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온
- 감독
- 야마다 나오코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히사카 요코, 토요사키 아키, 사토 사토미, 코토부키 미나코, 타케타츠 아야나
애니메이션 초이스 코너를 통해 필자는 쭉 한국애니메이션을 다뤄왔다. 아무래도 한국의 애니메이션 데이터베이스 사이트니까 한국작품을 주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지난 번 < 천공의 성 라퓨타 >에 이어 이번에도 또 일본작품에 대해 쓰게 되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1986년 작품이었지만 이번에는 최신 작품에 관해 쓰려고 한다. 필자가 처음 애니메이션 관련해서 잡지나 여러 매체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1990년대에는 TV와 극장 이외에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해외 작품을 소개할 때에는 줄거리 소개와 도판을 통한 애니메이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에는 ‘한일 동시 방영’을 내세우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까지 생겼을 정도다. 과거에는 영화제가 아니면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단편애니메이션 분야조차 포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판매되고 있고,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 직접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애니메이션 작가도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작품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작품 소개를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는 작품이 제작되기 전부터도 제작 발표 뉴스가 국내에 바로바로 소개되는 상황인 것이다. 원래 필자 역시도 그런 마니아의 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PC통신 하이텔의 애니메이션 동호회에 < 신세기 에반겔리온 >을 1995년 8월 12일에 신작 정보로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에반겔리온>이 일본에서 방영 개시된 날짜가 10월 4일이었으니 방영 2개월 전에 이미 글을 썼던 것이다. 극장판의 경우에는 더욱 빨라져서 <사도신생 DEATH AND REBIRTH>의 일본 개봉일은 1997년 3월 15일이었는데, 필자가 대략의 내용과 일본 잡지에 소개된 내용을 설명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린 것은 3월 28일이었다. 완결편인 < THE END OF EVANGELION Air/진심을, 그대에게 >는 개봉일인 1997년 7월 19일의 단 이틀 후인 21일에 일본 관객들의 반응을 국내 PC통신 게시판에 소개했다. 그 당시는 아직 인터넷이 본격화되기 전이었지만 필자는 일본의 PC통신망에 직접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었기에 일본 내의 반응을 빠르게 국내에 소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필자와 같은 역할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됨으로 하여 이제는 ‘정보의 실시간성’이 더 이상 특별하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줄거리나 캐릭터 소개에 국한되는 작품 리뷰의 의미는 많이 축소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이 글에서 <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라는 작품의 줄거리나 캐릭터를 상세히 나열할 생각은 없다. 당장 케이블이나 IPTV에서 방송되고 있으니 직접 볼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찾고 싶다면 한글 위키피디아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무료로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을 이 사이트에 옮겨놓기보다는, 좀 다른 글을 써보려고 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교토애니메이션 <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는 < 케이온! >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애니메이션계에서 큰 인기를 누린 애니메이션 제작사 교토애니메이션의 작품이다. 교토애니메이션은 1981년에 창업되었으니 벌써 30년 이상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활약해온 고참 프로덕션인데, 주로 하청작업에 몰두하다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자체 제작을 시작하게 된 회사이다. 2006년 제작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 일본 내에서의 높은 인기는 물론이고 유튜브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고(마치 2012년 싸이가 그랬던 것처럼 오프닝 애니메이션의 댄스가 화제가 되었다), 후속 작품이 연속적으로 히트하면서 200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하나가 되었다. 일본애니메이션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구분 방법이 있는데, 발표 매체에 의한 구분(TV애니메이션, 극장용 애니메이션, 그리고 처음부터 비디오 매체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이 그것이고 또 한 가지로는 원작물과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란 분류가 있다. 일본애니메이션은 그 태반이 만화나 소설 등을 ‘원작’으로 삼아 애니메이션화(化)시킨 작품의 비중이 높다.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특성상, 처음부터 오리지널 스토리 작품을 만드는 것은 일본에서도 쉽지 않은 것이다. 일부 대형 제작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존 원작이 있는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하는 경우가 많다. 