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쓴 편지
- 감독
- 더글라스 서크
- 제작년도
- 1956
- 출연
- 록 허드슨, 로렌 바콜, 로버트 스탁, 도로시 말론
사진: “ 부천에서 우주 속을 걷다 뉴미디어 끝판왕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바타를 제외한 3D가 산업과 영화에서 사라진 것처럼, 새로운 영상의 미래처럼 울려 퍼지던 VR의 장밋빛 미래가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앞다퉈 VR 영화를 내세우던 영화제들은 AI가 등장하자, 이제는 AI가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꿀 것처럼 쉽게 갈아탔다. VR 영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VR이 갖고 있는 잠재성과 미학을 아직 우리는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VR 360° 영상은 구면 전체(수평 360°, 수직 180°)를 제공하지만, HMD는 사용자가 고개를 돌리는 방향을 중심으로 장치에 따라 약 110°(수평) × 90°(수직) 안팎의 제한된 영역만 보여준다. 따라서 관객이 정면을 중심으로 머무를 때, 실제로 한 순간에 지각하는 영역은 구면 전체가 아니라 정면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시야다. 관객들은 VR 영화에서 360° 시야를 다 관람할까? YouTube VR 시청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360° 영상에서 재생 시간의 75%를 정면 90° 안에서 보낸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정적인 360° 장면을 처음 접했을 때 관객들이 넓은 영역을 탐색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영역으로 시선이 수렴하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360° 영상이 제공하는 시야와 관객이 실제로 사용하는 지각적 영역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360°의 공간 전체가 주어졌다고 해서 관객이 그 전체를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VR 영화 시청 시 관객은 주로 정면 영역의 요소에 집중하고, 고개를 크게 돌려야 하는 뒤쪽 영역은 덜 찾아본다. 관객이 몸을 움직여 돌아볼 때도 화면 안의 사건이나 서사가 제공하는 중심적 단서를 따라가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일부 VR 영화 제작 현장 가이드에서는 관객의 주의가 정면 중심 90° 원뿔 안에 집중되므로, 서사적 이미지는 정면 중심 90°~120°에 집중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360° 공간 전체를 활용하려면, 감독이 관객의 360° 시선의 이동을 설계하고 유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VR 영화 연출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의 시선을 특정 방향 중심으로 고정하거나 감독이 의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집중해왔다. VR 영화 < 동두천 >(김진아, 2017)의 도입부, 동두천 역 앞에 배치된 360°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적하고 활기가 없어 보이는 거리, 역 앞이지만 오고 가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미군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역 앞을 지나간다. 프레임 안에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다. 커다란 변화가 없는 화면이 계속된다.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서사도, 명징한 피사체도 없는 화면이 지속된다. 이 지루한 화면이 VR이란 매체의 선입견과 만나면서 관객은 체험을 스스로 찾기 시작한다. 앞을 주시하던 머리와 시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자극적이거나 시선을 끄는 장면이 없다. 이제는 몸도 움직인다. 회전의자에 앉은 몸이 무언가를 찾아 돌기 시작한다. 머리와 몸이 움직이고 이 시간의 지속을 함께하다 보면 화면 안 낮은 해상도를 넘어 아주 사소하고 작은 움직임과 변화들이 나타난다.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먼지가 날리고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린다. 평소에 관심도 갖지 않은 비닐봉지가 화면 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 비닐봉지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관객의 머리와 몸이 360° 화면 안에서 그 위치를 향하고 있지 않다면 만날 수 없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화면 안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관객의 신체가 그 방향을 향하지 않는 순간에는 현재의 지각적 이미지가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컷에서는 어딘가 강아지가 들어온다. 내 몸이 놓인 위치에 따라 우연히 등장하는 이 강아지를 처음부터 목격할 수 있고, 내 몸이 다른 위치에서 시작되었다면 강아지가 프레임 인 될 수도 있다. 화면 안 피사체의 등장과 퇴장도 우연이지만, 그 피사체가 화면 안에 등장하는 시간도 나의 신체와 만나면서 우연적으로 구성된다. 이때 발생하는 이미지는 화면 안의 피사체와 헤드셋을 쓰고 멈춰 선 나의 신체가 만나 발생시키는 몽타주다. 아주 사소한 화면 안의 변화들을 따르거나 변화를 발견하지 못해도, 컷 안의 물리적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헤드셋을 쓴 머리와 몸이 회전한다. 머리와 몸이 작은 움직임을 찾아 따라 움직이다 다음 컷으로 전환된다. VR 360°의 특성상, 관객의 머리와 몸이 자신이 향하고 있던 방향에서 다음 컷의 첫 장면을 만난다. 두 번째 컷도 360°의 화면을 담고 있지만, 컷이 이어지는 순간 관객이 현재 향하고 있는 방향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시야에서 시작된다. 이때 만들어진 두 컷 사이의 몽타주는 전통적인 2D 영화에서처럼 하나의 공간적 관계로 완전히 결정된, 감독이 계산한 몽타주가 아니다. 감독이 결정하는 것은 두 쇼트의 시간적 순서와 절단의 순간이지만, 그 절단이 일어나는 순간 관객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사진: “ BIFAN의 순간들 Ⅶ : 비욘드 리얼리티 Beyond Reality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시간적 절단은 감독의 것이지만, 공간적 접합은 관객의 몸에 의해 발생한다. 관객은 변화를 좇거나 멈춘 자리에서 다음 컷의 첫 이미지를 만난다. 이렇게 이어진 두 컷의 몽타주는 편집실에서 하나의 관계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관객의 몸이 찾고 머문 신체의 흔적을 통해 그때마다 다르게 발생한다. 관객의 몸이 변화를 찾다가 만난 이미지와 다음 이미지의 관계가 하나의 몽타주를 만든다. 화면 안의 체험을 따라 몸이 움직이고 몸의 반응에서 다음 컷을 만난다. 첫 번째 컷과 두 번째 컷의 연결로 발생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세 번째 컷에도 같은 관객의 신체가 만드는 몽타주가 발생한다. 이러한 몽타주가 축적되면서,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관객마다 서로 다른 이미지의 연쇄가 만들어진다. 한 명의 관객이 동일한 작품을 여러 번 봐도, 서로 다른 관객들이 같은 작품을 봐도 그때마다 동일한 상영 안에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미지의 관계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VR 영화가 만날 수 있는 체험이 아닐까. 감독 개인의 생각과 의도로 배치되고 읽혀야 할 영화에서 감독은 시간에 대한 선택과 공간에 대한 카메라의 배치를 결정하고, 관객은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며 자신이 만나는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때 관객은 감독을 대신하여 영화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도 자신의 신체가 만나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매번 다른 영화를 발생시키며 관객이 또 다른 창작자가 되는 순간이다. 