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nii]갤럭시S2 시야각
- 제작년도
- 2011
사진: “ 부천에서 우주 속을 걷다 뉴미디어 끝판왕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바타를 제외한 3D가 산업과 영화에서 사라진 것처럼, 새로운 영상의 미래처럼 울려 퍼지던 VR의 장밋빛 미래가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앞다퉈 VR 영화를 내세우던 영화제들은 AI가 등장하자, 이제는 AI가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꿀 것처럼 쉽게 갈아탔다. VR 영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VR이 갖고 있는 잠재성과 미학을 아직 우리는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VR 360° 영상은 구면 전체(수평 360°, 수직 180°)를 제공하지만, HMD는 사용자가 고개를 돌리는 방향을 중심으로 장치에 따라 약 110°(수평) × 90°(수직) 안팎의 제한된 영역만 보여준다. 따라서 관객이 정면을 중심으로 머무를 때, 실제로 한 순간에 지각하는 영역은 구면 전체가 아니라 정면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시야다. 관객들은 VR 영화에서 360° 시야를 다 관람할까? YouTube VR 시청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360° 영상에서 재생 시간의 75%를 정면 90° 안에서 보낸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정적인 360° 장면을 처음 접했을 때 관객들이 넓은 영역을 탐색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영역으로 시선이 수렴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360° 영상이 제공하는 시야와 관객이 실제로 사용하는 지각적 영역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360°의 공간 전체가 주어졌다고 해서 관객이 그 전체를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VR 영화 시청 시 관객은 주로 정면 영역의 요소에 집중하고, 고개를 크게 돌려야 하는 뒤쪽 영역은 덜 찾아본다. 관객이 몸을 움직여 돌아볼 때도 화면 안의 사건이나 서사가 제공하는 중심적 단서를 따라가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일부 VR 영화 제작 현장 가이드에서는 관객의 주의가 정면 중심 90° 원뿔 안에 집중되므로, 서사적 이미지는 정면 중심 90°~120°에 집중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360° 공간 전체를 활용하려면, 감독이 관객의 360° 시선의 이동을 설계하고 유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VR 영화 연출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의 시선을 특정 방향 중심으로 고정하거나 감독이 의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집중해왔다. VR 영화 < 동두천 >(김진아, 2017)의 도입부, 동두천 역 앞에 배치된 360°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적하고 활기가 없어 보이는 거리, 역 앞이지만 오고 가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미군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역 앞을 지나간다. 프레임 안에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다. 커다란 변화가 없는 화면이 계속된다.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서사도, 명징한 피사체도 없는 화면이 지속된다. 이 지루한 화면이 VR이란 매체의 선입견과 만나면서 관객은 체험을 스스로 찾기 시작한다. 앞을 주시하던 머리와 시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자극적이거나 시선을 끄는 장면이 없다. 이제는 몸도 움직인다. 회전의자에 앉은 몸이 무언가를 찾아 돌기 시작한다. 머리와 몸이 움직이고 이 시간의 지속을 함께하다 보면 화면 안 낮은 해상도를 넘어 아주 사소하고 작은 움직임과 변화들이 나타난다.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먼지가 날리고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린다. 평소에 관심도 갖지 않은 비닐봉지가 화면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 비닐봉지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관객의 머리와 몸이 360° 화면 안에서 그 위치를 향하고 있지 않다면 만날 수 없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화면 안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관객의 신체가 그 방향을 향하지 않는 순간에는 현재의 지각적 이미지가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컷에서는 어딘가 강아지가 들어온다. 내 몸이 놓인 위치에 따라 우연히 등장하는 이 강아지를 처음부터 목격할 수 있고, 내 몸이 다른 위치에서 시작되었다면 강아지가 프레임 인 될 수도 있다. 화면 안 피사체의 등장과 퇴장도 우연이지만, 그 피사체가 화면 안에 등장하는 시간도 나의 신체와 만나면서 우연적으로 구성된다. 이때 발생하는 이미지는 화면 안의 피사체와 헤드셋을 쓰고 멈춰 선 나의 신체가 만나 발생시키는 몽타주다. 