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베스트] 남자들의 착각
- 제작년도
- 2010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호프 >(나홍진, 2026)는 우리가 알던 비평의 한계를 절감하게 했다. 비평 글 각각의 탁월함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비평의 작동 방식이 <호프>를 둘러싼 말들을 특정한 장에 끌어당기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제도적 패배다. <호프>는 제2의 < 디 워 >(심형래, 2007)가 아니었다. 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 사이에선 <디 워> 정도의 화제가 된 것만 같았고, <호프>를 두고 수많은 말이 오고 갔음을 누구나 느꼈다. 하지만 <호프> 주위엔 논객이라 할 만한 매개가 없었다. 2007년의 <디 워> 사태는 진중권 평론가를 비롯한 일련의 기성 평론가 진영과 포털 사이트에 모인 대중의 갈등 양상으로 번졌었다. 양극단에 다중 다수의 논객이 생겼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할리우드를 향한 사대주의 등 여러 사회적 담론이 부풀었다. <호프>엔 말만 있고 뼈가 없었다. 상술한 논객, 달리 말해 중심 지대가 된 논지가 부재했다. 이것은 <호프> 스스로가 원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수의 공식 석상에서 밝혔듯 나홍진 감독은 앞만 보고 즐기는 영화를 택했다. 장재현 감독이 < 파묘 >(2024) 개봉쯤 밝혔던 태도와도 비슷하다. 극장 엔터테이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대중영화 감독들은 다 같이 ‘보기만 해도 재밌는’ 영화를 꿈꿨다. <호프>도 그렇듯 보인다. 1980년대를 가리키는 다소간의 이미지가 영화에 내포되었기는 하나 이것은 기호가 되지 않는 기표에 가까웠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 이후 《씨네21》 김소미 기자가 설명한 것처럼, [1] <호프>는 작중 ‘서브 텍스트’를 최대한 장난스럽게 소거해 가는 영화였다. <호프> 개봉 이후 영화를 지지하는 이들이든 반대하는 이들이든, 1980년대라는 맥거핀에 관해선 딱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하지 않았다”기보단 그러질 “못했다.” 다시, <디 워>의 사례처럼 어떠한 담론의 실재라도 만들었냐의 차원에서 비평은 <호프>를 이기지 못했다. 전술했듯이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의 모든 매체와 창구, 플랫폼이 <호프>로 휩싸이긴 했다. 말 그대로 휩싸였다. 그저 분위기에 휩싸인 듯 보였다. 매체부터. 《씨네21》은 <호프>의 작가, 장르, 서사 등에 관해 비평했다. 이어서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의 얄 사다트 평론가,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의 글을 실었다. 글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며, <호프>라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호프>에 대해 생산됐던 말들이 순환적으로 돌고 도는 허무의 궤에 빠졌단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좋은 비평일지라도 대중들의 거친 찬동이나 거센 반발을 그러모으진 못했다. 비평이 꼭 대중과 영합해야만 한다는 고루함의 태도는 아니다. 다만 적어도 <호프>에 대해서는, 한여름의 텐트폴 영화에 있어서는 제 몫을 했어야 만족스러웠을 듯하다. 대신 <호프>를 두고는 비평적 담론에 대한 논의보단 평론가 개인의 인격과 이력에 대한 대중의 비난이 잇따르기까지 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이동진 평론가의 말조차 그랬다. [2] <디 워> 마지막의 ‘아리랑’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개별 비평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더 큰 사태다. 질량 없는 부피, 맥락 없는 요소, 총체 없는 부분. 얄 사다트 평론가는 “미국에서 흔히 쓰는 ‘larger than life’라는 표현은, 어쩌면 위대한 블록버스터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지도 모른다.” [3] 라며 <호프>를 상찬했다. 역설적으로 이 말은 한국에서 <호프>를 두고 발생한 일련의 현상에 빗대어진다. 니콜라스 레이가 <실물보다 큰> 그림자를 보여줬듯이 <호프>에 대한 비평은 그것의 실재보다 큰 음영으로만 존재했다. <호프>에 대한 말은 흐릿했고, <호프>에 대한 말들에 반응하는 말들이 더 뚜렷했다. 아무런 생각도 안 해야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듀나 평론가의 말처럼 “<호프>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영화가 아무 생각을 안 할 때” [4] 이기 때문이다. <호프>는 그 내부의 원리에 천착할수록 힘을 잃는 덩어리다. 이 작품이 어느 IPTV를 통해 수입된 이름 모를 감독의 영화였다면 많아야 수백 명 정도가 기억하는 B급 영화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프>는 한국 영화산업의 중심에 있는 700억 원(추정)짜리 대작이다. ‘컬트’가 될 수 없다. 세상에 수백억 원을 들여 수백만 명이 봤으며 북미와 유럽에 배급된 컬트영화란 성립하지 않는다. 존재론적인 모순. <호프>는 작아야 하지만, 너무 커졌다. 역도 성립한다. 더 커야 하지만, 너무 작아져 버렸다. 모순은 더해진다. <호프>는 칸 경쟁부문에 진출하여 국내 평자들에게 모종의 비평적 요구를 선보인 ‘작가주의적’ 작품으로 소비됐다.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하나의 토큰처럼 사용한 유럽 영화계의 전략이었을까. 여하간 결과적으로, 대중에게 나홍진은 봉준호 , 박찬욱 이후 한국영화를 견인할 것만 같은 인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상황에 <호프>를 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매체와 평단의 방기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말해도 문제, 말하지 않아도 문제. 