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후팬더: 영웅의 탄생
- 감독
- 오요권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성룡, 임자총, 왕 하이 양, 지 타오
* 이 글에는 < 올드보이 >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 올드보이 >(2003)는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인 동시에 세계영화사의 주요한 이정표로 언급되고는 한다. 토론토영화제가 선정한 대표적 영화 목록에는 2003년도의 영화로 <올드보이>를 꼽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작품 분석이나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중심으로 다룬 작가론은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정작 이 영화가 던진 이정표에 대해서 언급된 적은 없다. 칸영화제의 수상작이라는 사실 정도를 다루는 데 그치면서 <올드보이>가 이정표로서 어떤 지도를 내놓았는지에 대한 비평적 접근은 드물었다. ‘박찬욱’ 감독의 이름으로 용산의 한 극장이 개관하게 되었을 때 통로에 전시된 사진과 필모그라피를 바라보면서 박찬욱 혹은 박찬욱의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유명세 덕분에 망각된 질문이자 예술의 본성을 향한 “누구냐 너?”에 해당될 것이다. < 올드보이 >는 오대수( 최민식 )가 15년간 감금되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후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면서 복수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인물인 이우진( 유지태 )은 자신이 오대수를 가둔 이유를 5일 안에 밝혀내면 스스로가 죽어주겠다는 이상한 제안을 한다. 그의 약속은 비밀을 감추기 위한 약속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드러내기 위한 약속이다. 이 과정을 통해 사건(시간)의 전모가 드러나고, 관객들은 깨닫는다. 진정한 복수의 화신은 방안에 갇혔던 오대수가 아니라 이유를 감췄던 이우진이라는 것을. 그의 삶은 과거 고등학교 시절에 붙들려 있고, 성인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신체적 고통까지 받았다. 나이는 들었지만 몸은 소년인 시간의 감옥에 갇힌 이우진이야말로 영화의 제목 그대로 ‘올드보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오대수다. 복수의 화신 이우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미노타우르스처럼 시간의 미로에 숨겨져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복수를 하는 자가 전면에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복수를 도모하는 쿵후 영화나 서부극에서는 복수하는 자가 주인공이기 마련이다.) 복수를 당하는 자가 주인공처럼 여겨지고, 이를 위해 영화의 중반까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뒤엉키며 전개된다. 복수를 하는 자와 당하는 자, 둘 중 누가 더 악마인지 경계가 흐릿해진다. 오대수는 자신도 모른 채 가해자였고, 당연히 그 사실을 망각해 버린 채 살아왔고, 어느새 피해자의 분노로 망치를 들고 액션을 펼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망각한 오대수가 아니라 기억하는 이우진이다. 오대수 이우진 미도 가해자와 피해자, 망각과 기억이 전도되는 방식은 < 올드보이 >의 핵심이다. 세상으로 나온 오대수가 찾아간 횟집에서 생낙지를 먹다가 힘없이 쓰러지는 장면이나(그는 본능적으로 살아있는 것을 찾으면서도 낙지를 먹은 후 죽은 자처럼 쓰러져 버린다), 횟집에서 만난 ‘미도’와 정사를 벌이고,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후반부의 장면의 충격은 선과 악의 경계를 알 수 없는 혼돈의 충격이다. <올드보이>는 다가올 시간을 향해 ‘행복의 조건’을 약속하는 대중 예술의 방식들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영화다. 미래가 다가올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인물들의 죽음과 극도로 치닫는 아드레날린의 상승하는 수치다. 