만화, 소설 등 기존에 히트한 작품을 소재로 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되면 굳이 홍보하지 않고도 원작의 팬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고 화제성이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회사는 원작물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애니메이션 회사는 항상 좋은 원작을 찾게 된다. 인기있는 만화잡지와는 아예 장기간 좋은 관계를 맺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전속관계도 아닌 이상 특정 잡지나 특정 작가의 작품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의 출판사는 거대 자본의 대기업이다보니 직접 출판사에서 애니메이션 회사에 하청을 주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밖에도 모든 것이 원작사에 맞춰져 있다 보니 애니메이션 회사로서는 자사의 이익을 위해 오리지널 작품을 만들고 싶을 수밖에 없으나, 전술한 바대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는 큰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업체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직접 원작을 만든다는 것이다. <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는 바로 교토애니메이션에서 주최한 신인상 소설부문에 당선된 라이트노벨(일본의 학생층이 선호하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원작물이긴 하지만 그 원작 자체를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직접 출판함으로써 마치 오리지널 작품과도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실제로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원작소설은 교토애니메이션이 직접 출판했다. ■‘중2병’이란? 작품에 등장하는 용어 ‘중2병’이란 무엇일까? 본래 중학교 2학년(만 14세 전후) 정도의 나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기애(自己愛), 자의식 과잉, 컴플렉스 등으로 인한 공상적인 행동이나 모습을 지칭하는 일본의 속어다. 원래는 일본의 개그맨 이쥬인 히카루가 1999년에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만들어낸 코너에서 나온 단어라고 하는데, 당초에는 단순히 중학교 2학년 때에 자주 보이는 행동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유행어가 대개 그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면서 의미가 확장되었다. 지금은 자학적이거나 혹은 타인에 대한 야유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일본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달라졌고, 한국에 수입되면서 국내 인터넷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는 그런 중2병이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일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중2병 현상의 극단적인 일면을 강조해서 표현한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발달되어 있는 일본의 학생들은 당연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친화성이 높다. 따라서 중2병의 발현 역시 만화/애니메이션적인 측면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같은 언동을 하는 것을 중2병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중2병’이란 반드시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관계된 것이 아니고 자의식 과잉으로 인하여 본인을 어떤 작품이나 스토리의 주인공처럼 생각하거나 주위의 모든 것을 어떤 설정 속에서 받아들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사회는 쓰레기다”, “어른들은 더럽다”는 식의 발언, 혹은 세상 모든 것을 음모론적으로 본다든지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나만 안다거나 하는 과대망상 역시 중2병의 특징이다. 간단히 말하면 중2병은 바로 사춘기,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시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 현상이 일본에서는 만화/애니메이션적 상상력으로 표현된다면, 국내에서는 예를 들어 “백신은 제약회사의 음모”라든지 “우리 민족은 사실 고대에는 엄청나게 국력이 강했다”는 소위 「환단고기」에 관련된 내용을 대표적인 중2병의 한국적 사례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매니아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중2병을 묘사하면서 종종 일본식 사례를 그대로 직역한 듯한 표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제대로 ‘한국적 중2병’을 묘사하려고 한다면 이와 같은 한국적 현실로 해석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일본에서는 ‘중2병을 부끄럽게 여기고 중2병적인 현상을 비웃는 행태’에 집착하는 것을 ‘고2병’, ‘대2병’이라는 식으로 다시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겠다. 본래 이런 용어들의 ‘발명’은 결국 객체화, 객관화를 통해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므로 중2병만이 아니라 정치나 사회 용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구, 진보, 좌파, 우파, 신자유주의, 혹은 난독증이니 파워블로거, 폐인, 오타쿠 등 상대방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들도 그 근본은 중2병이란 용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중2병이란 용어 역시 상대방을 비웃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란 작품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중2병은 사춘기, 즉 모든 인간이 성장하면서 반드시 지나는 통과의례인 셈이므로 중2병을 비웃는다는 것은 자기자신도 비웃는 결과가 된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자학적인 의미에서 중2병을 비웃는 것은 하나의 개그로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남을 타자화하고 희화화하기 위해 중2병을 비웃는 것은 고2병이나 대2병이라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중2병 이외의 다른 어떤 용어를 통해 타인을 규정하는 것도 전부 마찬가지다.) <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란 작품은 그런 의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주의 주장을 직접적인 프로파간다로 드러내기보다는 귀여운 청춘 러브코미디로 버무렸다. 