하지만 마땅한 방법론 따위 없는 듯한 절벽. 필자는 이에 관해서 ‘한국식 작가주의의 패배’라는 요지의 단상을 남겼다. [5] 영화보다 큰 곳이 아니라 감독의 세계관에 들어가 비평하던, 즉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의 영화를 작가 개인의 것으로 탐색하던 2000~2020년대의 작가주의 비평으론 <호프>에 대적할 수 없단 것이다. <호프>와의 싸움은 애초부터 패배의 운명, 허무의 감각을 타고났다.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호프>의 내적 가치는 딱히 없다. 이 가치 없음의 가치에 관해 구구절절한 글을 쓴 적도 있다. [6] <호프>에 부여된 비평의 질료란 영화 바깥에서 발견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호프>는 한국영화이기에, 그 어떤 틀로도 규정되지 않는 아웃라이어이기에, 장르적으로도 영화사적으로도 작가주의적으로도 큰 가치가 없는 부수이기에, 한국영화가 꾸준히 배태해 온 다성적 모방의 성취에 극도로 기대고 있기에, 대신 내부적으로는 자체적 맥락을 일절 가미하지 않았기에 유의미” [7] 하다. 간단히 말해 <호프>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영화 매체의 테두리를 오고 가는 원심력의 원리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작품과 작가를 탐하기보단, 비평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제도의 지형도를 더 면밀히 살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비평 제도와 비평적 틀은 ‘바깥’을 이야기하는 힘을 잃어왔다. 구심력을 택해왔다. 임재철 평론가는 1999년 《필름 컬처》 1호의 권두에서 이 사태를 예견했다. “현재 한국의 영화 비평은 글쓰기가 응당 가져야 할 제도와의 긴장감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있다. 비평 자체가 마치 자신이 제도의 일부분인 것처럼 -심지어 아무런 대중적 영향력이 없는 경우에도-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목격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비평의 자족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비평이 영화 창작 주체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화 제도의 구성원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그것이 생산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소통은 위상의 차이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거칠게 볼 때 한국식 작가주의란 감독들을 신봉하고, 그들의 미시 세계를 해제해야 한다는 1990년대 전후 국내의 시네필리아적 계보에서 연장했다. 그런데 <호프>에서 나홍진의 작가성 같은 것은 이 거대한 콘텐츠 놀음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었고, <호프> 비평에 제대로 맞물릴 수 없었다. 비평은 작품과 제도, 그 어느 곳과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이가 문제의식을 느꼈다.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일종의 갈증 같은 것을 느낀 듯하다. 『호프 끝장』 [8] 이라는 제목으로 8월 31일 출판 예정인 하나의 평론 선집은 이에 관한 리액션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책의 소재는 <호프>를 둘러싼 모든 긍정과 부정의 반응이며, 이 책은 반응을 생산하는 모든 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획되었다.”라는 책 소개 글이 단서다. 이야기를 더 나누자는 제스처이며, 유의미한 시도인 듯하다. 다만 이러한 기획조차 <호프>의 허무를 완연히 이기긴 힘들 것이라 슬그머니 비관해 본다. 아직 책의 내용을 상세히 읽진 못했지만, 기획 배경과 사전 공개된 한 꼭지의 다음 내용에 미루어 보았을 때 그렇다. “그렇기에 <호프>는 신정원 과 < 차우 >를 다시 불러내며 ‘한국의 시네필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친다.” [9] 두 가지의 의문이 드리운다. 첫째, 『호프 끝장』이 택한 책의 물성은 <호프>란 허무를 모종의 틀에 가두기 위한 방책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호프>의 범석( 황정민 )과 주민들이 외계 종족을 보고 느낀 공포의 감정과 유사한 반응일 테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제야 <호프> 안쪽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글 역시 <호프>의 허무를 이기지 못한 사례의 하나란 이야기다) 정체 모를 언어가 눈과 귀를 파고들 때, 우리의 본능은 자연스레 공포를 느낀다. 도망가거나 공격한다. 『호프 끝장』은 후자인 듯하다. ‘끝장’이라는 제약의 언어를 통해 <호프>를 둘러싼 말들의 확산을 한 주머니에 가두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낯선 괴물을 포박하여 감금하듯이 비평가들은 이것에 대한 ‘끝장’을 원하는 듯 보인다. 손아귀에 넣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호프>의 크기는 웬만한 주머니의 용적량을 넘어섰다. 둘째, 왜 한국의 ‘시네필’들이 <차우>로 단결해야 하는 것일까. 궁금증의 시작은 꽤 개인적이다. 