아주 사소한 화면 안의 변화들을 따르거나 변화를 발견하지 못해도, 컷 안의 물리적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헤드셋을 쓴 머리와 몸이 회전한다. 머리와 몸이 작은 움직임을 찾아 따라 움직이다 다음 컷으로 전환된다. VR 360°의 특성상, 관객의 머리와 몸이 자신이 향하고 있던 방향에서 다음 컷의 첫 장면을 만난다. 두 번째 컷도 360°의 화면을 담고 있지만, 컷이 이어지는 순간 관객이 현재 향하고 있는 방향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시야에서 시작된다. 이때 만들어진 두 컷 사이의 몽타주는 전통적인 2D 영화에서처럼 하나의 공간적 관계로 완전히 결정된, 감독이 계산한 몽타주가 아니다. 감독이 결정하는 것은 두 쇼트의 시간적 순서와 절단의 순간이지만, 그 절단이 일어나는 순간 관객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사진: “ BIFAN의 순간들 Ⅶ : 비욘드 리얼리티 Beyond Reality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시간적 절단은 감독의 것이지만, 공간적 접합은 관객의 몸에 의해 발생한다. 관객은 변화를 좇거나 멈춘 자리에서 다음 컷의 첫 이미지를 만난다. 이렇게 이어진 두 컷의 몽타주는 편집실에서 하나의 관계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관객의 몸이 찾고 머문 신체의 흔적을 통해 그때마다 다르게 발생한다. 관객의 몸이 변화를 찾다가 만난 이미지와 다음 이미지의 관계가 하나의 몽타주를 만든다. 화면 안의 체험을 따라 몸이 움직이고 몸의 반응에서 다음 컷을 만난다.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의 연결로 발생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세 번째 컷에도 같은 관객의 신체가 만드는 몽타주가 발생한다. 이러한 몽타주가 축적되면서,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관객마다 서로 다른 이미지의 연쇄가 만들어진다. 한 명의 관객이 동일한 작품을 여러 번 봐도, 서로 다른 관객들이 같은 작품을 봐도 그때마다 동일한 상영 안에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미지의 관계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VR 영화가 만날 수 있는 체험이 아닐까. 감독 개인의 생각과 의도로 배치되고 읽혀야 할 영화에서 감독은 시간에 대한 선택과 공간에 대한 카메라의 배치를 결정하고, 관객은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며 자신이 만나는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때 관객은 감독을 대신하여 영화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도 자신의 신체가 만나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매번 다른 영화를 발생시키며 관객이 또 다른 창작자가 되는 순간이다. 영화의 완성된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객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경험을 통해 매번 다른 이미지의 몽타주를 발생시키는 관객이 되는 것이다. 감독과 관객의 위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의 한 부분을 결정하는 권한이 감독에게서 관객의 신체로 이동하는 순간이 발생한다. 감독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객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영화의 관계와 달리, 관객 모두가 감독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VR 영화일지 모른다. <동두천>의 도입부는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 낮의 공간이 밤으로 바뀌고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컷들은 그 여인의 이동 경로를 따라 카메라가 서고 관객들은 어둠 속의 골목에서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앞선 장면에서 관객의 몸이 스스로 공간을 탐색하고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했다면, 이 장면부터는 영화가 관객의 시선이 향해야 할 방향을 강하게 지정하기 시작한다. 또 다른 창작자로서 영화를 체험하고, 자신의 신체를 통해 영화의 공간적 관계에 참여하며 각자 다른 영화를 만나던 관객들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가게 만드는 감독의 개입으로 시선은 고정되고, 몸도 묶인다. 그리고 어느 방으로 안내된다. 방 안에 카메라는 오랫동안 머문다. 하지만 첫 컷이 준 이미지와 달리 이후의 장면은 보다 강력하게 시선을 유도한다. 영화가 처음에 스스로 열어놓았던 VR 영화의 잠재성이, 하나의 강력한 의미와 서사 안으로 다시 수렴한다. 어쩌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VR은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360°의 공간이 아니라, 관객의 몸이 영화의 구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발생하는 새로운 영화적 관계 속에. <열차의 도착> 중 / 사진: IMDb( 1 , 2 ) 뤼미에르 < 열차의 도착 >(루이 뤼미에르, 어거스트 뤼미에르, 1895)이 상영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차를 처음 경험했다. 