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영화
- 감독
- 이정흠
- 제작년도
- 2025
- 출연
- 전여빈, 서현우, 이설, 서이서, 김은비, 박은우, 허정도, 주민경, 문성근, 권해효, 오경화, 이주승, 장재호, 서정연, 오민애, 전석찬, 예수정, 한종훈, 김정영, 손병욱, 김재철, 이상희, 정휘, 남궁민, 박효은, 공민정, 정영숙
한 소녀가 돌연 사라졌다. 경찰을 비롯하여 실종된 소녀의 엄마( 서영화 ), 학교 교사, 학생들 모두 실종된 소녀와 늦게까지 있었던 영희( 전여빈 )을 의심한다. 심지어 당시 영희와 함께 있었던 한솔( 고원희 ) 또한 영희가 소녀의 죽음을 부추겼다는 증언으로 영희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김의석 감독의 < 죄 많은 소녀 >(2017)는 ‘증명’의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사라진 소녀 경민( 전소니 )이 투신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경민의 죽음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자신은 경민의 선택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증명하려 들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경민이 투신하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주변 사람들이 경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을 영희에게만 묻는 탓에, 영희는 경민의 죽음을 슬퍼할 틈새도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 죄 많은 소녀 >의 영어 제목은 <After My Death>다. 직역하면 ‘나의 죽음 이후’로 번역되는 영화는 중의적 해석을 내포한다. <죄 많은 소녀>는 강물에 투신한 경민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다.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죄 많은 소녀가 된 영희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영화의 출발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말을 하지 못하는 영희가 학생들 앞에서 수화로 인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살 시도를 벌인 영희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시퀀스 초입에서 반복 재생된 이 장면은 오프닝과 달리 자막이 곁들어져, 수화를 모르는 교사와 학생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영희가 돌아온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완벽한 죽음을 완성하기 위한 귀환’. 영희를 포함한 극 중 인물들은 모두 경민의 죽음에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다. 워킹맘인 경민의 엄마는 바쁘다는 이유로 딸에게 소홀히 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영희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경민의 고백에 죽음으로 너의 사랑을 증명해보라는 무심한 한마디를 건넸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영희와 경민 사이를 질투한 한솔은 경민을 두고 영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보라고 조롱한 바 있다. 경민의 투신 이전에 이미 4명의 학생의 자살을 경험한 학교는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행여나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봐 지레 겁이 난 학생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희생양을 만드는데 몰두한다. 이들 중에 경민의 죽음을 특별히 부추긴 사람은 없다. 동시에 경민과 관련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방조자다. 동시에 그들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큰 상처를 입는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경민의 투신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특정 인물을 지목해 단죄하고자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죄인으로 지목한 사람을 공격하고 손가락질하는 행위 또한 내가 경민의 죽음에 얼마나 아파하고 괴로워하는지에 대한 ‘증명’이다.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는 토끼몰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토끼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죽음’ 이다. 그들을 위해 죽여주거나 아니면 자신이 먼저 죽던가. 경민이 실종된 다음 날, 자신의 생리통을 믿지 않는 보건 교사에게 질 밑에 묻힌 피를 보여주며 생리 중임을 증명했던 영희는 경민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해를 택한다. 영희의 자살시도는 영희에게 쏠렸던 의심을 일시적으로 분산시켰지만, 완전히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더 이상 영희를 경민의 죽음을 부추긴 죄인으로 몰고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또 다른 타깃을 찾는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죄인에게 영희에게 씌웠던 죄를 뒤집어씌우고자 한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김의석 감독은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 죄 많은 소녀 >를 통해) 모두가 패배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죄 많은 소녀>의 인물들이 취하는 행동은 크게 두 가지이다. 경민의 자살을 부추기지 않았고, 그 아이의 죽음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학을 하거나 자신은 경민의 죽음 혹은 영희의 자살 시도와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희생양을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람의 선택을 남은 자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특정한 잘못도 아니요, 이유가 있다면 모두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나약한 인간들은 다른 이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 든다.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할 때까지 홀로 괴로워했던 누군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기 전에, 서로를 향한 의심과 질책만 남은 세상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애도와 믿음이 사라진 절망적인 세계 속에서 죄인이 된 소녀는 죽음 아니면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세상을 향한 슬픈 복수를 감행한다. 