 17년간 TV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아왔다. 그 필모 안에는 <핍쇼>나 <헬스 키친>, <공룡 구출 대작전>,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사무소> 등 제법 우리 귀에도 익숙한 영국 프로그램들도 보인다. 그러다 2011년 비로소 경력에 비해 늦은(그러나 여전히 젊은 나이인 30대 중반에) 닉 머피 감독의 < 어웨이크닝 >으로 장편 극영화음악 데뷔를 한다. 그 후 리들리 스콧과 대니 보일, 가이 리치, 아론 소킨 등 여러 잘 나가는 감독들을 단숨에 만족시키며 영화계 주류 작곡가로 편입되었다. 그가 이처럼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명징한 멜로디 감각과 탁월한 아이디어, 재기발랄한 편곡 솜씨를 보유한 실력 덕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지한 드라마를 필두로 다큐멘터리, 범죄물, 블록버스터 액션 히어로, 시대극, 판타지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편식 없이 가리지 않고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매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엔 길고 길었던 TV시절이 받쳐줬기에 가능했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배드 가이즈>에서도 이런 그의 유연한 다재다능함은 빛이 난다. 다니엘 펨버튼은 이번 애니메이션이 전통적인 하이스트 영화들에 기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 1960-70년대 사이에 제작됐던 수많은 할리우드 케이퍼 영화들이나 캅 영화들의 스코어에 경배를 바치고 있다. 헨리 맨시니의 < 핑크 팬더 >이나 <피터 건>, 퀸시 존스의 < 이탈리안 잡 >, 랄로 쉬프린의 < 블리트 >, 데이빗 사이어의 <지하의 하이젝킹(펠햄 123)>, 돈 엘리스의 <프렌치 커넥션>, 그리고 존 배리의 007시리즈 등 당대 가장 인상 깊었던 그 쿨한 재즈 사운드가 고스란히 그의 손에 의해 재현되는데, 이를 위해 휘황찬란한 브라스 섹션에 그루브한 하몬드 오르간과 펑키한 퍼즈 기타,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리드미컬한 봉고 드럼, 짜릿한 무그 신디사이저 등 그 당시 악기들을 이용했다. 이미 앞서 다니엘은 그 시절 첩보물의 리메이크인 < 맨 프롬 엉클 >과 오션스 시리즈의 스핀오프 < 오션스 에이트 > 그리고 진지한 누아르 < 머더리스 브루클린 >에서 재즈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과 실력을 마음껏 피력한 바 있기에 <배드 가이즈> 스코어의 완성도를 의심하는 건 시간낭비에 가깝다.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적재적소에 위치하는 활력 넘치는 레트로 사운드는 교활함과 긴장감, 위트와 낭만, 감동과 눈물을 동시에 아우르며 10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중 거의 내내라 할 수 있을 정도인 80여 분간 깔리며 기둥 분위기를 잡아준다. 하지만 단순한 스타일의 재현과 답습을 넘어 자신만의 색채를 입히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힙합 비트에 심포닉 사운드를 섞어 삽입곡들과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새로운 슈퍼히어로 스코어를 완성시켰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처럼 다니엘 펨버튼은 고전 하이스트 장르물 스코어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색다른 악기들이나 모티브를 도입해 기발한 재미와 흥미를 자아내게 만든다. 인도의 전통 악기 ‘반수리(대나무 플루트)’로 재즈에서 사용되는 플루트를 대체해 작전 이나 잠입 시 독특한 은밀함과 영화 중반 등장하는 크림슨 포의 신비주의를 선사한다던지, 하프와 아코디언, 치터가 뒤섞인 것 같은 음색을 들려주는 일본의 전통악기 ‘다이쇼고토(大正琴)’를 들고 와 그 특유의 서늘한 공명감으로 섬뜩한 빌런의 음모를 암시하는 등 기존 장르 스코어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실험을 펼쳐 보인다. 복잡한 사연을 지닌 입체적인 기니피그 캐릭터 마멀레이드 교수를 위해선 바흐에서 영향을 받은 피아노(대체적으로 영화에서 컨벤션화 된 악당 캐릭터들이 바흐 음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를 대입하고 있으며, 후반 들어선 의도적으로 역시 바흐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프로콜 하럼의 히트곡 “A Whiter Shade of Pale”의 하몬드 오르간 전주를 따와 반전의 전조로 써먹는 재치도 발휘한다. 시종일관 질주하는 다니엘 펨버튼의 음악은 마치 갱단의 노련한 움직임처럼 지치거나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앤서니 라모스 이기 팝과 함께 작업한 영화 <골드>의 주제가 “Gold”로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셀리스트와 함께 한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의 주제가 “Hear My Dream”으로 오스카 주제가상에 올랐던 만큼 다니엘 펨버튼의 송 라이팅 실력 또한 무시 못 하는데, 이번 <배드 가이즈>에선 흥겨움을 담당하는 두 곡 “Good Tonight”과 “Brand New Day”를 들려주고 있다. 