특히 교토애니메이션의 뛰어난 작화 퀄리티와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해 설득력 있는 작품이 되었다.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 DB사이트 「애니Db」에 칼럼과 애니메이션 추천 글을 몇 번 써왔는데,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고자 했다. (※원고 후반부 리스트 참조)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필자는 1995년부터 여러 잡지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글을 연재해왔는데, 그 중에는 몇 가지 집중적으로 주목해온 테마가 존재한다. ‘한국 작품의 해외 진출’ 등과 같은 테마가 그것인데, 또 하나 애니메이션계에서 여성 스태프의 역할에 대해서도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여성 애니메이터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남성 중심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국내외를 막론하고, 단편애니메이션이 아닌 상업 작품에서는 여성 스태프의 역할이 주로 작화나 각본 분야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즉 캐릭터 디자이너라든지 원화와 동화 등 작화 부분, 그리고 스토리를 쓰는 각본 분야에는 여성 스태프도 많지만,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제작을 책임지는 ‘프로듀서’ 등의 파트에는 여성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참고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에는 작품 전체의 감독을 ‘시리즈 감독’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각 화별 연출담당을 ‘연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의 경우 ‘연출’이라 불리우는 직함이 보통 국내에서 사용되는 ‘감독’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는데, 이 ‘연출’ 부분에는 여성 연출자도 과거로부터 어느 정도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예를 들어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나 『기동전사 건담』의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 공각기동대 』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나 『 신세기 에반겔리온 』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 등에 해당하는 ‘감독’은 대개 남성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일본에서 현저한 상황이었는데, ‘00년대’도 끝나 2010년대에 접어든 현재 이 경향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있지 않나 생각되어 그 부분을 살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터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전통적으로 여성 스태프가 주로 캐릭터디자이너나 작화 감독, 혹은 원화나 동화 담당 등 작화 분야에 존재해왔다. 『 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 』(국내 제목 『천사소녀 새롬이』)와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등의 작품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타카다 아케미(高田明美), 『미소녀전사 세일러문』과 『세일러문 R』, 『애천사전설 웨딩피치』의 캐릭터디자이너 타다노 카즈코(只野和子), 소위 ‘용자 시리즈’ 중의 일부(『 전설의 용자 다간 』『용자특급 마이트가인』『용자경찰 제이데카』)와 『 마법기사 레이어스 』의 작화감독(일부는 캐릭터디자인까지)을 맡은 이시다 아츠코(石田敦子) 등이 그런 사례이다. 『시티 헌터』 시리즈와 『아르스란 전기(Arslan戰記)』(『아루스란 전기』라고도 표기)의 캐릭터디자인을 맡았고 『루팡 3세 PartⅢ』, 『기동전사 건담ZZ』 등에서는 몇몇 화의 작화감독을 맡은 카미무라 사치코(神村幸子) 역시 일본에서 여성 애니메이터로 유명한 인물이다. 타카하시 쿠미코(高橋久美子) 역시 『시티 헌터』 시리즈에서 작화감독을 맡은 후 『도쿄 BABYLON(바빌론)』『 카드캡터 사쿠라 』 등 만화가집단 CLAMP(클램프)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할 때 캐릭터디자인·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최근에는 『오란고교 호스트부』『기동전사 건담 UC(유니콘)』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았다. 이노마타 무츠미(いのまたむつみ)는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많이 활동했는데, 초기에 『 전국마신 고쇼군 』『시티 헌터』에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하고 『 윈다리아 』『마경전설 아크로번치』『프라레스 산시로』에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다.또 『우주황자』『바람의 대륙』『퓨처 그랑프리(GPX) 사이버 포뮬러』『브레인 파워드』에 캐릭터원안으로 참가했다. 나카지마 아츠코(中嶋敦子)는 『 란마 1/2 』『 체포하겠어 』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고, 『하멜의 바이올린』『트리니티 블러드』『프린세스 프린세스』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베테랑 애니메이터다. 하야시 아케미(林明美)의 경우에는 거의 주로 원화나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애니메이터인데, 『너스앤젤(간호천사) 리리카 SOS』『 소녀혁명 우테나 』 등이 대표작이다. 