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
- 감독
- 이성욱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임성실, 문혜민, 고인범, 박훈영
2017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순간은 위험하다. 순진하다고 여겨지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경제적인 위협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비난까지도 분연히 개인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고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 < 소공녀 >는 그 위험한 ‘지금 여기 개인’의 편을 드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주인공 미소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정’에 가깝다. 묵묵히 스스로의 길을 걷는 친구의 등을 토닥거리듯이 연출자는 스스로가 만든 캐릭터의 옆과 뒤를 든든히 떠받치고 간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아동 소설 <소공녀>는 부유했던 한 소녀의 극적인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사라는 부유한 집안의 ‘소공녀’에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하녀로 전락하지만 결말에는 다시 부자로 돌아간다. 그러나 전고운 의 영화 < 소공녀 >의 주인공 미소는 부자였던 적이 없다. 일당 사만 오천 원에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미소의 유일한 행복은 하루의 일을 마무리한 후 마시는 위스키 한 잔과 손가락에 반지처럼 끼워진 담배뿐이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작은 방에서의 연애는 시리도록 슬프고 갑자기 오른 담배 값은 미소의 삶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된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집을 포기한 그녀는 오래 전 친구들의 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집을 짐처럼 메고 떠돌이로 살지만 그녀는 여전히 일을 하고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태운다. 영화 < 소공녀 >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다. ‘미생물, 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이라는 뜻이다. 눈앞의 현실을 긍정적인 환상으로 극복한 소설 <소공녀>의 사라와는 달리 영화 <소공녀>의 미소는 거대한 사회 속 개인으로서 하루를 버티어 기어코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성인 동화의 외피를 입고 있는 <소공녀>가 놀라운 유머감각, 따뜻하게 인물을 감싸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저릿한 추위처럼 보는 이를 놀래게 하는 건 지금 이 사회의 개인들의 존재를 명징하게 비추고 있어서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무언가를 가질 수 있다는 첨언들과 왜 궤도에 오르지 않고 비틀거리냐며 부유하는 충고들은 각자의 삶을 택해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무례한 화살이 된다. 기원을 알 수 없는 이 사회적 합의에서 조금이라도 비켜선 이들이 마치 과녁처럼 누군가의 대상이 되는 사회, <소공녀>의 인물들은 그 과녁에 함께 서서 서로를 보듬는다. 집을 찾아 떠도는 사람, 미래를 위해 떠나는 사람, 과거를 품고 잠드는 사람, 빚더미에 앉아 눈물 흘리는 사람 등 주변 어디에나 있는 소시민들의 퍼즐을 맞춰 나가듯 영화 <소공녀>는 세심하게 삶의 조각들을 모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사를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의 지난 순간들을 쌓아 올리는 스토리텔링의 마법을 보여준다. < 1999, 면회 > < 족구왕 > < 범죄의 여왕 >을 제작한 광화문시네마의 신작 < 소공녀 >는 무구한 가치와 무해한 꿈의 힘을 믿는 제작사의 인장이 또렷한 영화다. 또한 < 마담 뺑덕 > < 하이힐 > 등의 작품을 통해 개성과 연기력을 선보였던 배우 이솜 의 근사한 대표작인 동시에 안재홍 , 최덕문 , 김재화 , 강진아 , 이성욱 , 김국희 등 모든 배우들의 이름을 찾게 되는 훌륭한 앙상블의 영화이기도 하다. 마치 술 좋아하고 사람 잘 챙기던 친구가 우편으로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영화인 < 소공녀 >는 시리도록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생각날 영화다. 담배 한 개비에, 술 한 잔에, 반가운 이의 안부에 눈 녹듯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처럼 앞으로의 겨울마다 이 영화의 순간들이 그런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이성욱의 < 소녀들 >은 할머니와 손녀가 보낸 하루 반나절 동안의 일을 보여준다. 