영화 중반 스네이크가 위기에 빠지자 피라냐가 마이크를 잡고 주위 환기용으로 불렀던 “Good Tonight”는 실제 목소리를 맡은 앤서니 라모스의 출중한 노래 솜씨를 맛 볼 수 있는 곡인데, 그는 뮤지컬 <해밀턴>과 < 인 더 하이츠 >, < 트롤: 월드 투어 > 등으로 이미 검증된 바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주제가라 할 수 있는 “Brand New Day”는 영국의 소울 충만한 펑크 락 밴드 더 헤비가 소화해 그들 특유의 신명나는 그루브함과 화려한 스윙감을 선사한다. 그 외 배우이자 코미디언 롭 슈나이더의 딸로도 알려진 엘르 킹이 부른 “Feelin' Alright”도 쿨한 <배드 가이즈>만의 색채를 빛내주고 있으며, 사운드트랙 안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 흐르던 줄리 런던이 부른 고전 스탠다드 팝 “Fly Me to the Moon”이나 아니타 오데이의 “Whisper Not”이 분위기를 돋아주고, 더 블랙키스의 “Howlin' for You”, 케미컬 브라더스의 “Go”, 캔트 스톱 원트 스톱의 “Stop, Drop, Roll” 등이 유쾌함을 더한다. 개봉 전 예고편에선 재밌게도 빌리 아일리시의 딱 한글자만 틀린 제목의 노래 “Bad Guy”가 사용되기도 했다. 코로나 기간에 제작되고 상영돼 제약이 많았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올린 <배드 가이즈>이기에 속편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실제로 넷플릭스에선 23년 연말을 목표로 홀리데이 스폐셜이 제작 중에 있다. 다니엘 펨버튼이 직접 참여할 진 미지수지만, 현재 애플TV+에서 <에프터파티>와 <슬로 호지스> 시리즈를, 24년 개봉 예정이었다가 무기한 밀린 대망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삼부작을 마무리 짓는 <스파이더맨: 비욘드 더 유니버스>를 작업하는 등 바쁜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어 그의 주가는 더욱 폭등할 것으로 보인다. 거장이 되어갈 다니엘 펨버튼을 지켜보며 <배드 가이즈>라는 제목과 달리 썩 나쁘지 않은 비장의 OST 하나를 기억해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Track List 1. The Big Bad Wolf 2. Meet The Bad Guys 3. Let's Bounce 4. Push Pop 5. Step 3 6. Security Surprise 7. The Dolphin Heist 8. Going to Go Good 9. Turn on the Charm 10. Marmalade Prelude 11. A Heist for Good 12. The Sharing Laboratory 13. Save the Cat 14. "Good Tonight" by Anthony Ramos 15. So Long Suckers 16. The Lair of Loot 17. Loot Loops 18. Bedtime Story 19. Double Crossed 20. Tricky Fox 21. The Crimson Paw 22. Secret Hideout 23. Evil Masterplan 24. The Sad Guys 25. One Last Push Pop 26. Finish Them 27. Huff + Puff 28. Just Robbing This Place 29. Freeway Escape 30. Who Said It Was the End? 31. Redemption 32. The Old Switcheroo 33. "Feelin' Alright" by Elle King 34. "Brand New Day" by The Heavy
< 맨발의 청춘 >( 김기덕 , 1964)에 대한 평론과 연구는 이미 차고 넘친다. 1950~60년대 한국영화와 대중문화사에 대해 한 마디 얹으려면 피해갈 수 없는 영화가 < 자유부인 >( 한형모 , 1956), <맨발의 청춘>, < 미워도 다시한번 >( 정소영 , 1969)이고, 그런 만큼 논문과 평론 등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청춘영화의 본격적 출발, 신성일 ‧ 엄앵란 콤비의 시작, 방황하는 밑바닥 청춘의 울분과 좌절, 과장되게 미국화하여 전시된 화려하고 발랄한 질감 등, 이 작품에 새삼스레 한 마디 말을 더 얹을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한국영상자료원 사이트에 국한해도 <영화천국> 18호에 수록된 이길성의 글 「 한국 청춘영화의 아이콘, 레전드가 되다 」 같은 충실한 글이 이미 있다. 그런데 각도와 폭을 좀 달리해서 보면 좀 다른 것들이 보인다. 1964년이란 시기이다. 대중예술 작품의 인기는 해당 작품 하나의 극본과 연출의 완성도, 배우의 매력, 혹은 유통 과정에서의 우연 등 다양한 요소에 좌우된다. 하지만 전후를 함께 살펴보면 그 작품이 인기 있을 만한 조짐이 이미 한두 해 전부터 축적되고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한 시점에 그 작품이 놓인 경우가 많다. <맨발의 청춘> 역시, 한 해 전에 일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 청춘교실 >( 김수용 , 1963)‧< 가정교사 >(김기덕, 1963)라는 전조가 있었고, 더 길게 보면 전쟁 중 소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청년기를 맞으며 자기 세대 얘기를 시작하는 전 세계적 현상이 유럽‧미국에서 일본의 태양족까지 차근차근 영향을 주고 있었다. 