필자 역시 저 부름에 사전적으로 응답한 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7월 6일 <호프>의 언론배급시사회 직후 필자는 개인 SNS에 <호프>의 뚜렷한 레퍼런스가 <차우>임을 언급했다. [10] <차우>를 아는 이라면 대개 그랬을 것이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겪었던 세대에게, <차우>와 신정원 감독은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충무로의 자기반영적 패스티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호프>는 이런저런 장르적 요철을 뿌리 삼아 발진한 대중영화이기에 <차우>의 호명엔 어느 정도 당위성이 생긴다. 틀린 말이란 의도가 아니다. <호프>와 <차우>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 ㈜영화사 수작, 빅하우스(주)벤티지홀딩스 (사진: Daum ) 여기서 짚고 싶은 점은 <호프>가 <차우>의 적자라든지 하는 비평적 주제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차우>를 아는 이라면 대개 그랬을 것”이라 말하는 필자의 태도야말로 이 속 간지러운 의문의 원흉이다. 김신 평론가는 KMDb의 ‘비평, 안녕하십니까’에서 동시대 한국 시네필들의 폐쇄성 또는 군집성을 지적한 적 있다. “다수의 시네필 집단은 종종 영화와 비평에 관한 정보를 얻는 몇 가지 디지털 채널을 일종의 단일 신경망처럼 공유하는 초개체 생물 군집처럼 보일 때” [11] 가 있다는 것이다. 적확하다. <호프>에 대한 <차우>의 연상은 어느 순간부터 동시대 평자들에게 하나의 집단적 기억으로 각인됐다. ‘시네필들의 단결’은 이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끈끈하다. 그럼에도 재차 집합 구호를 외치는 일은, 지금의 ‘시네필 단결’이 대중적으로 유효한 테제를 남기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는 허무감의 역설적 발로일 것이다. <호프>와 <차우>의 비교 논지는 작금 시네필리아적 행위의 특질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김병규 영화평론가는 동시대 시네필리아들이 20세기(한국이라면 2010년대 이전까지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기억에 짓눌려 비명을 지른다고 썼다. “어쩌면 동시대 영화는 더 이상 유효한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눌어붙은 세계를 다시 조형하는 시네필리아의 작업이 된 것” [12] 이다. 요즈음 대개의 시네필리아는 과거의 유산을 파먹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호프>를 보며 한국 장르영화의 계보를 따지거나 <차우>를 떠올린다. 이럴수록 작품 내부를 향한 비평에 더해, 그 작동 방식과 환경까지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투보다 전쟁. <호프>에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주민들을 모을게요 『호프 끝장』은 <호프>를 끝장내지 못할 것이다. “비평계 공론장이 점차 고립된 상황, 그리고 그게 고립된 원인이 비평계 내부에 있다고 말하며 또 다른 고립이 생성되는 상황의 원인을 몇몇 평자들의 책임”(김신) [13] 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너무나 많은 환경 변화가 수반됐다. 여기서 그 변화와 일일이 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힘도 없다. 작금의 상황에 놓인 그 어떤 비평적 주체도 <호프>를 둘러싼 제도의 불명확성을 다잡진 못한다. 좁디좁은 비평계란 ‘군체’가 700억 원짜리 <호프>를 이기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호프>는 약 59조 원짜리 X(2022년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금액)를 이기지 못한다. <디 워> 사태를 재연할 역량은 소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다수가 다수의 말을 쏟아 내는 쪽이 훨씬 큰 경제력을 생산한다. 이 시장 논리의 당연함은 거의 장르적일 정도로 세계에 고착됐다. 어쩌면 “호프 끝장”이란 제목은 이 한계를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자조한 결과물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일단 주민들을 모아 대응하겠다는 성애( 정호연 )의 말처럼, 할 일은 해야겠다는 종류의 동력이었을까. 마음이 이상하다고 요령부득 뇌까리기만 하는 범석처럼 무력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덧붙여 필자 나름의 극복 방식도 제언해 보고 싶다. <호프>에 대한 비평의 (뒤늦은) 승리 방식이란 두 가지로 고려된다. 첫째, <호프>의 자결을 기다린다. 상업영화의 자결이란 개봉 상영의 끝, 그로 인한 대중들의 무관심이다. <호프>는 거대 외화들의 공습 시점에 맞춰 이미 피를 흘리는 중이다. 둘째, 시간의 흐름이다. < 환송대 >(1962)에 관한 크리스 마커 자신의 말, “사랑은 시간에 대한 유일한 승리”를 변주하자면 “시간은 <호프>에 대한 비평의 유일한 승리”일 것이다. 하나로 뭉치지 않은 채 맥락 없이 흐트러져버린 비평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기 위해선 훨씬 더 긴 시대의 틈이 필요하다. 쓰고 보니 두 방식 모두 ‘하릴없는 기다림’의 다른 말이다. 범석이 왜 무력해졌는지 잘 알겠다. <호프>에 대한 말들을 모으고, 그것들의 쓸모없어짐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성애처럼 낙관으로 억지 부리듯이, 의도적으로 최대한 많은 문장을 모으려 했다. 결론적으론 이 글 역시 무수한 실패의 종이 쪼가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호프>의 안쪽처럼 난삽한 구성이 되더라도 일부러 그러려 했다. 여하간 그 과정에서 《씨네21》, 《필름 컬처》와 같은 오래된 영화 전문지부터, 《쿨투라》라는 문화지, 독립출판물, X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블로그, KMDb 영화글 등의 여러 창구를 통과했다. 지금 영화에 관해 (필자처럼 나름 고관여로) 말하고 쓰는 이들의 경로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다.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 모일 테다. 