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ANIFEST]재희귀신 2학년1반 2모둠
- 제작년도
- 2011
사진: “ 세계의 주인 ”, 네이버영화 * 본 글에는 극중 일부 장면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세계의 주인 >(윤가은, 2025)을 아무런 정보 없이 관람할 때, 관객은 필연적으로 오류 혹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초반의 시퀀스들은 수수께끼에 가까운 불규칙한 배열처럼 보인다. 영화의 시작은 교복을 입은 커플이 학교로 보이는 폐쇄된 장소에서 키스에 몰두한 모습이다. 곧 영화의 중심이 될 주인( 서수빈 )은 키스 도중 남자 친구( 김예창 )의 얼굴이나 손을 지속해서 교정한다. 이 장면은 성행위를 묘사한 웹툰 스케치로 넘어가는데, 마치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방금까지 키스를 나누던 주인은 단짝 유라( 강채윤 )가 그린 웹툰이 담긴 화면을 바라보면서 다음 상황을 궁금해한다. 체육 시간에는 운동장에서 배구 연습을 하는 도중 자리를 이탈해 장난을 치다가 다른 학생에게 부딪히기도 한다. 이때 부딪힌 남학생 수호( 김정식 )와 주인은 이후에도 부딪히는 일이 잦다. 수호의 어린 여동생은 주인의 엄마( 장혜진 )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주인은 엄마를 따라 방문한 병원에서 팔에 깁스를 한 수호의 동생을 만난다. 그날 수호는 동생을 씻기다가 목덜미 근처에 난 꼬집힌 자국을 본다. 다음날 어린이집에 찾아가 CCTV를 보여달라고 말하지만, 어린이집 교사는 곤란해하며 자리를 피한다. 수호는 마을 어귀 담벼락에는 빨간색 라카로 성범죄자의 집이라고 적힌 곳을 지나친다. 주인의 동생 해인(이재희)은 마술을 배워서 가족 앞에서 상연하는 것을 좋아한다. 빨간 공을 손안에서 사라지게 하는 마술 등 대부분 무언가를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다. 해인은 주인의 앞으로 온 편지를 몰래 숨겨두거나, 신발에 흙을 묻혀 오는 등 어떤 비밀이 있어 보인다. 주인의 엄마는 텀블러에 양주를 넣어서 몰래 마시곤 한다. 주인은 진로를 정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선생님( 이상희 )과 개별 면담 시간에 파티션 위에 놓인 사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숨쉬기 곤란해하는데, 알레르기가 있냐며 당황해하는 담임에게 주인은 장난이었다며 웃어버린다. 정확한 숏의 순서를 정리하기 어려운 일련의 몽타주 속에서 특정 인물이나 상황에 마음 두기 힘들다. 그러다 개별적인 상황을 한데 모으는 꼭짓점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복역 기간을 끝낸 성범죄 피의자의 학교 인근 마을로의 복귀가 임박해지자, 수호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성범죄자 복귀 반대 서명을 받는다. 주인은 홀로 서명에 반대하는데, 이유는 서명을 독려하는 문구 중 피해자의 아픔을 과장해서 묘사한 부분 때문이다. 피해자는 이 일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는 문구는 클리셰에 가깝지만, 이것이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과 피해자성을 강요하는 문구가 될 수도 있다. 주인이 문구에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어쩌면 그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일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네가 뭐 성폭력 피해자라도 돼?”라는 일갈에 주인은 “그래, 나 성폭행 피해자다.”라고 답한 뒤 곧이어 농담이라고 무마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농담이 아님을 관객은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주인과 그를 둘러싼 모든 비밀스러운 상황과 행동에 하나의 질서가 생긴다. 아버지의 부재도, 편지를 숨기거나 마술을 배우는 동생도, 술을 마시는 엄마도, 주인의 활발함도, 모두 성폭력 트라우마와 관련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불규칙한 것처럼 보였던 배열이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질서로 통합되는 것을 느끼면서, 이에 대한 경계와 의심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이러한 해석이 결국 인물을 사건에 가둬두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서명문 속의 클리셰와 비슷한 짓을 내가 인물에게 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에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느낀다. 서명을 부탁하는 수호와 반대하는 주인 (사진: “ 세계의 주인 ”, 네이버영화) 사실 확정을 위한 고백은 일종의 법정에서 이뤄진다. 문구를 수정했다는 수호의 말이 거짓임을 간단히 확인한 주인은 자리를 피하지만, 수호가 끈질기게 붙잡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표출된 주인의 분노는 그가 가진 본래의 성격만을 표시할 수 있는가. 그 안에 잠재한 성폭행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그의 행동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문제의 그 문구를 상연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과연 영화가 지속하는 동안 인물은 이러한 잣대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 교장실에 불려 간 주인과 수호는 서로를 마주 본 위치에 앉는다. 수호는 서명받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하고 싶다고 제안한다. 