한국에서 1964년은 더 생각할 지점이 있다. 그 해에 주목할 만한 대중문화의 새로운 흐름이 솟아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지 시대의 시작, 민영 TV의 본격화 등 여러 매체 환경이 변화한 것도 이 해인데, 작품 경향으로 보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계기로 트로트가 부활한 것이다. 대중가요사 시작 이래 한 번도 제1주류 양식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던 트로트는, 1961년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인기로 몇 년 간 확실한 침체를 보였다. 그 사이 제1주류 양식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미국풍 가요인 스탠더드팝, 그 중에서도 손석우 작곡의 명랑하고 반듯한 질감의 작품들이었다. 1964년을 계기로 트로트가 다시 부활하고, 스탠더드팝 역시 최희준이 부른 주제가 <맨발의 청춘>(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이 몰아온 어두운 뒷골목 냄새 풍기는 재즈 분위기의 작품이 부상하는 변화를 보인 것이다. 대중가요계에서 1964년 부상한 이 두 가지 흐름은 완전히 상반된 경향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손석우 노래가 주도하던 모범생처럼 건전‧명랑한 분위기가 아닌, 어둠과 절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1960년부터 1963년까지를 주도했던 건전하고 명랑한 가족 멜로드라마(‘ 김승호 영화’라 할 만한)가 주춤거리면서, 어두움과 절망이 깃든 <맨발의 청춘> 같은 청춘영화가 부상한 것과도 비견될 만하다. 영화계에서도 < 모녀기타 >( 강찬우 , 1964) 같은 복고적인 신파적 영화가 함께 부상하고 있었으니 사실 가요계와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청소년 취향과 성인 취향 양쪽에서 모두 몇 년 동안 잠복되었던 어두운 절망‧퇴폐 같은 감성이 이 해에 일제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즈음에 대중의 사회심리가 바뀔 만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게 옳다. 1960년대 초에 영화와 가요계에서 모두, 과거의 어둡고 퇴폐적이던 흐름을 청산하고 명랑하고 반듯한 질감의 작품이 인기를 끈 것은 확실히 4‧19와 5‧16,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시작 등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도 정부의 통제가 개입되어 있다 할지라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억지스러운 관제적 건전성과는 확연히 다르게, 대중 스스로 기꺼이 동의한 건전‧명랑‧희망의 질감이 1960년대 초의 작품에는 넘쳐난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 가고 정치까지 바뀌면서 사람들은 ‘허니문 현상’의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63년에 군정이 끝나고 대통령 선거를 치른 후 1964년에 박정희의 민정 제1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이제 대중의 심리에서도 몇 년 간의 허니문의 거품 희망이 서서히 꺼지면서 잠복되어 있던 절망‧불안‧소외감‧퇴폐 같은 감성이 다시 부상하게 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950년대로 되돌아 간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거품이 조금 가라앉았을 뿐 여전히 오랫동안 힘을 발휘했다. 1950년대의 자유주의와 화려함이 전후의 엉망진창 한국사회에서 풍기는 허무주의의 냄새를 품고 있다면, 1960년대 <맨발의 청춘> 속의 주인공 두수는, 비록 좌절되었을지라도 진정한 사랑과 계층상승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꿈을 지니고 있는 ‘신데렐라 맨’이었다. 물적‧성적 욕망의 질감 역시 1950년대의 <자유부인>이 보여주는 그것이 아니었다. 영화 <자유부인>이 ‘두루뭉술하게 서양적인’ 질감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맨발의 청춘>은 신성일의 청바지와 트위스트김의 스윙댄스, 화면 뒤로 흐르는 색소폰의 재즈 연주와 프로레슬링, 현대적이고 실용주의적 디자인의 미국대사관 건물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미국적 질감을 과시한다. 대중가요계에서도 그랬다. 1964년에는 한국 최초로 록그룹의 음반이 두 장이나 출시됐다. 차중락‧윤항기 등의 키보이스, 신중현이 이끄는 애드훠의 음반(<빗속의 여인> 수록)이 그것이다. 서수남‧하청일이 이끄는 컨트리뮤직 그룹인 아리랑부라더스의 음반(<동물농장> 수록)도 이 해에 나온다. 물론 이것들이 다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방향성은 분명하다. 1960년대는 이렇게 두 번째 시기로 넘어가고 있었고, 바로 그 지점에 <맨발의 청춘>이 위치한다. 그리고 1960년대의 세 번째 시기로 넘어가는 즈음에 < 미워도 다시한번 >이 놓여있다. 한국영화사의 ‘대박히트’ 작품은 이렇게 한국현대사와 기막힌 조응을 보여주고 있다. <맨발의 청춘> VOD 보러가기