그 이전에 또 다른 소녀는 자신이 혼자 외롭게 끙끙 앓다가 강물에 뛰어들었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진 두 소녀 중 누가 죄 많은 소녀일까. 신뢰와 믿음을 잃어버린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영화 < 죄 많은 소녀 >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몰아가는 나약한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고민하는 주제가 있다.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영화 만든다고 누가 떡 하나 던져주는 것도 아닌데 왜 영화라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일까’. 이러한 고민은 다시 한 번 영화라는 형식을 빌려 무수한 형태로 표현되곤 한다. 임대형 감독의 첫 장편 독립 극영화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역시 자신만의 영화를 꿈꾸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비슷한 주제의 여타 영화들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주인공도 물론 영화를 깊게 사랑하고 있지만 그의 영화 제작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그 자신에 있어 영화란 일종의 종착지를 의미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충청남도 금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중년 남성 모금산( 기주봉 )의 삶은 지극히 단조롭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발소에 출근해 사람들의 머리를 깎고, 수영을 하고, 치킨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가 강냉이를 우적우적 씹으며 TV를 보다 잔다. ‘금산’에 거주하는 ‘모(某) 씨’를 뜻하는 주인공의 이름만큼이나 이렇다 할 감흥도, 자극도 없는 삶이 꾸준히 반복된다. 하지만 이 삶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반복조차도 할 수 없게 될 위기에 놓인다. 조금 몸이 좋지 않아 찾아간 보건소에서 영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삶의 마지막에 놓인 모금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일탈을 시도한다. 수영장에서 길게 잠수도 해보고, 수영장에서 마주친 젊은 여성 자영( 전여빈 )과 진솔한 대화도 나눠본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는 서울에 살며 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아들 모스데반( 오정환 )과 여자 친구 예원( 고원희 )을 부른다. 한때 소망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던 꿈인 ‘영화배우’가 되어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풍진 세상에서 떠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향에 내려온 모스데반은 어딘가 모금산과 서먹해 보이며 아버지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이 와중에서 예원이 간신히 부자 사이를 중재하며 좌충우돌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과연 영화 제작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리고 온갖 사건 사고 끝에 완성된 영화는 이 세 명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가. 문득 영화를 보면서 매년 가을경에 열리는 서울노인영화제가 생각났다. 노인과 노년의 삶을 소재로 한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는 물론, 노인 자신이 직접 만든 영화도 골고루 상영하는 영화제다 보니 자연스레 전자와 후자의 영화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만든 영화는 전문적으로 영화 교육을 받고 만든 것이 아니다 보니 상당히 투박하기 그지없다. 촌스러운 특수효과, 이러지리 툭툭 튀는 사운드, 어딘가 많이 본 것 같은 서사. 그에 비하면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세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인들이 만든 영화가 더욱 흥미롭다는 생각을 할 수밖엔 없었다. 많은 부분들이 어색할지라도 이들이 만든 영화는 삶의 황혼기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자신이 그간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진솔하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역시 그렇다. 모금산은 단조로운 자신의 삶만큼이나 지독하게 과거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그가 아는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오래된 배우들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가 찍고 싶은 영화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무성 영화이다. 영화의 극 중 극이자 모금산이 배우의 꿈을 이룬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가 만약 영화제에 출품되었더라면 예심을 통과하기도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금산은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이 갇혀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과 조우한다. 삶의 종착지라 여겼던 영화 촬영은 예원의 적극적인 노력과 모스데반의 행보를 통해 점차 모금산 자신이 그간 직시하기를 꺼려했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제작된 영화는 질박해도 소소한 웃음을 낳는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만든 세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와 서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들에게 있어 영화 제작은 곧 사람을, 그리고 자신들이 놓여 있는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창구가 된 것이다. 비록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아무리 모금산의 삶이 철저히 과거에 놓여있던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꽤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전후를 제시하며 영화를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서울노인영화제에 상영되었던 노인들의 작품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