주인은 끝까지 서명을 거부하며 결국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차분히 고백한다. 가장 문제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차 앞좌석에 나란히 앉은 엄마와 주인은 세차장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것은 다소 노골적인 의식이자 클리셰다. 세차가 이뤄지는 공간 내부의 소음이 주인의 울부짖음을 가리는 동안, 주인은 엄마를 향해 원망의 말을 마구 쏟아낸다. 세차가 끝나고 울음이 잦아질 즈음 엄마는 말없이 휴지와 물을 건넨다. 그러고는 ‘한 바퀴 더 돌까?’라고 묻는다. 이 장면에서 수호가 쓴 서명문 속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문구가 속절없이 떠올랐다. 세차장 장면은 이를테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씻으려 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상처의 당사자인 이들은 상처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다행히 그 안에서 주인은 혼자가 아니다. 주인의 엄마는 바깥에서 상처를 바라보거나 낫게 할 수 없다. 다만 그는 상처 안쪽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 이들과 함께 뒷좌석에 무단 탑승한 카메라 역시 상처 안쪽에 자리 잡으려 한다. 세차장 장면의 핵심은 무언가를 씻어내는 정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의 위치에 있다. 외면했던 안쪽에서 여전히 울부짖거나 억눌린 상처들이 존재하고, 주인은 잠시 그 상처가 되어 아우성쳐 보았을 뿐이다. 세차장 기계 속 차 안, 엄마 태선과 주인 (사진: “ [세계의 주인] 메인 예고편 ”, 바른손이앤에이) 안쪽에 자리한 사람들이 있다. 법정 장면에서 친족 성폭력 피해자인 미도( 고민시 )가 피고 측 변호인의 심문에 맞서 증언할 때, 미도의 뒤편에서 슬쩍 손수건을 건네주는 인주( 백현주 )와 동료들은 상처의 안쪽에 있는 사람이다. 심문을 마치고 식당 부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미도는 가족이 찾아왔다는 동료의 말을 듣는다. 두려운 듯 커튼 뒤에서 슬쩍 바깥을 내다보았을 때, 뜻밖에도 창밖에 있던 주인이 시선에 잡힌다. 미도는 주인을 그 장소에서 가장 깊은 곳인 주방 안쪽으로 들인다. 둘은 그렇게 상처의 안쪽에 있다. 사건 이후 주인은 무리 짓던 친구들과도 어쩐지 데면데면해진다. 주인의 교실 책상 서랍 안쪽 깊숙한 곳이나 책 사이에서는 적대적인 느낌을 주는 쪽지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그 쪽지를 쓴 자가 누구인지는 관객 역시 알 수 없다. 그리고 복도를 촬영하는 카메라의 시점이 불현듯 등장했을 때, 카메라 뒤에 있는 자가 쪽지를 쓴 미지의 인물일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방금 카메라 앞을 스치고 지나간 주인이 갑자기 렌즈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면서 방금까지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깨어진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사건 이후 유독 멀어진 친구 유라다. 유라와 주인은 머리를 대고 방금 찍힌 영상을 함께 확인한다. 이로써 유라, 혹은 미스터리한 쪽지를 쓴 이들 역시 상처의 안쪽에 자리한 사람이 된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대개 카메라 안에서 벌어진 일들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이라 여겨지지만, 이들 역시 내부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침범과 공유다. 영화는 거의 모든 이들을 상처의 안쪽으로 초대한다. 나 역시 주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 켄 로치의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에서 제목이 곧 개인의 존엄을 표시하는 모두의 구호가 된 것처럼, <세계의 주인>에서도 ‘나, 주인’임을 기억할 수 있는 이들을 소환한다. 내 몸과 내 상처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 상처의 안쪽에서 때로는 욱하는 마음이 들고, 상처의 바깥에서 이 마음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의심스러워도 상처와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물론 여기에 동참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하리란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탓은 아닐 것이다. 사진: “ 세계의 주인 ”, 네이버영화 김소희(영화평론가) ㅣ 영화를 보는 동안 느낀 감정의 격랑이 내가 쓴 글 안에 거짓 없이 찍혀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2024년 하반기 대중 영상문화는 퀴어 가시화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을 원작으로 장편영화 가 제작되어 10월 1일 극장개봉 됐으며 10월 21일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에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가 독점 공개되었다. 또한 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 2019. 4.~2022. 5. 네이버웹툰 연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 정년이 >(정지인, 2024)가 tvN에서 12부작으로 제작되어 텔레비전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동시 제공되었다. 