흡사 법정의 최후 진술처럼 “제가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지만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인간적 호소를 담은 대사는 모든 것이 전도되어 버린 세계에서 그나마 인간적 감정에 호소하려는 일종의 제동장치처럼 보인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더한 고통을 배가시키는 영화의 형식은 온전한 집이 불에 타오를 때 비로소 건물의 구조를 목격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뼈만 남은 채 타올라 버린 재투성이의 세상과 인간들을 보여주면서 세상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 올드보이 >의 새로움이고, 모더니즘이 창궐한 20세기를 지나서도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된다. 관객들은 파멸의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며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질문하면서도 끝내 이 인간존재의 심연에 절망하거나 매혹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심연 그 자체로만 던져졌다면 영화가 수용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 올드보이 >는 몇 가지 배려가 있다. 피투성이로 날뛰는 오대수의 괴물적 행동 뒤에는 ‘최면술’이라는 장치가 있다. 이것 덕분에 오대수의 행동이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외부의 초월적인 힘에 의해 통제당한 것임을 항변하게 만든다. 그는 괴물이지만 어쩔 수 없이 괴물이 된 존재이다. 이전에 선보인 < 복수는 나의 것 >(2002)은 신성한 공포의 파괴력을 가장 멀리까지 던진 박찬욱 감독의 영화임이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야심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권리를 주장하는 연민 어린 대사나 무의식을 통제하는 최면술이 없었기에 관객들의 호감을 쉽게 끌어내지 못했다. <올드보이>는 이러한 지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방법론이 튀어나온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언급되었듯이 상투적인 것을 경계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연민이나 동정심은 자주 버려지고 지나쳐 버린다. 연민이나 감정의 상투성을 대신하여 < 아가씨 >에 이르기까지 계속 등장하는 것은 상투성의 풍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페티시적인 요소들이다. 인터뷰나 지면을 통해 상투적인 것, 관습적인 것, 클리세를 지나치게 싫어한다고 강조해 왔는데, 그렇다고 활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관습을 극단적으로 비틀어 보인다. < 올드보이 >의 만두에 대한 집착처럼 특정 사물과 감각에 대한 물신화를 통해, 가장 상투적인 것의 가져와 극단적인 상황으로 폭파시킨다. ‘만두’의 기억을 찾아 복수를 시작하게 되는 출발은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는 상상력의 전개일 것이다. 최근에 선보인 <아가씨>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인물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대표적일 것이다. 아가씨가 낭송한 책의 한 페이지를(이보다 더한 페티시는 없을 것이다)을 고스란히 가져와 두 인물은 그 장면을 재현하면서도(페티시) 비틀어 버린다.(패러디) 이러한 흐름 속의 놓인 대표작은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다. 한 편의 영화가 오롯이 기억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박찬욱 감독이 강조하는 것은 통합되지 않는 세계의 파편들이다. 여기에는 순응하는 페티시가 있고, 동시에 순응하는 것을 거부하는 패러디가 있다. 현실과 꿈, 삶과 죽음, 섹스와 살인의 파편들이 뒤엉켜 매혹적이면서(패티시), 공포스러운 세계의 모습(패러디)을 한 화면에 담아낸다. 그 출발점이 < 올드보이 >였다. 박찬욱 의 영화에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복수라는 주제나 특정한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은 점점 더 증발시키면서 이를 대체할 방법론적이고 형식적 새로움의 시도 속에 영화의 목록을 채워간다. 그것은 기존의 한국영화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임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부르주아 특유의 젠 체가 있다며 비판할 것이고, 누군가는 감각적 영상들의 빽빽함에 답답하겠지만 돌이켜보면 한국영화의 계보 안에서 지성과 매혹의 극단으로 채워갔던 사례는 없었다. <올드보이> 이후 박찬욱 감독은 자신만의 계보를 채우는 셈이다.
