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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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FA 2013 Program 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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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Guide 2011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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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gate Guide :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Amsterda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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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바리셀라
< 바리셀라 Varicella >는 러시아 출신 다큐멘터리 거장 빅토르 코사코프스키(Victor Kossakovsky)의 미공개 신작이다. ‘보리스 아인맨Boris Einman 발레 아카데미’에서 댄서의 꿈을 키우는 두 자매 나타이샤(12세)와 폴리나(7세)의 일상과 훈련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이 더없이 아름답다. “절대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연출 원칙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영화들은 한결같이 인물들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고 관찰하고 응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기다림의 미학은 어느 순간 시적인 이미지로 응축되어 관객에게 이미지와 사운드의 황홀경을 선사하는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운드 트랙에서 일요일에는 실컷 자고 싶다는 투정이나 해피 엔딩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 또래 소녀들이 할 법한 대화가 들려오고 나면, 영화의 문을 열어젖히듯이 소녀들의 방 창문이 열리고 카메라는 소녀들의 앳된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응시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영화에도 내러티브는 존재한다. 영화의 개요를 몇 줄로 요약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언어로 요약된 서사의 줄기는 이 영화를 지극히 빈곤하게 만들 뿐이다. 시적이고 풍요로운 영화적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만함이야말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영화의 핵심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최소화된 대사를 따라 집과 발레학교에서 훈련에 몰두하는 소녀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춤추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표면 위로 떠오른다. 그녀들은 성공이나 돈, 명예를 위해 춤추는 게 아니다. 나타이샤의 마지막 대사에서 표현되듯이 그녀들은 오직 행복해지기 위해 춤을 춘다. 행복해지기 위해 춤을 춘다는 것. 아이다운 대답일 수도 있지만 그 행위에 완전히 몰입된 자아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춤추는 아이들의 모습은 말할 수 없는 감흥을 자아낸다. 이 영화가 구상에서 추상의 순간으로 넘어가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춤추는 소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던 영화는 어느 순간 춤추는 육체의 움직임을 추상의 형태로 재현하기 시작한다. 영화에 두어 차례 등장하는 이 추상으로의 비약의 순간은 예외 없이 이들이 춤에 몰두한 순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카메라가 구체적인 이미지를 지우고 추상화된 아름다움으로 넘어갈 때 관객은 더없이 행복하고 경이로운 미적 체험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예술의 힘 아닐까, 라고 탄복하게 되는 순간이다. “예술은 강간이 아닌 유혹”이라는 수잔 손택의 주장이 이토록 생생하게 상기되는 순간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다시 한 번 다큐멘터리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가 다큐멘터리는 가장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장르라 했던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궁무진함. 객관적 묘사를 넘어서 인간의 예술적 표현 의지, 내면의 주관성에 도달하려는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아름다움, 예술적 의지를 향한 카메라의 공력을 느끼게 된다. 현실을 기록하면서도 그 현실에서 주관적 아름다움을 체험케 하는 것. 관객에게 그러한 아름다움의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의 힘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표현의 범위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넓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영화를 시적인 다큐멘터리라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 바리셀라 >는 올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준비한다고 한다.
[초이스]푸시 라이엇: 펑크 프레이어
혹시 ‘푸시 라이엇 Pussy Riot’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2012년 2월 21일, 모스크바 구세주 대성당 제단에서는 컬러풀한 스키마스크를 뒤집어쓴 여성들의 느닷없는 공연이 시작된다. 이들은 공연 시작 30초 만에 체포되고 급기야 ‘종교적 증오심에 사로잡혀 성스러운 성당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죄명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이 상상을 초월한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러시아 여성 펑크록밴드 ‘푸시 라이엇’이다. 이들의 공연은 30초 만에 중단되었지만 그녀들의 모습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갔고 급기야 이 사건은 러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되었다. 성당의 제단에서 그녀들은 무엇을 노래하고자 했을까? 그녀들이 부른 짧은 노래의 가사는 “성모 마리아님, 페미니스트가 되어주시고 푸틴을 거둬주소서.”였다. 나날이 공고화되는 푸틴 독재체제는 2011년 선거에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몰락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러시아 시민들의 대대적인 정치 민주화 시위를 불러왔다. 별다른 공통점 없어 보이는 여성들로 결성된 게릴라 밴드 ‘푸시 라이엇’의 노래 역시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정치적으로는 퇴행상태에 놓인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요구가 분출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녀들이 항변하듯이 그녀들은 절대 신성모독을 의도하지 않았다. 다른 많은 러시아 시민들처럼 그녀들이 원한 것은 오직 자유였다. 정치적 자유. 예술의 자유. 성의 자유. 나날이 축소되어 가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공간에 대해 펑크록이라는 아나키적 음악을 통해 푸틴 체제에 저항하고 민주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 것이 그녀들이 취한 행동의 전부다. 그러나 이곳은 러시아다. 그것도 권위주의 독재정권과 보수적인 러시아 정교회가 결탁한 러시아이다. 그녀들의 행위는 여성이 제단에 올라가는 것을 절대 금지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종교법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는 정치와 종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러시아에서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올해 초, 그녀들의 음악을 통한 싸움과 재판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되어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마이크 러너, 막심 포즈도롭킨 감독의 < 푸시 라이엇 : 펑크프레이어 >이었다. 그리고 한 해가 가기 전에 그녀들을 다룬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었다. 그게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러시아 영화집단 ‘Gogol`s Wives Production’이 제작한 < 푸시 대 푸틴 Pussy Versus Putin >이다. 동일한 소재의 영화가 한 해에 두 편이나 나왔다는 것은 이 사건이 그만큼 러시아 사회를 격렬하게 뒤흔들어 놓은 엄청난 스캔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푸시 대 푸틴>에서는 <푸시 라이엇 : 펑크프레이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녀들의 게릴라 공연 모습을 다채롭게 볼 수 있다. 공연을 시작하면 이내 경찰이 다가와 제지하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영화의 초반, 그녀들이 버스 지붕에 올라가 공연을 하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에서 깃털 자루가 터져 사방에 깃털이 흩날리는 장면은 가히 장 비고의 < 품행제로 >의 환상적인 베개 싸움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스크린 전체를 뒤덮은 깃털은 현재의 생생한 기록인 다큐멘터리 장르에 더없이 환상적이면서도 시적인 특질을 부여하는데 그것은 이 여성들이 펑크록이라는 음악 장르를 통해 호소하려는 자유를 향한 아나키적 욕망의 정서를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푸시 라이엇 사건을 계기로 정치와 종교 양쪽으로 갈라져 격렬하게 대립하는 러시아 사회의 현재와 그 속에서 계속해서 제2, 제3의 푸시 라이엇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판결을 받고 호송버스를 타고 가는 그녀들을 향한 시민들의 박수는 자유에 대한 러시아 시민들의 의지 표명이며 푸시 라이엇의 용기있는 행동을 지지하는 카메라의 태도를 반영한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옥중에서 단식투쟁도 불사하며 저항하는 그녀들을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중에는 자신의 노래와 퍼포먼스로 신성 모독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마돈나도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콘서트에서 푸시 라이엇 의상을 입고 ‘라이크 어 버진’을 부르면서 그녀들을 응원하는 마돈나의 모습은 영화가 선사하는 또 다른 재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