두 원작의 주인공 고영과 정년이 모두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주요 인물들도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서 벗어난 퀴어적 존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두 원작은 단순히 선정적 소재로 성적 정체성을 전유하는 방식을 넘어, 퀴어 인물들의 고유한 관점으로 시대성, 젊은 세대의 성장과 다양한 관계성,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수행성, 하위문화 혹은 특정 공동체의 민족지적 기술 등과 같은 주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둘 모두 베스트셀러로서 그 흥행성과 대중성을 입증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례 모두 원작이 발표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매체와 장르로 파생·변환되었다. 물론 트랜스미디어 현상, 특히 이미 대중성을 증명한 원작이 다른 매체와 장르의 콘텐츠가 되는 것은 디지털 환경 속에 놓인 동시대 대중문화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례에서 보여준 트랜스미디어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의 퀴어적 정동을 드러내 줄뿐 아니라 각 매체 혹은 장르(의 제작자)들이 공개되는 플랫폼마다 현재 수용자를 어떻게 특징짓고 가정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매체특정성이 아닌 플랫폼 특정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이 사례들이 보여준다. 우선 각 사례의 트랜스미디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장편영화와 8부작 드라마로 함께 공개되었다. 둘은 원작은 같지만 각색·연출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도 판이했다. 고래와유기농과 쇼박스가 제작하고 이언희 감독이 기획·연출·각색한 극장용 장편영화는 김나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이 영화는 소설의 4개 에피소드 중 주로 ‘재희’를 가져오고 흥수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가져와 영화화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위치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원작 소설에서 4개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화자이자 사연·사건에 연루되는 인물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고영은 흔들림 없는 유일한 주인공이다. 반면 영화에서 고영은 흥수( 노상현 )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름을 유지한 재희( 김고은 )와 주인공 자리를 동등하게 나눠 갖는다. 소설이 다분히 고영의 20대를 함께 하고 목격한 고영‘의’ 친구 재희에 대한 이야기라면, 영화는 소설가 흥수가 내레이션을 도맡고 있음에도 재희 ‘그리고’ 흥수의 20대와 그들의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즉 전자가 고영에 동일시된다면, 후자는 재희와 흥수 모두에 동일시된다. 극중 흥수와 재희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는 흥수의 주관적 시점을 벗어나 재희가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응하는 당참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한편, 개성 강한 대학생에서 회사원이 되며 규격화된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개인적 쓸쓸함을 묘사하며 그를 보다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재희는 이성애 여성 청년으로서 동성애자인 흥수보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취직과 결혼)을 잘 받아들이고 주류에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차별을 겪는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고 벽장 속에 숨는 흥수에게 재희가 던지는 대사 “니가 너인게 어떻게 니 약점이 될 수 있어?”는 각기 다른 낙인과 차별을 겪는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남성의 우정을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성애 여성과 게이 남성 간의 우정을 다루면서 게이 남성을 이성애 여성의 사랑을 상담하는 액세서리 혹은 드라마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코믹 릴리프 같은 클리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과 비교할 때 이러한 주인공의 위치 변화는 극장의 주요 타겟인 2030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더 이끌어 내고 확장성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2종 창작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케팅은 단순 공감을 넘어서 그러한 전략을 더 공격적으로 밀어 붙인다. 홍보용 트레일러와 포스터는 침대 위에 함께 누워있는 재희와 흥수를 보여주고 흥수의 게이 정체성이나 퀴어 등의 단어는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원작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이들로 하여금 해당 영화를 재희와 흥수의 이성애 로맨틱 코미디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와 트레일러 카피에 “사랑은 노터치 우정은 포에버. 