영화의 완성된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관객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경험을 통해 매번 다른 이미지의 몽타주를 발생시키는 관객이 되는 것이다. 감독과 관객의 위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의 한 부분을 결정하는 권한이 감독에게서 관객의 신체로 이동하는 순간이 발생한다. 감독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객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영화의 관계와 달리, 관객 모두가 감독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VR 영화일지 모른다. <동두천>의 도입부는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 낮의 공간이 밤으로 바뀌고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컷들은 그 여인의 이동 경로를 따라 카메라가 서고 관객들은 어둠 속의 골목에서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앞선 장면에서 관객의 몸이 스스로 공간을 탐색하고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했다면, 이 장면부터는 영화가 관객의 시선이 향해야 할 방향을 강하게 지정하기 시작한다. 또 다른 창작자로서 영화를 체험하고, 자신의 신체를 통해 영화의 공간적 관계에 참여하며 각자 다른 영화를 만나던 관객들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가게 만드는 감독의 개입으로 시선은 고정되고, 몸도 묶인다. 그리고 어느 방으로 안내된다. 방 안에 카메라는 오랫동안 머문다. 하지만 첫 컷이 준 이미지와 달리 이후의 장면은 보다 강력하게 시선을 유도한다. 영화가 처음에 스스로 열어놓았던 VR 영화의 잠재성이, 하나의 강력한 의미와 서사 안으로 다시 수렴한다. 어쩌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VR은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360°의 공간이 아니라, 관객의 몸이 영화의 구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발생하는 새로운 영화적 관계 속에. <열차의 도착> 중 / 사진: IMDb( 1 , 2 ) 뤼미에르 < 열차의 도착 >(루이 뤼미에르, 어거스트 뤼미에르, 1895)이 상영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차를 처음 경험했다. 그 강렬한 체험으로 시작된 영화는 기존의 지각을 바꾸고, 과거의 인습적인 사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첫 영화의 등장은 객석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관객의 신체를 묶어 놓은 채 일어난, 강제적이며 수동적인 지각과 사유의 변화였다. 반면 VR은 관객이 몸을 구속받지 않고 능동적 신체로 맞이할 수 있는 체험이다. VR 영화는 <열차의 도착> 이후 가장 큰 체험과 사유의 변화를 품고 있다. 영화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한 지점에서 회화를 감상하는 시각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촉각을 갖게 되었다. 그 지각의 변화는 인습적인 사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감각이 바뀌면 지각이 바뀌고, 지각이 바뀌면 사유가 바뀌며, 행동과 삶이 바뀔 수 있다. 그것이 영화가 갖고 있는 사유의 능력이다. 들뢰즈는 세계가 이미지들의 체계이며, 영화는 그것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미 도래했지만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들뢰즈는 영화가 인간적 지각을 넘어설 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각을 만나고, 그 지각이 사유를 연다고 말한다. 그 출발점에 신체를 둔다. 『시네마 2(Cinéma II)』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내게 신체를 달라. 이것은 먼저 일상적 신체 위에 카메라를 걸쳐 놓는 것이다.” [1] 들뢰즈에게 신체는 화면 속 인물의 신체였다. VR 영화는 카메라를 관객의 신체 위에 얹는다. 헤드셋을 쓴 관객의 머리가 곧 카메라의 방향이 되고, 관객의 몸짓이 이미지와 이미지의 관계를 만든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매번 앞의 장면을 지우면서 현재의 장면을 만난다. 현재의 새로운 지각은 때로는 기억과 만나 내 안에 다른 이미지를 만든다. VR에서는 같은 영화를 봐도 관객마다 서로 다른 지각의 경로가 생긴다. 동일한 이미지의 공간 안에서 누군가는 왼쪽을 보고, 누군가는 뒤를 본다.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만나고, 서로 다른 영화를 경험한다. 각자의 신체를 통해 서로 다른 영화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관객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여러 지각들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도래한다. 들뢰즈에게 ‘민중’은 이미 존재하는 집단의 재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집단으로 불러내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집단이다. VR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은 새로운 매체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다. 관객의 몸이 영화의 구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영화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지각의 집단, 아직 구성되지 않은 영화적 주체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른 방향을 선택한 몸들이 하나의 시선으로 통합되지 않은 채, 같은 영화 안에 함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도래하지 않은 민중의 도래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신체가 서로 다른 지각의 관계를 만들면서 하나의 작품 안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관객 모두가 창작자가 되어, 관객의 몸이 영화의 구성에 들어와 매번 다른 영화를 발생시키는 것. 어쩌면 VR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n명의 감독을 도래시키는 매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영화를 통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민중의 도래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1] 질 들뢰즈, 『시네마 2(시간-이미지)』, 이정하 옮김, 시각과언어, 2005, 378쪽. More Than 라이브 액션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박홍열(촬영감독·다큐멘터리 감독) l 홍상수 감독의 < 하하하 >(2010)에서 <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6)까지 10여 작품,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박동훈, 2021),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2016), < 간신 >(민규동, 2014) 등 100여 편이 넘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현대미술 등의 촬영감독으로 활동. < 반칙왕 몽키 >(2026), < 음악만세 >(2026), < 풍경드리프팅 >(2024),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2023),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 , 2 ) 등 다큐멘터리 연출. 현재 《씨네21》에서 ‘박홍열의 촬영미학’ 기고 중.