그 강렬한 체험으로 시작된 영화는 기존의 지각을 바꾸고, 과거의 인습적인 사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첫 영화의 등장은 객석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관객의 신체를 묶어 놓은 채 일어난, 강제적이며 수동적인 지각과 사유의 변화였다. 반면 VR은 관객이 몸을 구속받지 않고 능동적 신체로 맞이할 수 있는 체험이다. VR 영화는 <열차의 도착> 이후 가장 큰 체험과 사유의 변화를 품고 있다. 영화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한 지점에서 회화를 감상하는 시각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촉각을 갖게 되었다. 그 지각의 변화는 인습적인 사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감각이 바뀌면 지각이 바뀌고, 지각이 바뀌면 사유가 바뀌며, 행동과 삶이 바뀔 수 있다. 그것이 영화가 갖고 있는 사유의 능력이다. 들뢰즈는 세계가 이미지들의 체계이며, 영화는 그것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미 도래했지만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들뢰즈는 영화가 인간적 지각을 넘어설 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각을 만나고, 그 지각이 사유를 연다고 말한다. 그 출발점에 신체를 둔다. 『시네마 2(Cinéma II)』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내게 신체를 달라. 이것은 먼저 일상적 신체 위에 카메라를 걸쳐 놓는 것이다.” [1] 들뢰즈에게 신체는 화면 속 인물의 신체였다. VR 영화는 카메라를 관객의 신체 위에 얹는다. 헤드셋을 쓴 관객의 머리가 곧 카메라의 방향이 되고, 관객의 몸짓이 이미지와 이미지의 관계를 만든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매번 앞의 장면을 지우면서 현재의 장면을 만난다. 현재의 새로운 지각은 때로는 기억과 만나 내 안에 다른 이미지를 만든다. VR에서는 같은 영화를 봐도 관객마다 서로 다른 지각의 경로가 생긴다. 동일한 이미지의 공간 안에서 누군가는 왼쪽을 보고, 누군가는 뒤를 본다.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만나고, 서로 다른 영화를 경험한다. 각자의 신체를 통해 서로 다른 영화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관객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여러 지각들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도래한다. 들뢰즈에게 ‘민중’은 이미 존재하는 집단의 재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집단으로 불러내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집단이다. VR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은 새로운 매체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다. 관객의 몸이 영화의 구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영화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지각의 집단, 아직 구성되지 않은 영화적 주체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른 방향을 선택한 몸들이 하나의 시선으로 통합되지 않은 채, 같은 영화 안에 함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도래하지 않은 민중의 도래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신체가 서로 다른 지각의 관계를 만들면서 하나의 작품 안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관객 모두가 창작자가 되어, 관객의 몸이 영화의 구성에 들어와 매번 다른 영화를 발생시키는 것. 어쩌면 VR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n명의 감독을 도래시키는 매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영화를 통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민중의 도래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1] 질 들뢰즈, 『시네마 2(시간-이미지)』, 이정하 옮김, 시각과언어, 2005, 378쪽. More Than 라이브 액션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박홍열(촬영감독·다큐멘터리 감독) l 홍상수 감독의 < 하하하 >(2010)에서 <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6)까지 10여 작품,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박동훈, 2021),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2016), < 간신 >(민규동, 2014) 등 100여 편이 넘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현대미술 등의 촬영감독으로 활동. < 반칙왕 몽키 >(2026), < 음악만세 >(2026), < 풍경드리프팅 >(2024),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2023),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 , 2 ) 등 다큐멘터리 연출. 현재 《씨네21》에서 ‘박홍열의 촬영미학’ 기고 중.