순도 100% 찐사친 리얼 라이프”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둘의 로맨스를 가장하기에 이러한 착각은 상당히 고의적이다. 개봉 초반 관객몰이가 매우 중요한 극장 플랫폼이기에 퀴어 소재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이성애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까지도 모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군대 내에서 사용했던 성소수자 정책(1994-2011),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와 유사하다. 이 정책은 군대 내 성소수자가 혐오공격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성소수자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심기를 달래고 성소수자가 그 정체성을 드러낼 경우 복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되레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해당 마케팅은 어쩌면 극장용 상업영화의 개방성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퀴어는 극장 안까지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 이것은 영화 본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검열 중인 극장 플랫폼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기서 상업영화 극장 플랫폼에 재희의 말을 되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보호 필름 떼고 하는 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좌)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중 / (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티빙의 8부작 드라마는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영화와 달리 박상영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고 소설에 담긴 4편(‘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모두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기획해 동학교 출신인 허진호 (< 봄날은 간다 >), 홍지영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손태겸 (< 아기와 나 >), 김세인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감독이 각각 2부씩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고영의 시점을 따라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하위문화나 섹스씬도 영화보다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에이즈 문제도 다룬다. 드라마 시리즈가 온라인 스트리밍 독점으로 공개되어 티빙 구독자만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할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동성애 정체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티빙은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에 동성애 혐오 세력의 민원성 공격을 받았다. 드라마 시리즈는 그러한 공격과 상관없이 성공적으로 방영되었지만 아무래도 홍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에 공개되었던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로 여성들의 경쟁과 성장,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뛰어난 영상미로 재연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역시 약 1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웹툰 <정년이>의 중요한 인물이 드라마에서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사라진 인물들이 퀴어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 이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주인공 정년이( 김태리 )에게 남성성을 체화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라는 대사를 통해 퀴어한 젠더 수행성의 주제를 날카롭게 전달했던 남장여자 캐릭터 고사장, 그리고 주인공 정년이의 1호 팬이며 극작가이자 정년이와 동성애 관계에 있는 캐릭터 부용이가 사라진 것이다. 부용이와의 관계성 일부는 국극단원인 주란(우다비)과 영서( 신예은 )에게로 나눠진 것처럼 보인다. 즉 웹툰에서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되는 과정에서 가장 퀴어한 인물들은 삭제 또는 용해를 겪은 것이다. 그 과정에는 투자자나 회사 관계자들의 압력, 혹은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같은 각각의 사정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 중 위의 사례들에서 퀴어 캐릭터와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가시화되는지에 따라 비교 평가할 수는 없다. 작품의 비평적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퀴어는 분명 트랜스미디어 과정에서 광산의 카나리아 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디까지 있는지 실험적으로 날려 보내는 카나리아. 