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 98센트
- 감독
- 이항비
- 제작년도
- 1988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영화는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코리안 뉴 웨이브’를 중심에 둔다면 그 시작인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이장호)일 것이고, 작가주의 예술 영화라면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배용균)이 떠오를 것이다. 대중적 상업영화의 규범으로는 배창호의 < 고래사냥 >(1984)과 < 깊고 푸른 밤 >(1985)이 있을 것이며, < 길소뜸 >(1986. 임권택)이 보여준 리얼리즘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애마부인>(1982년)부터 등장한 시그니처 포즈 하지만 영향력으로 본다면 단연 < 애마부인 >(1982. 정인엽)이다. 이 영화 이후 충무로는 ‘에로티시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애마 프랜차이즈’는 198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한국영화의 ‘에로 패러다임’을 규정한다. <애마부인>은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애써 눈 감아 온 ‘여자의 욕망’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그 표현이 미학적이거나, 그 서사가 논리적으로 수긍할 만하다는 건 아니다. <애마부인>은 거대한 시작이었고 수많은 에로 영화들은 이 영화를 모방하거나 변주했다. ‘애마’라는 캐릭터가 30년 넘게 그려온 연대기는 한국영화의 웬만한 에로틱 아이템은 모두 품고 있었고, 그 흐름은 이후 < 젖소부인 바람났네 >(1995. 김인수)로 만개한 에로 비디오 시장과도 직결된다. 1대 애마 안소영. <애마부인>은 애마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때 애마는 고개를 돌려 관객을 응시한다. 애마의 각성. 이 테마는 3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애마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1982년은 분기점이었다. 이 해 안소영 과 임동진 이 부부/연인으로 등장하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애마부인>과 < 산딸기 >(1982. 김수형)였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로틱 멜로드라마와 일제 강점기를 다룬 토속 영화. 만약 <산딸기>가 더 인기를 끌었다면, 1980년대 에로 트렌드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지만, 결과는 전자의 압도적 승리였고 이후 ‘애마의 세계’가 열린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이후 신군부 쿠데타와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겪은 남한 사회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전한 공포 정치였지만, 그 표면은 훨씬 화려해졌다.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을 동원한 이른바 ‘3S 정책’의 시대였고, 통금 해제와 함께 ‘심야 상영’이라는 게 가능해졌으며, 그 첫 수혜자는 바로 <애마부인>이었다. 그 해 한국영화(당시엔 ‘방화’라고 불렀던) 흥행 1위였던 <애마부인>은,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던 화제작이었다. 감독은 정인엽 . 1960년대에 데뷔해 반공 영화부터 청소년 영화까지 이런저런 장르를 섭렵하다가 호스티스 영화 <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9)로 빅 히트를 기록한 정인엽 감독은 1970년대 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 이때 아트하우스에서 접한 유럽과 미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귀국 후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조수비의 『애마부인』(1981)을 영화화한 것이다. <애마부인>은 달랐다. 여성이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 자유 연애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여성의 육체를 눈요깃감으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꽤나 모순적인 영화였지만, 당대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1980년대식 욕망을 읽었다. 혼자 아파트에 살며,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패셔너블하면서, 나이트 클럽이나 바에서 즐기는 여자. 여기엔 1960년대 멜로드라마의 모성에 대한 강박이나,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지닌 비극적 운명의 흔적은 없었다. 유명무실한 가부장제(애마의 남편은 감옥에 있다), 육아의 의무에서 해방된 솔로의 삶(시댁에서 아이를 빼앗아갔다), 경제적 풍족함(애마에겐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육체적 매력(남자뿐만 아니라 동성 친구도 눈독 들인다)…. 애마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였으며, 한편으론 남한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일부일처제가 붕괴중임을 몸으로 선언하는 인물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애마’는 ‘말’과 함께 ‘자동차’를 의미한다. 호스티스 영화가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들의 사연이라면, <애마부인>의 애마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오너 드라이버인 그녀는 직접 차를 몰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사진은 <애마부인 6>. 