헤이리시네마 외관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예술마을 속 영화관 헤이리 예술마을의 모든 건물은 공간의 60% 이상을 문화시설로 채워야 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화가 김민숙이 창립한 ‘커피공장 103’ 역시 이 원칙을 지켜야 했고, 이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던 아들 장현상 이 건물 3층에 ‘ 헤이리시네마 ’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극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평소 영화를 통해 인연을 맺어온 KU시네마테크 한경훈 대표의 조력이 든든한 보탬이 되었으며, 독립·예술영화 시장이 비교적 활기를 띠던 2016년 전후의 시기적 상황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소규모 영화관이 동료 영화인들에게 든든한 활동 기반이 되길 바랐던 장현상 감독의 바람대로, 현재 헤이리시네마는 상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으로서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장현상 대표는 헤이리예술마을이라는 입지적 특성을 고려하여 예술영화 중심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대표 본인이 독립영화 감독인 만큼 프로그램 역시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편성되고 있다. 또한 예술마을 내 도자기 공방과 협업하여 체험형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쿠킹 클래스 공간과 연계해 음식 관련 영화 상영 및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멤버십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굿즈 역시 마을 내 공방과 협업하여 제작된다. 예술마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술 활동을 지지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획들은 비교적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층 카페 ‘커피공장 103’ 내부 전경 헤이리시네마의 공간과 시설 헤이리예술마을은 하나의 대규모 단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개의 입구를 통해 공원처럼 진입할 수 있다. 그중 6번 게이트를 통해 들어서면 ‘커피공장 103’ 건물에 위치한 헤이리시네마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건물 1층과 2층에는 카페, 그리고 카페와 연계된 작은 갤러리가 있으며, 엘리베이터 또는 중앙 계단을 통해 3층의 영화관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매표소 앞 복도에는 영화 관련 서적과 자료가 비치되어 있어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열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개봉작 및 개봉 예정작의 홍보물도 벽과 테이블을 채우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라운지 공간이 이어지는데, 이는 카페와 연계되어 커피와 베이커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휴게 공간으로 운영된다. 창밖으로는 헤이리예술마을의 풍경이 펼쳐져 관객들이 상영 전 여유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상영관은 총 30석 규모로 소규모이지만 관람 환경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기 위해 설계되었다. 좌석은 일반적인 극장 의자가 아니라 소파, 암체어, 좌식 의자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슬로프 구조와 좌석 높이의 차이를 통해 시야 확보를 고려하고 있다. 각 좌석에는 사이드 테이블이 설치되어 관람의 편의성과 아늑한 분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상영 설비는 BARCO사의 DP2K 영사기와 고반사율 및 균일도를 갖춘 하크네스 스크린, 5.1채널 음향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규모 상영관이지만 기본적인 상영 환경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헤이리시네마 휴게 공간 전경 헤이리시네마의 사람들 헤이리시네마 운영진은 총 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현상 대표 외에 영사 및 프로그램 담당 1인, 홍보 및 운영 담당 1인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인원은 소수이지만 각자의 역할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며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초기 설립 단계에서부터 최소 인원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이기 때문에 현재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객층은 다른 독립·예술영화관과 비교했을 때 중·장년층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파주라는 지역적 특성과 더불어 교통 접근성이 높지 않은 점 때문에,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관객이 중심이 된다. 특히 평일에는 문화예술 향유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며, 주말에는 보다 다양한 연령층이 방문한다. 