© 디깅룸 2026년 4월 12일, 나는 파주에 있는 한 출판 물류 창고를 찾았다. 고(故) 임재철 선생님의 제자들과 함께 이모션북스의 재고를 차에 실어 충무로의 옛 사무실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충무로로 간 우리가 마주한 사무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이었고, 우리는 계단에 줄지어 서서 책과 유품을 옥상까지 손에서 손으로 올렸다. 4월인데도 날이 제법 더웠다. 존경하던 평론가의 책을 나르는 일은 영광스러웠지만, 책을 받아 올릴 때마다 이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싶었다. 선생님은 존경스러운데 책은 자꾸 원망스러웠다. 내 옆에서 책을 나르던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통성명을 할 겨를도 없었다. 오후 늦게 유품 정리가 끝나고 식당에 둘러앉았을 때에야 함께 일했던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와 같은 라인에서 책을 옮기던 분은 자신을 1인 출판사 디깅룸을 운영하는 백지윤 편집자라고 소개했다. 백지윤 편집자가 고다르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하자, 나는 반가운 마음에 외쳤다. “아, 『고다르×고다르』 내셨구나!” 식탁의 사람들이 당황하며 정정해 주었다. “그게 아니라 『고다르처럼 보기』예요, 일남 님…” 나는 성격이 급하고 조심성이 없다. 아는 책 이름이 나왔다 싶으면 확인도 하기 전에 입부터 연다. ‘아, 이분은 나를 절대 신뢰 못 하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달 뒤, 백지윤 편집자가 우리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녹음이 끝난 자리에 찾아왔다. 디깅룸에서 새로 낸 크리스틴 스몰우드의 『샹탈 아케르만, 갇힌 여인』(2026)을 들고서였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는 그날 자리에 없던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달라며 한 권을 내게 맡겼다. 그 책은 이 글을 쓰는 9월 27일 현재까지도 내 손에 있다. 아마 그는 평생 나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 호프 >(나홍진, 2026)가 개봉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그때 주고받은 카톡과 메일을 다시 읽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왜 이렇게까지들 했을까. 내가 보던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호프> 이야기가 연신 올라왔고, 블로그에는 긴 글들이 쌓였다. 개봉 전부터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떠들던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도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나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트위터에서 떠들고, 카톡으로 같은 이야기를 또 했다. 같이 영화를 보며 떠들 사람을 찾겠다고 오픈채팅방을 팠더니 하루 만에 50명이 들어왔다. 임재철 선생님 프로필 사진을 달고 들어와 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욕을 하는 정체불명의 인물도 있었다. 나는 가족과도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영화에 몸을 던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그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즈음 이광호 평론가는 나를 주변의 극장 관계자에게 소개해 주며 리액션 상영회를 구체적으로 의논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상했다. <호프>라는 영화 한 편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과 서슴없이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극장에서는 홍보 일정을 고려하면 새로 행사를 열기에는 시기가 조금 늦었다는 답을 보내왔다. 나는 그 입장을 이해했지만, 이 영화가 시장에서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단시간에 사람들이 연결되는 풍경을 기이하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트위터에는 이때 나온 글과 트윗을 모아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아이고, 이보세요. 책이 그렇게 쉽게 나옵니까?” 그러던 7월 27일, 회사 점심시간에 백지윤 편집자에게 메일을 받았다. 함께 <호프>에 관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가제는 ‘호프 호들갑’ 혹은 ‘호프 지키기’. 백지윤 편집자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받아 그달 안에 책을 내겠다고 했다. 선인세와 이후 판매에 따른 인세 정산 조건도 적혀 있었다. 내 블로그 글을 보고 연락했다며, 지금 <호프>를 보고 몸에 남은 것을 자유롭게 써 보자고 했다. ‘이 사람 미쳤네.’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백지윤 편집자가 보내온 <호프> 관련 도서 출간 제안 메일 선인세 금액을 보고는 한 번 더 그 생각을 했다. 이 출판사는 정말 이 금액으로 우리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대단한 야심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라디오스타>에서 김흥국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이렇다. 김흥국이 정준호 와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 정준호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물었다고 한다. [1] “형, 요새 행사 좀 있어?” 김흥국은 오랜만에 들어온 행사 생각에 축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김흥국이 되물었다. “와, 진짜 다섯 개 가 맞아?” 정준호가 답했다. “아, 알았어. 맞다니까.” 그런데 쉬는 시간에 정준호가 김흥국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형, 많이 약해졌네. 진짜 50 에 되는 거야?” 김흥국은 500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김흥국들을 찾아야 했다. 손가락 다섯 개만 보고도 단위를 묻기 전에 가슴부터 뛰는 사람들, 돈 이야기보다 <호프> 이야기에 먼저 몸이 반응하는 사람들 말이다. 다행히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몇 알고 있었다. 나는 메일을 받은 지 십여 분 뒤에 답장을 보냈다. 반가운 제안이라며 그날 바로 필진을 꾸리겠다고 했다. 섭외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허풍도 떨었다. 그때 내 말을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이 사람들 아무도 거절 안 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살이 떨렸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날 오후는 지금 돌이켜봐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가장 수락할 것 같던 이광호 평론가가 제일 먼저 수락했다. 필진을 모으면서 윤아랑 평론가와는 우리끼리 아는 사람들로만 채우지 말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제안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나는 김해솔 시인을 떠올렸다. 트위터에서 그가 <호프>를 보고 미쳐 있는 걸 보고 이분에게 글을 부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책이 단순한 비평 모음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을 채워 줄 사람이라고 느꼈다. 여기서만 밝히지만, 그날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실제로 김해솔 시인을 마주쳤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월간차지》의 신포도와 유유민은 이광호 평론가가 연결해 주었다. 두 사람이 참여하겠다는 답을 전해 듣고도 나는 그들이 실제로 누구인지 몰랐다. 이렇게 재치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광호 평론가가 그들의 정체를 알려 주자 나는 연달아 답장을 보냈다. “오, 맙소사…” “대스타들이시네…” 이런 일이 만 하루 만에 벌어지다 보니 내게는 온 세상이 <호프>일 수밖에 없었다.