곱게 치장한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유원지를 찾는다. 그녀들은 산길을 걷다가 폐허가 된 동물원을 둘러보고 할머니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손녀가 나무 둥치에서 죽은 매미를 발견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태워주는 비행기 놀이기구를 탄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가발을 벗고 화장을 지운 할머니는 삶에 찌들고 지친 노인일 뿐이다. 그녀의 깊게 팬 주름과 쳐진 살갗은 손녀의 말간 얼굴과 대비되지만 아이 역시 편치 않은 시간을 견디고 있다. 엄마는 가출했고 아빠는 매일같이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온다. 더 이상 자신을 키우기 힘들다는 할머니의 불평과 푸념을 못 들은 척 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가 예상되지만 이 영화는 매우 세심하게 조율된 색감과 카메라의 우아한 트래킹, 소녀와 할머니의 꿈을 표현하는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인해 꿈결 같은 색채를 입게 된다. 이성욱은 녹록지 않은 삶의 민얼굴을 드러내는 집안과 가장(假裝)일지언정 일상의 허덕임에서 해방시켜주는 유원지라는 공간을 대비시킨다. 할머니는 괴로움에 빠져 딸의 양육을 뒷전으로 미룬 아들을 대신해서 보살펴야 하는 손녀가 버겁다고 말하지만, 아이의 몸을 씻기는 그녀의 지친 표정과 코를 골면서 잠에 빠져든 모습은 애처롭다. 한 프레임에 담긴 연약한 아이의 몸과 피로에 잠식당한 할머니의 주름진 육체는 성장을 향한 몸(미래의 소녀)과 소멸로 향하는 육체(과거의 소녀)를 체감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인 산책길에서 수줍은 미소를 통해 사라져버린 소녀적 감성을 되살릴 수 있다. 또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손녀와 할머니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병치시킨다. 동물들이 사라진 거대한 동물 우리에서 소녀는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고, 손녀의 손을 잡고 산길을 걸으면서 할머니는 아이에 대한 속내를 드러낸다. 손녀는 “예전에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 다고 고백한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혼자서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비행기가 “생각보다 너무 높이 올라가 무서웠지만 그곳에서 보는 풍경은 상쾌했다”고 말한다. 손녀는 피로가 켜켜이 쌓인 집에 돌아와서 사라진 동물들을 상상하고, 할머니는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마음에 새긴다. 아이가 볼 수 없는 공간과 할머니가 다르게 느낀 감정은 그들의 꿈 장면에서도 병치 되어 나타나 두 ‘소녀들’의 꿈과 소원을 이어준다. 아이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등장하지만 실제로 볼 수 없었던 스케치북 속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삭막한 집안이 초록색 풀들로 덮이는 꿈을 꾼다. 사라진 동물들이 불려 나와 알록달록한 색깔의 빛과 우거진 풀잎 사이로 움직이다가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침대 위로 떨어지는 순간, 아이의 소망을 충족시킨 꿈은 할머니에게 전이된다. 낮에 만났던 할아버지와의 포옹이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할머니의 꿈은 할아버지의 살갗과 닿음으로 인해 그녀의 피로와 늙어감에 대한 체념이 일시적으로 망각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주문, 혹은 육체를 통한 친밀함의 회복처럼 제시된다. < 소녀들 >은 10대 시절부터 영화를 찍어왔던 이성욱의 소년기 감성이 두 ‘소녀들’에게 이식된 영화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삭막한 도심지, 폐허가 된 동물원,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놀이동산, 거대한 숲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의 그림자와 거센 바람 소리는 그녀들의 일상을 가능케 하는 환경이다. 이성욱은 ‘소녀들’의 고립과 적막, 오랜 시간 고여 있는 슬픔과 해소될 수 없는 울적함, 지나간 소녀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같은 현실의 고단함을 헤아려본 후 그녀들을 위로한다. “나비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은 할머니의 소망과 손녀의 그림자놀이가 이어지고, 그녀들의 꿈을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나아가 그는 동물원이 폐쇄되면서 사라진 동물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지워졌을 할머니의 희미한 미소에게 애틋한 시선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