『 후르츠 바스켓 』에서는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도 맡았고, 『극장판 소녀혁명 우테나 애덜레센스(Adolescence) 묵시록』에서는 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야마모토 사와코(山本佐和子)는 여성 애니메이터로서 메카닉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사라키』『진키 익스텐드』『슈퍼로봇대전 OG -디 인스펙터-』에서 메카닉 작화감독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밖에는 『지옥소녀』『학생회의 일존』『전설의 용자의 전설』 등에도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 세인트 세이야 』(다른 번역 제목 『성투사 성시』)의 히메노 미치(姬野美智)도 마찬가지로 작화 분야의 유명한 인물이다. 히메노 미치는 『꽃의 아이 룽룽』, 『 베르사이유의 장미 』 등 1979∼1980년 작품에서부터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던 베테랑으로, 최근에는 『 유☆희☆왕 』 시리즈의 캐릭터디자인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너에게 닿기를』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 각화별 작화감독 등을 맡은 시바타 유카(柴田由香), 『12국기』『미도리의 나날』『영국사랑이야기 엠마』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은 쿠스모토 유코(楠本祐子), 『강철천사 쿠루미』『플라네테스』『브레이브 스토리』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을,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에서 메인 애니메이터와 총작화감독을 맡은 치바 유리코(千羽由利子) 등이 그 예이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위에 소개한 것 이외에도 작화 분야에서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가 활약했고,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여성 애니메이터의 이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지한 바와 같다. 하지만 유독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작품의 기획 단계를 진행하는 ‘프로듀서’라는 직함에서만큼은 여성 감독의 이름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소녀만화(국내에서는 주로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원작 작품이나,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조차도 감독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성 애니메이션 팬은 남성 대상의 작품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고, 혹은 캐릭터 중심의 팬, 성우 팬으로 넘어가는 케이스도 적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다. 애니메이션의 여성 팬들에게서 소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소위 ‘BL(보이즈러브)’ 패러디나 동인지가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어쩌면, 이와 같이 작품 기획 단계에서는 철저하게 남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성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공고한 듯 보이던 남성 중심의 애니메이션 감독직에 여성이 기용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났끼 때문이다. 우선 1990년대에 애니메이션 작품의 감독을 맡은 여성으로서는 『마루코는 아홉살(꼬마 마루코)』 시리즈의 스다 유미코(須田裕美子), 『YAWARA!(야와라)』『 미라클 걸즈 』『쾌감 프레이즈』의 토키타 히로코(ときたひろこ), 『미소의 세상(키코 스마일)』의 시부이치 세츠코(四分一節子), 그러던 것이, 『에비츄』(1999년), 『부탁해! 마이멜로디』 시리즈(2005년~2009년), 『탐정오페라 밀키홈즈』(2010년)의 모리와키 마코토(森脇眞琴), 『 최종병기 그녀 』(2002년), 『리스토란테 파라디조』(2009년)에서 감독을 맡은 카세 미츠코(加瀨充子), 『신백설공주 전설 프리티아』(2001년), 『뱀파이어 기사』(2008년), 『스킵 비트!』(2008년)의 사야마 키요코(佐山聖子) 등 점점 TV시리즈를 연출하는 여성 감독이 늘어나는 추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점점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주류적인 히트작을 내놓는 여성 감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 중에도 『부탁해! 마이멜로디』(모리와키 마코토 감독)는 4년 이상 이어진 장편이고, 그 이전의 『마루코는 아홉살』(스다 유미코 감독), 『미소의 세상』(시부이치 세츠코 감독) 역시 1년 이상의 장편 TV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전부 유아 내지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이 있다. 『YAWARA!』『미라클 걸즈』의 토키타 히로코 감독 정도가 예외적으로 아동용이 아닌 장편 TV애니메이션을 연출했다는 예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2010년대의 일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게임의 화제작으로서 관심을 모은 『쓰르라미 울 적에』의 TV시리즈(2006~2007년), 그리고 유명한 『 노다메 칸타빌레 』 시리즈(2008~2010년)는 콘 치아키(今千秋) 감독 작품이다. 콘 치아키 감독은 그 외에도 『순정 로맨티카』 시리즈(2008년), 『괭이갈매기 울 적에』(2009년)도 연출했다. 『AIR(에어)』『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러키☆스타』『CLANNAD(클라나드)』에서 원화를 맡았던 야마다 나오코(山田尙子)가 첫 감독 작품으로 내놓은 『케이온!』은 2009년과 2010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최대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초대형 인기작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11년 개봉 예정인 『 케이온! 