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한상희 평론가의 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가 <호프>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지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영화에 관해 떠들 때마다 머릿속 한편에는, <호프>가 대체 영화로서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줄 사람은 상희 씨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영화를 본 뒤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정말 반가웠다. 내가 좋아해서 반복하고 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왜 이 이상한 영화가 영화가 되는지를 말해 줄 사람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책에도 그의 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은열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그가 <호프>를 보고 신정원 감독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온갖 영화와 감독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거기서 신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는 유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호프>를 외국 장르영화의 맥락 속에서만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좋아했던 한국 장르영화의 이상한 계보 한가운데에 슬쩍 밀어 넣어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 영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글이라면 꼭 책에 남기고 싶었다. 금동현 평론가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쓰기는 도저히 무리라며, 포지드필름스 쪽 인터뷰가 성사된다면 진행자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직접 필진으로 참여하는 대신 정미파를 추천했다. 나도 정미파의 글을 꼭 싣고 싶었다. 정미파를 처음 만난 건 내가 <호프>를 본 날, 키니마에서 열린 ‘시네마 지옥’ 행사에서였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틀어 주는 영화는 안 보고 게임 피파 시리즈 이야기와 <호프> 이야기만 했다. 그날의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30분에 한 번꼴로 둘 중 누군가가 같은 말을 했다. ‘시네마 지옥’ 행사 중 “호프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아직 〈호프〉를 보기 전이었던 한상희 연구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호프가 뭐길래 그런 소리를 계속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한상희 연구자는 정미파가 나홍진 에 관해 풀어놓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며, 그 이야기를 꼭 비평으로 써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정미파가 비평가로 데뷔할 책으로 이보다 잘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싶었다. 박동수 평론가에게는 <호프>의 차기작을 상상해 보는 대담을 원고로 싣자고 제안했다. 대담 상대에게도 그날 바로 인스타그램 DM과 섭외 메일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나는 아홉 명의 명단을 백지윤 편집자에게 보냈다. 금동현, 김해솔, 박동수, 배은열, 신포도, 유유민, 이광호, 정미파, 한상희. 점심시간에 메일을 읽고 저녁에 명단을 보낼 줄은 나도 몰랐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모두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해 주었다. 이름들을 모아 놓고 보니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시장에 나온다면 사람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을 일종의 <호프> 동인지로 만들어 줄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영화가 대체 어떻게 영화로 성립하는지를 설명해 줄 사람도 있었다. <호프>를 다른 영화들의 계보 속에 놓아 볼 사람도 있었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들이받을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책이 아니어서 좋았다. 다음 날부터 백지윤 편집자가 필진 일동에게 정식 제안 메일을 보냈다. “저도 말이 안 되는 일정이라는 걸 알지만, 아마 모두가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답장은 곧바로 이어졌다. 김해솔 시인은 벌써부터 신이 난다고 했고, 유유민은 이번 기획은 스피드가 생명이라며 윤문도 하지 않은 메모를 그대로 보내왔다. 나는 같은 날 포지드필름스에 인터뷰 협조 메일을 보냈고, 대담 역시 정식으로 제안했다. 7월 29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카톡을 보내왔다. “<호프>가 외세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아침입니다…” <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디스틴 크리튼, 2026) 개봉일이었다. 예매율이 꺾이기 시작했으니 오늘부터 책 소식을 조금이라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곧 책 제목도 보내왔다. 『호프 끝장』. 표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그 역시 미쳐 있던 게 분명했다. 사람을 모으고 방향을 잡는 일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원고를 조율하고 계약서 같은 행정 절차를 꼼꼼히 살피기에 나는 부족했다. 그래서 동료 윤아랑 평론가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공동 기획자로 함께해 주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계약서를 밤새 읽고 분석해 필진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그 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지금도 좋아한다. “여기서 이런 프로젝트에 휘말리듯 참여하게 될 줄 알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물론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대담을 제안받은 분은 며칠을 고민한 끝에, 지금은 이런 일을 진행할 여력도 위치도 아닌 것 같다는 성의 있는 답장을 보내왔다. 포지드필름스로부터도 아직 답장이 없다. 하긴 연락받은 쪽에서는 ‘이 미친 사람들은 왜 이러지’ 싶었을 것이다. 영화 한 편 보고 갑자기 책을 만들겠다며 연락해 왔으니. 외부와 연결하려 했던 두 기획이 하나씩 멀어지자 오히려 분명해졌다. 기왕 시작한 거, 우리 손으로 끝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원고가 오기 시작했다. 정미파는 60매를 보내왔고, 배은열의 수정고는 올 때마다 파일 이름이 길어져 결국 ‘수정수정수정수정수정’이 되었다. 8월 7일, 알라딘 북펀드가 열렸다. 나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 우수 직원 출신이라고 떠벌리며 시간차로 게시물을 올렸다. 마케팅의 생명은 호들갑이다. 백지윤 편집자는 그날 오전 단톡방에 이렇게 썼다. “오늘 200 뚫으면 발 뻗고 자겠습니다…” 윤아랑 평론가도 한마디 보탰다. “200 뚫으면 에어컨 켜고 자겠습니다…” 기적처럼 그날 오후 모금액이 200만 원을 넘겼다. 백지윤 편집자는 저녁에 <호프>를 한 번 더 보고 빅맥 라지 세트를 먹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호프 끝장』 필진 단체 채팅방 8월 11일, 금동현 평론가의 원고가 도착했다. 이 책을 팬진(fanzine)으로 이해했다며 장난을 쳐 봤다는 원고를 읽고 기획진은 박수를 쳤다. 다음 날까지 나머지 원고도 모였다. 