모델인 애마(다희아)는 자동차 CF를 찍고 있는데, 이 영화엔 현대자동차가 공식 협찬을 했다. 산업적으로도 <애마부인>은 전인미답의 경지로 들어갔다. 이른바 ‘애마 프랜차이즈’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시리즈일 것이다. 1982년에 첫 선을 보인 후 최근 < 애마부인 2016 >(2016. 김미연)까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20대 초반의 관객이 어느덧 환갑에 가까워질 때까지, 애마의 역사는 세대를 가로질러 이어졌다. 연방영화에서 제작한 ‘정전’은 1996년까지 13편으로 이어지지만, 정전보다 많은 ‘외전’이 있었다. 극장용 영화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는 비디오 시장과 모바일 시장을 거쳐 IPTV 시장까지 이어졌으니, <애마부인>과 그 후예들은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대한 산 증인인 셈이다. 그리고 애마 시리즈는 스타 시스템에 정면 도전했다. 배우와 장르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자체의 동력을 통해 ‘O대 애마’라는 식으로 편마다 신인(급) 여배우를 등장시켰고 그들을 스타덤에 올렸다. 1대 애마 안소영, 2대 애마 오수비, 3대 애마 김부선. <애마부인> 시리즈의 초창기를 장식한 강렬한 섹슈얼 카리스마 배우들. 흔히들 <애마부인> 1편만 보고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본 양 이야기하지만, 정인엽 감독이 연출한 1~3편을 모두 본 후에야 이 시리즈의 진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마부인>과 < 애마부인 2 >(1984. 정인엽)는, 배우는 안소영에서 오수비 로 바뀌지만,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지닌다. 1편의 마지막에서 애마는 젊은 애인과 남편 사이에서 결국 남편을 선택하고, 그들의 가정은 회복된다. 하지만 남편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일에 바쁘다는 이유로 밤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 단장했던 애마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면서 영화는 끝난다. 2편의 시작 역시 애마(오수비)가 화장을 지우는 장면이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1편을 통해 애마는 각성했고, 2편의 그녀는 이미 이혼했으며 외국 항공사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고 근사한 애인 성현( 신일룡 )이 있다. 1편이 애마가 불행한 이유로 ‘바쁜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을 제시한다면, 2편에선 단 한 줄의 대사로 그것은 모두 허울이며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린 함께 도달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 애마부인 3 >(1985. 정인엽)에 오면 더욱 명확하게 진단한다. 의사( 진봉진 )는 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다수의 부인들은 남편이 무력하다는 이유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마부인>의 엔딩(상단).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애마는 화장을 지운다. <엠마누엘>(1974. 쥐스트 자켕)의 엔딩(하단). 엠마누엘(실비아 크리스텔)은 짙게 화장을 한다.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새롭게 변신한 모습이다. <애마부인 2>의 첫 장면에서 화장을 지우던 애마의 모습은 1편의 엔딩과 연결된다. 하지만 <애마부인 2>의 엔딩에서 활짝 웃는 애마는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바꾸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다. 남편, 애인, 연하남 등 ‘남자’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자존심을 죽이고 잠자리를 요구할 때마다 당신은 무참하게 날 거부했어요,”(애마) “난 당신이 그런 여자인 줄 몰랐어.”(남편) 이런 식의 대사로 변죽만 울렸던 게 <애마부인>이라면, <애마부인 2>는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부부 사이의 ‘섹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애마는 “난 이제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어요”라며 선언한다. 그리고 3편에 오면 애마( 김부선 )는 남편을 집에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종종 사람들이 <애마부인> 시리즈를 유부녀의 일탈과 불륜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여기는데, 이 시리즈는 시종일관 ‘부부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10년 후에 나온 < 결혼 이야기 >(1992. 김의석)는 <애마부인>에 로맨틱 코미디를 결합한 업그레이드다). 그런 점에서 <애마부인>은 20년 가까이 독재와 유신 체제로 억눌렸던 한국 사회가 폭발했던 1980년대의 ‘욕망의 사회학’이자 ‘부부의 심리학’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애마 못지 않게 인상적인 캐릭터는 에리카이다. 1편과 2편에서 김애경 역할을 맡은(목소리는 박정자 의 더빙) 에리카는 “애마야, 제발 그 봉건적 사상 좀 버려. 사랑해주지 않는 그런 남자와는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계몽적 멘트를 날리면서, 한편으론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라며 섹슈얼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당시로선 과감하게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해 가감 없이 표현했고, 이것은 억눌린 부부 관계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이국적 이름을 지닌 동성 친구’ 캐릭터는 3편의 세실리( 박원숙 )을 거쳐 < 파리 애마 >(1986. 