하여 이런 상상도 해본다. ‘성애가 주민들을 한곳에 모은다면, 외계인들은 외려 더 손쉽게 인간들을 절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란 무서움.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사족 끝으로 정직하게, 이 글의 원료는 필자의 사적 회한이자, 자의식 과잉의 내적 독백이었다. 설령 아무도 듣지 않았더라도, 왜 <호프>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을 하지 못했을까. 빙빙 돌려 그 허무의 가치를 어떻게든 격상하려 한 것일까. ‘<호프>에 관해’ 무언가 말할 수 있겠다는 지각은, ‘<호프>를’ 말할 수 있겠단 사실과 같지 않은데 말이다. 정치에 대한 영화와 정치적 영화를 갈랐던 고다르의 말처럼, 저 둘은 엄연히 다르다. 태초부터 <호프>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씨네21》 지면에 별점 4개를 주었다는 일의 책임감이었을까. 그렇다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작가적 기호(記號)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개인의 기호(嗜好)로 유희할 순 없는 것일까. (사실 그러기는 싫다) “타인의 취향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의 취향을 정당화하려는 의지의 동반사멸” [14] 이 팽배한 이 시대에, 모든 비평은 에세이가 될 수밖에 없을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여 이 글처럼 우리는 계속 영화에 ‘관한’ 무언가에 더 크게 반응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모든 물음은 마베이요의 빛나는 심장처럼 아무 의미 없는 허세에 가까울까. 어쨌거나 한 명의 관객이자 평자로서는 <호프>의 허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체, <호프>를 두고 무슨 말이 남았나? 아니, 애초에 왜 말했나? *** [1] “ [특집] 백주 스릴러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 칸 경쟁부문 <호프> 첫 시사 리뷰 ”, 《씨네21》 1558호, 2026. 5. 29. [2] “ 이 세상은 아직 ”.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개인 블로그에 <호프> 별점에 대한 일종의 후기를 남겼다. 2026. 7. 20. [3] “ [기획] 가속이 향하는 곳, 얄 사다트 평론가가 본 <호프> ”, 《씨네21》 1568호, 2026. 8. 6. [4] “ [특집] <호프>의 외계인은 왜 백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 외계인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장르 읽기 ”, 《씨네21》 1566호, 2026. 7. 24. [5] “ 사회는 영화보다 크다. 네 가지 관점으로 보는 2026년➊ 한국식 작가주의의 한계를 마주한 2026년 ”, 《씨네21》 1570호, 2026. 8. 21. [6] “ [영화] 〈호프〉는 한국영화이기에 유의미하다. ” 《쿨투라》 2026년 8월호, 2026. 7. 29. [7] 4)와 동일. [8] 『호프 끝장』 알라딘 북펀드 웹페이지 . [9] 『호프 끝장』의 출판사 ‘디깅룸’의 X(구 트위터) 게시글 . [10] https://www.instagram.com/p/Dacd6WLj8aH/?igsh=M285cnVvcmZ5cXF1 [11] 김신. “ 사진적 이미지에서 확률론적 이미지로: 2020년대 전후 시네필 커뮤니티와 영화 속 대화에 관한 단상 ”, 2024. 11. 21. [12] “ [비평] 우리 모두 곤경에 처해 있다, 김병규 평론가의 <여행과 나날>과 <슈퍼 해피 포에버> ”, 《씨네21》 1540호, 2026. 1. 21. [13] 10과 동일. [14] 이광호. “ 1인칭 사이 1인칭: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1992) ”, 2024. 5. 21. 이우빈(영화기자) l 《씨네21》 기자. 친구가 없어 영화관에 가고 집에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본 1997년생. 최근엔 저널리즘 비평이 대체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 중.
* 사진: 필자 제공 연출배경 < 주희에게 >(2025)는 세 명의 연출( 장주희 , 부성필 , 김성환 ) 중 두 명이 출연자로 등장하며, 네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복잡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한 여성(장주희 감독)이 자신이 20대에 ‘혈액암’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시작된다. 사회로 복귀를 하게 된 무렵 만나게 된 동년배의 남성 다큐멘터리 감독(부성필 감독)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카메라의 시선은 그가 기록하는 장애인(선철규)의 번지점프 도전기에서부터, 2014년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전인숙)의 삶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의 지표에 흐르고 있는 ‘고통’과 ‘연결’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기록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전하는 목소리는 혈액암과 가정폭력을 겪은 출연자이자, 연출인 여성, 주희(나)의 것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속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의 삶,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규명, 와상장애인의 번지점프 도전기, 제주 4·3 유가족 3세대의 삶이 연결된 복잡한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복잡한 이야기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이것은 