대담과 제작진 인터뷰가 무산되는 바람에 급히 원고를 부탁해야 했던 박동수, 금동현 평론가도 훌륭한 글로 답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단톡방에 썼다. 책을 만들기로 했을 때와 펀딩을 열었을 때의 불안이 싹 씻긴다고. 기한이 워낙 빠듯해 원고를 고쳐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아랑 평론가는 정미파와 함께 원고를 다듬느라 고군분투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대부분의 원고를 받은 그대로 넘겼지만 유유민에게만은 한 가지를 부탁했다. 처음 받은 원고가 조금 방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언가를 방어하기보다 일단 들이받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 비판받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더 과감하게 고쳐 달라고 했다. 다음 날 도착한 수정고는 근사하게 방공호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8월 13일, 백지윤 편집자가 조판 PDF를 보내왔다. 각자 보내온 글이 170쪽짜리 책의 모습으로 묶여 있었다. 그날 윤아랑 평론가가 말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거 막 하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더 있겠어요.” 나도 답했다. “저도 혼자서는 이걸 뭔가 절대 못 했을 것 같아요. 꿈도 못 꿨고.”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이 작업의 이상한 점을 생각했다. 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시기,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를 하던 기간에는 정종호 감독과 <호프>에 관한 찬반 토론도 했다. 책의 출간 소식이 나오자 정종호 감독이 사악하게도 행사 이름을 ‘호프 끝장 토론회’로 지어 버렸다.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나는 이날 <호프>를 방어하는 쪽이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비판을 듣다 보니 할 말이 술술 나왔다. 그날 김영광 평론가의 말을 내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호프>는 게임으로 치면 계속 파티원을 부르는 영화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잠시 함께할 파티원을 불러 모아 책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면서도 이런 파티의 개념을 계속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처음부터 조용히 듣고 계셨던 김홍준 감독님이 갑작스레 나서셨다. 잘 들었다며 말을 건네시더니, 이 책을 꼭 번역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한국영화사에는 한국영화의 운명을 건 작품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 그 역사성도 분석해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도 덧붙이셨다. 이런 일들을 겪고 있으니 이 책에 관한 어떤 의심이나 비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8월 18일, 백지윤 편집자가 제작처에 파일을 넘겼다. 8월 23일 밤, 펀딩은 200%를 달성하고 410부가 선판매되며 마무리되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성공이었다. 8월 26일, 책이 물류창고에 들어왔다. <호프> 개봉 47일 만이었다. 9월 2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단톡방에 캡처를 올렸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 부문 1위. 북펀드를 열 때 우리가 잡은 목표 금액은 200만 원이었다. 그날 오후 5시에는 대중문화 실시간 2위, 6시 21분에는 실시간 1위가 되었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대중문화 부문 1위 기록 화면 책은 ‘와, 사람들이 저걸 읽나 봐’ 하는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9월 9일에는 하루에만 120부가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지윤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책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건 편집자 생활 처음이라, 참 묘합니다.” 며칠 뒤 다른 영화의 제작기를 쓰러 경주에 갔을 때였다. 촬영장 스태프가 물었다. “어떻게 <호프>로 책이 나와요?” 나는 웃으며 이 책이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라고 이야기했다. 주위에 있던 스태프 모두가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9월 중순, 이번 주면 끝이겠거니 했는데 『호프 끝장』의 순위가 또 올랐다. 진짜 좀비 같은 책이구나 싶었다. 이광호 평론가는 학급문고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참여했는데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영화가 끝나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지금 내가 본 게 뭐지, 하는 표정. 그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야기다. 『호프 끝장』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 되기를 바랐지만, 내가 기획한 것은 그 너머에 있었다.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데 비평은 반년 뒤에야 도착하는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시장이 아직 그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옆 진열대에 비평을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 비평은 충분히 읽힐 수 있다. 그러려면 속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건, 그 속도가 단순히 서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속도는 신뢰에서 나왔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전까지 쌓아 온 관계와, 누군가가 보내 준 원고를 믿는 마음과, 누군가가 자기 역할을 해줄 거라는 기대에서 나왔다. 혼자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속도였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백지윤 편집자는 《기획회의》에 실은 「운명페이」에서, 4월 12일 충무로에서 받은 환대가 없었다면 7월에 내게 출간을 제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날 나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책 상자를 나르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이모션북스의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책 이름도 제대로 몰라보는 사람을, 책을 전해 주기로 해 놓고 석 달째 안 준 사람을 믿고 이 책을 만든 것이다. [2] 백지윤 편집자는 자신을 제작자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윤아랑과 함께 기획한 나로서는, 평생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아무래도 샹탈 아케르만 책은 이번 달 안에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주어야겠다. *** [1]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2010년 7월 28일 방송분에서 김흥국이 소개한 일화를 필자의 기억에 따라 재구성했다. [2] 백지윤, 「운명페이」, 《기획회의》, 2026. ※ <호프> 스틸 외 사진: 필자 제공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조일남(영화평론가) l 영화를 두고 놀기를 좋아하고, 그 놀이가 남기는 것에 대해 쓴다. 아내와 두 강아지와 함께 파주에 살고 있다.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진행. 『호프 끝장』(2026) 공동 기획 및 서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2023) 공저. 머니그라피 인스타그램 매거진에 영화 칼럼 연재 중.