정인엽)와 <애마부인> 4편과 5편엔 다시 에리카로 이어지고, 7편에선 루비아( 박혜란 )가 등장한다. 이후에도 이 시리즈엔 항상 예술계나 화류계에 종사하는, 개방적인 여성들이 등장해 애마의 곁에 머문다. 애마에겐 항상 자유로운 삶을 사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솔로 친구가 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1편과 2편의 에리카(김애경), 3편의 세실리(박원숙), <파리 애마>의 에리카(민복기), 4편의 에리카(윤지원), 5편의 에리카(전혜성), 7편의 루비아(박혜란). <애마부인>에서 애마와 에리카의 얼굴을 교차해 보여주는 신. 에리카는 말한다. “애마야,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 두 여성의 에로틱한 관계는 8편 이후 두드러지며, 이전엔 ‘노골적 암시’ 수준이었다면 매우 직접적인 베드 신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남자가 점점 싫어져.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라는 애마의 대사가 드러내듯, 10편은 퀴어 영화에 가까운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섹스 신은 9편일 듯하다. 애마( 진주희 )는 여행 중 우연희 강희( 강선영 )라는 포토그래퍼를 만나 그녀의 모델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데, 그 베드 신은 아마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격렬한 수위일 듯. 이때 강희는 말한다. “나는 구속 당하는 건 질색이다. 그런 날, 사람들은 레즈비언이라 비웃더군.” 호모섹슈얼리티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중요한 테마였다. (상단 좌측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7>의 애마(강승미)와 루비아. <애마부인 10>의 애마(오노아)와 영주(유미희). <애마부인 9>의 애마와 강희. 한편 정인엽 감독은 <파리 애마>의 유혜리와 ‘엠마누엘’ 실비아 크리스텔과 함께 <성애의 침묵>(1992)를 찍는다. 이 영화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수많은 클리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건 말 타는 장면일 것이다. 애마의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은 말을 통해, 말을 어루만지는 행동과, 말을 타는 쾌감과, 말 위에서 느끼는 속도감 등을 통해 해소되는데, 종종 이 신은 판타지로 제시되며 일종의 마스터베이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전통은 최근작인 <애마부인 2016>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남편과 트러블이 있는 은혜(류현아)는 친구 유리( 백세리 )의 권유로 승마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다. ‘말’로 상징되는 자연은, 도시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욕구의 해방구이기도 한데, <애마부인> 시리즈는 바닷가나 숲 속 같은 공간을 종종 섹스의 공간으로 설정하며, 여기서 말은 어떤 매개체가 된다. 한편 이 시리즈엔 ‘도시 VS 자연’처럼 수많은 이항 대립이 존재하며, 이것은 영화 전체를 구성하는 어떤 공식이 된다. ‘결혼 VS 불륜’ ‘남편 VS 애인’ ‘애마 VS 에리카’ ‘이성애 VS 동성애’ ‘현실 VS 판타지’…. 여기서 애마는 그 경계에서 고뇌한다. 이외에도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홀로 엑스터시를 느끼거나(이때 애마는 종종 안대를 한다),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침대나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 등도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시그니처 포즈’들. 이 모든 것이 애마의 내면적 갈망을 표현한다. 훔쳐보기 신도 마찬가지다. 애마는 카페나 술집 같은 곳에 자주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낯선 커플의 애정 행각을 목격한다. 그 모습에 격정을 느낀 애마는 몸을 비틀며 스스로를 느끼는데, 이때 그런 애마의 모습을 역시 훔쳐보는 음험한 남성의 시선이 있다. 그 남자는 애마에게 접근해 섹스를 요구하고, 애마는 뿌리친다. 이런 구도는 종종 스토킹이나 강간의 모티프와 결합되어 <애마부인> 후기 시리즈에 자주 등장한다. 흥행력이 떨어지던 시기 자극적 요소로 관객을 끌려는 시도일 수도 있지만, 그 시기 창궐하던 에로 비디오의 성폭력적 요소를 받아들인 면도 있다. (계속) <애마부인>. 전설의 장면. 말이라는 상징적 존재와 무의식. 그리고 판타지. <애마부인 2>. 욕조에서 목욕을 하던 애마는 말의 판타지에 빠지고, 그 안에서 젊은 남자와 섹스를 한다. 현실로 돌아왔을 땐 침대에 마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애마부인>에서 애마는 바에서 어느 커플을 엿본다. 이때 그녀를 바라보는 낯선 남자가 있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 애마는 다리를 비틀며 은밀한 마스터베이션에 빠진다. 엿보기와 마스터베이션의 결합은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여러 번 반복된 공식이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애마부인 2> <애마부인 3> <애마부인 9>의 애마들. 그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모습은 이 시리즈의 시그니처 숏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비밀이 있다. 그건 절대로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금기이며, “너도 그러고 있지?”