30대 여성이 자신의 삶의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의 고통 속으로 녹아들기 내가 목격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본다’라는 수동적 태도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변화한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연출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찰자에서 화자로 거듭난다는 것은 ‘목격’이라는 경험이 나를 변화시킨 근본적인 이유이며, 이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로, 적극적으로 기록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나는 영화 속에서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혈액암 환자’라는, 한 공간에 결박된 존재로서 철저하게 수동적이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목격자이며, 이 고정된 시선은 앞으로 진행될 영화 안에서 변화가 예상될 수밖에 없는 ‘화자’의 자리로 안착한다. 이 영화가 담아낸 화자의 출발점은,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지독한 무력감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목격하면서도 그 일이 없는 듯 살아왔다. 사회는 가정폭력을 일상의 예외로서 묵인하고, 사회에서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지워버린다. 우리는 304명의 승객이 탄 배가 가라앉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보다’라는 수동적인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무언가를 보기 전과 본 이후의 세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주희’가 장애인자립센터에서 만난 장애여성 ‘은미’는 시설에서 선철규의 탈시설 다큐멘터리 < 지렁이 꿈틀 >(2010)을 보았고, 그 이후로 은미의 세계는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시설 밖으로 확장되었다. 나 역시 다큐멘터리를 통해 거리에서 투쟁하는 어떤 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나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이가 거리에서 흘린 눈물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집안에서 흘리는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격은 적극적으로 ‘나’를 그 프레임 속의 대상과 겹치며, 그 속에 나를 투사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어진다. 나에게 ‘본다’는 행위는 사건을 목격한 일시적 순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내가 목격한 사건이 나의 몸을 경유하여, 이전과 다른 몸을 만들어나간 과정이다. ‘본다’는 능동적 행위의 결과는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것이고, 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결과는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그런 맥락 속에서 ‘주희(나)’에게 ‘선철규(탈시설 장애인)’와 ‘전인숙(세월호 유가족 활동가)’의 존재는 자신의 문제에 온전히 투신하는 사람들, 즉 보이는 대상으로서 스스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주체가 된 이들이었다. 이야기의 주체로서 나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희에게>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나(가정폭력 피해자, 암 환자)’의 이야기는 세 인물(다큐멘터리 감독,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과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맺으며 단단하게 얽혀 들어간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보이는 대상을 거쳐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for us and In-itself) 가시적인 것들의 여정으로써, 우리는 봄을 통해 우리 내부로부터 발현하는 타인의 살을 마치 우리 자신의 것처럼 경험한다. 이 순간, 우리는 우리 ‘내부로부터’ 몰려오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 속에 살게 되고 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데, 이를 통해, 재난의 세계는 우리의 눈앞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 최종철, 『재난의 예술』, 그린비, 2024, 24쪽. 타인의 고통과 내 안의 슬픔이 하나의 ‘살’로 섞여 드는 이 감각은, 프레임 너머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에 머물던 나를 기어이 말하는 주체로 밀어 올리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이 내 안으로 밀려와 나를 바꾸어놓았다는 이 복잡한 연결고리를 과연 온전히 설득시킬수 있을까. 