1. 시네마테크 파사주 여정의 시작: 영화관의 문 시네마테크 여행기 프로젝트의 제목을 ‘시네마테크로 가는 통로(길목)’라는 의미를 담아 ‘시네마테크 파사주(Cinematheque Passage)’로 결정했던 날이었다. 나는 그 늦은 새벽 시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베를린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구(Prenzlauer Berg), 카스탄니엔알레 77번가(Kastanienallee 77, Berlin)에 위치한 32석 규모의 단관극장, ‘희망의 빛 영화관(Lichtblick Kino)’의 정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베를린 프렌츨라우어 베르크 지구 카스탄니엔알레 77번가에 위치한 32석 규모의 단관극장 ‘희망의 빛 영화관(Lichtblick Kino).’ (사진: LICHTBLICK KINO ) 나는 분명 이 영화관의 출입문에 매료가 되었던 것 같다. 영화관을 세상과 연결하는 문은 영화를 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지만,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문은 접촉할 수 없는 사물이 되었다. 대부분의 복합상영관, 영화를 소비문화로 바꾼 이곳에는 문이 없기도 하다. 보통 쇼핑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드넓게 매표소와 팝콘과 음료 판매대가 보인다. 영화관 입장 시간이 되면 입구는 이미 열려 있다. 건물 입구부터 영화관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문은 자동으로 열리기도 한다. 수많은 유동 인구를 위해 모든 통로는 최대한 개방되고, 자동으로 여닫힌다. 하지만 ‘희망의 빛 영화관’의 문은 영화만을 위한 통로를 지키듯이,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를 고수하는 파수꾼과도 같이 서 있다. 문 옆 창문에는 아마도 현재 상영 중인 듯 보이는 장-뤽 고다르의 < 네 멋대로 해라 >(1960), 제베타 스틸이 부른 ‘Calling You’가 떠오르는 퍼시 아들론의 < 바그다드 카페 >(1987),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 지옥의 묵시록 > (1979)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다음 사진에서는 좁은 직사각형 모양의 극장 내부가 보였다. 한 열에 2~4석 정도밖에 없는 좁고 길쭉한 아주 작은 영화관이다. 내부는 흰색 벽에 몬드리안풍의 단색의 장식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이 화려하지 않은 영화관 내부는 어딘지 모르게 창백한 배우의 얼굴과 같이 보였지만, 어떤 소박한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그건 내 시선을 빼앗긴 스크린 앞에 놓인 참나무색 피아노 때문이었다.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때로는 무성영화 반주용으로 사용되리라 생각했다. 2. 시네마의 유토피아 파리 드골 공항에서 파리 13구에 있는 오스떼를리츠(Gare d’Austerlitz)역으로 이동해 첫 번째 시네마테크 파사주 목적지이자, NECS(European Network for Cinema and Media Studies, 유럽 영화미디어학 네트워크) 학회가 열리는 몽펠리에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다. 출발이 지연되어 열차는 11시 가까이 되어 출발했다. 열차 출발과 동시에 거의 잠이 들었다. 시차로 인해 잠에서 깼을 때 새벽 4시가 조금 지났다. 생각보다 깊은 잠을 잤다. 열차 침대가 생각보다 편안하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새벽을 달리는 기차, 창밖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잠시 어느 역에 정차했다. 내리는 이는 없을 것 같은 그런 기차역. 아마 기차도 잠들 시간이었나 보다. 다시 잠들 수도 있는, 잠의 통로에서 난 이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시네마테크 파사주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등 이 영화관 기행문을 구상하면서, 찾았던 정보들을 떠올렸다. 이미지를 역사 개입의 도구로 사용하는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영화관의 설립 취지에 넣은 시애틀 컬럼비아 시티(Columbia City, Seattle)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 ‘비콘 시네마(the Beacon Cinema)’를 알게 되었을 때 다른 무엇인가 새로운 생각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특히 영상 아카이브와 같은 곳은 야누스 얼굴의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난 한 곳에 있으면서 다르게 존재할 수가 있지.’ 여러분들이 요청하는 좀 더 다른, 아카이브에는 없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그것은 몽타주 철학이어야 합니다. 몽타주는 재개입의 가능성과 새롭게 재설정된 목적을 가지고, 즉 다른 야망을 지니고 이미지로 되돌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1] 그렇다. 영화관은 이미지의 낙원이어야 한다. 처음 나의 계획은 각 국가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히트블릭크 키노와 비콘 시네마(모두 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처럼 도시 곳곳에 흩어져서 자생하는 보통 아트하우스 시네마라 불리는, 예술영화 전용관에 관해 알게 되면서(이렇게 무작정 표를 끊고 의자에 앉아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를 보고 싶은 영화관은 찾을수록 나왔다), 나는 시네마테크의 범위를 국립 영화 아카이브에서 유럽 전역의 예술영화관으로 넓혀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시네마(cinéma)와 도서관(bibliothèque)의 합성어인 시네마테크는 영화와 영화 관련 자료를 수집, 보존, 상영하는 장소다. 