드디어 ‘짝퉁 이소룡’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치 무간지옥처럼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오는 건 자유가 아니, 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그냥 관두는 것으로(-_-;). 어쨌건 그 무수한 짝퉁들 중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배우는 바로,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이기도 한 거룡 (본명 문경석)이다. 이름과 외모만 보고 홍콩 배우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물론 최초의 짝퉁 이소룡도 한국 사람이었다. < 사망유희 >(1978) 촬영 도중 이소룡이 죽자, 부랴부랴 외모가 비슷했던 한국 출신 무술배우 당룡 (본명 김태정)이 그를 대신하여 작품을 마무리했던 것. 거룡 과 당룡 사실 이소룡이 액션 연기와 별개로 점프나 회전에 뛰어난 배우는 아니었는데, 그가 느닷없이 날아차기로 천정의 전구를 깨고 텀블링까지 했다. 사정상 선글라스 낀 얼굴을 클로즈업할 수는 없지만, 개인기는 오리지널보다 짝퉁이 더 뛰어났던 그 기묘한 괴리감이랄까. 이후 장 끌로드 반담 주연 < 특명 어벤저 >(1986) 등에도 출연했던 당룡 은 안타깝게도 지난 2011년 채 일흔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떴다. 당시 한국의 이소룡을 발굴하려 했던 화천공사 박종찬 회장과 김시현 감독에 의해 발탁된 거룡 은 < 최후의 정무문 >(1977)을 시작으로 < 오대제자 >(1978), < 정무지보 >(1978), < 일소일권 >(1980), < 월광쌍수 >(1981), < 흑표비객 >(1981), < 뇌권 >(1983) 등 거의 대부분 김시현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홍콩과 대만으로도 진출해 ‘Bruce Lea’라는(아, 정말 어지럽다) 영어이름을 썼던 장정의와 함께 한 강홍 감독의 <쾌권괴초>(1980), 류충량 등과 함께한 하지강 감독의 <잡가고수>(1979) 등에 출연했다. < 일소일권 > 출연 당시의 거룡 냉정하게 비교하자면 이소룡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거룡 은 그보다 더 진한 얼굴과 능청스런 코믹 쿵후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키는 이소룡과 비슷하지만 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몸이라, 정리하자면 이소룡보다 더 진하고 굵었다고나 할까. 더 나아가 < 소림사 용팔이 >(1982)에서는 박노식 이 전형을 만든 전라도 용팔이와 이소룡 캐릭터가 결합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이소룡’이라는 기괴한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 처음에는 ‘뭐야, 하나도 안 닮았잖아!’라고 불평했다가 점점 그의 키치적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작품들 중 단연 압권은 이소룡이 < 사망유희 >에서 입었던(타란티노의 < 킬빌 >에서 우마 서먼도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그대로 입고 나온 < 일소일권 >이다. 영화 속 배경은 홍콩으로 설정돼 있지만 사실은 한국 대관령 주변인 어딘가에서, 한 폭력단의 착취에 정면 도전한 한국인 청년 한용( 거룡 )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그는 착취당하는 한 식당에 취직한 주방장으로 나와,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기에 앞서 그 특유의 코믹 장면들을 열심히 보여준다. 김정용 감독, 정진화 주연 < 소림사 주방장 >(1981) 보다 한 해 앞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 소림사 용팔이 >도 그렇지만 거룡은 다른 액션 스타들과 달리 정진화(<소림사 주방장> < 산동 물장수 >)처럼 꽤 연기가 되는 배우라, 그런 킬링타임용 장면들이 딱히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목장에서 펼쳐지는 라스트 액션신이다. < 일소일권 > 철빠따 액션 눈여겨볼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팔과 다리의 옆 줄무늬가 거룡 의 몸매만큼이나 상당히 굵어서 일단 ‘빵’ 터진다. 두 번째로 이소룡의 쌍절곤에서 더 나아가 야구 배트를 들고 ‘철빠따’ 액션을 구사하는 모습이 거의 경이롭다. 스파이크를 신은 상대가 흙을 긁어 뿌리는 가운데 난이도 높은 대결이 펼쳐진다. 쌍절곤이 아닌 철빠따라 지칭하여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 파괴력 또한 엄청나다. 나중에는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비록 B급 ‘짝퉁’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그리고 ‘으악새 영화’라 천시당하던 우울한 시절에도, 어떤 식으로든 홍콩의 오리지널보다 하나라도 더 나은 것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눈물겨운 ‘독기’가 숨어있는 것. 