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는 고모령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박세레나, 한은진, 김희라, 문희, 박노식, 독고성, 추석양, 양일민, 최성, 황백, 권오상, 정성원, 최창호, 배수천, 심상현, 라정옥, 임예심, 이해룡
야심한 밤의 주유소, 프레임 오른쪽에 도열한 급유기들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흰색의 사각형, 후경의 도로 뒤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프레임을 수직으로 가르며 달려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프레임 왼쪽에서 주유원이 프레임 인하여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깊은 공간의 가장 앞쪽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주는 긴 쇼트가 지속되는 동안 주유가 끝나고 오토바이의 라이더가 시동을 걸자 카메라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넓어진 화각의 카메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도로, 전반적으로 컴컴하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건물들, 황녹색 신호등 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인도하는 것 같다. 하나의 쇼트로 서술되는 이 신에서 영화의 주인공 태훈(서준영)이 막 도착했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짐작한다. < 회오리 바람 >(2009)은 기대감을 형성하는 설정의 기능을 통해 서사의 심부(深部)로 관객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플롯을 주재하는 모티프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구조이다. 태훈과 그의 동급생 여자 친구 미정(이민지)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초여행을 다녀오는데, 이 일탈적 여행이 초래한 여파, 악화하는 관계의 추이가 내러티브의 골간을 이룬다. 서로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실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소년 소녀에 관한 이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이와 같은 유서 깊은 스토리 유형의 장점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은 모두 그런 장면들이다. 장건재 감독의 성취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부유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요동하는 존재의 상태를 시청각적인 기술(記述)을 통해 서술해낸 것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 이후 ‘3개월 전, 고2 겨울방학’으로 시간이 점핑하여 속초여행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플롯은 저들의 존재와 앞날을 암시하는 한 신을 제시한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태훈과 미정은 각각 흰색 콘크리트 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쓰레기통에 담배를 비벼 끄고 프레임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태훈을 카메라가 따르는 동안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외면하는 자세로 선다. 짙은 그림자가 잠식한 프레임 뒤편에서, 숨겨져 있던 쇠기둥들을 걸치고 태훈은 한 사내에게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여비를 구걸한다. 태훈은 서울로 돌아가 계좌로 빌린 돈을 붙여드리겠다고 청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사내는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곤란한 표정의 태훈이 대합실 입구에서 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미정은 그가 다음 상대를 골라 프레임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태훈은 일군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지만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냉랭한 거절의 답을 듣는다. 다시 프레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대합실에서 나오는 중년의 여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때 상황이 반전된다. 태훈의 기색을 살피던 여인은 “얼굴이 아주 심각하구만”이라고 관심을 보이더니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붙여준단 소리 하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인상이 좋아서 꿔주는 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구제의 가능성이 보이자 “도착하는 대로 꼭 붙여드릴게요”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태훈에게 이 구원자는 “믿어보는 거지 뭐, 진짜 줄래나 안 줄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태훈의 이동 경로를 따라 프레임 앞으로 슬그머니 이동한 미정은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태훈과 여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공유한다. 