생각해보자. 야구치 시노부가 우릴 실망시킨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서 < 산전수전 >(1999)으로 리메이크되면서 망가지긴 했지만, 첫 35mm 장편 < 비밀의 화원 >(1996)부터 야구치 시노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의 감성을 지닌 감독이었다. 사실 <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1999)가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그래도 안도 마사노부가 있지 아니한가!) < 워터 보이즈 >(2001)는 극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이후 남학생들에게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시킨 감독은 < 스윙 걸즈 >(2004)에서 여학생 합주반을 만들며 유쾌 발랄하고 따뜻한 드라마를 선사한다. < 해피 플라이트 >(2008)에선 위기의 비행기 안에서마저 웃음을 만들어내더니, < 로봇 G >(2011)에선 조잡하면서도 기상천외한 특유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 비밀의 화원 >(1996) < 워터 보이즈 >(2001) < 해피 플라이트 >(2008) < 로봇 G >(2011) 그리고 < 우드 잡 >(2014)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갈 곳은 재수학원밖에 없는 녀석이 산에서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역시 야구치 시노부스럽고, 여전히 소소한 재미로 가득 차 있으며, 의외로 깊이 있는 울림을 준다. 상황과 인물과 디테일을 흘러가듯 즐기며 볼 수 있는 휴머니즘 코미디. 인생에서 나무만 보는 사람들에게 숲을 보라고 조용히 타이르는 목소리. 바로 <우드 잡>이다. 이 영화는 시노부 감독의 장기인 ‘제로 투 히어로’(zero to hero) 패턴을 그대로 반영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던’(zero) 루저이며 오합지졸이던 청춘들이 의외의 상황에 부딪혀 갖가지 난관을 통과한 후에 ‘영웅’(hero)이 되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영웅’은 그 어감이 지닌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영웅은, 드디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화학에서 언급되는 영웅 서사의 경로를 그대로 밟으며, 결국은 외톨이에서 벗어나 사회와 통합된다. < 우드 잡 >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히라노 유키(소메타니 쇼타)는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흥청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우연히 산림 연수원 모집 전단지를 보고 끌린다. 평소에 이쪽 분야에 관심 있었느냐고? 그럴 리가… 태어나 나무 한 그루 심어 본 적 없는 유키를 유혹한 건 홍보 전단지의 여자 모델이었다. 그는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무작정 연수원으로 향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이론을 빌자면, 영웅이 ‘모험의 소명’을 받은 셈. 그는 그곳에서 도망치려 하지만(소명의 거부) 결국 과정을 수료하고, 휴대전화 신호도 터지지 않는 가무사리 마을의 나카무라 임업에서 1년 동안 연수생으로 일한다. 산속의 삶은 힘들었지만 그는 마을 축제의 일원이 되면서 ‘산 사나이’로서 인정을 받는다(관문의 통과). 물론 시련과 굴욕은 이어졌다. 거머리에게 물려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노출하고, 살모사에게 물려 부은 귀가, 마치 부처상의 귀처럼 축 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보상이 있었다면, 전단지에 있던 그 모델이 바로 마을에 살고 있었던 것. 그녀의 이름은 이시이 나오키(나가사와 마사미). 단 홍보용 이미지처럼 조신하진 않다. 캠벨의 이론에 의하면 유키는 1년의 시간을 마치고 도시로 ‘귀환’해야 하며, 그의 곁엔 연인이 된 나오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 우드 잡 >의 결말은 여기서 작은 반전을 만들어낸다. < 우드 잡 >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롱 숏의 웃음’이랄까? 억지스러운 개그 코드를 들이대기보다는, 한 발자국 물러선 카메라 안에서 인간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웃음을 유발한다(아…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유머 코드는 글로 설명하기엔 그 뉘앙스가 너무 강하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또 한 종류의 웃음이라면 은근한 섹스 코미디다. 