만약 관객들에게 이 예민한 호흡을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목격한 것을 말하는 ‘화자’로서의 내 존재 자체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목격자가 화자가 됨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라면, 목격자가 화자가 된다는 이 단순한 전개는 결국 ‘주희’의 ‘성장 서사’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본 것들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관객에게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변화는 필연적으로 ‘미성숙’을 전제한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환자’라는 정체성에 ‘미성숙’의 이미지를 덧씌워야만 성립되는 이 서사 구조 안에서는, 어떤 결핍이 과거의 나를 형성했는지,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내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만 했다. 친절한 전달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러나 목격의 대가로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하는 벽에 맞닥뜨린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기묘한 불쾌감과 함께 스스로에 대해 또다시 질문하게 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성장은 과연 필수적인 것인가? 고통은 늘 어떠한 성찰을 수반해야만 하는가? 나의 고백이 도리어 가정폭력 피해에 대한 인상을 수동적이고 고정된 틀에 가두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여성의 성장 서사를 ‘피해의 극복’이나 ‘수동성에서의 탈피’ 같은 전형적인 이야기로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위치에 자리매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것은 내 존재가 그저 고통의 ‘친절한 전달자’로 머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의 바깥에서 그 안의 ‘결핍된 존재’인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고통을 전시하는 방식에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태도로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분리해 바라보는 이 낯선 응시는, 곧 목격하기 전의 나, 그리고 목격한 후의 나, 그리고 그걸 되새기며 말하는 현재의 나라는 여러 층위로 인해 영화 안에서 인물 간의 여러 시간을 교차시킨다. 기록의 시간, 투쟁의 시간, 깨달음과 과거로의 회귀… 영화 안의 이 여러 시간 속에서 나의 위치는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깨닫는, 자책하는, 스스로 질문하는, 통찰하는 여러 시점에 놓인다. 이로 인해 ‘주희’의 내면과 인식의 변화는 영화의 타임라인을 따라 유동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것’의 윤리와 연대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수많은 질문과 의심들은, 영화가 상영되고 다양한 관객들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왜 지금 괜찮은지 묻는 이들에게 상영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나다 보면 장애인의 번지점프에 대해, 세월호 진상규명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10년에 가까운 긴 기록이 ‘삶’이라는 흐름의 속도와 동일하게 압축되어 있을 뿐, 어떤 의도적인 결말을 관객에게 제시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답변을 들은 관객들로부터 나는 그들이 안도하기도 하고, 더더욱 연대하겠다고 다짐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중 어떤 관객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정폭력은 트라우마가 심하기 때문에 영영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 질문은 마치 영화 밖, 현재의 나에게 “왜 지금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있는지”에 대해 묻는 날카로운 의문 같았다. 그 의문 앞에서 나는 영화 안에서 피해자로서 관객에게 제대로 된 공감과 연결 지점을 설명해내지 못한 것인지 자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 그런 우려와 불안의 지점을 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고, 관객분이 내비친 날카로움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불안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관객분이 제시한 솔직한 의문 속에서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오직 폭력에 대한 응징과 가해자 처벌이라는 명확하고 클리셰적인 결말로만 해소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 서사의 완결이 지닌 본질은, 사회와 국가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제도를 통해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언제나 미완으로 남을 뿐이다. 국가폭력을 비롯한 ‘피해자’라는 정체성과 그 삶의 맥락을 가진 모든 존재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제도적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 한,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시선과 인상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 가득 찬 답답함과 같은 브레인 포그 현상처럼 뿌옇고 불명확한 인상만을 남겨둔 채 방치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안개 속을 우연히 뚫고 나왔을 뿐임에도, 나는 그것이 과연 ‘성장’이 될 수 있는지에 여전히 의문을 품는다. 