물경 2분 20여 초 간 지속하는 기나긴 이동 쇼트는 불안한 구도와 기우뚱한 자세로 선 소년 소녀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호의를 보인 구원자의 바람과 달리 태훈이 빌린 돈을 돌려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태훈에게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여비가 있었으나 다만 초코바와 우동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가벼운 배신의 삽화는 다소간 약삭빠른 태훈의 성격을 암시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의 일관성은 PC방에서 마주친 건달들을 속이려다 숨겨둔 돈과 신발을 모두 빼앗기고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신은 마치 선의의 구원자를 배신한 이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섬세하게 유지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태훈의 움직임과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가담하지도 못하는 미정의 제스처를 한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쇼트는 이후에 진행될 서사의 궤적을 지시한다. 저들은 이 즉흥적인 바다 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이별하게 될 운명이다. 소년은 변덕이 있고, 즉흥적이며,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비해 소녀는 주변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소년은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지만 소녀는 이미 결단을 내리고 그를 외면한다. 태훈은 새로운 관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미정의 침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은밀하게 뒤를 밟아 알아둔 학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태훈의 불쾌한 행동과 그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미정의 절교 선언은 겨울 바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예견된 바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선택은 미세하게 갈라지게 된다. 표면적인 이야기 너머를 향하면서 영화의 의미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영화적 묘사의 힘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여주는 후속 신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일탈을 눈치챈 미정의 부모가 태훈과 그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얼마간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가진 미정의 아버지(최효상)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두 아이에게 각자의 행적을 적게 하고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려 한다. 범죄 조서를 꾸미듯 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스토리를 적어 냈을 때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발목에서 칼을 꺼내 나무 탁자 위에 꽂는다. 핸드헬드 쇼트는 극도의 혼란을 전달하고, 점프 컷은 미정의 뺨을 때리고 골프채로 장식장 유리를 부수는 아버지의 광란의 퍼포먼스를 단속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을 향한 아버지의 욕지기는 별안간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 것임이 밝혀진다. 상이한 타임 라인을 잇는 사운드의 연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회오리 바람>의 특이점은 소년, 소녀가 그해 겨울의 체험을 겪어야 했던 이전의 상황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그들을 둘러싼 주변이나 세계와의 접점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로 표랑하는 열여덟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 상황, 캐릭터,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의 스타일 전략, 디테일은 잘 조율되어 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만개하던 시절 DV 캠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생생함, 시간과 주의를 낭비하지 않는 촬영, 섬세한 연기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빈번한 롱테이크는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기여하고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 묘사는 반항심에 찌든 십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바람의 이미지, 텍스처는 거칠지만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에 관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의 무드와 잘 어울린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훈의 오토바이가 행인을 친 뒤 급격히 암울해지는 분위기는 텅 빈 겨울 바다를 무대로 들려오는 태훈과 미정의 화면 바깥 대화와 대비를 이룬다. 지나 버린 시절의 격정 안에 영화가 포괄하고자 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실해진다. 험준한 산길과 사막을 걷는 태훈이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황이 오래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시간이 다시 점핑하여 ‘3개월 후, 열아홉’이 된 미정은 진즉에 상실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목엔 태훈이 준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얼마 후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바람을 맞은 듯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두 사람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간은 겨울 바닷가 여행이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의 이미지는 백사장을 덮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내며 태훈이 움직일 때 매섭게 부는 바람의 사운드로 이어진다. 