어느 장르와 플랫폼이 퀴어를 살려둘지 아니면 삭제할지 혹은 그 고유한 존재들을 축소하거나 용해시키는지. 소설, 웹툰, 극장, 텔레비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홍보물들 사이에서, 퀴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 빈집 >에서 방랑자 주인공 태석(재희)이 비어 있는 집들을 떠돌아다니는 스산한 세계부터 투명인간이 출몰하는 미스터리한 세계까지 서사의 순열은 이야기의 초점을 누구에게 귀속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현실로, 무엇을 상상의 세계로 규정할 것인지를 두고 서사가 길을 잃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는 플롯의 끝에서 장자의 다음과 같은 문구로 강조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그 귀착지는 교도관에게 거듭 구타를 당하고도 상처를 입지 않고 죽어가는 태석의 꿈으로, 또는 남편과 공존할 수 있게 된 선화(이승연)의 꿈으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에 세 번째 해석을 더해야 한다. 이미지는 실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태석은 투명인간이 되는 법을 학습하였다. 세 가지 해석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영화 안에 새겨져 있다. 표제어로 쓰이는 ‘빈집’은 장소, 공백, 고립이라는 관념을 전달하면서 존재하는 것보다 부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첫 번째 쇼트는 그물망 뒤 조각상을 보여주고 다음 쇼트는 보이지 않는 골프공이 그물망에 부딪히는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골프채 타격음과 함께 들린다. 이때 초점이 맞지 않는 조각상과 그물의 롱 쇼트는 시공간의 좌표에 대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첫 쇼트에 등장한 조각상과 그물이 태석이 선화를 만나는 집에 놓인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이는 사물이 전달하는 가치를 하나의 극에서 다른 극으로 전환하는 전형적인 김기덕식 수사학을 전제한다. 몰래 들어간 첫 번째 집에서 어린 아들이 태석이 수리한 장난감 총을 발사하여 엄마를 상해하는 장면에서도 이미지의 전환이 발생한다. 고생스러운 가족여행으로 불만이 가득한 엄마를 향해 소년이 플라스틱 총알을 발사하자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리지만 이어지는 쇼트는 창문 밖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태석을 보여주는 식이다. 가족 간 불화와 폭력은 두 번째 방문지인 선화의 집으로 전이된다.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을 향해 태석은 골프공을 발사한다. 소년의 플라스틱 총알은 태석의 골프공이 되고, 그것은 소년-태석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학대를 저지하는 사물로 기능한다. 커플을 이룬 태석과 선화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여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 권투선수가 태석을 폭행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태석을 때리는 권투선수 대신 권투선수의 사진을 클로즈업한다. 남편이 선화를 학대할 때 분노한 태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과 같은 패턴이다. 이처럼 우리는 두 주인공의 침묵을 채우는 것과 유사하게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이미지와 대면한다. 이처럼 <빈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침묵이다. 태석은 대사가 없지만 선화는 영화의 마지막 몇 분 동안 “사랑해요”와 “식사하세요”라는 두 마디 대사를 말한다. 대사는 없지만 다른 수단을 통해 의미가 전달된다. 예를 들어 웃음과 울음은 대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가혹한 폭행 뒤에 욕조에서 우는 선화, 골프 연습을 하다 무고한 여자를 피투성이로 만든 뒤 우는 태석의 모습 따위를 볼 수 있다. 누군가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방이 이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 모든 장면은 대화의 기능을 한다. 때론 클로즈업이 이와 같은 기능을 대신한다. 클로즈업은 시공간의 좌표로부터 얼굴을 추상화하여 정서를 표현하는 기교이다. 태석과 선화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숙고해 보자. 대화는 없고,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의 침묵하는 얼굴이 역전된 쇼트들을 통해 제시된다. 태석과 선화가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표정이 없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놀라움, 혐오감, 피곤함, 그리고 용서를 읽는다. 해석적 표면으로서의 얼굴의 위상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태석의 얼굴은 벽에 걸린 선화의 사진과 나란히 배치된다. 태석은 경찰의 심문을 받을 때 침묵을 유지한다. 심문이 끝난 후 경찰은 죽은 노인이 정원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는 선화가 심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태석 만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이다. 