』의 극장판 감독으로도 내정되어 있고,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연출자로서 자리잡고 있다. TV판은 아니지만, 2006년에야 애니메이션 업계에 데뷔한 1985년생의 젊은 마츠모토 리에(松本理惠)는 경력의 대부분이 『두 사람은 프리큐어』 시리즈 뿐인데, 2010년 『영화 하트 캐치 프리큐어! 꽃의 도시에서 패션쇼…인가요!?』로 약관 25세에 시리즈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발탁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2000년대 후반 이후 주목받는 여성 애니메이션이 늘어나고 있는데,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1990년대에도 이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은 존재했으나 대형 히트작을 담당한 경우가 없었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크게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전까지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특징으로 여성 캐릭터의 기호성(소위 ‘모에’, ‘츤데레’ 등)이나 데이터베이스성(아즈마 히로키 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등의 서적을 참조할 것)이란 측면이 주로 지적받았던 점은, 어쩌면 남성 중심의 연출이 일반적이었던 2000년대 이전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징과도 연관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케이온!』과 『쓰르라미 울 적에』로 여성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어떤 변화를 보일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케이온!』으로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09년 일본의 잡지 「오리콘 biz」와의 인터뷰에서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기호화되기 쉬운데, 그런 단어(분류법)으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작화 담당자에게 애니메이션의 여자 캐릭터가 자주 하는 포즈를 금지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케이온!』은 기존의 남성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초대형 히트작이 되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기호화’를 쓰지 않고도 인기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명을 한 셈이니 향후 업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궁금하다.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과 사회 변화 출판만화나 문학에서는(일본에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장편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겐지 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부터가 여성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래 전부터 당연히 존재해왔던 것이 여성 작가인데, 크리에이터 단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르에서는 당연했던 여성의 존재가 집단 제작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단체를 통솔하는 역할인 감독으로서 드물었던 것은 결국 일본 사회에서의 여성이 가지는 위상과 연관이 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만화연구서 『만화! 문화 사회학적 읽기』(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9년 발행)의 공동저자인 최흡은 2011년 1월 20일에 열린 「망가: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 심포지엄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같은 예술 작품이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는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그 사례로 작중의 여성 인물의 위상 변화에 관해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30년 이상 시리즈가 이어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시대별 여성 캐릭터를 망라하여 그 특징을 설명했는데, 1979년 발표된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군대 내의 여성 캐릭터가 주로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사였고 로봇의 파일럿이나 전함의 함장을 맡은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임시직 정도의 대우였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던 것이 1985~1987년의 『기동전사 Z건담』『기동전사 건담ZZ』에서는 정식 파일럿이나 메카닉 기술자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2년의 『기동전사 건담 SEED』에 이르러서는 여성 캐릭터가 군대 내에서 함장이나 부함장 등 ‘지도자’ 역할로도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2007년 작품 『기동전사 건담 00(더블오)』에서도 마찬가지로서, 70년대로부터 8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면서 여성 캐릭터가 점점 전문직으로, 커리어우먼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애니메이션 작품 내에서의 여성 캐릭터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업계 내에서의 변화에도 시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여성이 단순한 동화나 채색을 담당하던 것에서 캐릭터디자인이나 각본과 같은 전문직으로, 나아가서는 집단을 통솔하는 지휘자로서도 변화해온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내부의 변화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회학적인 연구에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