미정 역시 태훈과 마찬가지로 잘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유소, 터미널, 미정의 집, 바닷가 눈밭에서의 움직임과 정지, 동요는 영화가 묘사하고자 한 ‘바람’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바람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광기를 부리고, 차분하고, 들떠 있고, 안정을 주고, 불안하고, 차갑고, 따스하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과 존재를 흔드는 바람의 색깔은 열여덟의 고뇌와 황홀경, 삶의 혹독함을 이기는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 < 비밀은 없다 >와 < 마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국 장르 영화에서 모성은 오랫동안 여성인물의 주요한 서사적 동기로 사용되어 왔다. 전통적으로 남성인물이 이끄는 서사에서 자원쟁탈, 권력투쟁, 우정, 가족, 직업적 소명, 공동체의 대의 등 다양한 동기가 제시되어 온 것과 대비된다. 현실에서 가부장제가 여타의 활동공간, 역할, 관계를 허용하지 않고 모성의 자리에만 여성적 가치를 할당하며 제약해온 탓일 것이다. 역으로 주류의 허구적 서사는 자식을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모성성을 강화하는 신화가 되었다. 등장인물이 서사의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행동을 할 때는 설득력 있는 그럴듯한 동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성인물에게는 모성이나 이성애 로맨스 이외의 상상력이 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럴듯함, 핍진성, 개연성이라고 거론하는 서사적 약호들을 현실의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인과관계와 등치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핍진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누적된 그래서 이제는 지나치게 당연하게 여기는 장르적 관습에 의해 상당부분 정립된다. 즉 익숙한 설정은 알고 있는 정보로서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별다른 근거제시 없이도 설득력을 높인다. 하지만 핍진성은 또한 역사적 구성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어내는 요소와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변화시킬 수 도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것을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다. 여성인물의 주요한 서사적 동기로 모성이 아닌 완전히 다른 소재를 찾을 수 있지만, 기존의 모성서사를 구부리고 늘리고 비틀면서 스스로 균열을 내는 방법도 있다. <비밀은 없다>나 <마더>(봉준호, 2009)가 후자의 경우다. 두 영화는 자식을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 엄마를 탐정으로 내세운 느와르 장르를 전유한다. 이 영화들은 자식을 위해 복수를 감행하는 폭력적 액션의 쾌감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모성복수극과는 다르다(< 오로라 공주 >, < 돈 크라이 마미 >, < 공정사회 > 등). 그보다는 자식을 위해 진실을 찾아 나선 탐정-엄마들이 자신이 근거해 있던 세계를 뒤집어엎을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을 대면했을 때의 윤리적 태도를 시험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일반적 탐정과 달리 그들은 피해자라고 생각되는 자식과 거리를 둘 수 없으며 그 때문에 때때로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영화들에서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그려진 격한 모성과 탐정의 진실추적의 욕망은 문자 그대로 ‘-(하이픈)’이 필요한 마찰 있는 조합이다. 두 장르적 도상의 조합은 서로를 낯설게 만들면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두 영화의 주인공인 연홍(손예진)과 엄마(김혜자) 모두 자식을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하면서 모성을 발판으로 그들의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거기에는 진실에 대한 욕망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들에서 모성은 최종적 목표나 결과물이 아니라 서사의 시작점이자 욕망을 발현할 발판 정도가 된다. 여성이 강력한 욕망을 드러내고자 할 때 지배 이데올로기가 모성 내에서만 가능한 것처럼 틀 지웠던 것을 역이용한다. 한번 시동을 걸자 멈출 줄 모르는 그녀들의 폭발적인 욕망은 기반하고 있는 모성서사의 프레임을 뒤흔들어 버린다. 1970년대 활동했던 영국의 페미니스트 영화이론가 클레어 존스톤은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로라 멀비와 달리 스스로 서사에 균열을 내고 의문을 품게 만드는 진부한 도상의 사용과 여성의 집단적 판타지의 역량을 믿었다. 당시 멀비는 「시각적 쾌락과 서사영화」(1975)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주류 서사영화가 이성애 남성의 성적 응시를 통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서사적 쾌락을 만들어내는 영화구조를 비판하며 장르적 도상과 서사로부터 열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아방가르드 영화를 옹호했다. 반면 클레어 존스톤은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하는, 말하자면 관습이 굳을 대로 굳어져 사유가 제거된 이미지는 스스로 균열을 만들어 내고 의심을 품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존슨톤은 멀비와 달리 대중장르영화를 옹호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에서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하여, 우리의 집단 판타지들은 공개되어야 한다. 