시네필 중심이라기보다는 예술, 미술, 여행 등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진 관객층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은 예술을 주제로 한 영화 편성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헤이리시네마 운영자 장현상 감독 헤이리시네마 프로그램 운영 상영 회차는 일반적으로 하루 5회이며, 러닝타임이 긴 작품의 경우 4회로 조정되기도 한다. 외국영화와 한국영화의 비중은 약 8:2 수준이며, 경기인디시네마 프로그램과 연계한 한국영화 상영도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그램 편성은 전담 매니저가 맡지만, 상영 여부나 편성 구성에 대한 중요한 결정은 운영진 전체의 논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현장 발권 외에도 디트릭스(Dtryx)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통해 예매가 가능하다. 관람료는 주중 9천 원, 주말 1만 원이며, 파주시민·헤이리예술마을 주민·청소년에게는 각각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경로 우대 할인은 일괄 6천 원으로 적용된다. 회원제에 따른 회원 모집은 연말에 진행되며, 약 5만 원의 패키지 가격에 초대권 8장, 영화 할인권, 커피 할인권, 굿즈 등이 포함된다. 통상 약 300명 규모의 패키지가 2개월 내에 매진된다. 특징은 제공되는 관람권이 멤버십 패스가 아니라 초대권 형태라는 점이며, 한 명의 회원이 여러 명과 함께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예술마을이라는 공간의 사회적 성격과도 연결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관객 참여형 편성이 있다. 상영작 아웃라인이 공개되면 관객이 온라인 설문을 통해 원하는 상영 시간을 요청할 수 있으며, 실제 편성 과정에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반영된다. 매표소 전경 첫 상영작과 흥행작 개관 상영작은 대표인 장현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 사돈의 팔촌 >(2015)이었다. 초기 상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운영상의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 상영 성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개관 초기에 누수와 소음 문제가 발견되었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후 상영작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 아가씨 >(2016)가 이어졌다. 개관 이후 가장 큰 흥행작으로는 에이슬링 월쉬 감독의 < 내 사랑 >(2016)이 꼽힌다.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관객 반응이 매우 좋아, 특정일을 ‘<내 사랑> 데이’로 지정해 하루 종일 단일 작품을 상영했음에도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이는 해당 영화가 주요 관객층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어린이 영화 교실, 중년 여성 대상 영화 제작 수업, GV 및 마스터 클래스 등이 운영되어 왔다. 특히 2025년에는 이해영 , 이원석 감독 등 상업영화 감독뿐 아니라 마이크 피기스 감독을 초청하여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화감독이 운영하는 영화관 영화관 운영이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장현상 대표는 그보다 기쁨이 더 크다고 말한다. 소규모 극장이기 때문에 운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프로그램 구성의 자유도가 높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경기 북부에서 유일한 상설 예술영화관이라는 점에서 관객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큰 보람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감독이라는 정체성과 영화관 운영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극장 운영을 통해 알게 된 ‘흥행 영화의 기준’이 창작자로서의 판단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각각의 역할은 별개의 영역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시네필 중심 극장, 창작자 중심 공간 등 다양한 방향성을 실험했으며 워크숍과 클래스, 상영 연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관객의 수요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향이 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재는 예술영화, 특히 예술 또는 예술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운영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상영관 내부(객석 방향)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93-119, 커피공장 103 카페 3층 2) 설립일 : 2016년 3) 대표 : 장현상 4) 극장 구성 : 1개관 30석, 좌식 소파, 암체어와 사이드테이블 등으로 좌석 구성 5)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첫 상영 10:30, 마지막 상영 오후 7시 안팎, 상영 작품에 따라 유동적 6) 입장료 및 할인 정책 (현장 발권 및 디트릭스를 통한 온라인 예매 가능) - 평일 9,000원, 주말 10,000원 - 헤이리예술마을 주민 2,000원 할인, 파주시민/청소년 1,000원 할인, 경로 주중·주말 무관 6,000원 7) 조직 구성 : 장현상 대표 외 프로그램 1인, 홍보·운영 1인, 총 3인이 운영 취재 일자: 2025년 11월 27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