이다 요키(이토 히데아키)는 연수원 시절부터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교관으로 유키는 그의 집에서 1년 동안 숙식을 된다. 요키와 아내 리다 미키(유카)의 지상 목표는 아이를 갖는 것. 미키는 체온 그래프를 만들어 ‘그날’을 정하고, 부부는 유키를 피해 도시의 모텔로 가 거사를 치르는데, 이 설정에서 잔잔한 웃음들이 만들어진다. 마을 축제도 의미심장하다. 남성 생식기를 상징하는 거목을 잘라, 여성 생식기 모양의 거대한 짚더미에 충돌시키는 의식이 치러지는데, 의도하지 않고 훈도시만을 입은 채 거목 위에 탄 유키는 얼떨결에 제주도 돌하르방 코처럼 생식의 아이콘이 되고, 마을 여성들은 그를 어루만진다. 자연의 스펙터클 하지만 < 우드 잡 >이 숲에서 펼쳐지는 웃음 한마당에 그친다면, 굳이 이렇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엔, 도시 관객들이라면 경이감을 가질 만한 자연의 스펙터클로 가득하다. 특히 나무가 넘어가는 장면의 파워풀한 느낌은 장엄함을 넘어 거룩하기까지 하며(마치 산신령이 나무를 허락해주는 듯하다), 산 위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산 사람들의 모습엔 자연과 함께하는 노동의 삶이 지닌 운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노동요를 부르며 산에서 내려온다. “나무 하나 자르면 배부르게 먹고/소처럼 누워 코 골며 잔다/오늘도 늙는다. 오늘도 늙는다….” 어쩌면 우린 이런 삶을 희구해온 것이 아니었을까? 단순하면서도 건강하고,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삶.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그것을 누리는 삶. 이 대목은 가문의 이름을 걸고 임업사를 경영하는 나카무라 세이치(미츠이시 켄)의 말에서 더욱 울림을 준다. 그가 오늘 벤 나무는 100년 전에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100년 후의 후손을 위해 오늘도 산에 묘목을 심는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우리가 죽은 후에 나오는 거지.” 나무를 벤다는 것은 시간을 베는 것이며, 나무를 심는 것은 시간을 심는 것이다. 이것이 도시 루저 유키가 숲에서 배운 교훈이며, 눈앞의 것만 좇으며 살아가는 근시안적인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가 전하는 힐링의 메시지다. 이것은 조화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무’와 ‘일’이 결합된 < 우드 잡 >이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두 세계가 하나 된 모습들을 보여주며, 종종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이미지들을 삽입하고 인물들은 그것을 바라본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 자연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순환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이며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한 철학을 영화는 힘주지 않고 너무나 편하게 전달한다. < 우드 잡 >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젊은 청년이 산속에서 삶의 태도를 배우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1년 후 도시로 돌아간 그는, 자신이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야 할 세상이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어느새 그에겐 용기가 생긴 것이다(‘유키’라는 이름은 한자로 ‘용기’(勇氣)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사족으로 원작자에 대해 소개한다면 나오키상 수상작가인 미우라 시온. 일본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 봤을, 그리고 한 권쯤은 읽어봤을 작가로 < 우드 잡 >은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영화화한 것이다. 주인공 유키가 산에서 보낸 1년을 일기 형식으로 쓴 소설로, 미우라 시온의 작품은 「마사 & 겐」 「배를 엮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 집」 「천국 여행」 「흰 뱀이 잠든 섬」 「고구레빌라 연애 소동」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등 한국에서 10여 종이 출간되어 있다. <우드 잡> 외에도 여러 편이 영화화되었는데 첫 각색은 오오모리 스미오 감독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2009). 2011년엔 타츠시 오모리 감독에 의해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 집」이 영화화되었는데, 2013년엔 TV 시리즈로도 만들었다. 영화와 TV 시리즈 모두 에이타가 출연한다. 이시이 유야 감독의 < 행복한 사전 >(2013)은 한국에서도 개봉했던 작품으로, 「배를 엮다」를 각색했다.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