여성영화는 욕망의 작용을 구체화해야 하며, 그 목적을 위해 오락영화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오락영화의 아이디어들은 정치적인 영화를 풍요롭게 해야 하며, 정치적 아이디어들은 오락영화를 풍요롭게 해야 한다. 즉 상호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대항영화로서의 여성영화」, 1973) 흥미롭게도 <그녀의 이름은 베트남>을 만든 실험영화 감독 트린 민하도 진부한 도상, 즉 스테레오타입과 관련해 유사하게 말한다. “스트레오타입은 거짓된 재현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하는 현실의 포획된 재현”(「근처에서 말하기」, 1992)이기에 시적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트레오타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해체과정, 균열, 위치바꿈, 미끄러짐, 멈춤 그 자체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 속에서 창작자는 번역가의 위치를 자처하며 의미의 종착지를 만들지 않고 스테레오타입과 아직 말해지지 않은 실재 사이에 무언가 있음을 지시할 수 있다. <비밀은 없다>와 <마더>는 존스톤이나 트린이 말한 낡고 낡은 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럼에도 두 영화가 동일한 도착점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모성의 도상과 관련해 <비밀은 없다>가 궤도를 뚫고 이질적인 공간으로 튕겨져 나간다면, <마더>는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회귀해 심연에 재침잠하는 운동을 보여준다. <비밀은 없다>의 오프닝 씬에서 연홍은 관습적으로 장르영화가 그려온 모성의 과잉된 양상을 연기한다. 그녀는 기존 사회가 원하는 모성의 텅 빈 기표를 말 그대로 뒤집어쓴다. 연홍은 그 기표가 자신이 욕망하는 곳에 데려다줄 운반체라고 믿는다. 연홍은 유력한 지역 정치인 종찬(김주혁)의 아내로 남편을 성공시켜 영부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연홍은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남편 선거를 도우며 내조를 한다. 딸 민진도 그 기표가 얼마나 텅 비어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비밀이 아니다. 민진은 너무 비밀이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엄마를 가엾게 여기고 자신의 가상친구 ‘자혜’를 연홍의 어린 시절 정보를 모아 몽타주한다. 또한 어떤 비밀들은 연홍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감춰야 하는 어두운 비밀이 되고 폭력으로 변질된다. 모두가 거리낌 없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지역에서 연홍 혼자만 표준어를 사용한다. 광주출신인 그녀가 자신의 출신지를 말하지 않고 사투리를 쓰지 않는 방식으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더러운 것을 감추고 숨기는 비밀이 된다. 차이는 차별과 혐오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상대방 후보뿐 아니라 종찬의 선거운동원들도 연홍의 지역출신이 당연히 혐오해도 괜찮은 것처럼 말한다. 실상은 혐오의 낙인인 공공연한 비밀과 텅 빈 모성의 기표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연홍은 민진의 죽음 이후 달라진다. 선거가 우선인 종찬과 달리 민진을 죽인 자를 찾아내려는 연홍은 스스로 혹은 타인에 의해 덮인 기표들을 벗어낸다. 그 자리에는 각성하는 모성이 있다. 각성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연홍의 모습은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푸라기 잡듯 굿을 하고, 자신의 손등을 찔러 자해하고, 민진의 이메일 비밀번호와 노트에 적힌 암호를 풀기 위해 몇날 며칠 밤을 샌다. 그러나 모두 민진의 실종과 죽음에 눈 감으려할 때 연홍은 고립되어 유일하게 진실을 찾으려는 자다. 그녀의 광기와 집착은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연홍은 남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비밀을 폭로한다. 자신의 애초의 욕망이 얼마나 스스로와 딸을 해하는 기반에 근거했는지를 연홍은 깨닫는다.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은 기존 사회로부터 더러운 비밀이 있는 자들로 분류되어 왔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그들을 배제하고 주변화하기 위해 ‘더러운 비밀’을 폭로해 ‘추문’을 만드는 방식을 자주 사용해왔다. 연홍은 남편 종찬에게 동일한 방식을 돌려준다. 연홍은 딸의 복수를 위해 종찬이 선거에서 이겨 목적을 달성한 순간 비밀을 폭로하고 추문에 휩싸이게 만든다. 첫 유세가 있는 남편과 친구 자혜와 함께 과제를 하다 늦게 들어오겠다고 하는 딸 민진(신지훈)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첫 장면 바로 직전에 충혈되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연홍의 얼굴 클로즈업이 붙는다. 이 쇼트는 <마더>에서 석양이 내리쬐는 갈대밭에서 정신을 놓은 듯 춤을 추는 엄마의 첫 쇼트와 상응한다. 기존의 많은 영화들에서 충격을 받아 초점을 잃은 여자의 얼굴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녀의 존재와 이미지는 그 자체로 그 충격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할 미스터리가 된다. 그러나 연홍과 엄마는 모두 스스로 미스터리이자 사회의 미스터리를 푸는 탐정이 된다. 미스터리로서의 모성을 만들어낸 사회적 구조는 자신 스스로를 포함하고 있기에 미스터리를 풀고 진실을 대면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세계를 뒤집어엎을 각성이 수반한다. 연홍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남편이 딸을 죽였다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해왔던 것이 다 무너지더라도 그녀의 모성은 그 진실을 뚫고 지나간다. 