나는 이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의 의미를 더 확대하고 강조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서점이 문을 닫듯이 영화관도 그럴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가야 보존과 수집도 의미가 있고, 그 반대로 계속해서 상영되기 위해서 수집하고, 보관하고, 보존하는 등의 수고롭고, 때로는 시간을 다투는 영화적 실천을 누군가는 하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시네마테크에 수집될 영화들이 이 수많은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시네마테크에 보관된 영화들은 이 영화관들에서 빛의 이미지가 되어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예술영화 전용관 키노 쿨트(Kult Kino)로 가는 길에 놓인, ‘THEATERPASSAGE’라는 이름의 굴다리. AI를 이용해 ‘CINEMATHEQUE PASSAGE’로 수정. ‘시네마테크 파사주’ 프로젝트를 떠올렸던 시점에 내게 많은 예술영화관 정보의 원천이 되었던 곳은 유럽의 예술영화 전용관 협의체인 유로파 시네마(Europa Cinemas)에서 구축한 ‘유로파 시네마 지도’였다. 이 온라인 지도 에는 소속 예술영화관들의 좌표가 붉은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나는 지구본 형태의 유럽 대륙 지도에 붉은 점으로 환원된 예술영화관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서, 한 나라의 영화문화를 상징하는 거대한 시네마테크 집합체를 구상했다. 프랑스에는 총 107개 지역에, 208개의 예술영화관이 곳곳에 퍼져있다. 총 스크린은 440개이다. 아마 유로파 시네마에 속하지 않은 예술영화관을 포함하면 그 이상의 거대한 시네마테크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지금의 영화들을 만날 수가 있다. 이탈리아에는 208개의 영화관이 있고, 스크린 수는 254개이며, 총 116개 지역에 고르게 흩어져 있다. 이들 예술영화 전용관은 모두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대체로 그해의 대표적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상영하지만, 각 영화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이 정체성은 영화관 이름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특히 프랑스에는 영화 종주국답게 감독의 이름을 딴 영화관이 많다.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감독은 대체로 있다. ‘시네마 장 비고’, ‘자크 타티 시네마’, ‘시네 막스 린더’, ‘마르셀 파뇰 시네마’. 시네마테크의 창립자 앙리 랑글루아의 이름을 딴 극장도 물론 있다(‘시네 앙리 랑글루아즈’). 배우의 이름을 딴 ‘장-폴 벨몽도 시네마’, 그리고 아마 이즈음에 여러분들이 기대할 장-뤽 고다르의 이름을 딴 영화관은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어 아쉽지만, 누벨바그를 함께 이끌었던 프랑수아 트뤼포의 이름을 딴 영화관(Cinéma François Truffaut)과 그의 영화 제목을 딴 ‘400번의 구타 영화관’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당연하게도 문학가의 이름을 딴 ‘시네마 단테’가 있다. 특히 문학 또는 예술 사조를 딴 영화관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작은 도시 카스텔 볼로네제에 있는 ‘시네마 모데르노(Cinema Moderno)’와, 페루지아에 있는 ‘포스트모데르니시모 시네마(PostModernissimo Cinema)’다. 아마도 포스트모데르니시모 시네마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곳, 가장 출입구가 아름다운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페루지아에 있는 '포스트모데르니시모 시네마'로 들어가는 문. (사진: POSTMODERNISSIMO ) 유럽 전역에는 총 779개 지역에 1,246개의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 총 스크린은 2,921개다. 이렇게 전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예술영화관을 모아 거대한 시네마테크 집합체를 이룬다면 그것은 아마 오직 ‘세계의 영화관’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영화(시네마)의 유토피아이지 않을까? 어쩌면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 전용관은 하나의 건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보관된 필름과 자료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오래된 영화가 다시 상영되고, 누군가는 작은 극장의 문을 열고, 다른 누군가는 어둠 속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본다. 이 모든 장소와 시간과 영화가 연결될 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네마테크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곳으로 가는 통로를 걷고 이어서, 지도책을 만들고 싶었다. 시네마테크 파사주. 영화관을 찾아가는 길. 영화관의 문으로 이어지는 통로. 3. 6월 20일 밤의 기억: 시네마 유토피아 나는 오늘, 시네마 유토피아(Cinema Utopia) 체인 중 하나인 몽펠리에 시네마 유토피아 (Cinema Utopia Montpellier) 문 앞에 서 있다. 문은 닫혀있다. 몽펠리에를 떠나기 전날 밤, 난 시네마 유토피아로 갔다. 마지막 상영작 중 하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정류소에서 몽펠리에 폴 발레리 대학(Université Paul-Valéry Montpellier)으로 가는 5번 트램을 탔다. 지난 18일부터 오늘 20일 오후까지 내가 참석했던 NECS 학회가 이 대학에서 열렸다. 몽펠리에 도착 후 학회 일정과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 저녁 시간에 이곳에 가는 것을 연일 놓쳤기에,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였다. 