아직도 내가 ‘성장’했다는 표현에 대해, 그리고 이 영화 속 나를 ‘성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소개하는 것에 대해,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분명한 변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장한 주희’이자, 30대 여성으로서, 이 불평등한 세계 속에 굴하지 않는 동등한 스피커(화자)가 되어 주어 고맙다는 말로 들리는 착각과 환청 속에서, 나는 ‘여성’ 화자로서의 나의 위치성에 대해 고민하고 분노하고 인정하는 분열적 상태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분열이야말로 ‘존재의 바로 보기’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만들던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시 내릴 수 있었다. 나를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했던 것, 변화와 성장을 증명해야 했던 것으로 비롯된 나의 불편감에 대한 답을 말이다. 나는 비로소 내 존재 자체의 당혹스러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수치의 반복을 넘어, 당신의 존재가 구원이 될 때 나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비롯해 나의 고통을 목격한 모든 이들의 당혹스러움을 감당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가정폭력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 몰랐다’라는 반응으로부터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감각을 맞닥뜨려야 했던 그 순간 속에서 알 수 있었다. 결핍된 존재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수치심을 동반하며,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지독한 부정의 시선과 언어들 속에서, 드러내기와 수치의 반복 속에서 나와 당신의 존재가 결국 우리 모두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선언할 수 있는 강력한 힘, 나는 그 힘이 바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다큐-코멘터리: 프레임 밖의 문장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장주희(여성인권활동가, 영화감독) l 장애인 대상 미디어 교육과 여성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 장애인, 미디어, 교육 >(2022), <주희에게>(2025)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이 글을 접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일상의 답답함과 울적함을 주체할 수 없어서 기차를 타거나 마실을 나가는 것으로 어떻게든 해 보고자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그러한 일상에서 비일상으로의 탈출이 본질적인 해답은 되지 못하곤 한다.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간다 해도 완전히 야반도주라도 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머지않아 반드시 본래의 거처로 돌아와야 하며,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일상과 마주해야만 한다. 바로 귀로(歸路)에 서야 하는 것이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 귀로 >(1967)는 바로 이런 현대인의 고뇌를 서울과 인천이라는 두 도시 간의 이동을 통해 명징하게 드러낸 수작이다. 지금까지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 연재에서는 당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1960~80년대의 여러 한국영화를 돌아보았지만, <귀로>와 같이 주인공의 심경과 처한 상황이 두 도시 간의 반복적인 이동(통근과 통학이라는 ‘일상’이 아닌)을 통해 비유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드물었다. 이미 많은 비평에서 <귀로>를 ‘멜로드라마 최고의 걸작’ 혹은 ‘세월의 흐름을 타지 않는 세련된 구도’ 등으로 호평하고 있는 만큼, 본 연재에서는 본 작품의 또 하나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공간적 배경에 대해 주목해 보고자 한다. 주인공 지연( 문정숙 )은 한국전쟁의 상이군인으로, 하반신 마비로 인해 성불구자가 된 남편 최동우( 김진규 )와 14년째 그 어떤 것도 만족되지 않으며 족쇄와 같은 결혼 생활을 인천의 어느 양옥집에서 이어 나가고 있다. 지연에게 있어서 족쇄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는 남편의 신문 연재소설 원고를 서울 서소문의 신문사에게 전달하러 가는 시간뿐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이러한 지연의 인천(지연의 집)-경인선 열차 3등 칸-서울역-서소문(신문사 소재지)을 오고 가는 이동 동선을 반복적으로 비춘다. 집을 떠나 인천역에서 경인선 디젤동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서 서소문으로 향했다가, 잠시 남산 중턱에서 시내의 경치를 내려다본 후 다시 서울역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열차에 올라타는 행적의 시퀀스를 되풀이해 목도하다 보면, 마치 지연의 일탈을 몰래 지켜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카메라는 1967년의 서울-인천 간의 이동을 세련되게 잡아낸다. 지연의 궤적을 뒤쫓아가며, 주목할 만한 공간적 배경을 짚어보도록 하자. 경인선 열차 지연은 서울에 원고를 전달하러 오고 갈 때마다 항상 경인선 열차, 3등 칸을 이용한다. 이 시기 경인선은 복선화가 완료되어(1965년), 시간당 1편의 열차가 운행되었으며 차내 모습은 극 중에서도 비치듯이 긴 의자에 손잡이가 달린 사실상 지금의 수도권 전철과 유사한 분위기를 띠었다. 