스스로가 그 비루한 체제의 일부였기 때문에 기존의 자신도 해체된다. 그렇게 연홍은 무지한 자에서 깨달은 자로 변모해 나간다. 가족을 해체시킬 비밀의 폭로와 진실의 대면에서 <마더>의 엄마는 자신이 아들 도준(원빈)을 죽이려했다는 사실을 도준이 알고 있다는 진실과 도준이 살인범이라는 진실 두 가지를 모두 몰랐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에 침을 찌르고 정신없이 춤을 춘다. 한편 < 올드보이 >(박찬욱, 2003)에서 아버지 오대수(최민식)는 미도(강혜정)가 딸이라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본인만 고통스럽게 진실을 품은 채 미도에게 최면을 걸어 그녀를 무지의 상태로 돌리려 한다. 여기서 미도는 알지 못한 채 근친상간을 저지른 오이디푸스, 비극의 주체인 오대수와 비교해, 진실을 모두 알고도 타인에 대한 애도를 포기하지 않는 안티고네가 될 수 있었음에도 아버지 오대수는 미도에게 아예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더>의 모자서사와 <올드보이>의 부녀서사에서 여성들은 진실에 대면했을 때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감당하거나 이용하려는 남성들과 달리 무지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반면 <비밀은 없다>는 죽은 딸을 대체한 미옥과 함께 아직도 풀어야 할 암호가 가득 찬 ‘와일드 로즈 힐’에서 대항적 판타지의 세계를 구성하며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튕겨져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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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전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전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전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저라면 이 행성에 빵점을 주겠어요. - renata litvinova 나와 금정연, 임재철 평론가는 2021년 어느 겨울 낮, 은평구 갈현동의 만포면옥에서 물냉면과 설렁탕, 눈꽃 만두를 먹고 있었다. 우리가 왜 만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평소처럼 금정연이 연락을 해 그분이 보자고 합니다, 라고 말했을 뿐이다. 나는 그분이 금정연을 만나고 싶은데 둘이 보기 뻘쭘하니까 나도 같이 보자고 한 건지, 아니면 금정연이 둘이 만나기 싫어서 그분 몰래 나를 끼워넣은 건지 의심스러웠고 갈현동까지 가는 길을 생각하면 눈물이 차올랐지만, 영자원 연재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원고를 위한 작은 소스라도 얻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모든 연재가 그렇듯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도 매 원고가 위기였다. 시나리오 작법서로 베스트셀러가 된 시드 필드에 따르면 시나리오는 시작, 대립, 해소의 3막으로 구성된다. 반면 우리 에세이(필름)의 원고(대본)는 시작, 시작,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1년을 연재했는데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네요. 금정연이 말했다. 지난 원고도 2주나 넘겨 마감한 정연씨는 안본 사이에 더 늙은 모습이었다. 더희미해지고 하얘졌달까. 그러나 동안인 건 여전했다. 금정연을 본 사람이라면 별다른 설명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박솔뫼는 정연씨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늙은 아기. 상업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도 보통 2~3년은 걸린데요. 너무 걱정마세요. 나는 정연씨를 위로했지만 사실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나름 호기롭게 시작한 연재였고 쓰는 동안 괜찮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제목: 한국영화 커뮤니티가 격변하는 시점 두 가지. 하나는 엠파이어가 moma로부터 가져온 16mm 필름으로 상영되는 날이고 다른 하나는 정지돈 금정연이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을 완성하는 날 금정연이 게시물을 쓸쓸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이 올까요? 반면 임재철 평론가(이하 LJ)는 우리의 걱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야, 지난 번 원고도 쓰기 싫은 티가 너무 나더만. 으하하하. 금정연과 나의 인상이 동시에 구겨졌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LJ에겐 어떤 대응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일설에 따르면 LJ는 무적의 비평가였다. 저널리스트의 객관성과 독학자의 주관성을 두루 갖춘 비평계의 전무후무한 존재. 놀라운 건 이 사실을 LJ에게 직접 들었다는 사실이다. “나, LJ, 무적의 비평가.” 그러나 이와 같은 발언을 오만함이나 과대망상, 자기 현시 등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LJ는 특정한 시공의 열림 속에서 어느 순간 가장 정확한 비평가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언제 어느 때 그러한 시공이 열리는지, 그 조건을 포착하는데 있다. 마찬가지로 금정연 역시 때때로 무적이 된다. LJ와 그가 다른 점이 있다면 금정연은 스스로를 무적의 비평가로 칭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비평가/평론가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럼 정연씨는 뭐예요? 언젠가 나는 정연씨에 물었고 정연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평가죠. 서평을 쓰지 않는… 그게 뭐야. 글쎄요. 전 뭘까요, 지돈씨? 자꾸 쓸데없는 말만 하지말고 영화나 만들어. LJ가 말했다. 두 세대 어린 영알못들의 감상주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투였다. 