시네마 유토피아는 학회장에 가는 길에 항상 지나쳤던 곳이기에 익숙한 발걸음으로, 이미 마지막 영화가 시작했기에 조급한 마음으로 1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 마호가니색의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가와세 나오미(Kawase Naomi) 감독의 <야큐시마의 환상>은 시작한지 40분이 지났고, 히치콕이 아닌 캉탱 뒤피외(Quentin Dupieux) 감독의 공상과학 미스터리 코미디 애니메이션 <현기증(Le Vertige)>은 곧 있으면 끌날 시간이었다. 내가 희망을 품고 뛰어온 영화인 마르코 응웬(Marco Nguyen)과 니콜 아타네(Nicolas Athané) 감독의 애니메이션 <짐 퀸(Jim Queen)>은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다.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매표소 직원이 먼저 눈짓과 손짓과 말로 들어갈 수 없다고 알려 주었다. 마치 오늘의 막차를 놓친 마음으로 난 포스터가 걸린 벽에 놓인 붉은색 벨벳 의자에 앉았다. 의자 옆으로 영화관 1, 2관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길게 이어졌다. 물론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차단기 앞으로 지나가는 열차의 속도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건너편 내가 가야 할 곳의 풍경의 빛줄기처럼, 영화관의 닫힌 문 틈새로 이미지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돌아서 떠나야지만 사라지는 빛의 소리였다. 시네마 유토피아는 일종의 예술영화 전용관 체인으로, 프랑스 남부 및 북부 지역의 주요 도시에 흩어져 공동의 영화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어 있다. 몽펠리에에서 동쪽으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아비뇽(Avignon)’에, 서쪽으로 3시간 거리에는 ‘툴루즈(Toulouse)’에, 그리고 거기서 북서부 방향으로 더 2시간 30분을 기차로 가면 도착하는 ‘보르도(Bordeaux)’에 시네마 유토피아가 있다. 북쪽 지역에는 트루와(Troyes)에서 멀지 않은 마을인 ‘퐁생트마리(Pont-Saint-Marie)’와 파리 북서부 발도와즈 주 생투앙라우몬(Saint-Ouen l’Aumône)에 다른 2곳의 시네마 유토피아가 있다. 시네마 유토피아는 모두 유럽 예술영화관 협의체인 유로파 시네마 회원관이다. 특히 시네마 유토피아의 독특함은 자체 프로그램에도 있지만, 이 영화관이 추구하는 영화를 알리기 위해 사용한 광고 문구에서 드러난다. “Cinéma garanti sans 3D.” 직역하자면, “3D가 없는 영화임을 보장합니다.” 다소 프랑스식 또는 시네마 유토피아식의 유머로 이해하자면, ‘겉모습만 화려하거나 속임수 같은 효과가 가미된 영화가 아님을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일종의 식품이나 농산물에 유전자 조작이 아님을 알리는 ‘GMO-Free’ 표시와 같은 것이다. 오로지 조작되지 않은 현실의 기록으로서의 영화를 추구하는 이 영화관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구이다. 시네마 유토피아를 수호하는 존재는 그래서 천사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예술영화 전용관 체인 ‘시네마 유토피아’의 로고. (사진: Utopia Montpellier ) 나에게 영화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수신호를 알린 점원이 물과 음료는 원하는 금액을 내고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지갑에 있던 1유로를 음료 테이블에 놓인 돼지 저금통에 넣고 시원한 물을 한 컵 따랐다. 매표소와 관객 대기 장소는 마치 가정집 응접실처럼 아담했고, 이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고풍스러운 의자와 커다란 괘종시계가 우아하게 놓여있었다. 매표소 옆 계단을 통해 3관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얼마 있지 않아 <현기증>이 끝나고, 관객들이 나왔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살짝 영화관 내부로 들어갔다. 마치 예배당과 같이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분위의 영화관이었다. 스크린 오른쪽에 걸린 회화 때문에 더 그러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회화 속에는 촛불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여인의 고요하고 평온한 몸짓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성경책이 놓여있을 법한 나무로 만들어진 스탠드 위에, 이달 몽펠리에 시네마 유토피아 영화 프로그램 책자가 놓여있다. 마치 우리가 잃어버린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 떠난, 아니면 영화의 본질을 찾아 떠난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 놓여있다. 에필로그: 밤이 오면, 우리는 시네마테크에 간다. 세실리아: “오늘 밤에 새 영화를 개봉한대” - <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디 앨런, 1985) © Orion Pictures Corporation 여러분은 어떤 날에 시네마테크에 가시나요? ‘시네마테크 파사주, Episode 2&3’부터 뤼미에르 영화박물관, 판테온 시네마, 로잔 시네마테크, 그리고 룩셈부르크 시네마테크 방문기가 펼쳐집니다. *** [1] Haley Weiss, “ John Akomfrah and the Image as Intervention ,” Interview Magazine , June 27, 2016. (접속일: 2026. 8. 2) 정찬철(영화미디어학 연구자) l 국립부경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영화와 미디어에 관한 논문과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