지연은 열차를 타는 본인의 심경을 딱 한 번 대사로 읊는데,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시원스러워서 타고 싶은데 막상 타고 나면 답답해요(36:52경)”가 바로 그것이다. 본인을 옥죄는 가정에서 벗어나 서울행 기차를 타지만, 그곳조차도 완전한 도피가 되지는 못하는 상징으로서 경인선의 디젤동차 열차가 등장한 것이다. 인천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경인선 디젤동차의 내부 모습 경인선 열차를 타는 이유를 강 기자에게 털어놓는 지연 서울역과 인천역 인천역은 지연에게 있어서 족쇄와 같은 일상을 상징하는 공간일 것이다. 반면에 서울역은 그러한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관문이자, 동시에 그마저도 남편의 원고를 전달해야 한다는 일상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지연에게 경인선 열차와 유사한 공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작중에서 서울역과 그 앞 지하도는 총 네 차례 등장하는데, 처음 두 번은 지연 혼자서, 세 번째는 지연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강 기자( 김정철 )와 함께, 그리고 네 번째는 강 기자 혼자서 지하도의 계단을 오르내린다. 자연스럽게 지하도가 지연의 원치 않았던, 하지만 거스를 수 없었던 일탈의 상징적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셈이다. 나아가 서울역의 1번 플랫폼 또한, 지하도와 유사하게 지연의 일탈과 포기(혹은 체념)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서 비친다. 서울역 1번 플랫폼에 도착한 경인선 열차. 현재 이 플랫폼에서는 천안행 1호선 급행열차가 발착한다. 서울역 지하도를 올라가는 지연의 뒷모습. 일부러 사선 구도를 취함으로써 6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서소문 건널목과 서소문 고가차도 서울 도심 유일의 기차 건널목인 서소문 건널목을 이렇게까지 중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담아낸 영화는 아마 본 작품이 유일할 것이다. 나아가 당시에 갓 준공되었던 서소문 고가차도(당시엔 ‘서소문 육교’라고도 불렸다)도 함께 등장함으로써 단절(건널목)과 소통(고가차도), 혹은 고즈넉한 인천의 집과는 다른 복잡한 근대도시 서울을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서소문 건널목은 작중에서 지하도와 마찬가지로 총 네 차례 등장한다. 처음 두 차례는 서울역과 서소문의 신문사를 오고 가는 지연 혼자서, 세 번째는 지연을 무작정 뒤쫓는 강 기자의 갈팡질팡하는 시선(1:01:01경)으로, 네 번째는 다시 지연 혼자서 건널목 앞에 멈춰 서는 시퀀스에서 서소문 건널목은 등장인물들의 막막한 심정을 대변하듯이, 마치 단절을 의도한 것 마냥 육중한 기관차가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지연을 무작정 뒤쫓는 강 기자의 시선에 서소문 육교와 사방으로 향하는 도로 안내판이 담긴다. 아마도 지연에게 마음을 빼앗겨 갈팡질팡하는 강 기자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인천의 집까지 쫓아온 강 기자 앞에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직후, 지연은 서소문 건널목 앞에서 육중한 화물열차에 길이 가로막힌다. 참고로, 작중에서 딱 한 번, 지연이 서소문 건널목이 아니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서소문 고가차도를 도보로 건너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나 지금이나 서소문 고가차도는 자동차 전용 도로로서, 보행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서소문 고가차도 보행 장면은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한형모, 1966)에서도 등장한 바 있는데, <귀로>에서의 해당 씬은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위치에서 촬영되었다. 물론 맥락과 의도는 두 영화가 완전히 다르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1년 간격으로 똑같은 씬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여러 의미를 고려하게 만든다.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에 등장한 서소문 고가차도 보행 씬 본 작품에서 유일하게 서소문 건널목이 아닌 고가차도를 건너가는 시퀀스. 오른쪽 뒤편으로 중앙일보 사옥, 대한빌딩 등이 관찰된다. <귀로>는 대사량이 그렇게 많은 영화가 아니다. 물론 주인공 지연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처럼 내뱉는 중요한 대사가 삽입되어 있지만, 러닝타임의 상당 시간은 지연의 뒷모습(어떤 비평에서는 문정숙을 ‘뒷모습이 아름다운 배우’라 칭하기도 했다)을 비추며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음악과 공간적 배경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연출 덕에, 처한 상황이 지연과는 다소 다를지라도 1967년 공개 당시는 물론이요,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귀로>를 보며 지연의 심경에 공감하거나 나아가 감정 이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귀로>를 보고 난 후, 시청 앞과 서소문 일대를 거닐며, 철거 공사 중인 서소문 고가를 올려다보고 그대로 서울역으로 향해서, 경인선 열차에 올라타 인천역에 내려보는 일종의 <귀로> 성지순례 체험을 해 보는 것 또한, 본 작품을 온전히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그만큼 현대인에게 주는 울림이 큰 작품이니 말이다.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