라는 듯한 눈빛을 통해 은밀하게 소통되는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공범 의식’에 가깝다. 유치원이든 고등학교든 ‘학부형’에겐, 자신이 옳지 않은 시스템의 부역자이며 석연치 않은 계략의 공모자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차마 말할 순 없다. 터놓고 말하자면 너무나 끔찍하고, 사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이유다. 정지우 감독의 < 4등 >은 고통스럽다.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이를 위한다는 것이 부모의 체면 때문이며, 교육은 결국 폭력을 수반하며, 오로지 원하는 건 1등일 뿐이며, 경쟁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 아니라 조장된 이데올로기이며,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면죄부로 현재를 학대한다. 절대 극적 과장이 아니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묵인했던 진실. 우린 들켜버렸다. 영화는 의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흑백 화면으로 처리된 도입부는 주인공 소년 준호(유재상)가 아닌, 장차 준호의 코치가 될 광수(정가람)의 10대 시절 이야기다. 그는 국가대표 수영선수이며 에이스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유력하다. 타고난 천재이며 승부욕도 대단하다. 젊은 날이기에 일탈의 유혹 앞에서 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본업을 해치진 않는다. 그러나 집단주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코치의 체벌에 저항한 그는 선수촌을 뛰쳐나온다. 시간은 흘러, 똘망똘망하던 눈빛은 흐리멍덩해졌다. 어른이 된 광수(박해준)는 구민 센터에서 수영을 가르치며 살아간다. 이때 소문 듣고 찾아왔다며 정애(이항나)는 아들 준호와 함께 광수를 만난다. 정애는 4등만 하는 아들을 1등으로 만들어달라고 매달리고, 그렇게 준호의 지옥 훈련은 시작된다. < 4등 >은 ‘질문의 영화’다. 준호가 아닌 광수로 영화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폭력이 싫어 메달을 포기했던 광수는, 이젠 준호를 1등으로 만들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매질을 시작한다. 여기 <4등>이 던지는 첫 번째 물음표가 있다. 왜 우린 교육을 폭력과 결부시키는 구조에 익숙한가? 이것은 단지 물리적 폭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들이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섭다는 엄마의 논리, 아이의 멘탈을 끊임없이 깎아내리는 폭언, 1등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거라는 협박은 아이를 주눅들게 만든다. 그리고 광수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때려서라도 자신을 잡아주려 했던 사람이 진짜 스승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교육과 결합되어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우리 사회에선 결코 낯설지 않은 경구이자 전통처럼 내려오는 교육 철학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거짓이다. 폭력은 준호를 1등으로 만들지 못했다. 준호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제일 먼저 결승점을 통과한다. 그런데 아이는 크게 기뻐하거나 들뜨지 않는다. 대신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준호는 비로소 자신을 발견했고, 그 모습엔 코치와 엄마의 다그침 없이도 뭔가를 해냈다는 떳떳함이 있다. 이 장면은 ‘폭력-교육’의 고리에서 해방된 아이의 위엄이며, 이 영화의 간절한 메시지다. 폭력의 역사는 우리 대에서 끝내자는 것이며, 더 이상 준호의 엉덩이에 피멍을 만들진 말자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때리고 맞는 시스템에 익숙했던 세대에게 이것은 희생이자 각성이다.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되기를 포기해야 하기에 희생이고, 세상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수반되어야 하기에 각성이다. 이 세상에 ‘맞을 짓’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관성적으로 때리는 자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서 < 4등 >은 두 번째 물음표를 던진다. 그 질문은 소박하면서도 만만치 않다. 준호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준호에겐 1등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그 아이가 수중에서 발견한, 포근하면서도 신비로운, 물과 빛이 만들어낸 세계를 보여준다. 그 세계는 1등이든 4등이든 꼴등이든 중요하지 않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런데 아이가 환상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 어른들은 밖에서 스톱워치를 들고 소리친다. 빨리 밖으로 나와 레이스에 참여해 등수를 가리라고. 하지만 이 모든 건 아이들끼리의 일이다. 어른들은 침묵해야 한다. 광수도 준호에게 말하지 않던가. “넌 엄마만 없으면 1등 할 수 있다”고. 엄마의 말처럼 4등 한다고 해서 인생 꾸리꾸리해지는 것 아니며, 코치의 말처럼 때려서라도 바로 잡아준다고 해서 1등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설사 1등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더욱 아니다. “1등 하면 기분이 어때요?” 준호는 선배 선수에게 묻고, 후배 선수도 준호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1등 하면 행복한가요?” 아이들이여, 부디 행복하자. 세상의 폭력으로 아프지 말고.