따라서 침묵은 일종의 내러티브 장치로 관객들이 텍스트의 폭정에서 벗어나 이미 말해진 레퍼토리들을 기초로 하여 스스로 빈칸을 채우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예측을 통해 관객은 사건의 과정을 설정하고 세계의 구조에 대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태석과 선화가 빈집에 거주할 때 그들의 은밀한 동거가 들통날 것인지 아닐지를 추측하는 것도 이러한 매커니즘을 통해서이다. 텍스트는 관객의 예측을 확인하거나 부정하기 위해 작동한다. 따라서 두 방랑자가 권투 선수의 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집에 다가오는 자동차의 쇼트는 마침내 저들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렇게 되면 텍스트는 관객의 예측을 확인시켜준다. 이러한 침묵의 매커니즘은 영화의 초반부까지만 작동한다. 태석이 감옥에 갇히고 투명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면서 관객은 개연성의 세계에서 초현실적인 세계로 서사가 순환하는 것을 목격한다. 교도소라는 상징적인 헤테로토피아에서 태석이 투명 골프공과 투명 골프채로 연습하는 장면에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건, 특이점, 전환점이 있다. 1부에서 부재가 단순히 하나의 가치였다면, 서사의 세계가 순치된 2부에는 부재로 인해서 표시되는 것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골프공과 클럽의 부재가 골프공을 타격하는 소리로 표시될 때 부재는 현전(現前)과 양면을 이루게 된다. 태석의 변신과 대칭을 이루는 선화의 변신에 대해 말할 수도 있다. 선화는 태석을 대동하고 자신의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의 집을 점거한다. 사진 속 선화의 몸은 폭행으로 상한 그녀의 몸과 대조를 이룬다. 태석은 빈집에 침입하여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오지만 선화는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선화가 사진을 벽에서 떼어내어 재구성하는 모습에서 상한 육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과 좌절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태석의 보이지 않는 골프 게임과 유사한 사건이자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선화의 의지를 드러낸다. 다음 날 선화는 태석이 하는 것처럼 손빨래를 하고 있다. 태석이 감옥에 가는 동안 남편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선화는 남자와의 관계를 거부하고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외출을 하는 등 이전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선화가 살아남은 것은 반항을 통해서가 아니며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존재의 상태를 확립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새로운 존재의 모습은 폭력과 권력이 아닌 환대와 공존의 양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화는 남편의 권력과 폭력을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남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잠시 침묵을 깨고 남편(실질적으로 그의 뒤에 있는 태석)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남편은 선화의 생경한 고백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태석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선화를 끌어안는다. 선화가 부정했던 상징의 도구로서 “사랑해요”라는 말은 이제 기만의 장치로 전락하였다. 선화가 터득한 생존 전략은 타인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의미의 표면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태석이라는 투명인간을 모른 채 남편이 그 빈칸을 채우게 함으로써 세 사람의 공존이 가능해진 것이다. 태석의 손바닥에 그려진 눈의 형상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 ‘잘못된 거울’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시각이 가진 한계와 속임수, 그리고 주관성을 초래할 수 있는 지각의 오류를 표현한 거울상은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나온다. 선화의 집에서 태석은 빈번하게 유리에 반사된 이미지로 재현된다. 태석은 투명인간이 됨으로써 바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법을 배운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석은 교도관의 시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카메라 자체의 시선, 그리고 관객의 시선에서도 벗어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인정해야 보거나 이해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교도관은 투명인간이 된 태석을 감지할 수 있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선화는 180도로 볼 수 있는 거울을 통해 그의 존재를 볼 수 있게 된다. 적대감을 화해하는 영화적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지각의 차원이 우리들에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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