날렵하면서도 파괴력 넘쳤던 거룡 의 액션영화들, 특히 김진태 감독의 < 월광쌍수 >(1981)나 김시현 감독의 < 흑표비객 >(1981)은 오히려 해외에서 DVD 출시돼 있다. 언급한 영화들 중 영상자료원에는 < 일소일권 > DVD와 VOD, < Enter the Invincible Hero >라는 제목으로 해외에서 출시된 <흑표비객> DVD, < 소림사 용팔이 > VHS가 있다. 특히 <흑표비객>의 경우 그 못지않게 화려했던 당대의 액션배우 왕호와 가공할 일대일 대결을 펼쳤다. 비록 거룡의 뜻하지 않은 급소 차기로 서둘러 대결이 마무리됐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프레디 VS 제이슨’ 같은 대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또한 <소림사 용팔이>에서 거룡과 멋진 호흡을 보여준 대머리 배우 최민규 (최민규가 거룡의 어깨 위에 올라탄 너무나도 멋진 스틸이 있다)가 <흑표비객>에서는 악당이었다. ‘王’자 불빛이 들어오는 거대한 펜던트를 목에 걸고 그만큼이나 거대한(물론 특수분장) 참외 배꼽도 인상적이었다. 그 배꼽이 ‘삼손의 머리카락’ 같은 역할을 하는지라, 비정하게도 거룡은 그 배꼽을 뽑아서 죽여 버렸다. 그야말로 이성적으로는 황당하지만 액션신의 퀄리티가 좋으니 그저 가만히 보고 있게 된다. B무비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이성과 분리된 텍스트 향유라고나 할까. < 소림사 용팔이 > 거룡 과 최민규 거룡 이영주 이석구 감독: 김시현 , 하지강 각본: 이정근 개봉극장: 세일극장 관람인원: 4922(서울)명
헤어짐을 고하는 연인의 말이 전해오는 충격과 혼란, 현 상황을 되돌리려는 노력, 그리고 밀려오는 분노, 모든 것들이 지나간 후의 애잔함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의 이별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큼 통속적인 영화 소재임이 분명하지만 <레퀴엠 포 로맨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재가 지닌 여전한 매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인다. 어둠 속에 들려오는 통화대기음, 전화번호를 누르는 소리, 통화 연결음으로 이어지는 사운드와 밤하늘을 날아가는 학의 비주얼이 주는 느낌은 사뭇 이질적이다. 이 통화의 주인공 윤(Yun)과 차이(Tsai)는 쿵후 영화의 주인공 같은 차림으로 동양적 내음이 물씬 풍기는 건물 지붕의 맞은편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다. 이리저리 여러 가지 색으로 물결치는 밤하늘과 이들의 격렬한 무술 대결은 전화 통화 속 이들의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작품 내내 연인들의 표정은 한 번도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전화선을 타고 전해지는 이들 목소리의 떨림과 무술 대결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차이의 헤어지자는 말은 그녀가 꺼내 든 칼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윤을 파고든다. 그녀는 만날 수 없는 이유들을 나열하며 무차별하게 공격을 이어간다. 윤은 당황하며 피하기에 바쁘다. 힘들게 반격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감뿐이다. 차이에게 겨우 다가가지만 그녀는 오히려 또 다른 무기를 꺼내 들며 더 큰 아픔을 안겨주고, 윤은 분노의 불길에 휩싸여 결국 칼을 뽑아들게 된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공격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러나 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분노는 사그라지고 붉게 물든 하늘도 비가 내리며 푸르게 식어간다. 이들은 말을 타고 추억의 애잔함과 슬픔이 공존하는 숲 속으로 향한다. <레퀴엠 포 로맨스>는 동양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아트워크나 중국풍의 음악을 비롯해 예술가에 대한 편견으로 딸의 교제를 반대하는 보수적인 부모의 모습, 그들의 뜻에 따라 안정적인 직업의 남자를 만나는 차이의 모습 등은 낯설지 않다. 특정 문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자칫 관객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나단 잉 감독은 남녀의 이별과 쿵후 대결의 접점을 찾아내며 자신의 선택에 당위성과 흥미로움을 부여하며 이를 극복한다. 또한 현재를 상징하는 전화와 과거를 나타내는 쿵후라는 두 소재가 지닌 대조적인 느낌까지 더해지면서 <레퀴엠 포 로맨스>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