한 감독의 새 영화를 보고 나서 그/그녀의 이전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언제나 처음 보는 것과는 다른 일일 것이다. 특히, 홍상수 의 영화가 그렇다. 그의 영화들이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일관성 때문이다. ‘반복’은 그의 개별 영화들의 구성 원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영화들 사이를 잇는 창작의 원리이다. 따라서 그의 영화들은 소급적인 ‘반향효과’를 통해서 더욱 두터워지고 깊어진다. 근 20편에 이르는 홍상수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단계를 설정하는 일, 그리고 그의 영화들 사이에서 걸작과 태작을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해 보인다. 그의 모든 개별 영화들은 단 하나의 연작 중 일부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끊임없이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이항적 대칭 구조’의 형식을 취한 홍상수의 신작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를 보고 나서,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던 그의 초기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그 ‘반향효과’를 음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그의 세 번째 작품인 < 오! 수정 >에 대해서 다시 쓰고 싶어졌다. < 오! 수정 >은 표면적으로는 5개의 소제목이 붙은 장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그 안에 동일한 과정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기억 사이의 대비가 함축되어 있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 영화다. 재훈( 정보석 )과 은주( 이은주 )는,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합(수정, 또는 결혼)’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에서, 홍상수 영화 세계 속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커플이자 거의 유일하게 ‘정상적(?)’인 커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 시민 케인 >이나 < 라쇼몽 > 같은 ‘기억의 모호성’을 다루는 영화들의 계보 안에서 이 영화를 받아들였고, 전작인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과 < 강원도의 힘 >(1998)에 비해 좀 더 귀엽고 밝아진 인물들을 홍상수 영화에서 나타나는 어떤 변화의 징후로 읽었다(부정과 냉소에서 긍정과 유머로의 이행). 하지만 ‘반향효과’ 안에서 본 <오! 수정>은, 그 첫인상이라는 것이 일종의 오해, 또는 절반의 이해에 불과했던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오! 수정>은 ‘기억의 모호성’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화도 아니었고, ‘낭만적 해피엔딩’의 영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두 남녀 사이의 기억의 차이는, 홍상수가 이항적 대칭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동원하는 다른 많은 이항들(가령, 서로 같은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경유하는 두 인물, 서로 다른 공간-분위기에 놓인 한 인물, 현실과 꿈 등) 중의 하나에 불과했고, 귀엽고 밝아진 인물들 역시 낭만적 낙관의 반영하는 거울이라기보다는 근본적인 성찰을 위한 거울이었다. 무엇보다 분명해진 것은, 홍상수 의 일부 영화(특히, 초기영화)에서 나타나는 ‘이항 구조’가 사실은 처음부터 ‘n항 구조’에 이르기 위해 취한 방법론적 선택이자 제약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이후 영화에서 나타나는 삼항 구조나 옴니버스 형식과 같은 다양한 형식적 변주는, 어떤 질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이 ‘이항 구조’의 양적인 확장에 더 가까운 것이다. 홍상수에게 ‘구조’란, 역설적이게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구속이다. ‘불안’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 집중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놓은 틀이다. 이 제약에는 서사형식으로서의 ‘구조’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미장센의 스타일적 요소들(가령, 고정쇼트, 미디엄쇼트, 롱테이크 등)도 포함된다. 홍상수는 스스로 설정해 놓은 이 제약 안에서 ‘우연’을 기다리고, 마주친 우연에 따라 ‘즉흥연주’를 한다. 특정한 ‘공간-분위기’와 ‘배우-인물’이 조우하는 순간, 그의 반복되는 즉흥연주가 시작된다. 홍상수는 그 자유(우연의 수용)와 즉흥연주를 “어떤 당위나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 어차피 선택인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가 벗어나고자 하는 그 ‘당위나 나쁜 습관’은 세상의 그것(상식과 통념)이자 동시에 영화의 그것(관습적 재현 양식)이다. 대개는 ‘불륜관계’를 포함하는 남녀 사이의 다양한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홍상수 영화의 줄거리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TV 드라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그 줄거리 안에 결코 ‘법정’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데뷔작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에 예외적으로 ‘법정’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불륜’ 때문은 아니었다). 홍상수는 그가 발견하고 재구성해가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굳이 법정에 서지 않아도 그 인물들의 내면에서 언제나-이미 작동하고 있는 어떤 ‘법의 힘’에 대해서 끈질기게 질문하고 저항하고 있다. < 오! 수정 >의 밝고 귀여운 인물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홍상수의 영화적 방법은 가부장제의 법이 작동하고 있는 일상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이지만, 그의 근본적인 영화적인 화두는 그 법의 외부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어떤 삶’의 지평에 다다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홍상수 영화의 본질은 ‘일상의 리얼리즘’이라기보다는 ‘삶의 리얼리즘’에 있다. 홍상수는 언젠가 그것을 “완전한 구체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