그의 앞에 놓인 설렁탕은 이미 싹 비워져 있었다. 만포면옥은 백년식당으로 선정된 냉면 맛집이었고(소설가 김훈은 “인생관을 바꾸는 맛”이라고 극찬했다) 나와 금정연은 물냉을 주문했지만 LJ는 설렁탕을 시켰다. 동시대에 기자로 활동했던 김훈에 대한 질투였을까? 내가 묻자 LJ는 김훈 정도는 기자로 쳐주지도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걔는 기사도 소설처럼 썼어(물론 칭찬이 아니다). LJ의 말은 늘 과격했지만 가끔 우리를 뜨끔하게 했다. 이를테면 “원고 쓰기 싫은 티” 같은 말 말이다. 익명의 블로거는 금정연의 <아무튼 택시>를 읽고 이렇게 글 쓰기 싫어하는 저자는 처음 봤다며 책값이 아깝다고 화를 냈다. 반면 또다른 블로거는 책 전반에서 느껴지는 쓰기 싫음, 일하기 싫음 때문에 저자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만약 글 쓰는 걸 진심으로 싫어했다면 이렇게 상반된 감상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애초에 책을 내지 않거나 에밀 시오랑 마냥 아포리즘을 끄적대며 거만을 떨거나). 우리의 태도는 냉소나 시니컬함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너스레나 솔직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느 쪽일까? 양쪽 다인 걸까 둘 모두 아닌 걸까. 정연씨의 글 대부분은 진심으로 무언가를 믿고 실천하는 것의 어려움,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게 아니라 부유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원고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구태여 매끈하게 만들려고 애쓰지도 않고 좋아하는 단편들로만 채우기.” 어쩌면 이것은 우리 세대의 “시대적 정신질환” 아닐까. 진심으로 문학을 믿고, 영화를 믿고 작업을 체계적으로 완성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무기력해지고 거부감이 솟구쳐 한글자도 쓸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건 새로운 세기의 집필자장애writer’s block 일지도 모른다.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진단과 통계요람(DSM)> 6판에 해리성장애의 하위 병 중 하나로 포함될 것이다. 이른바 K-wirter’s disorder. 과학철학자인 이언 해킹은 19세기 말 유행한 특이한 정신질환에 대한 책 <미치광이 여행자>에서 시대적 정신질환을 특정한 시대, 특정한 장소, 특정 사회계급이나 젠더에서 선택적으로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라고 말한다. 시대적 정실질환은 그것이 실재하는 것인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지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이언 해킹은 그런 식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실재성 역시 “인간의 삶과 언어의 변화에 따라 그 개념을 재조정하는 끝없는 과정에서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정신질환을 번성하게 하는 환경인 생태학적 틈새다. 이 틈새를 만들어낸 벡터의 방향이 달라지면 틈새는 흩어진다. 다시 말해 이 틈새 속에서 정신질환은 잠시동안 실재가 된다. 잠깐 옆길로 샜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시작만 하고 아이디어만 낼 뿐 믿음, 역량, 진심 또는 그 무언가의 부재로 실천하지 못하고 매듭짓지 못한다면, 그렇게 만드는 어떤 벡터들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한 벡터가 우리를 한국영화에서 길 잃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우리의 에세이필름이 벡터들의 교차로 만들어진 생태학적 틈새를 가시화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런 실천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완성이나 구성과 다르며 개봉이나 배급, 출판의 과정도 조금 다를 것이다. 어떻게 다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금정연과 나의 핸드폰이 동시에 우웅- 하고 울린 것은. 확인해보니 영자원의 연재 담당자가 우리에게 보낸 메일이었다. 다음 원고 마감일을 고지하는 내용 아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혹시 작가님들이 여력이 되신다면 연재를 내년 12월까지 연장하면 어떨까요? 연재 연장? 1년 더? …… 금정연과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투숏? 숏, 리버스 숏? 영화학자 미하일 얌폴스키에 따르면, 현대 영화언어 구조의 가장 본질적 형상은 리버스 앵글이다. “현대 영화는 볼거리의 두 가지 (재현적) 체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로서 기능한다. 관객은 끊임없이 어떤 때는 목격자가, 어떤 떄는 주인공이 된다. 여기서 세계는 언제나 다중시점으로 보인다.” 다시 한번 정신의학적 은유를 빌리면 영화는 처음부터 해리성장애를 수행하는 매체였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내 눈물인지 금정연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던 건 그래서일까. 이것은 기쁨의 눈물일까 고통의 눈물일까. 우리에게 1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 것일까, 1년의 시간을 더 빼앗긴 것일까. 우리를 보던 LJ가 담담히 말했다. 고다르와 나도 통하는 게 있었지. 뭔데요? 우리 둘 다… 군대를 가기 싫어했어. 그래서 고다르는 브라질로 갔고 나는 아르헨티나로 가려고 했지….. 2022년 연재 예고 We Are Truly Fucked: Everyone Is Making AI-Generated Fake Porn Now 김희천의 VR <사랑과 영혼>에 대한 비평과 앙드레 바쟁의 완전영화의 신화, 미하일 얌폴스키의카이로스의 시간과 딥페이크와 리얼리즘의 시대의 MBTI로 보는 한국영화 유형학과 완전 자동 (한국)영화, 마동석, 마블유니스버스, 마크 피셔로 연결되는 자본주의 익스텐디드 리얼리즘에 관한 비평적 연대기…(어쩌면)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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